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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소설)/임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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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작품읽기【소설】
새로운 윤리감각, 그 깊이와 넓이
―김도언의 「밤하늘은 시인의 호수다」
(≪내일을 여는 작가≫ 2004년 가을)
임영봉(문학평론가)
‘과거’의 소설에 대해 ‘오늘’의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물음을 떠올릴 때, 분명한 사실 중의 하나는 핍진한 묘사의 언어를 통해 세계의 실상을 재현할 뿐만 아니라 강인한 유토피아 의식으로 세계의 미래조차 건축하고자 했던 소설형식의 도전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전통적인 이념형의 소설은 지금도 여전히 씌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 시도는 항상 ‘풍속’이거나 ‘세태’의 복원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실천문학≫과 ≪내일을 여는 작가≫, ≪리토피아≫의 소설란을 읽어나가는 동안 필자가 직면했던 곤혹스런 느낌은 대체로 그런 내용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설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만약 그 돌파구의 하나가 ‘새로움’을 담지하고 있는 세대의 출현에서 타진될 수 있다면 김도언의 「밤하늘은 시인의 호수다」는 나름의 의미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드러내고 있는 시대정신과 언어감각의 새로운 측면들은 신세대 작가가 가진 가능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은 시인의 호수다」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의 성격과 그 삶은 매우 낯선 느낌을 주고 있다. 대학에 떨어지고 별다른 할 일도 없이 현재 ‘가출아’의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의 ‘오랜 꿈’은 “밤하늘을 단 한번만 날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녀는 밤하늘을 날아보는 것을 유일한 ‘꿈’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주인공의 문제성은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가는 그녀의 내적 진실에 의해 차츰 드러나고 있다. 주인공의 삶이 정상의 차원을 벗어나 가출의 형식으로 일탈적인 노선에 접어들게 된 계기는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녀의 아빠는 뚜렷한 이유 없이 자신을 원망하며 바깥으로 나도는 엄마로부터 절망감을 느끼고 자살을 해버렸다. 그때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갈등을 지켜보던 ‘나’는 “밤새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주인공의 문제성은 아빠의 죽음을 앞에 두고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그녀에게 있어 삶이란 진지함이 아니라 무의미한 어떤 것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의 죽음 뒤에 집을 뛰쳐나와 전세 단칸방에서 혼자 살아가게 된 주인공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이제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스스로 차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을 꿈꿀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염두에 둘 때 주인공의 가출은 하나의 선택으로 비춰진다. 주인공 앞에서 세계란 시들어버린 꽃처럼 이미 그 자신의 싱싱함을 상실해버렸다. 삶 속에 중요한 그 무엇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 삶은 자동적으로 무의미한 어떤 것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주인공 ‘나’가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의탁하여 살아가는 절대 자유인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주인공의 삶의 방식이 가진 진실은 어떠한 것인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개의 사건이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택시 기사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 택시를 타고 가던 주인공은 그녀를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는 기사의 요구에 응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새벽에 홀로 차를 모는 택시 기사의 고독을 모르는 체할 만큼 나는 냉정하지도 그리고 둔하지도 못하다. 나는 외로운 존재들에게 하염없이 약한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가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힘들어서 울고 있는 청소부 아저씨를 위로해 주고자 했던 일인데 주인공은 이에 대한 감정을 “새벽의 청소부와 섹스를 하면서, 나는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주 낯설고 따뜻한 경험이었다. (……) 나는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밤하늘을 나는 새들이 잠깐 눈빛을 교환하는 것처럼 외로운 이들끼리 접속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 형제와의 만남이다. 어느 날 저녁 주인공은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그들 형제를 자신의 집에까지 데리고 가게 된다. “그들 형제가 외로워 보여서, 내 체온으로 그 외로움을 잊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개의 사건은 언제나 ‘혼자’인 그녀가 거의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타자와의 ‘접속’은 오직 그녀 자신의 내면적 삶의 지평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절대 고독에 대한 확인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 이르러 김도언의 「밤하늘은 시인의 호수다」는 ‘고독한 단독자’의 삶이라는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 여기서 주인공이 욕망하는 시 쓰기 혹은 시인 되기의 의미 또한 그것이 고독한 단독자의 삶의 실천이라는 데 놓여 있는데, 결말에서 주인공은 새벽하늘을 새처럼 날고 싶어 했던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위해 마침내 옥상의 난간에 올라서고 있다. 결국 현실에서는 자살의 형식으로 마감되는 주인공의 ‘비극’을 통해 이 작품은 우울한 세계상,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김도언의 「밤하늘은 시인의 호수다」는 90년대 이후 등장한 다른 젊은 작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가족의 붕괴, 사회적 단절과 고립의식, 폐쇄적인 내면성의 확대 경향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데 이 작품을 쓴 작가를 포함하여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대에 속하는 여타 모든 작가들에게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윤리적 감각의 깊이와 넓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의 빠른 변화와 불확정성 속에서 작가의 의식은 점점 방만해지고 삶에 대한 감각 또한 추상적인 차원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둘 때 「밤하늘은 시인의 호수다」는 몇 가지 측면에서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의 끝부분에서 엄마의 주검을 세 달 동안이나 그대로 방안에 방치한 중학생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그 사실이 알려지자 매스컴은 일제히 우리 사회의 단절과 무관심을 질타했었지. 그런데 그 아이의 고독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헤아릴 수 있을까. 그 나이에 삶의 치명적인 무위를 알아버린 그 아이의 상처에 대해서 말이다.”라고 덧붙여 놓았다. 이 구절은 작품의 초점이 주인공의 고독과 상처를 드러내는 데 있음을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환기시키고 있지만 그 울림은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 원인은 이 작품이 소설적 리얼리티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미달 상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장면에서 이 작품은 오히려 동화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자. 작품의 구성 형식과 사건, 그리고 행위의 측면이 우연성에 너무 크게 지배되고 있다는 점과 이상․하루키․카프카 등의 작가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많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는 점 또한 지적해두고자 한다.
임영봉․
경남 김해 출생 ․199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학술서 한국 현대 문학비평사론 평론집 늪에 빠진 언어의 표정
․현재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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