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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시/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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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검은 삼나무 장벽․1
삼나무들은 빽빽해서 스스로 장벽이다.
삼나무 대오(隊伍) 위로 푸른 궁륭,
종잇장만큼 얇은 달은 말짱하고
늘푸른바늘잎나무들의 장벽에
바람이 몸 쳐대며 빠져나간다.
검은 삼나무 장벽은 경계를 나눈다.
바람은 경계의 이 편에서
경계의 저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나는 검은 삼나무 장벽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건너가지 못하니 스스로 절벽이다.
검은 염소가 낮은 뿔로 절벽을
들이받고 있다.
검은 삼나무 장벽․2
1.
삼나무들이 일렬횡대로 설 때
추운 길들이
저 장벽을 넘기 위해 달려온다.
폭설 뒤,
저 장벽의 상록은 더욱 퍼렇다.
장벽이 더욱 퍼래지는 것은
저를 향해 달려오는
추운 길들을 삼켰기 때문이다.
저 상록의 장벽 앞에 와서
길들이 끊길 때
장벽은 절벽이다.
2.
물 꽝꽝 언 강가에 뒤집혀진
나룻배 한 척,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은
나룻배가 곧 강이기 때문이다.
3.
몸 갖고 몸 넘어가려는 자들이
울부짖는다.
화살이 곧 과녁인 것을,
살아 있는 동안만
죽음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임을,
아, 이제 알았단 말인가!
장석주․
1955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햇빛사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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