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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단편/손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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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소설|
너에게 가는 길
손홍규
너는 운명을 믿니?
어제 미처 너에게 말하지 못했어. 네 눈은 방금 초원을 가로질러 온 야생마처럼 싱싱하게 빛나고 있었지. 격무에 시달린 듯 어깨가 쳐져 있었지만 보푸라기처럼 일어난 네 머리칼마저 내게는 바람에 날리는 갈기 마냥 윤기나 보였어. 일주일 전 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늦잠을 자고 있었지. 너는 끌탕을 하며 빌어먹을 글쟁이 어쩌고 했지만, 네 목소리에는 깊은 그리움과 반가움이 묻어있었어. 그때 나는 숙취 탓에 생목이 잡혀 목소리마저 컬컬했을 거야.
전화를 끊고 나는 욕실에 들어가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하고 물기가 뚝뚝 듣는 몸으로 거실을 걸어다니다가 내가 왜 알몸으로 돌아다니는지 잠깐 그 이유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다가, 또한 느닷없이 너와의 약속이 떠올라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가 내가 대체 무슨 이유로 외출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되돌아왔다가, 또한 느닷없이 너의 전화가, 너의 목소리가, 그리고 너와의 약속이 떠올라 벽시계를 흘끔거리고 서둘러 현관을 나섰지. 일주일 전의 너는 어제처럼 싱싱해 보이지는 않았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맥없이 웃고는 방금 생각해 낸 게 분명한 의미 없는 질문들을 했지. 소설은 잘 쓰고 있냐, 돈은 얼마나 버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고향의 부모님들은 무고하시냐……. 네가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퍽 놀랄 수밖에 없었어. 그날의 너는 질문과 질문 사이에 공허한 침묵을 노출시켰고, 내가 너의 질문에 대답할 때 부주의하게도 고개를 돌려 풍경 소리가 들려오는 카페의 출입문 쪽을 보거나 옆 테이블의 다른 손님들을 보았지. 그러는 사이 나 역시 한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내가 왜 그 자리에 앉아있는지를 잊었다가, 네 얼굴이 무척 낯설어져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대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어. 강에서 피어올라 산등성이를 기어 올라가는 안개처럼 배꼽 주위에서 피어오른 술기운이 횡경막을 거슬러 올라갈 즈음 우리는 온 몸이 간지러운 듯 자지러지게 웃어댔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었지.
너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그렇게 안절부절못했던 거야. 병훈 선배의 자서전을 써 달라는 말을 하고 난 뒤 너는 산소통 없이 잠수를 끝내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잠수부처럼 훅 숨을 들이켜고 몸을 부르르 떨었지. 나는 엉겁결에 네 어깨 위로 손을 내밀었어. 네 고개가 모로 툭 꺾일 것만 같았거든.
일주일 전의 너는 내게 상처를 줄까봐 안절부절못했고 어제의 너는 내가 어떤 상처를 주더라도 상처로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듯 한껏 너스레를 떨었어. 그것이 설령 내 짐작대로 꾸며진 행동이었다 해도 나는 너의 몸피를 뭉근하게 감싸고 있던 그 초원의 빛이 썩 마음에 들었어. 하지만 나는 어제 미처 너에게 말하지 못했어. 너를 닮고 싶었다고나 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내 여동생이 결혼을 할 때였으니까 삼 년 전이었지. 왜 갑자기 오라비 노릇을 하고 싶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네게 돈을 빌려 달라 했고 너는 미안하다고 했지. 나는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조카 녀석이 첫돌을 맞았을 즈음, 그러니까 일 년도 훨씬 지난 뒤에야 너는 새벽녘 수화기 저편에서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미안하다고 되뇌었지. 내 이름을 연거푸 부르면서 간간이 욕설도 섞어가면서 부자가 되고 싶다고, 친구가 돈이 필요할 때 주저하지 않고 도와줄 수 있을 만큼은 되고 싶다고, 흐느꼈지. 일 년이 넘도록 너는 내게 돈을 빌려주지 못했음을 자책했던 거야.
네가 발신에 조심스러운 만큼 수신에도 민감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무심코 지껄인 내 말 한마디에 네가 상처를 받을까봐, 또 다시 일 년 넘도록 친구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될까봐, 어제의 나는 무척이나 말을 아꼈던 거야. 그런데 너와 헤어지고 돌아 온 새벽녘, 차가운 거실에 묵새기고 앉아 있노라니 어쩐지 너와 나 사이가 조금은 버성기게 된 것만 같아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어. 좋은 후원자를 얻은 병훈 선배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면 네가 너의 직장에서 다른 동료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걸 애써 모른 척 했던 건 아니야. 다만,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내가 아는 누군가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내 친구가 그런 사람들 덕택에 좀 더 수월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처럼 남들에게는 일상적이고 쉬울 듯한 일들이 나와 관계를 맺는 순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설명하기가 어려웠을 뿐이야.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일주일 전 내 손이 네 어깨 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내 손을 가만히 잡고 나서 너는 이렇게 말했지. ‘너는 운명을 믿니?’라고 말야. 너의 이 뜬금없는 질문이 일주일 내내 귓가를 맴돌았고, 각성제처럼 내 잠을 빼앗곤 했지. 세심하기 짝이 없는 네가 아무리 취중이라 해도 별 의미 없이 그런 말을 흘렸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았어. 해독이 필요한 일종의 암호와 같다고 여겼지. 사실 네가 말끝을 올렸는지, 내렸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어. ‘너는 운명을 믿니?’였는지, ‘너는 운명을 믿니.’였는지 헷갈렸어. 병훈 선배의 자서전을 부탁하려고 했던 건지, 이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그것조차 헷갈렸어. 나는 네 말을 화두처럼 품에 안고, 잃어버린 본성을 찾아나선 목동처럼 며칠을 헤매었지. 그리고 흰 소였는지 아니면 여전히 누런 소였는지 알 수 없으나, 소를 닮은 사내를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어.
그 사내는 칠 척 장신에 구레나룻이 무성한 호걸형은 아니야. 눈썹이 구름 같고 이마는 하늘같으며 굳게 다문 입술이 바윗돌 같은 지사형도 아니야. 그냥 양아치 스타일이야. 이름은 박태주.
박태주를 만난 건 구치소였어. 감방에는 백일 전방이라는 게 있어. 한 방에 백일 이상 놔두면 탈옥할 요량이 생긴다는 게 그 이유야. 내가 들어간 방은 마침 백일이 다 된 사람이 여러 명이었어. 한 두 명이라면 그 사람들만 옮겨가고 그 수만큼 다른 사람들이 전방 오면 되지만 여러 명일 경우는 아예 그 방 인원 전부를 뿔뿔이 갈라놓는 경우도 종종 있어.
내가 들어간 지 삼 일만에 방이 와장창 깨지면서 모두 흩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왔어. 졸지에 나는 그 방에서 좌장이 되었고 뺑끼통 옆자리를 면할 수 있었지.
첫 번째는 칠순이 바라다 보이는 노인네였어. 나이 쉰이면 천명을 알고 예순이면 귀가 순해지며 일흔이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도리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말은 공자한테나 해당되는 말이야. 실제로 나이 쉰이면 점점 사그라지는 정력이 아쉬워 참새 똥이라도 몸에 좋다면 찾아 먹고 예순이면 오로지 한 코라도 더 뜨고 죽는 게 목표가 되고 일흔이면 누군가 옆에서 금 젓가락으로 자신의 물건을 들어올려서라도 해 보는 게 유일한 소원이지. 적어도 그 노인의 경우에는 말야.
노인은 간통죄로 들어왔는데 하루 종일 복숭아씨에 구멍을 내서 염주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어. 사람들이 이제 됐으니 그만 파라고 해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은 쫙 금이 가면서 깨진 복숭아씨만 해도 수십 개는 될 거야. 그런 식으로 조진 여자도 그만큼은 되겠지. 내가 출소할 때까지 간통 노인은 염주를 완성하지 못했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간통이라니 참 대단해. 간통노인이 항소 이유서를 써 달래서 사건의 내력을 듣게 되었어. 노인은 꼭 이 구절을 넣어 달라고 했어.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아, 어찌하여 그 애가 한순간 여자로 보였을까요?’ 뻔한 얘기야. 아래층에 세든 사람과 어찌어찌 하다보니 형님아우하며 지내게 됐어. 자연히 아우의 부인과도 가까워졌겠지. 어느 날 아우의 부인이 만나자는 거야. 공교롭게도 장소는 여관 앞이었어. 몹시도 무더웠던 탓에 잠시 여자를 세워두고 노인은 샤워를 하려고 여관방에 들어갔어.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 노인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지. 물론 나는 가소롭다고 여겼지만. 노인이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니 웬걸, 침대 위에 여자가 있는 거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야. 이 노인은 잠깐 정신을 잃고 그를 아우의 부인이 아닌 암컷으로 보고 만 거야. 물론 간통노인 역시 그 순간엔 수컷이 되었지.
항소 이유서를 써 주면서 단락이 바뀔 때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을 넣어줬고, 노인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문맥을 해치는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아아, 어찌하여 그 애가 한순간 여자로 보였을까요?’를 군데군데 넣어줬지. 알고 보니 재범이었어. 결국 부인과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더군. 나는 순순히 간통노인에게 상석을 양보했어.
두 번째로 들어 온 사람은 뺑소니였어. 내가 있던 방은 재범들만 있는 달구지 방이었어. 교통사범들 말야. 그 노인과 나만 예외였고. 뺑소니는 광주 출신이야. 광주에서 놀 때 대학생들과 데모도 해봤다는 거야. 강남에서 무슨 형님을 모시고 있다는데, 이따금 광주 출정가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나와 함께 부르곤 했지. 뺑소니는 사람을 치고 이백 미터를 도망갔다가 붙잡혔는데, 뺑소니 말로는 마땅히 차를 세울 곳이 없어서 찾다보니 이백 미터나 가게 되었다는 거야. 뺑소니는 조폭 신분임에도 그런 일 따위로 감방에 오게 된 걸 무척이나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었어. 너도 알겠지만 그때 얼굴을 붕어빵틀로 찍은 것 같은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 바로 우리 위층에 있었거든. 뺑소니는 운동시간이면 목을 길게 늘이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실제로는 대통령의 아들이 침대며 냉장고며 텔레비전까지 들여놓고 기숙하는 맨 위층을 사시로 째려보며 이렇게 외치곤 했어. ‘좆도! 좆도 없는 게 좆겉은 세상 좆겉이 사는구나!’ 대충 해석해 보면, 대통령 아들아! 애비 잘 만난 것 말고 잘 난 것도 없는 게 잘만 사는구나! 이런 뜻이었어. 하지만 뺑소니의 진가는 거기에 있지 않아. 뺑소니의 아침은 창가에 다가가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이렇게 외치는 걸로 시작됐어. ‘어머니! 왜 절 낳으셨나요. 차라리 알로 까서 후라이해 드시지!’ 그 다음 구구절절 이어지는 한탄 섞인 저주가 옆 사동까지 울려 퍼지면 수인들은 잠에서 깨어나 마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며 아침을 시작하지. 뺑소니의 저주는 기상나팔인 셈이었어.
그 다음에 온 사람은 음주운전이었는데 하루 종일 수건에서 실을 뽑아내 뭔가를 바느질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지. 바느질을 하지 않을 때면 조그만 불상을 관물함에 올려놓고 예불을 올렸어. 전에 사형수와 함께 있었는데, 이별을 아쉬워하며 사형수가 선물로 준 불상이었다더군.
내 사각팬티를 잘라 다용도 주머니를 만들어 준 사람도 그였고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스크를 하나씩 선물해 준 사람도 그였어. 아침저녁으로 모포를 개키거나 깔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리거든. 팬티로 만들어서 조금 께름칙했지만 그런 대로 쓸 만한 마스크였어. 두 평이 조금 넘는 혼거방엔 규정상 네 명의 수인이 함께 생활하도록 되어 있어. 하지만 강도, 강간, 살인, 교통사고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어. 어차피 감옥에 오는 녀석들은 조무래기들뿐이야. 진짜 도둑놈들은 결코 그런 곳에 가지 않아. 간혹 그런 놈들이 있지만 혼거방을 혼자 차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벽을 부수고 방 두 개를 하나로 쓰면서 없는 게 없이 갖춰놓고 지내다 가버리지. 소지가 내게 귀띔해준 바로는 정치인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재수 없게 들어온 어느 재벌 총수는 말야,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가 제 방에만 들어가면 피티 체조를 한다더군. 아무튼 혼거방엔 보통 여덟 명에서 열 명까지 아등바등 부대끼며 지내. 여름이면 몰라도 날이 쌀쌀해지니까 그다지 괴롭지는 않았어.
바느질 다음으로 온 사람은 뭐라고였어. 뭐라고는 친구의 여자를 데리고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를 냈고 뭐라고를 쫓아오던 친구 역시 뒤꽁무니에서 교통사고를 내서 거의 동시에 구속되었다더군. 경찰서에서 맞부딪친 두 사람은 수갑을 찬 채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바람에 공범 아닌 공범이 되었던 거야. 뭐라고의 친구는 우리 옆 사동의 맨 위층에 수감되어 있어서 늘 창문을 열고 뭐라고의 이름을 불렀지. 그러나 뭐라고의 대답은 오직 하나 ‘뭐라고?’뿐이었어. 야 이 개새끼야 밥은 처먹었냐? 뭐라고? 안 들리냐 씹새끼야? 뭐라고? 뒤질래 좆만한 새끼야? 뭐라고? 지에미랑 붙어먹고 사는 자식아! 뭐라고? 좆도 작은 게 백오호짜리 빤스만 입는 자식아! 뭐라고? 그년 에이즈인 거 몰랐냐. 좆대가리가 썩어서 뒈질 새끼야! 뭐라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악담과 저주에도 뭐라고는 의연하게 대처했어. 그 두 사람이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노라면 사동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고 교도관들조차 모른 척했지.
사람을 치어 죽인 버스 기사, 음주운전 세 번으로 삼진 아웃된 오토바이 퀵서비스, 무면허에 음주, 뺑소니를 얹은 삼박자, 이렇게 셋을 보태 우리 방엔 모두 여덟 명이 있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태주 그가 왔어.
박태주 이전에 한 사람이 더 있긴 했어. 그 노인은 나와 공범이었어. 구치소에서 방 배정을 잘못한 거지. 원래 공범들은 같은 방에 있을 수 없거든. 수인번호 옆에 공범기호가 있는데 당시 한총련 관련자들은 모두 (몸)이라는 기호가 찍혀 있었어. 그 노인도 한총련 관련 시국사범이었던 거야. 나는 낯이 설익은 재야인사쯤 되는 줄 미뤄 짐작했어. 알고 보니 그 노인은 탑골공원 죽돌인데, 쇠파이프 꼬나 쥔 사수대 옆에서 전경들에게 돌을 던지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잡혀 왔어. 탑골공원에는 자신의 청춘을 돌려달라고 울부짖으며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주체 못해 장기나 두다가 시위대가 몰려오면 불이나 피워 눈물을 찔끔거리거나 애꿎은 전경에게 돌을 던져 분풀이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놀고먹어도 정치 일 번지 종로바닥에서 뒹군다는 자부심으로 살지만, 선거 때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여당에게 표를 몰아주거나 하릴없이 젊은 놈들에게 눈을 부라리기도 하지. 그 노인은 안기부에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터지고 경찰에 넘겨졌어. 간첩인 줄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더군. 선글라스를 끼고 백구두를 신은 호리호리한 늙은이가 사수대 가운데서 홀로 팔을 치켜든 모습이 찍혔으니 대학생놈들 배후조종하려고 나선 고정간첩쯤으로 알았나봐. 백구두 노인은 전방 온 다음날 곧바로 다른 방으로 옮겨졌어. 나중에 안 거지만 우리 같은 공안사범들은 처음 들어간 방에서 출소할 때까지 죽치고 있는 거야. 말하자면 공안사범은 제자리에 두고 일반사범들만 이리저리 옮겨놓는 거지. 백구두 노인은 공안사범이었지만 일반사범 취급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어. 아무튼 백구두 노인이 간 뒤 박태주가 왔어. 그러니까 그가 우리 방에서 가장 막내인 셈이지.
박태주는 트럭 운전수였어. 굽은 길에서 짐칸에 실린 화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뒤따라오던 승용차가 그것들을 피하려고 핸들을 꺾었는데 그만 꼬마 하나를 치였대.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교통사고 특례법으로 끌려온 거라더군. 화물이 뭐였냐고 뺑소니가 물었어. 소라더군. 음메 음메 황소 말야. 세 마리나 싣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뿔이 부러지고 한 마리는 다리가 부러지고 한 마리는 목이 부러졌대.
그 안에서 내 별명은 민족이었어. 방문 이마에는 수형자들의 이름과 죄목이 병기되어 있는데 내 이름 옆에는 국가보안법이라고 쓰여 있었어. 국가보안법 혹은 집시법이면 사람들은 무조건 민족이라고 불렀어.
사흘 동안 박태주는 잘 버텼어. 나흘째 되는 날 처음 그가 곤조 부리는 걸 보았으니 사흘 동안 우리 역시 불안하지는 않았어. 돌아보면 이상할 정도야. 마치 내 가방 안에 시한폭탄이 들어있는 걸 모르고 사흘 동안 매고 다니다가 나흘 째 가방 안을 뒤져보니 폭탄이 나오는 거야. 오 초 남았다. 재빨리 폭탄을 던져버리고 엄폐물을 찾아 숨는다. 꽝! 폭탄이 터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만약 사흘 동안 시한폭탄을 넣고 다니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못 할 것 같아. 위험은 쉽게 발각되지 않으며, 우리는 늘 그런 위험과 더불어 살고 있어. 발각되지 않는 이상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렇게 믿으며 우리는 조금씩 속물이 되어 가는 거지. 사흘 동안 우리는 박태주가 위험하고 까다로운 존재라는 걸 전혀 몰랐어. 우스운 일이지. 나흘 째 되는 날부터 우리는 안전핀 뽑은 수류탄을 손에 쥔 것 마냥 조마조마했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간 끝장이잖아.
사실 나는 행복했는지도 몰라. 박태주의 곤조 따위야 방 두 개를 건너 뛴 곳에 있던 공범이 겪는 고통과 비교하면 참을 만한 거였어.
어느 대학의 단과대 학생회장 녀석인데 한총련 탈퇴서를 쓰지 않아 잡혀왔다더군. 우리는 하루 십오 분 동안 주어지는 운동 시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녀석이 고백하기를 탈퇴서를 쓰고 싶어도 도무지 그걸 어디에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거야. 한총련을 탈퇴하려면 당연히 한총련에 탈퇴서를 내야 하는데 자꾸 경찰서와 검찰청에서 탈퇴서를 내라고 종용해서 어리둥절했다는 거야. 그때는 한총련 사무실도 폐쇄 당한 때였어. 그 녀석은 낼 곳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잡혀 온 거야. 바보 같은 자식, 그냥 달라는 놈한테 줘버렸으면 될 것을, 원칙이나 따지다가 그리 된 거지. 그 녀석이 있는 방은 폭력방이야. 조무래기 폭력사범들이 있는 곳이지. 조잡한 문신이 새겨진 팔뚝이나 장딴지를 드러내놓고 좁은 방안에서 발차기 연습 따위나 하는 사람들인데, 장기가 문제였어. 운동시간에 방에 남아 물에 담가둔 파스의 끈적끈적한 부분을 원통형으로 말아 자위행위를 하는 건 둘째야. 그 때문에 녀석의 방은 늘 시큼한 산더덕 냄새가 고여 있다지. 그 냄새는 참겠는데 번번이 장기를 두자고 달려드는 바람에 괴롭다는 거였어. 아무리 져 주려고 노력해도 판판이 이긴다는 거야. 폭력사범들이 자존심은 세거든. 특히 물총이, 그러니까 강간범 말야, 물총이 자기네 방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기고만장이지. 물총들은 모든 사람들이 경멸하는 부류였어. 나 역시 검사에게 불려 다니며 검찰청의 구치감에서 강간범을 여럿 만나보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첫마디가 이랬어. ‘그년이 벌린 거야!’ 어쨌든 폭력사범들은 물총에 대해 상대적 우월감이라고나 할까, 그런 걸 갖고 있었어. 그런 자존심 때문에 아마도 녀석에 대해서는 상대적 열등감을 지녔을 거야. 서너 판 두고 나면 장기판을 엎어 버리고 그 녀석을 데리고 무예를 연마하지. 억지로 관물함 다리를 정강이로 걷어차게 하거나 가랑이를 찢어 준다며 두 다리를 붙잡고 한껏 벌리기도 하는 거야. 그래서 녀석은 방금 포경수술을 끝낸 놈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었어. 그 녀석에 비하면 달구지 방은 대체로 평온한 편이야. 박태주가 곤조만 부리지 않았다면.
박태주의 곤조는 나 때문에 시동이 걸렸어. 사흘 째 밤에 그가 두툼한 공책 한 권을 내 앞에 펼쳐놓더군. 교정이란 글자가 갈피마다 찍힌 구치소공책인데 세 권을 묶어놔서 두툼해 보였던 거야.
“내가 쓴 신데, 한 번 봐주세요”
“제가 뭐 볼 줄 아나요.”
간통노인이 복숭아씨에 구멍을 뚫다가 고개를 들어 힐끔거렸어. 뺑소니는 이놈저놈이 이년저년의 사진들을 찢어가 너덜너덜해진 여성잡지를 들여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어. 내가 있던 방 뺑기통에도 엉덩이를 까고 앉으면 눈앞에 속옷 차림의 러시아 여성이 요염한 자태로 서 있었으니까. 퀵서비스와 삼박자는 낮에 못 다 푼 스포츠 신문의 가로세로 퍼즐퀴즈에 몰두해 있었고 바느질은 징역 보따리를 꿰매는 중이었어. 뭐라고는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고 버스 기사는 앉은 채로 윗몸을 자울자울 흔들며 졸고 있었지.
“여기 볼 만한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요?”
박태주는 조붓한 방안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어. 그런 곳에서 소곤소곤한대도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아무도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어.
“그럼 한 번 볼게요.”
자기가 쓴 시인데 한 번 읽고 평을 해달라는 거야. 취침시간에도 나는 엎드려 박태주의 시를 들여다보았어. 반대편 바느질의 무좀투성이 발이 내 허리까지 닿았어. 하지만 그때만은 그다지 불쾌하지 않더군.
감옥에선 결코 불이 꺼지지 않아.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해. 여성잡지 표지로 빛 가리개를 만들어 억지 어둠을 만드는 거지. 그것마저 못 참겠으면 마스크를 안대로 이용하기도 해. 일직 교도관의 발소리가 사동 복도를 따라 가까워지면 자는 체 하다가 멀어지면 다시 읽는 식으로 두툼한 그의 공책을 밤이 깊도록 넘겼지. 사실 대수롭지는 않았어.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 식의 결연한 다짐이거나, 그대는 꽃 나는 벌 따위의 과잉감정의 연애시거나, 세상은 내게 좆만한 틈도 보여주지 않는다 식으로 비분강개하는 시들이었어. 그런데 왜 후딱 넘겨버리지 않고 밤이 깊도록 들여다봤냐고? 그건 박태주의 자서전 때문이었어. 어쩌면 그의 목적은 자서전을 읽히는 거였는지도 몰라. 나는 어디에서 모년 모월 모시에 누구누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글이었는데, 성공한 다음 출판할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인 것 같았어. 왜냐하면 ‘나의 성공 일대기’란 제목 옆에 무슨무슨 출판사에 찾아가 볼 것이란 짤막한 메모가 곁들여 있었거든. 내가 알기로 그 출판사들은 대개 뺑소니가 즐겨 읽는 큰형님, 두목, 뺑끼통, 어둠의 황제 따위를 출판하는 곳들이야. 아마 뺑소니와 비슷한 누군가 가르쳐줬겠지.
이튿날 박태주는 하루 종일 아무 말이 없다가 저녁밥을 먹으면서 조심스레 묻더군.
“어때요? 괜찮습니까?”
나는 입안의 소시지를 씹느라 말을 못했어. 우리는 그때 꽤나 풍성한 식사를 했어. 엥겔지수가 거의 100%에 육박하는 유일한 곳이 바로 그곳이잖아.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갛거나 파란 바가지가 그곳 사람들이 탕반기라 부르던 그릇이야. 벽에 뚫린 네모난 식구통으로 탕반기를 내주면 소지들이 밥과 국, 반찬을 퍼서 도로 넣어주거든. 다 쓴 물 세제 통에 사탕을 재어두면 엿기름처럼 쓸 수 있는데 그것과 소시지를 고추장에 버무려 먹거나 미지근한 식수에 담가둔 김치와 섞어 먹었지. 이따금 김이 나오면 바느질이 김밥을 만들어주기도 했어. 내가 대답하지 않으니까 박태주도 더는 묻지 않더군.
식사가 끝나자 바느질이 망을 보고 간통노인이 뺑기통에 들어가 담배를 피웠어. 담배라고 해봐야 별 거 아니야. 방마다 비치된 성경을 한 장씩 뜯어서 땅콩껍질을 비벼 은단을 한 알 으깨어 섞은 걸 싸서 피우는 거지. 성경을 한 장 북 찢을 때마다 뺑소니는 짓궂게 기도를 하곤 했어. ‘하늘에 계신 아버님, 당신의 좆만헌 어린 양이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어쩌구 하는 알량한 기도였어. 뺑소니를 본받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회개합니다’ ‘귀의합니다’라고 외치곤 했지. 그때마다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대머리 버스 기사가 눈살을 찌푸리곤 했지. 하지만 달구지 방의 한심한 화상들이 대머리의 기도를 참아주는 대신 버스 기사도 성경이 찢겨나가는 걸 묵인해 준 셈이지.
불은 전기면도기에서 건전지를 꺼내 같은 극끼리 부딪혀 얻어냈어. 두루마리 화장지 한 칸을 뜯어 둘둘 비벼말아 쏘시개로 쓰지. 공공연하게 요구르트와 말린 빵으로 막걸리까지 담가먹으니 없는 게 없다고 할 수 있었어.
나는 그의 성공 일대기를 읽어본 터라 박태주란 사람이 훨씬 친근하게 여겨졌던 게 사실이야. 하지만 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더군. 그의 삶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였거든. 한마디는 해야겠기에 넌지시 삶과 시가 따로 놀지 않아 좋다고 했어. 다만 문학적 왜곡이라고나 할까, 날것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정교한 칼질, 횟감을 회로 뜨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어설픈 충고를 덧붙였지.
성공 일대기라는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패배중이며 미완성인 그의 자서전이 내게 감동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내 느낌이 온전히 박태주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는 무척이나 실망한 듯했어. 간통 노인과 뺑소니, 음주운전과 퀵서비스까지 담배를 돌려 피운 뒤 박태주에게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거든. 원래는 박태주 이전에 뭐라고에게 차례가 돌아가야 하지만 그때 뭐라고는 자신의 공범과 문답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곧장 박태주에게 차례가 온 거야. 버스 기사와 삼박자는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았어.
전날 만 해도 맛있게 땅콩껍질 담배를 피우던 그가 도리질을 하니 이상하지 않겠어. 사람들이 마지막 모금을 양보하며 빨리 피우라고 다그치자 그가 본색을 드러냈어. 벌떡 일어나 킹콩처럼 가슴을 두드리더니 익룡처럼 꺅꺅 울어대는 것이었어. 복도로 난 철창을 붙잡고 오랑우탄처럼 매달려 소리칠 때까지도 사람들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 난데없이 가방 속에서 시한폭탄을 발견한 기분이었을 거야. 며칠 뒤 뺑소니가 그때의 심정을 털어놓기를, 언젠가 자신이 찍었던 깔치를 여관방에 데리고 갔다 낭패를 겪은 때와 같았다는 거야. 뺑소니는 술집 여자애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았는데 유난히 버티는 깔치가 하나 있었대. 뻗댈수록 맛있다나. 나는 뺑소니가 그런 표현을 쓸 때마다 온몸이 짜릿해지곤 했어.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라는 노래를 즐겨 부르던 ‘선배들의 마조히즘과 붉은 기 휘날리며 씨를 말려 버리자’라는 노랫말이 이식해 준 사디즘까지 지니고 있던 때였으니까. 사실 뺑소니를 조금 존경했어. 말로만 듣던 왕 구슬을 직접 눈으로 보았거든. 뺑소니가 처음 팬티를 까 내렸을 때 나는 거기에 성기가 아니라 권투선수의 주먹이 매달려 있다고 착각했을 정도니까. 음주운전이 자기는 해바라기라고 자랑했지만 뺑소니의 왕 구슬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 어린애 주먹과 성룡 주먹의 차이라고나 할까. 뺑소니는 기어코 그 여자애를 데리고 여관에 갔어. 그런데 팬티를 내려보니 있어야 할 살 틈새는 보이지 않고 새끼손가락만한 무말랭이가 달랑거리고 있더래. 뺑소니는 이것이 무엇인고 싶어 손가락으로 까딱거렸고 여자 아닌 여자애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지.
어쨌든 사람들은 넋 나간 듯 박태주의 최초의 곤조를 보고 있었어.
“안 피운다니까 왜 지랄들이야!”
마치 강간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두 다리를 오므리는 사람처럼 보였어. 내 표현이 조금 지저분하더라도 이해해 줘. 사실 이 표현은 박태주의 것이야. 그의 시 가운데 그런 구절이 있었어. ‘좆같은 세상 한 번 줬더니 밤마다 찾아와 달란다 마지못해 주면 또 와서 달란다 안 주려고 버티면 좆나게 때린다 가끔은 주고도 맞는다 니미 세상은 강간범이다.’
그날 이후로 박태주는 하루에 한번씩 곤조를 부렸어. 다른 사람들은 그가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했지만 나는 은근히 그의 곤조를 즐겼어. 그의 곤조가 기다려지기도 했어.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의 성공 일대기에서 마음에 꼭 드는 한 부분을 짚어보라면 바로 그가 열다섯 살에 보낸 도전장이야.
박태주의 고향 마을은 커다란 산맥이 꿈틀거리는 깊은 골짜기였어. 겨울이 아닌데도 이따금 산짐승이 내려와 가축을 물어가거나 텃밭을 망쳐놓았지. 박태주는 산맥이 보낸 저주스런 짐승들을 막아내기에 지쳐있었어. 화가 난 박태주는 밤을 새워 끙끙거리며 도전장을 만들었고 다음날 우체부에게 줬지. 물론 우표도 붙였어. 수신인은 태백산맥이었어. 도전장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박태주는 자신이 약속한 날 약속장소인 마을 뒷산 꼭대기 바위에 올라 기다렸어. 하룻밤을 꼴딱 새운 박태주는 겁쟁이 산맥을 비웃다가 화를 내다가 다시 비웃다가 화를 내다가 그만 들고 간 낫으로 바위를 찍어 날만 부러뜨리고 돌아왔어. 역사적인 그의 도전은 부러진 낫을 들고 이른 아침 집으로 돌아온 둘째아들의 뺨을 낱알 훑듯이 털어버린 아버지의 손바닥에서 끝났지.
어쩌면 그의 곤조의 기원도 그곳에 있는지 몰라. 옆구리를 질벅거리며 놀려대는 세상과 판가름을 하려고 도전장을 내밀면 쏙 사라져 버리고 말잖아. 도전조차 받아주지 않는 세상. 그건 그때의 내가 느낀 세상과 비슷했어.
그런데 박태주는 당당했어. 비록 도전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전장은 보냈잖아. 아무개의 둘째 아들 박태주가 보낸다. 어느 날 어느 곳에 나와라. 무기는 낫이다. 우리 한 번 맞장 뜨자. 그가 밤 새워 고민해 만들었던 도전장을 보고 싶었어.
도전이 불가능한 세상. 늘 도전을 꿈꾸지만 도전장조차 쉽사리 만들 수 없었던 내게 곤조통 박태주는 내 안에 꿈틀대는 곤조를 자극했으며 내 곤조가 박태주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걸 나도 인정했던 거야. 물론 박태주의 곤조에는 내게 부족한 게 있었어. 결코 흉내 낼 수도 없고 따라할 수도 없는 거지. 그건 바로 눈빛이야.
나는 처음에 박태주가 곤조 부릴 때 이채로운 빛을 띠던 그 눈빛이 어떤 증오나 분노가 비틀려 표현된 것으로만 여겼어. 이따금 행인을 쏘아보는 서울역 노숙자들의 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업복이 든 가방을 메고 지하철에서 졸다 깨어난 노동자의 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눈빛인 줄만 알았어. 뚜렷한 대상 없이 몽정을 하듯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의식하지 못한 채 흘리는 눈빛이라고 여겼던 건 내 착각이었어. 박태주의 곤조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그 안에서 광기와 비슷한 어떤 열정을 보았어. 신기한 일이었어. 세상은 익숙해질수록 그 의미가 더욱 모호해지기 마련인데, 박태주의 눈빛은 익숙해질수록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뚜렷해지는 거야. 그걸 깨달은 뒤 나는 플라스틱 거울을 들여다 볼 때면 내 눈빛을 유심히 관찰했어. 그 안에 무언가 나도 모르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하지만 내 눈빛에는 생명이 없었어. 무색무취. 어떤 열정도 전염시키거나 이식하지 못할 것만 같은 죽은 눈빛이었어. 눈동자 속에는 타버린 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 수액이 흐르지 않아 성장도 멈춰버리고 광합성 작용도 불가능해 곧 산산조각 날 것처럼 보이는 나무가 서 있었어. 그 나무도 처음에는 싱싱한 묘목이었을 거야. 어느 신혼부부의 단란한 방에 들어설 장롱으로 쓰이기 위해 심어진 오동나무였거나 수면으로 막 솟은 듯 번득이는 자작나무였거나 하늘과 땅을 잇는 꿈을 지닌 적송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타버린 나무는 정체가 불분명해. 그것이 본래 무슨 나무였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정체성을 상실해 버린 지 오래야. 사람도 그럴까.
무언가로부터 독립되어 온전히 자주적일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할까? 저 들판에 홀로 피어난 고고한 대나무 한 그루도 태양과 대지와 구름과 바람에 자신의 생명을 빚지고 있잖아. 하물며 하루라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배설하지 않고 잠자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배겨날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가 어떻게 자주적일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지표식물처럼 민감한 양심을 지녔던 것도 아니야. 다만 적당히 살기엔 억울했어. 대중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들이 딛고 간 길만 골라 디디며 신분과 명예와 부귀를 추구하기엔 우리의 성기가 너무 빳빳했어. 하지만 일찍 발기했던 만큼 일찍 사정해 버렸는지도 몰라. 내 눈엔 봄이 와도 새싹을 틔우지 못할 타버린 나무가 서 있었고 나는 그걸 그다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왜 내가 그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이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진짜 나는 누구인가. 혹은 운명이란 무엇인가.
폭력 방에 있는 녀석은 빼고, 대체로 우리 같은 공안사범들은 방에서 그럭저럭 대접을 받으며 지냈어. 일반사범들이 감기약을 신청하면 감기가 다 나은 뒤에 약이 나왔어. 하지만 우리가 신청하면 다음날 제꺽 갖다주거든. 그래서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도 늘 감기에 걸려야 했고 그렇게 지급 받은 감기약을 간통노인이나 대머리에게 주곤 했지. 이따금 도둑놈 방이나 뽕 방에 건네주기도 했어. 특히 뽕들은, 그러니까 마약사범들은 반입 물품이 제한되어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런 뽕들 부탁을 받아 내 앞으로 소포가 오게 했어. 아무튼 감방 내의 애로사항을 우리들이 대신 짖어주니까 대체로 일반사범들은 우리를 기특하게 여기는 편이었어. 감방 안에서 무슨 감기가 그렇게 잦은 거냐고? 사실 나도 처음 감방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은 어리둥절했어. 그곳 사람들은 밤만 되면 피로회복제를 복용해. 하루 종일 감방 안에서 빈둥거리며 기껏 하는 일이라고는 신문과 잡지를 들춰보거나 수저를 들거나 장기를 두거나 배설을 하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 영양제, 피로회복제 따위를 챙겨먹는지 알 수 없었지. 그런데 며칠 지내보니까 알겠더라고. 정말 피곤해. 밤만 되면 마치 고단한 노동을 마친 것처럼 온몸이 늘어지면서 피로가 덮쳐오는 거야. 그래서인지 병도 잦아.
어쨌든 공안사범들은 면회 시간도 일반사범보다 오 분이나 길었고, 면회실도 분리되어 있었어. 그 면회실 앞 복도에서 몇 번 병훈 선배를 만나기는 했어. 병훈 선배는 독방에 들어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듯 한껏 나른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약을 위해 잔뜩 도사린 듯 온몸에서 팽팽한 긴장감도 뿜어내고 있었어. 조화를 이루기 힘들 것만 같은 상반된 두 태도의 공존이 선배한테만은 가능한 것 같았어.
내가 집행유예로 출소한 뒤에도 이 년이 지나서야 병훈 선배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수 있었지. 그 뒤 이따금 풍문으로 병훈 선배의 소식을 듣곤 했지. 그 풍문을 몰고 온 사람도 대개는 너였지만.
네가 나에게 ‘너는 운명을 믿니.’라고 말했던 그날 오전 낯선 전화를 받았어. 나는 여전히 숙취 탓에 몽롱한 상태였고 생목이 잡혀 쓴물만 되삼키고 있었어. 수화기 저편에서는 투박한 남도 사투리의 사내가 나를 윽박질렀고 그제야 나는 그 사내가 뺑소니라는 걸 알았어.
“야, 민족! 너 이 새끼 소설가 됐다등만 으째 연락 한 번 읎냐? 지미 알로 까서 후라이를 해 먹을 새끼가!”
내가 출소해 군입대를 준비할 즈음 뺑소니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출소했었지. 그래서 한번 만난 적이 있어. 군대에 가서도 종종 뺑소니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뚝 끊겼어. 강남의 부동산 건달들을 소탕했다는 뉴스를 보고는 다시 끌려들어간 게 아닌가 막연히 짐작만 했을 뿐이지.
뺑소니는 문예지에서 내 이름을 보았노라며 여기저기서 수소문해 연락처를 알아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고 했어.
“니, 벨일 읎으면 나와라. 니가 알면 깜짝 놀랠 일이 있어야.”
뺑소니를 만난 게 바로 그제 저녁이었어. 뺑소니는 예전보다 살집이 줄어들어 훨씬 매끈해져 있었어. 너도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출판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어.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지. 뺑소니는 한 사람을 소개해 줬는데 그 출판사에서 몇 년 전 출판된 책의 저자라는 거였어. 그 작가는 내게 명함을 건네며 입가에 서늘한 웃음을 지었어. 우리는 뺑소니를 따라 곧장 룸살롱으로 향했어. 말굽형 탁자 위로 빈 양주병과 맥주병이 늘어갔고 나는 뺑소니가 주문하는 대로 광야에서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따위를 불렀어. 뺑소니와 그 작가는 아가씨들의 허리를 붙잡고 춤을 추웠고 나는 내 짝인 아가씨의 무릎을 베고 입가에 침을 흘리고 있었지. 우리는 캐쥬얼 차림으로 갈아입은 아가씨들과 함께 나갔고 모텔 앞 포장마차에서 다시 술을 마셨어. 나는 짝의 트레머리를 쥐고 흔들었고 그 바람에 내 짝은 소주잔을 놓쳐 제 가슴으로 맑은 소주를 흘려보냈지. 그러자 뺑소니가 내 짝의 가슴에 얼굴을 들이대고 끈적한 혀를 내밀어 소주를 핥아먹었어. 뺑소니는 저고리를 벗고 와이셔츠의 소매 단추를 풀어 팔오금을 드러냈어.
“형, 여기 있던 문신은 어떻게 된 거예요?”
“아따 레이저로 읎앴는디 돈 좀 들었어야. 마빡에 피 묻혀갖고 댕기는 애기도 아니고 남사스러워서 말여.”
나는 왕 구슬도 궁금해졌어.
“그거 못 헐 것이어야. 그런 거 헐라면 마누라가 애 둘셋은 놓고 거시기가 활쩍 열려야 허는 것인디. 요런 잡년들 상대헐 때야 지도 좋고 나도 좋고 꿩먹고 알먹기지만서두, 마누라헌티는 안 되겄더라. 아프다고 우는디 어떡허냐. 수술히서 빼내 버렸다.”
“서운하지 않아요?”
“섭허긴. 어디 떡 치는 게 나 혼자 좋다고 허는 것이냐. 그나저나 오늘의 술자리는 다 우리 마누라님 덕택이여. 철없는 가시네가 문학소녀 티낸다고 소설나부랭이를 읽지 않았으면 니가 소설가가 되았는지 짭새가 되았는지 으찌 알았겄냐?”
나는 뺑소니의 얼굴에 뭔가 철학적이고 오묘한 표정이 떠오르는 걸 보았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가로등 아래를 본 사람의 표정이라고나 할까. 조금은 아니꼽기도 했지만 감탄했던 게 사실이야.
우리는 모텔에 들어가 각자의 방에 짝을 데리고 들어갔어. 내 짝은 말이 많았고 뺑소니를 손님으로 여러 번 만났던 터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실들을 들려주었어.
“아 그 작가 오빠 말이죠? 사장님이 예전에 빵에 있을 때 만난 오빠라던데요. 한때는 잘 나갔는데 지금은 그 출판사도 정치인들 자서전이나 내주면서 먹고사나 봐요.”
그제서 나는 그 작가가 박태주인 걸 알았어. 어딘지 모르게 나를 비웃는 듯한 표정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그자가 박태주라는 걸 짐작도 못했던 거야. 명함에 새겨진 이름은 필명이었던 거야. 나는 방문을 박차고 나가 박태주가 자신의 짝과 들어가 있는 방문을 두드렸어. 복도에 깔린 붉은 카펫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벽에 걸린 거울에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어. 그 모습을 보자 울컥 눈물이 나려 하더군. 뺑소니나 박태주보다 초라하다는 자괴심 때문이었을까. 그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듯 양말도 벗지 않은 채였어. 왕구슬도 없는 뺑소니가 들어가 있는 방에서는 감창이 흘러나왔어. 박태주와 나는 다시 포장마차로 갔어. 곤드레만드레 취한 나는 그를 데리고 집으로 갔어.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어제 아침이었어. 나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속옷 차림으로 방안을 거닐었어. 찬물을 연거푸 서너 잔 마셨더니 울렁거리던 속이 조금 잠잠해졌어. 그리고 나는 책상 위 노트북 옆에 놓여있는 수표를 보았지.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이었어. 소설가 선생 사는 꼴이 안쓰럽구만, 그래도 소설가 냄새가 나서 좋습니다. 이런 말이 귓가에 맴돌았어. 아마도 현관을 들어서면서 그가 내뱉었던 말이었을 거야.
포장마차에서 혹은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술김에 말했는지도 몰라. 여동생은 조카를 놀이방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울상이었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는 시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레이저로 망막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는 수술을 해야 했어. 수술비가 이백만 원이었어.
나는 마셨던 물을 거실에 게워냈고 눈물을 찔끔 흘렸어. 수치심에 온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어. 제깟놈이 대체 뭔데, 기껏해야 어둠의 대왕이니 의리의 사나이니 건달들을 주인공으로 한 통속소설이나 쓴 주제에, 정치인들의 자서전이나 경제경영서 따위를 대필해주고 사는 주제에, 뻔뻔하게도 작가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녀석이 나에게 모욕을 줄 수 있다니. 어제 네가 물었지. 왜 눈이 부었냐고. 과음한 탓이라고 둘러댔지만 너는 눈치챈 것 같았어. 내가 길고 서러운 울음을 울었다는 걸. 너는 그게 병훈 선배의 자서전 대필 문제로 고심한 흔적이라 여겼겠지만, 사실은 그 돈 이백만 원 때문이었어.
다른 사람들은 감방 생활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호기를 부리곤 했어. 한 바퀴 혹은 두 바퀴는 눈 깜짝할 새 흘러간다는 거야. 그럴 거면 왜 가둬두겠어. 사실 감옥에서의 하루는 바깥에서의 열흘과 맞먹을 정도인데 말야. 일 년 혹은 이 년이 금세 지나간다면 감옥의 역사는 다시 써져야 할 거야.
달구지 방의 허풍이 깨져나간 건 대머리 버스기사 때문이야. 어느 날 대머리는 면회를 갔다 오더니 어린애처럼 훌쩍였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야. 대머리의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의 노친네는 여든쯤을 바라보았겠지. 대머리는 과실치사로 금고 일 년형을 선고받고 항소 중이었어.
새벽 첫 운행을 나섰다가 술 취해 길에 뻗어있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깔아뭉갰다는 거야. 버스에 깔렸으니 배가 터지고 내장이 흘러나와 처참한 몰골이었겠지. 대머리는 울면서 내내 자신이 깔아뭉갠 취객을 저주했어. 하필 그 시간에 그 길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쓰러져 있을 게 뭐냐는 거지. 곧이어 대머리는 세상의 모든 애주가를 저주했고 술을 파는 놈들, 술을 만드는 놈들, 기어이 보리와 밀과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과 그들의 부모, 또한 모든 생명의 근원인 땅과 태양 그리고 우주 자체를 저주하기 시작했어. 결국에는 이십 여 년 간 버스기사를 해 온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대머리를 쥐어뜯더군.
그러자 달구지 방의 사람들은 제각기 생각에 잠겼어. 음주운전도 바늘을 옷섶에 찔러둔 채 말이 없었어. 뺑소니만이 생각할 삶이란 없다는 듯 평소처럼 벽에 기대어 여성잡지를 들여다보고 있었지. 아마도 대부분 대머리의 저주가 터무니없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거야. 어쩌면 자신들도 대머리가 울부짖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세상 모든 걸 저주하고 싶어한다는 걸 씁쓸하게 확인했을 거야. 운명이란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다가도 어느 순간 공룡처럼 커진 모습으로 앞길을 가로막곤 하지. 그때 박태주의 곤조가 시작되었어. 버스기사의 대머리를 손바닥으로 슬슬 문지르길래 우리는 그가 위로하려는 줄만 알았어. 사실 박태주도 곤조를 부리지 않을 때는 제법 낙낙한 성품의 소유자니까.
박태주는 버스기사의 대머리에 침을 퉤 뱉더니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어. 대머리는 반항도 하지 않고 때리는 대로 맞기만 했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한 아들은 그렇게 맞아도 싸다고 여겼는지도 몰라. 뺑기통에서 볼 일을 보던 퀵서비스가 수건가리개를 치우고 방안을 들여다보았어. 우리는 박태주의 곤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지.
그런데 간통노인이 갑자기 복숭아씨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발딱 일어났어. 수건으로 주먹을 감싸더니 다른 수건 한 장을 박태주에게 던지더군. 더 이상은 못 봐준다는 거였어. 젊은 놈이 늙은이를 괄시해도 유분수지 개호로 자식 같은 놈이 천방지축이라며 불같이 화를 내더군. 드디어 간통노인이 체력과 신체조건의 열세를 극복하고 박태주와 맞장을 뜨기로 결심한 거야. 걸때가 얍상하고 호리호리한 걸로 봐서 신체조건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늙은이잖아. 사실 그동안 박태주의 곤조가 간통노인을 향한 적이 많았거든. 참고 지낸 게 용하다고도 할 수 있었지. 간통노인은 정작 자신을 상대로 곤조를 부릴 때보다, 다른 사람을 상대로 곤조를 부릴 때 대들고 나서는 게 좀 더 깔끔한 모양새가 되리라고 판단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 간통노인은 이미 노회한 사람이었고 능구렁이처럼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야.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었어. 그 정도도 모를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도 간통노인이 박태주와 맞장을 뜨기로 마음먹은 건 버스기사가 무너뜨린 위태로운 자존심 때문이었을 거야. 느닷없이 자신들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밀려드는 자괴심이 원래부터 위태로웠던 자존심을 무너뜨렸으니까.
대머리의 가느다란 울음은 통곡 못지않았던 셈이야. 달구지 방의 사람들이 쓰고 있는 위선의 가면을 한순간에 벗겨버리고, 맨 얼굴에 새겨진 수치와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내도록 하는 위대한 울음이었던 거지. 간통 노인이 잽을 날리는 시늉을 하자 거짓말처럼 박태주가 온순해지더군.
간통노인이 물건을 꺼냈는데 여자를 자빠트리지 않은 적은 없었어. 하지만 이번엔 빼든 칼을 도로 집어넣어야 했어. 박태주가 대머리보다 서럽게 울었기 때문이야. 간통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수건을 내팽개쳤고 홧김에 던져버린 복숭아씨가 어디쯤에 떨어졌는지를 알아보려고 창가에 붙어 밖을 기웃거렸어.
그는 한참을 늘켜 울다가 갈쌍갈쌍한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어. 흰자위가 덴 자국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어. 그 눈. 참 많은 눈을 보았지만 그처럼 간절한 빛을 띤 눈은 처음이었어.
조붓한 감방에 갇힌 우리들처럼, 그의 눈동자는 눈에 갇힌 수인이었어. 그가 영숙아! 하고 초혼을 하듯 구슬프게 외칠 때 나는 짐작했어. 그의 자서전을 읽었기 때문에 대충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 그는 박태주의 부인이야. 고향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배가 맞은 뒤로는 함께 야반도주를 했지. 산맥에 도전장을 보낸 것도 그때문이었을 거야. 그들의 서울살이는 애옥살이였으나 서로에 대한 애정만은 어떤 부부 못지않았던 모양이야.
박태주의 눈 때문이었다면 너무 싱거울까? 하지만 사실이 그랬어. 나는 반성문을 쓰고 집행유예로 출소했어. 그는 내게 몇 달 동안 면회를 오지 않는 부인을 찾아가 달라 부탁했어. 나는 출소하자마자 감방 동료들이 부탁한 일들을 재빨리 해치웠고 그 중에는 박태주의 부인을 만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어. 애석하게도 그 사이 박태주의 부인은 아이를 낳은 뒤 곧바로 잠적해 버렸고, 그 아이는 박태주의 고향집에서 자라고 있었어. 나는 이런 내용을 짤막한 편지로 써 그에게 보냈고, 그 뒤로는 그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야.
어제 너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자꾸만 무언가가 꼭뒤를 낚아채더군. 수표였어. 나는 그 수표를 지갑에 넣고 나왔어. 박태주의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마침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
“곤히 자고 있어서 그냥 나왔지요. 속은 괜찮습니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불퉁스러웠어.
“소설가 선생, 술김에 한 말이라고 다 흘려들을 박태주가 아닙니다. 난 소설가 선생이 좋은 소설을 썼으면 합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 ‘시력이 사라진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이 돈은 당장 급한 게 아니다. 그러자 그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했어. 전화기 저편에서 무겁게 고개를 젓고 있을 그의 얼굴이 떠올랐어. 그는 나이든 사람이 시력을 잃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빨리 죽음으로 달려간다고 했어. 자신이 노쇠했음을 깨닫는 순간 삶에 대한 미련 혹은 집착이 사라진다는 거야. 침침해져 가는 눈을 그대로 놔두는 건 소진해가는 삶의 열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지.
“그 돈은 아버님의 눈을 고치는 데 쓰세요. 그리고 저는 소설가 선생이 무조건 좋은 소설 쓰는 데 온 시간을 바쳤으면 합니다. 기억하십니까? 그 옛날 우리가 마룻바닥에서 모포를 덮고 함께 자던 시절 말입니다. 그때 소설가 선생이 내게 그러지 않았습니까? 삶과 시가 따로 놀지 않아 좋다고 했지요. 다만 문학적 왜곡……, 맞습니까? ……날것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정교한 칼질, 횟감을 회로 뜨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던 충고 말입니다. 뒷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앞말은 그 뒤로 내게 무척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살다보니 말입니다. 어쩐지 시가 내 삶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멀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점점 더 따로 놀게 된 거지요. 그래도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을 버팀목 삼아 오늘까지 버텨왔습니다. 비록 통속소설로 성공했다가 이제는 대필 작가로 전락했지만, 한번도 거짓을 쓴 적은 없습니다. 아니, 어차피 타락해가는 삶인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그 속도를 늦추는 거였습니다. 소설가 선생의 그 말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그의 정중한 말에는 에둘러서 나를 질타하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았어. 하지만 나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잊고 있었던 몇 가지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어. 어느 날 징역 보따리를 꿰매다가 바늘에 손이 찔린 바느질이 통곡을 하던 모습. 바느질은 자신에게 불상을 선물로 준 사형수가 드디어 형장으로 가게 되었다며 예언자처럼 울었어. 며칠 뒤 그의 예언은 사실로 나타났어. 그것만은 아니야. 뭐라고는 화장실에서 옷을 홀라당 벗고 제 알몸을 샅샅이 살피곤 했어. 반점이 생기지 않았나 겁이 났던 거야. 그들이 이따금 자신도 모르게 흘리던 내면들을 엿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어. 내가 출소하기 며칠 전, 취침시간이 되어 모포를 깔고 있을 때 사동을 울리던 함성들도 떠올랐어. 창살 밖 보안등 불빛 속으로 빗금을 긋던 눈발들. 수인들은 창살에 들러붙어 첫눈이 내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관물함에서 식기를 꺼내 미친 듯이 창살을 두드렸어. 갇혀 있거나 갇혀 있지 않거나 상관없이 첫눈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내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선생님은…… 운명을 믿습니까?”
박태주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어. 뜬금없는 내 질문을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어.
“……나는 집행유예로 출소하던, 이십대 중반에 불과했던 소설가 선생의 뒤통수를, 무례하더라도 용서하십시오, 그 뒤통수를 이따금 떠올립니다. 반성문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뇌하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고뇌하던 모습이 뒤통수에 겹쳐지더군요. 운명이라고 했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가 선생과 저의 만남이 운명이었다면, 그런 운명이라면 저는 믿고 싶습니다.”
나는 언제쯤에야 그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한없이 자책하면서, 너를 만나러 가고 있었어.
어제 너는 초원을 달려온 야생마처럼 생기가 넘쳤어.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조금은 두려웠을 거야. 병훈 선배가 꼭 내게 자신의 자서전을 맡기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한 뒤 네가 보수도 그만큼 높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은 건, 그 부탁을 허락했을 때 내가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너의 세심한 배려라는 걸 알고 있었어. 나 역시 어제 미처 너에게 말하지 못했어. 돌아보니 오히려 잘 된 일이야. 나는 오늘 병훈 선배를 찾아가려 해. 그게 내 운명일 거라고 생각해. 내가 병훈 선배에게 압도당해 자서전 대필을 승낙하든, 내가 병훈 선배 스스로 그 요구를 철회하도록 하든, 그 모든 게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문제라는 걸. 나의 추락의 속도를 늦추거나 늘리는 건 곱다시 내 몫이란 걸. 그런 게 운명이라면, 친구야, 나도 운명을 믿는다.
너는 운명을 믿니.
손홍규․
1975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작가세계≫로 등단 ․2004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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