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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문화산책/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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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기의 정치학
―공장의 불빛과 노래를찾는사람들 20주년 재발매 음반에 부쳐―
차우진
낙엽이 지는 거리를 지나던 오늘, 신촌의 한 음반점에서 산뜻한 검은색으로 포장된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을 구입하였다. 왠지 그때 나는 남진우의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의 첫 구절을 떠올렸다. 이상한 연상 작용이지만, 하여간 그랬다. 물론 21세기 서울의 나는 남진우가 노래하던 18세기 유럽 한 도시의 가난한 시인의 낡은 외투가 아니라 작은 모자가 달린 카키색의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던 토요일과 일요일이 아니라 경쾌한 댄스곡이 정의하던 수요일의 저녁의 거리를 걷고 있었지만. 게다가 목에는 고음이 보강된 소니 헤드폰이 걸려 있었고, 거기에서는 1978년에 불법 테이프로 발표된 노래굿 <공장의 불빛> 정식 발매 음반의 사운드가 흐르고 있었다.
공장의 불빛:1978년과 2004년의 간극
사실, 그 거리에서 내가 로트레아몽을 떠올린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로트레아몽의 시 「말도로르의 노래」는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구체화되던 18세기 유럽의 어느 풍경을 황량하게 묘사하기도 했으니, 조악한 음질로 “이 테이프는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가 제작한…….”이란 구절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읊던 김민기의 1978년 작 <공장의 불빛>에 대한 기억과 교묘하게 겹쳐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그때 로트레아몽이 아니라 김소진이나 박노해의, 백무산이나 김지하의 문장 하나가 떠올랐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무언가로부터, 혹은 무언가에 의한 연상 작용이란 대부분의 경우 텍스트 자체보다는 그것이 연상되게 된 맥락이 더 중요한 까닭이니 말이다.
<공장의 불빛>은 민중문화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고, 이 음반과 연관해서 얘기할 수 있는 텍스트에는 위에 언급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이토록 직설적인 비판 ‘의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한번도 정식으로 유통된 적이 없는 이 음반이 2004년에 이르러 깔끔한 패키지 음반으로 발매되었다는 사실은 정작 중요한 언급이 아닐지 모른다. 따지자면 2004년 가을에 노래를찾는사람들의 2집/3집 음반이 리마스터링으로 재발매되어 패키지로 묶이기도 했고, 민중가요 록 그룹이라 불리던 천지인의 새 앨범이 발표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긴, 김민기는 일전에 러시아 오케스트라와 협업한 <김민기>라는 ‘클래식’ 음반도 발표했다.
그 덕분일까, 김민기의 음악은 이제 클래시컬 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느낌마저도 받는다. 아니, 이제 김민기의 음악은 일종의 ‘고전’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외국의 사례가 모범적은 아니겠지만, 아르헨티나의 음악운동 누에바 깐시온을 주도했던 빅토르 하라와 같은 음악가는 세계적인 고전 음악가로 대접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한국에서 반정부 운동의 중심부에 있던 김민기의 음악이 21세기에 들어 고전음악으로 평가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방식이나 이유가 조금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1세기의 한국은 그 시절보다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일까? 지금 그 음악들을 ‘고급 사양’으로 듣는 것은, 한 시절을 거슬러온 중년의 사람들이 단지 그 어려웠던 시절을 추억하며 회고하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존재할까?
그래서 이 글은 이런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현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가뜩이나 열악한 시장에서 어려운 작업이었음이 분명한 이 일련의 ‘음반 발매 바람’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의미들은 어디서 발생될까? 그것은 혹시 자족의 사운드, 후일담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2004년의 삶을 ‘다른 무게’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공장의 불빛:21세기식프로파간다
일단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음악은(사실, 음악 듣기라는 행위는 ‘문화적 경험’이기 때문에) 개인사와 맞물려 들기 때문이다. 맞다. 음악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구체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그 음악이 환기시키는 어떤 순간, 이를테면 어느 거리의 보도블록 색깔이라거나, 한 계절의 공기라거나, 술집 테이블에 놓였던 재떨이의 문양이라거나, 같이 있던 사람의 액세서리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재발매’라는 타이틀은 추억을 담보로 하는 마케팅이다.
어쨌든 스물 무렵의 나는, 대부분의 자취생들이 그랬듯이, 주말이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니곤 했다. 그 중에 학교 근처 공단의 공장에서 일거리를 구할 때가 있었는데 화학약품을 다루던 그곳에서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마스크도 없이 염산통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니곤 했다. 사실 경험이라고 말하기도 죄송한, 그저 철없는 시절의 생활비 마련을 위한 노동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곳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아르바이트 학생일 뿐이었지만, 기계를 멈출 수는 없어도 사람은 쉬어야 한다고 교대자가 절묘한 타이밍에 기계 앞에서 위험하게 자리를 바꾸는 식의 근무 교대도 해보고, 잔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런 화학약품 덩어리가 섞여 있는 가래도 뱉어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누워도 기계 소음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는 통에 3시간 이상을 잠들지 못하기도 했고, 식사시간마다 식탁에 앉아 양껏 제공되는 반찬과 밥에 감탄하며 몇만 원의 일당을 계산하기도 했다. 그 틈틈이 얼굴이 까만 노동자들이 말없이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가곤 했다.
그때의 50분 근무/10분 휴식의 시간마다 울리던 사이렌 소리와, 그 소리에 맞춰 공장 앞 양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또래 여공들의 수다 소리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청년이나 족구를 하던 중년의 사내들을, ‘창고 대매출'과 같은 포스터가 붙어 있던 한낮의 거리에 흐르던 철지난 유행가를 잊지 못한다. 이를테면, 그곳에서의 삶이란 끊임없이 돌아가야 하는 기계의 사이클에 맞춰져 있었다.
<공장의 불빛>을 들으며 잠깐 그 거리가 떠올랐다. 음반은 DVD 한 장과 CD 한 장으로, 모두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DVD에는1978년의 원곡에 맞춰 1970/80년대의 민중미술 작품들이 영상으로 제작되어 있고, CD에는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목소리로 그 시절의 노래들이 재녹음되어 있다. 음반은 애초부터 노래굿이라는 형식에 충실히 복무하기 위한 ‘배경 음악’이지만, 수록된 음악 자체만으로도 그 맥락을 이해하기에 손색이 없다. 하여, 이것은 자체로 완성적인 ‘음반’이다. 시골에서 상경해 어느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여공의 편지(그녀는 아마도 글을 못 쓰거나 해서 누군가에게 대필을 부탁하는 모양이다, 띄엄띄엄 자신의 편지를 구술하는 느낌)로 시작하는 이 음반은, “교대”와 “야근”을 지나 “공장의 불빛”에 이르러 고향과 공장의 대비로 삭막한 도시 공간의 야경을 노래한다. 이른바 공장은 도시의 다른 이름이다.
결국 이 오래된 노래굿, 혹은 음반이 노래하는 정서는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비루하고 남루하여 역설적으로 얼마나 치열한지에 대한 기록이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그 과정에 회사가 난입하여 그들을 탄압하는 서사가 한편으로는 자본가=탐욕, 노동자=순수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단순 일반화의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한 공장의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다가 스스로 노조를 결성하고 자본가와 투쟁하고 공권력과 구사대로부터 탄압당하고 고난을 받지만 다시 희망을 품어가는, 일련의 지난한 삶의 궤적을 좇고 있는 이 서사가 사실은 너무나 모범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 지나친 계몽성이 귀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작품이 프로파간다로서 기능했던 점을 떠올리면 그것은 한계라기보다는 적절한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음반에 실린 이야기가 그 당시의 비일비재한 풍경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조국 근대화 시절, 그 깃발이 휘날리던 1970년대의 경제적 성장은, 그와 그녀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허약한 성이라는 것.
문제는 그러한 인식의 틀이 왜 자꾸만 과거에 머무는가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음반’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이 음반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것은 겨우 30년 전의 일, 지금도 곳곳에서는 부당한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고, 노동은 점점 더 개인으로부터 소외되어 간다. 시골의 청년들이 대도시의 공장에서 착취당하던 것이 지금은 연변이나 제3국의 청년들로 대체되었다. 웰빙과 재테크가 신자유주의적인 삶을 대변하고, 노동자들은 계급이 아니라 생계를 ‘여전히’ 고민한다. 2004년의 삶은 1978년의 삶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최첨단의 하이-테크놀로지가 일상을 좌우하고, 한편에서는 열악한 노동 환경이 일상을 지배한다. 일간지나 인터넷 미디어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빈곤과 폭력과 몰상식의 사실에 뜨악하게 놀라기도 하는 것이 2004년의 삶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짐작하는 것은 일견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모순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 현재 자기 삶을 규정하는 조건들,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경험들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혹은 (남성이라면) 군대에서 경험하고 학습하게 되는 ‘관계’의 결과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은 모순적이고 인간도 또한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모순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의 차이는 크다.
노래를찾는사람들:20주년을 ‘기념’하다
노래를찾는사람들의 20주년 기념 재발매 음반을 들으면 이런 것이 궁금해진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란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사계”를 처음 들었던 것은 이 곡이 공중파 퀴즈 프로그램의 엔딩곡으로 사용되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야간자율학습에 시달리던 고등학생이었고, 그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건전한 청소년’으로서 시사/상식의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는데 도움이 되리란 생각으로 학교로부터 추천 받은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프로그램에 빠져든 것은 손석희라는 진행자의 매력적인 (그리고 지적인) 분위기 때문이었고, 그 엔딩 타이틀에 흐르던 “사계” 때문이었고, 그 방송 뒤에 이어지던 한 가요프로그램 때문이었다.(이곳에서 서태지와 신성우가 데뷔했다.) 어쨌든 나와 노래를찾는사람들과의 최초의 조우는 브라운관을 통해서였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것은 나름대로 아이러니한 경험이었다. 지금 문득, 당시 사회적인 이슈였던 MBC노조의 파업과 관계없던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손석희 아나운서가 브라운관을 떠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1980년의 ‘현장’에서 불리던 노래를 ‘상식’ 퀴즈 프로그램에서 들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물론 덕분에 노래를찾는사람들은 내게 민중가요 집단이 아니라 아카펠라 노래 그룹과 같은 느낌으로 각인되긴 했지만.
이후 대학에 입학한 뒤 꽃다지나 노래마을, 노래공장과 같은 민중가요집단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노래를찾는사람들은 왠지 ‘프로’ 같은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노래를찾는사람들은 민중문화와 대중문화의 접점에 위치한 존재들이었다. 물론 이것은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전략이면서 지향점이기도 했지만, 왠지 나는 그 ‘대표성’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노래를찾는사람들:재발매 민중가요 듣기
그리고 20주년. 노찾사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음반이 더블 패키지로 재발매된 음반을 손에 들고, 2004년의 나는 이 음반이 환기시키는 추억과 그 의미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게 된다. 재발매되는 민중가요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사실 이 음반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바치는 연가 같은 느낌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나 “광야에서”, “사계”라든가 “그날이 오면”과 같은 ‘알려진 명곡’들 혹은, “귀례 이야기”나 “녹두꽃”, “사랑노래”나 “일어서는 사월”과 같은 ‘숨겨진 명곡’들은 여전히 뜨겁고 치열하고 쓸쓸하여, 또한 여전하다. 이 음반을 듣는 동안의 나는, 내가 그러했듯이, 학생회실에서 거리에서 술자리에서 이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던 사람들의 존재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떠올려진 자들, 오랜만에 이름이 불려진 자들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무엇인가 나를 흔들고 지나간 바람이 있다,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클래식 음반과 맞먹는 음질과 기술로 다시 만들어진 민중가요를 오디오 시스템이 설치된 방에서 편안하게 듣는다는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과연 ‘새로운’ 의미들을 파생시키게 될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자족’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누가 이 음반을 사고 듣고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것은 그 시대를 뜨겁게 살아온 자들, 혹은 뜨겁게 살아왔다고 자족하는 자들의 정서적인 위안으로만 복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한때 뜨겁던 자들이 자족할 때의 그 광경은 추레하다. 그래서 여전히 ‘심장 근처 어느 곳’을 건드리곤 하는 이 노래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현재’ 이 노래들이 들려주는 풍경이 지향하는 의미와 그것이 기능하게 되는 맥락이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한 화두가 아닐까.
이 글이 ‘음악’보다는 ‘추억’에 방점이 찍히는 까닭도 그런 이유다. ‘시장’에서 재발매라는 타이틀이 작용하는 방식이, 이른바 개개인의 추억을 담보로 대중음악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과소비하게 만드는 매커니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이 재생산하는 가치는 지난 시절의 신화화(혹은, 낭만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낭만화란 다시 말해, 어떤 시간의 특정한 문화적 경험들이 ‘의도적으로’ 포장되고 미화되는 과정에서 대상이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얘기다. 바로 자본으로부터 그 가치는 부여된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이 단일적이지 않듯이 이런 현상도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문제다. 문화를 생산하는 것은 자본이지만 그것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은 또 제각각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소비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들을 대중으로부터 ‘새로’ 부여받게 된다. 그러므로 당대의 대중문화란 자본과 대중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위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새 음반이 해석되는 방식은 그렇게 다양하게 변주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디어에서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낭만적인 추억의 재활용’에 가깝다. ‘노래를찾는사람들’이라는 이름은 이제 1980년대 민중가요의 대표주자로서 인식되고 ,그들의 음반을 듣는 것은 박물관에서 사료를 뒤적이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을 준다. 이들의 음반이 오랜만에 발매되어 2004년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위해서는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이 기능했던 맥락들도 함께 재생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누구나 변해가고 누구나 처음과는 다른 곳에 서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의 창작물은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재발매 음반은 ‘20주년 기념’이라는 그 타이틀대로 단지 ‘기념’하는 것 이외의 의미는 생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의미는 항상 현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현재’에 대해 ‘과거’와 비교해 각을 세워 비판하거나 무관심할 수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 ‘비관적’인 감상은 문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작업물에 대해 비관적이 되는 순간, 시선은 함부로 뒤를 향하기 마련이다. 그때 그들이 가장 절정이었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의 프레임이 찰칵, 하고 찍힌다. 그것은 머물렀다 떠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 그런 욕망이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하면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신화화의 과정에 동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추억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은, 그 시절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았던 때인가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꿔 말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공포를 강요받는다. 현재가 과거보다 더 끔찍하다는 인식, 그러므로 아름다웠던, 혹은 치열했던 그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방식, 그것이 우리를 추억에 중독되게 만든다. 추억에 중독된 자들은 현재를 보지 못한다. 현재를 보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퇴보이다.
따라서 깔끔하게 리마스터링된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음악을 씨디 플레이어를 통해 들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대중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쉼 없이 스스로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안티-테제의 위치에 있는/있었던 존재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스스로 비관적이 되지 않을 것, 그리고 그 대상의 현재적인 의미를 사유할 것. <공장의 불빛>과 노래를찾는사람들을, ‘다시’ 듣는 것은 그 두 개의 질문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취향을 설명하는데 ‘그냥’이라는 이유는 있을 수 없다.
물론 이 음반들의 의미와 가치는 자본으로부터 부여되지 않는다. 이런 음반이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릴 리 만무할뿐더러 이 음반을 만든 사람들도 애초에 그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런 ‘운동권’ 음반들의 재발매가 여전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어도 지향하는 곳을 여전히 ‘사람과 삶과 노래’로 규정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2004년의 한국에서, 계속해서 의미를 고민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저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조악한 음질일지라도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노래운동 진영의 열악한 환경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진보진영의 처지(진보진영의 제도화)를 보여준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정작 김민기와 노래를찾는사람들이라는 추억의 공통분모를 가진 자들에게 이들의 음반은 어떻게 작용할까. 개인적이고 은밀한, 하여 차마 부끄러워 드러내기 어려운 감상들이 떠오를지 모르고, 혹은 지금 자신의 칼을 벼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 다시 말해 생산적인 계기가 되면 좋겠다. 사실 나는 그들을 평가할 마음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적은 양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보기를 희망하는 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음반을 손에 들고 있는 당신과 나, 과연 ‘우리’의 역할이란 무엇일까,라는 점이 그것이다. ‘시장’에서 김민기나 노래를찾는사람들, 혹은 그 누구라도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예민한 더듬이가 드러나, 그것이 다치지 않고 앞으로 뻗어나가기를 희망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말이다. 그것은 단지 음반을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듣고 그 시간을 흘려보냈던 자신을 더 많이 기억하면 되는 일일까. 아니면, 그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남는지, 어떻게 사라져 가는지, 상처투성이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그 길을 끝까지 가게 되는지를 지켜보면 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기보다는 그들이 끝까지 생존해 나가는 장면을 목도하는 것, 그것이 미약하나마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는 방법이 되지는 않을까. 하여, 추억의 정치학이란 이를테면 개인의 추억이 포장되고 미화되는 그 순간으로부터 한발 짝 떨어져 그 의미를 사유한다는 뜻은 아닐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 음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빛을 보게 된 이 음반들이 현재에 이르러, 개개인의 삶 속에서 아련한 지난 추억의 족적을 바라보며 현실의 삶을 돌아보고 잠깐 여유를 부려도 좋을 쉼표로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이 시간들과 그것이 있기까지 고민한 사람들의 흔적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것이, 조금이나마 그들과 자신에 대한 예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재발매된 <공장의 불빛>과 노래를찾는사람들의 깔끔한 사운드가 2004년이라는 현재의 시간으로부터 부여받은, 또한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는 역할이란 바로 그것이다.
차우진
․대중음악 평론가
․대중음악웹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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