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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진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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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자
성산포 바다, 시계에 담다
떠나오길 잘했지
섬에 자리 잡길 잘했지
해풍의 따가운 손맛에
머뭇거린 적도 있지만
오래된 친구 노양리 달이는
눈치머리 없이 손님상에 달려드는
밤바람을 휘저으며 하얗게 웃는다
한 발짝 물러섰다가 다가서는 파도처럼
추억은 가끔씩 엇갈리며
성산포 바다에 머쓱하게 눈을 던진다
처음과 끝이 이어지지 않는 일상만큼
목소리 높이는 파도소리만큼
우리에게도 벽이 조금씩 높아졌구나
해가 저물고
다시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서로의 가슴에 바다를 퍼 담았는데
썰물 빠진 모래밭에 남은 몇 개의 발자국
쓸쓸하구나
성산포 바다 , 그 거꾸로 도는 시계
끼루룩, 끼루룩 파도가 밀고 가는 갈매기 울음이
서럽다
마네킹 연가
빈틈으로 내려앉는 작은 먼지
누가 남긴 생의 찌꺼기인지도 모른 채
부릅뜬 눈 변함이 없다
적당히 등을 반쯤 구부리고
무언가 생각을 담은 머리를 손으로 괴고
찰라,
그 순간에 잠들 수는 없을까
왠지 웃음이 어색하다
심장이 없는
피돌기가 없는 소설의 주인공은
버림받았다
아침은 다시 소란스럽고
오늘은 한 계절 앞질러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
가차 없이 잘라낸 군살 위에
옷들은 탈색된 권태만큼 무거워
소리쳐 노래 부르고 싶은데
아무도 나와 눈 마주치지 않는다
진화자
․경남 합천 출생 ․2002년 ≪예술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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