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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전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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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호
사랑에 빠진 악마
―아내에게
그러니 나와 거래하려면 먼저
남을 참지 못하는 이기심과
제 때 면도조차 않는 게으름을 견뎌야 해
잘난 거 하나 없는 주제에
가까이하면 찔리는 뾰족한 자존심과
너를 업신여기는 뻔뻔함까지
걸핏하면 제 감정에 취하고
사소한 우스개 소리에도 비위 상하며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들은 다 견디는 이 세상을
뒤집어엎을 궁리나 하는
언제나 그늘과 소수에 속하는 작자
어쩌다 시 한 줄 얻으면 기고만장하다가도
금세 지워 버리고
엄마라도 잃어버린 양 풀죽는
열두 살에서 멈춘 아이
내가 거울로 봐도 이렇게 역겨운데
내 곁에 남다니
누가 봐도 손해 보는 장사
하지만 그래도 좋다니
정말 바보 같군
이래서 나 같은 놈도 살아가는가 봐
검붉은 토마토
익혀서 먹으려고
파란 토마토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나 꺼내니
새빨갛게 익은 한쪽은
검게 썩어 있었다
나이 사십이 되니
조금 알 것 같다
제때 먹지 않으면
시간에게 먹힌다는 것을
전윤호․
19964년 강원 정선 출생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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