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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대학생의 독서 일기/신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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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362회 작성일 06-11-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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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장편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황금가지, 2003)


환상문학의 재발견


신윤수
(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


  「눈물을 마시는 새」는 국내 환상문학계의 대부라고 불리는 이영도의 네 번째 장편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환상문학치고는 이례적으로 처음부터 양장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전편이 동시 출간되었다. 이것은 이영도에게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일 뿐 아니라 국내 환상문학 자체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우선 전편이 동시 출간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이영도가 독자의 반응을 살피며 한권 한권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독자층을 대상으로 완성된 작품을 선보인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양장본이라는 것은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늘었음을 대변한다. 어쩌면 국소적인 사실을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는 환상문학계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고무적인 사실이다. 국내의 환상문학이 통신문학과 기존 무협지 시장이 합쳐진 일종의 기형아라는 평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장을 해왔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환상문학을 정의한다는 것은 연기를 맨손으로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 특징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기에 전체적인 속성을 아우를 만한 기준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인데, 약간의 무리와 함께 현재 환상문학계의 일반적인 사항을 받아들여 정의하자면, <실제의 역사가 배재된 채, 재구성되고 변형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쓰고 보니 약간의 무리가 아니라 상당한 무리 같지만, 작품이 어떤 장르에 속하냐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못될지언정 어떤 성향을 띄고 있냐는 측면을 가늠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환상문학의 장르적 특성은 언제나 그 자신에게 다모레스크의 검과도 같은 존재이다. 자유로운 상상력은 창의성의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소재주의에 쉽게 빠지게 한다는 부정적인 면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환상문학은 앞서 말한 정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계 전체를 다시금 재구성해야 하기에 기존의 삶(즉 현실적 세계관)과 동떨어지기 쉽게 되고 그 때문에 작 중에서 깊고 의미 있는 성찰을 다룰 가능성이 점차로 희박하게 된다. 작품에 환상문학의 특성이 짙으면 짙을수록 세계관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그 내용의 숨은 맥락들을 이해 할 수 있기에, 작 중에서 작가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 내용의 전개와 함께 꼭 언급되어야 하고, 이런 부분에서 많은 무리수와 부작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설정이 작가의 의도와 성찰을 드러냄에 있어서 낭비가 없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이영도가 이런 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였기에 국내 환상문학의 대부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영도의 단편집 『오버 더 호라이즌』에 수록되어 있는 「골렘」이라는 작품에서는 기존의 환상문학에서 단지 소재의 하나로 그치고 말았던 골렘에게 <인간의 외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타자>의 위치를 부여하여 인간이 가지는 수많은 인식의 오류를 다시금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기서 골렘은 그를 만든 마법사가 말한 아주 기초적인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문을 지키라는 명령이었는데, 인간에게 있어서는 문이라는 것이 방과 그 외부를 잇는 출입구로 정의되어 있지만 골렘은 인간의 언어적인 정의와 개념으로 인해 비연속적으로 분리되어진 공간을 따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마법사는 인간 외의 타자로서 다른 인식을 보여주는 골렘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렘을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그 대칭점에 위치하는 인간에 대한 논의까지 함께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이런 이영도의 작품들 중에서도 설정의 완벽함과 위와 같은 활용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설정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에 낭비 하나 없이 기능하기에 그 모습이 마치 정교한 시계장치를 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문학작품을 인색한 테크닉의 장쯤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지만, 그 기술적인 서술 능력은 분명히 놀랍다고 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이영도의 장점은 그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질릴 정도로 완벽한 이야기의 균형미를 이루면서도 결코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더욱 놀라운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야말로 이영도 작품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영도 작품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설명적이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어떠한 관념의 화신처럼 아주 극단적인 인간성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주변과 많은 충돌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충돌의 와중에서 수많은 관념과 통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 질리게 만들기 딱 좋은 서술 행태이지만 그 관념과 통찰들이 내용의 전개와 합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영도 특유의 유머와 함께 하기에 더욱 작품의 값어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영도 작품의 특징은 「눈물을 마시는 새」 외에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적으로 보이는 부분이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근자의 환상문학들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근거하는 특정 유형의 세계관에 편중하게 된 작품들의 잠식과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온 출판사의 저질적인 출판 관행이 더해져서,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에 반비례하는 질적인 퇴보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영도는 이런 환상문학 시장에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북구신화로 이루어진 검과 마법의 톨킨식 세계관을 거부하고,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들을 통해 또 다른 세계관을 형성한 것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호빗과 오우거 대신에 도깨비와 두억시니가 등장하고 룬어(語)나 영어 대신에 한글의 고어가 등장한다. 유럽 중세 풍경의 변형만을 끊임없이 답습하던 국내의 환상문학계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적인 양식을 가지고도 충분히 놀랄만한 이야기들을 엮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준 것이다. 그의 세계관이 얼마나 놀랍고 새로운 것인지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톨킨의 「반지의 제왕」처럼 작 중에 설정된 언어의 유래와, 그 숨은 의미에 대한 연구가 독자들 사이에서 점차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영미문화권의 역사와 문화가 가지는 문학적인 힘을 전체적으로 규합한 세계관을 완성함으로써 전 세계의 독자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독자들이 바탕이 되어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에 속에 수많은 작가군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영도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었고, 우리는 또 다른 환상문학의 가능성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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