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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시)/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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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04회 작성일 08-02-2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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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작품읽기【시】

이 시대의 불길한 참요(讖謠) 한편
―조용미의 「징소리를 따라갔다」
(≪애지≫ 2004년 가을)

우대식(시인)


정월, 징소리를 따라갔다 강가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무녀가 굿을 하고 있었다 커졌다 잦아드는 징소리… 느티나무 잎새 같은 등불, 가물거리며 흘러가는 혼백을 실은 하얀 배, 무구의 짤랑거리는 소리, 겨울강 위로 눈이 어둑어둑 덮였다

사월, 강원도에 소나기눈이 쏟아졌다 평안도에는 검은비가 아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비는 뜨거워 아이들의 얼굴과 손발의 살점이 다 떨어져나갔다

유월에 나라 밖으로 멀리 나갔던 사람이 죽어 돌아왔다 칠월, 오늘밤은 산에서 자야한다고 붉은 외투를 입은 여자가 말했다 차를 타고 멀리 가는 꿈을 꾸었다 차에서 다 내리는데 나는 내리지 못했다 나는 죽은 사람이었고 내가 타고 간 것은 운구차였다

검은 옻칠을 한 커다란 관에 사람이 들어있었다 관을 앞에 두고 집안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안에 누가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을 빠져나오려 하자  누가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꼼짝할 수 없었다 비명을 질렀다 정월이었다, 나는 붉은 눈물을 쏟았다 멀리 징소리가 들려왔다
―조용미 「징소리를 따라갔다」

이 시는 억울하게 죽은 자를 위한 굿이 씻김굿이다. 선악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세계의 부조리이자 인간에게 부여된 숙명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상처를 달래고 어루만지는 일일 뿐.
조용미의 시는 죽은 자의 관찰이라는 독특한 시점을 보여준다. 시에서 시점이란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조동일 선생이 일찍이 시 갈래의 특징을 세계의 자아화라고 말한 바 있듯이 시의 시점은 철저히 시인 중심에 놓여 있다. 시에서 모든 세계는 내 안을 거쳐가는 통과물이다. 이 시에서는 세계를 관찰하는 죽은 자와 죽지 않고 시를 쓰는 시인이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표면의 나와 이면의 나의 대립이라는 구도는 어찌 보면 시에서는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부조리에 상처받는 타인의 운명까지 겹쳐지는 이 시는 자못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적 화자는 징소리를 따라 무녀가 굿을 하는 장소에 다다른다. 겨울밤 강가, 작은 등불, 굿을 위한 도구 등의 이미지들은 눈 내리는 밤과 어우러져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연출한다. 조용미는 불교적 상상력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적인 상상력을 현대시로 형상화해낼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시인이다. 그녀는 시 속에서 쓸쓸하고 차가운 공간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이 모든 풍경을 덮는 ‘눈’의 이미지는 정화의 그것이 아니라 ‘어둑어둑’하며 우울한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시적 화자는 살아서 시를 쓰는 입장에서 죽음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2연에 이르면 참요의 성격을 띠고 있다. 참요란 현실 사회의 비리와 부정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이다. ‘사월’ 강원도에 내린 폭설은 부정한 미래와 징조를 암시한다. 별, 달, 큰 비 등은 다분히 정치적인 혼란을 암시하고 있는 탓이다. 올해 사월 강원도에 내린 폭설은 사실이다. 이 사실적 발언은 평안도로 이어진다. 평안도에 내린 ‘검은비’는 지난 4월 21일 평안도 ‘용천’의 대폭발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남과 북에서 일어났던 두 재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주소이다. 가난한 농민과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에 대한 폭력은 한층 우울하고 불길하다. 이 사실적 폭력 앞에 시인은 정신의 죽음을 체험한다.
6월에 나라 밖에서 죽어 돌아온 사람은 ‘김선일’ 씨를 의미한다. 사실을 통한 증오와 공포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2연과 유사하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한 인과적 관계도 무시된 죽음과 상처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차를 타고 멀리 가는 꿈’이란 사실 죽음으로의 여행이다. 시적 화자의 시선이 죽은 자로서의 풍경을 연출한다. 때문에 운구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정월에서 시작하여 정월로 다시 돌아온다. 사회적 혼란과 공포에 대한 인식이 내면으로 돌아와 ‘관’으로 상징되는 폐쇄의 공간에 갇히게 된다. ‘꼼짝할 수 없음’, ‘비명을 지름’과 같은 행위의 양상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고통이면서 죽은 자의 공포를 강화시키고 있다. ‘나는 붉은 눈물을 쏟았다’는 표현은 억울하게 죽은 자들에 대한 해원(解寃)의 눈물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시 속에 무당의 행위가 따로 존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시적 화자의 행위야말로 굿이라 할 수 있다. 멀리 들리는 종소리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한을 푸는 해원의 징소리이며 동시에 불길한 예언의 징조를 함께 보여준다. 이 시대의 참요 한편은 우리를 불편스럽고 괴롭게 만든다. 어둑어둑한 밤이 계속될 것이다.


우대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추천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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