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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시/김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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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버스 안의 풍경, 어떤 하루
우리는 길에서 늘 누군가에게 그려지고 있다.
버스에 있는 시간, 지하철에 있는 시간,
걷고 있는 시간, 바삐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간.
나는 지금 버스에서 서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나도 그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돌연히
콜라주 방식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
나는 그를 실루엣 처리하다가 순간 멈춘다.
그가 훑어 내리는 스캐닝에 내가 검색되고 있다.
스캐닝 모드의 하단 꼬리표에는
잠시 이런 설명이 붙어 있을 것이다.
-통로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남자 A,
몸을 가누며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음.
그에 의해 나의 움직임이 순간순간 정지된다.
버스가 흔들리는 속도에 따라 너나없이 휩쓸리며
저마다의 모습으로 배경이 되고 있을 때
유독 그만이 나를 드러내고 있는 시간,
내 그림 안의 그도 중심 사물로 도드라져 있다.
바람에 몸을 말리듯이
먼지조차 앉지 않을 것 같은
집안 구석의 모퉁이 각에 집을 지었다.
제 줄에 몸을 묶어놓고
면벽참선을 하듯 아침저녁
그 자리에 마냥 앉아 있는 거미,
열반에 들고 있는 모양이다.
제 시간의 두께만큼만 살을 찌웠다가
되돌리는 시간만큼 살을 말리는
저 법신(法身)의 몸, 속을 꽉 채웠다가
다시 비워야하는 일말의 번뇌도 없이
가장 깨끗하게 살다 가는 법을
스스로 알아서 깨우쳤는가.
바람에 몸을 말리듯이
빈 몸이 허공에 둥실 떠 있다.
몇 가닥 남지 않은 거미줄의 행간을
오며가며 마저 읽는다. 무명의
고리를 갉아먹고 있는 거미,
내 안의 거미줄에서 움직이고 있다.
김광기․
충남 부여 출생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로 등단
․시집 곱사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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