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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창간4주념기념 특집 본지출신시인들 신작시/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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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52회 작성일 08-02-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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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텃밭을 의심하다


유난히 검버섯이 많았던 할머니가 올해도 그 공터에 파종을 했으리라 믿었다
경작금지-
붉은 팻말, 그것을 휘감은 메꽃, 어지럽게 쌓아놓은 건축자재들, 흐트러진 녹슨 못들이, 그래도 햇살은 여전히 씨눈 틔우기에 적당하다

잔돌 골라내는 호미질 소리가, 빈 우유팩을 내려놓는 소리가, 누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다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벼낸다 탁탁 골프 연습장에서 신발 터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는 저 높은 망에 푸릇푸릇 텃밭을 갈아놓고 내려오신 모양이다

허공에서 내 새끼손가락 끝마디까지 갈아놓은, 가지런한 나선형의 밭이랑을 의심한다 단비가 내리면 나는 일단 젖어보기로 했다
가슴 부위에 여기저기서 밀어 올리는 붉은 촉
내가 두 돌도 되기 전에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했다

관계․1
―김수영을 읽다가


그는 없었다. 런닝구 바람으로 불려나간, 골목을 채 벗어나지 못한 그 공허에 미스 김이 다섯 잔도 넘는 커피를 따라놓고 앉아 있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미칠 노릇이었다. 목구멍까지 타 들어간 담뱃불을 모질게 비벼 끄며 그냥 돌아가면 시간당 2만원을 물어야 한다며 티켓을 내 가슴패기에 구겨 넣는다.
그 페이지는 아주 단순한, 본능적인 구조로 짜여 있었다. 그것을 하는 동안 돌아오지 않는 그가 구세주 같았다 진땀을 흘린 흔적들은 그의 광기였다라고 우기자. 마음 내키는 대로 느껴야 하는 내내 허기가 몰려 왔다.

그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구겨진 석간신문이 겹으로 깔려 있다. 깊은 구멍을 가진 그의 어휘가 심호흡처럼 묻어 있다.
먹다만 짬뽕 그릇, 팅팅 부어오른 오징어다리가, 먼 길을 돌아온 그 지친 의미가 아직도 생생하다. 기름이 엉긴 국물을 눈으로 불어내고 있다. 징집 같은 얼룩무늬만 득실거린다. 그 통에 바늘집 같은 이력서를 들고 나간 그가 위험하다.
부어오른 다리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벌건 국물을 휘젓는다. 바닥에서 수시뭉텅이 같은 그의 머리가 나왔다.

나를 먹어라 나는 너의 아버지다. 그는 몇 번이고 나를 다그쳤다. 그의 분개는 또 다른 자기모멸로 다가왔다. 도저히 개관 같았던 섹스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다. 그가 스스로 배설로 얼룩진 페이지를 찢는다.
티켓을 팔고 간 미스 김이 너의 어머니다. 네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지껄인다. 죽이고 싶었다.
순간 그가 내 뺨을 후려갈긴다. 그가 국물 속으로 다시 가라앉는다. 그를 느낀 뒤에 더 심한 허기가 몰려왔다면……


김영섭․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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