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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최진/덜 싼 똥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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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최진/덜 싼 똥 외 1편
최진
덜 싼 똥
사랑 보다 사는 게 급했던 나는
못다 한 고백처럼 누던 똥을 끊고서
출근길에 올랐다
천 개의 짐을 내리고
나에게 주어진 인연을 정리하다
좌측 하복부에 갇힌 통증에 온 삶이 멎었다
심연을 알 수 없는
문짝이 날아간 재래식 변소와
놀란 참새와 꿩이 푸드득 날아갈
마른 풀 가득한 들판 사이에서
나는 인간의 아랫도리를 벗고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싸고 팠다
오래된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그리했어야 했다
저항할 수 없는 격렬함으로
부끄럼이 파고들 틈 없는 웅크림으로
나는 사랑을 갈겨 싸는 새처럼
흔적 없이 하늘을 날고 팠다
덜 깬 잠
아이와 아내가 고양이처럼 웃고 있다
잠에서 돌아오지 못한 나는
뜬눈으로 밀려오는 웃음을 맞는다
모래알로 밀려났다 밀려오는 혼미昏迷
나는 어느 쪽으로도 깨어날 자신이 없어
환한 웃음 앞에 무섭고 슬프다
더 이상 다룰 수 없는 육신에 더부살다
셋방살이를 끝내듯 세상으로부터 저무는 그날
손 없는 날 고를 수 없는 다급함으로
이른 비에 젖은 개처럼 부르르 몸을 턴다
마녀를 사냥하는 세상에 마녀로 태어나
절벽과 사냥개 사이에서 마법을 준비한다
그대에게 젖었던 날들이 일말의 위로
울어줄 이가 없어 비가 오는 날
마지막 마법진을 그린다
벼랑 끝 송곳니 위에서 주문을 외우다
저 생의 잠이 죽음으로 이리 와 깬다
*최진 2015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배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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