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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시/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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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몽유이월
저수지로 가라앉는 안개처럼 무겁다
거의 모든 오후,
공기는 희박하다
심장이 느리고 더디게 움직이는
그해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이월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루만 더 길었어도
벌써 이 세상 것이 아니었을
그 많은 것들이
이월은 불안으로 목을 조른다
비가 피처럼 끈적한
이월
십일월을 갉아먹으며
한겨울과 봄 사이에서 천식환자처럼
갸르릉거리는,
검은 구름에서
손톱이나 말라버린 붉은 달의 찌꺼기,
머리카락이 섞인 비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도 하는
심장이 느리고 더디게 움직이는
이월
사람들, 저수지 위의 안개처럼 무겁게
떠다닌다
나무 사이에 소리가 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다 귀가 되어
한곳을 향하고 있다
키 큰 나무들,
오동나무와 대나무와 뾰족하고 잎사귀가 많은
비파나무들, 어둑한 날
그들의 손에 온순하게 갇혀 있는
그토록 사나운 짐승인
바람은
사각사각 내려앉고 있는
달빛을 물어뜯으러
숨을 고르고 있지
나무 사이에, 나뭇잎 사이에
보이지 않는 짐승
조용미․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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