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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시/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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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바다의 여자
나는 바다로 돌아갈 거야
거기 내 영원한 방 있으리니
그래서 나는 바다의 여자 되리
바다의 여자가 되어
지구의 한 끝을 핥으며 우는
바다 한자락 와락 끌어당겨
젖을 물리고
밤새 바다에 잠겨 떠내려온
너무 높아 추웠던 산봉우리도
지금은 고요히 젖을 물리고
스러져 기우는 저 달도
헛디딜 듯 쓰러지는 낙조의 해도
비명을 접고
내 몸안에 지그시 들게 하리
노래라도 불러주랴
엉덩이를 치켜 올려 넉넉한 내 등으로
포근히 업어나 주랴
바다여 너는 아직
회복기에 들지 못했다
치솟는 세상사 화를
들끓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바다를 육지에 쏟아 엎질러 버리는
그 짐승 같은 광기에
빈 젖이라도 물려
달래고 달래고 싶어
그런 여자 되고 싶어
바다여!
누구의 배를 빌어 낳아 기른 핏줄인지
겨우 걸음마 배우는 작은 섬들까지
내 큰 두 팔로 안아들이리
아직 잘 모르지만 이 세상 끝나는 날
맑고 푸르른 바다 속으로
내 뼈의 입자들
고요히 녹아 안겨들게.
투명 가면
너는 절대로 잘 모르지만
오늘 나는 투명 가면을 썼다
너는 절대로 잘 모르지만
어제도 나는 또 다른 투명 가면을 썼다
절대로 너는 잘 모르지만
이 투명 가면을 쓴 지는 오래되었다
절대로 너는 모르지만
그 있잖아 그 네모난 사람 있지
아니 그 세모난 사람 그 사람도
투명 가면을 매일 바꿔 쓰는 걸
너는 절대로 모르지만
투명 가면을 쓰지 않고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어
너는 절대로 모르지만
투명 가면을 써도 요즘은 들킬 때가 있지
슬슬 가면을 벗기는 숨은 손이 개발되어
비싸게 팔린다는 거야
그야 진실은 비싼 거지 (가짜 진실도 요 조심)
너는 절대로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드러날 것 같은가
결국은 더 비싸고 교묘한
기적의 가면 특품을
너도 나도 만들고 있다는 거
아냐! 알아?
신달자․
경남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봉헌문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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