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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전욱진/피라미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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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전욱진/피라미드 외 1편
전욱진
피라미드
그 여름에 이름을 외워 부른 사람은
사는 게 춤이었다
비 맞은 자두나무 열매 같은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가을 너머에 겨울 나이 먹어 봄
때마다 거처를 옮기며 살며
그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는 했다
자주 나의 이름을 잘못 불렀으나
고개 돌려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이름을 부르는 건 다시 여름이고
거기 내가 여전하다 말하는 사람
어쩐지 옆모습밖에는 없는데
어디서 가져온 믿음을 업은 채
찌를 듯이 뾰족한 예각이 먼데
태양이 많은 길 한복판에 그는
맨 아래 가장자리쯤에 서있다
너도 여전하다 말은 했으나 불가사의했다
나의 근황을 들은 그가 흠칫 놀라워하며
앞모습의 행방과 공중 누각에 관해
묻기도 전에 먼저 손을 꼭 잡고서
가난을 죽이고 못 가본 세상에서
누구나 다 잘되는 신화 같은 이야기
그 비법에 관한 모임이 목요일에 있다 하는
그가 입은 하얀 옷 붕대를 칭칭 감은 듯한
여름옷감 너머로 쉭쉭 소리는 희망이 내고
들으면 나도 잘 모르고 싶었다
하지만 정면을 내어주지 않는다
생각해보겠다고 답하는 입속에는 모래알이 씹혀
헤어질 때 그만 그의 이름을 잘못해서 말했는데
고개 돌려 날 보는 그는 자긴 항상 거기 있다고
다리 절며 확신을 등에 업고 멀어지고 있을 때
돌아오는 목요일이 범람하게 비가 오면 좋겠다
맑더라도 비가 오게 나라도 춤추겠다 생각한다
잔서殘暑
새벽빛과 하는 것도 마지막이다
혼자 하는 만족을 침묵이 볼 때
이제 자려 누운 아침결에는 항상
친하지도 않으면서 귀엣말을 하는
그렇지만 식성이 나하고는 비슷한
저수지의 딸들이 오늘도 자명한 척
날아와서 귓가에 소문을 놓는데
여름이 또다시 아내를 구하고 있고
그게 이번에는 내가 될 거란 소문
가지 않은 나라의 사람들은 지금 겨울을 난다는 소문
사람이 살만 하지 않은 땅에 사람이 산다는 소문
죽은 사람이 밤마다 내려온다는 산이 있다는 소문
어느 낭떠러지 노래하며 피는 꽃이 있다는 소문
윗동네에 어떤 한 자매가 동시에 아름답다는 소문
아랫동네 아흔 노모가 일흔의 아들을 돌본다는 소문
기다리는 기별이 그런대로 올까봐
그만하라 오늘도 홰홰 손만 내저을 뿐
요즘에는 우리가 사별하지 않으니
내 피 남의 피가 바람벽에 그만 남고
만족한 것들 이제 왱하고 날아가서
다 확인된 거라며 퍼뜨릴지 모르는
누추한 이 세상에 그래도 누군가는 사랑한다는 소문
*전욱진 2014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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