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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연재-하이쿠 에세이②/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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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08회 작성일 08-02-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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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하이쿠 에세이②

짧은 시, 긴 울림
김영식



木枯し*の果てはありけり海の音 (言水)**

こがらしの はてはありけり うみのおと (ごんすい)
kogarashino hatewa-arikeri umino-oto (Gonsui)

겨울바람의
끝은 있다네
바다의 소리

신병 훈련을 마치고 최전방 부대로 배치 받아 이동하는 날, 트럭을 타고 한참을 가고 가니 점점 인적은 드물어지고 논과 밭도 안 보이고, 이제 주위는 온통 산과 들이 가득한데 간간히 새와 짐승 소리만이 들려옵니다. 함께 탄 동기들은 담배를 나눠 피면서 불안한 마음을 서로 어루만져 줍니다. 몇 개의 이름 모를 부대를 지나 이윽고 트럭은 어느 산꼭대기의 바라크 건물 앞에 섰습니다. 대대본부라고 합니다. 한 고참병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우리들이 차에서 내려 일렬횡대로 정렬하자, 그가 양손을 허리에 대고 거들먹거리며 말합니다.
“오느라고 고생 많았다. 자, 저쪽을 쳐다봐라.”
고개를 돌리니 이곳의 철책을 넘어 저 북쪽으로 작은 산들과 광활한 들이 보이고, 당장 전쟁을 일으킬 것만 같은 이상한 억양의 말과 노래가 북쪽의 확성기에서 계속 들려옵니다.
“바로 저쪽이 북한이다. 그리고 북한과 우리와의 한가운데가 군사분계선인데, 그 군사 분계선 밑의 작은 고지 위에 철책으로 둘러싼 곳이 보이지? 태극기와 유엔기가 펄럭이는 곳, 보이나?”
“예-, 보입니다.”
“음, 그곳이 쥐피(GP, Guard Post)라는 곳이다. 니들은 저 안에 들어가서 근무하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요원들이다. 아주 살벌한 곳이다. 니들은 생명수당도 받는다…….”
고참병은 우리 신병들의 겁먹은 표정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쥐피를 쳐다보았습니다. 황량한 들판의 한가운데 나지막하게 솟아 오른 고지에 철책으로 빙 둘러싼 곳이 보입니다. 그 안에 높이 세워진 깃대에 태극기와 유엔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아무도 없는 들판에 오로지 바람만이 세차게 불어대고 있습니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에게 와 닿는 듯합니다. 바람을 맞는 가슴에 으스스한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그때의 그 겨울바람만큼 내 기억에 남는 바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의 각인이 단순히 신병이 가진 두려움에서라면 그건 불과 한 달 만에 지워졌을 것입니다. 내 지금껏 그 풍경을 잊지 못하는 것은, 거칠고 서늘한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荒凉美]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에 부는 바람은 나무와 풀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것들을 바짝 마르게 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따라가 봅니다. 바람은 휘잉 소리를 내며 저 멀리 갑니다. 강과 산을 지나 바다에 이릅니다. 바람은 바다에 이르러 사라지는 듯합니다. 그런데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바람이 바다에 스며들어 파도소리로 다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몰려오는 파도로 바다가 휘잉 소리를 냅니다. 겨울바람은 인간과 동물, 나무와 풀을 바짝 말려 버리고 바다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차갑고 처절한 절규를 합니다. 가학의 끝에 터지는 울음인가요. 겨울바람은 바다에 이르러 절정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바람의 끝은 바다의 소리입니다.
여름의 흔적이 사라진 쓸쓸한 모래밭, 오로지 바람만이 바다를 가로질러 불어댑니다. 겨울바람을 바라보면 그 바람의 끝인 바다의 풍경과 소리가 떠오릅니다. ‘끝’은 바람을 보고 떠올리는 상념의 저편, 종착점인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 도시에 불어대는 겨울바람의 끝은, 바다보다는 군대 시절의 비무장지대의 그 들판으로 나타납니다. 내 겨울바람의 끝은 황량한 들판의 소리입니다.

木枯しの果てはありけり野原の音
겨울바람의/끝은 있다네/들판의 소리

당신에게 겨울바람의 끝은 어디인가요?

*木枯し(kogasashi):나무를 마르게 한다는 바람의 의미로 늦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부는 강한 바람. 바람 풍(風)자 안에 벌레 충(虫) 대신에 나무 목(木)이 들어 있는 일본식 한자로도 쓴다. 옛날의 겨울바람은 일본인에게는 혹독함의 상징이었다.
*言水(池西言水 Ikenishi Gonsui, 1650~1722):에도 중기의 하이진(俳人), 이 하이쿠가 너무도 유명하여, ‘木枯し의 言水’라는 별명도 얻었다.
◈◈

木枯しや何に世わたる家五軒(蕪村)*

こがらしや なにによわたる いえごけん
kogarashiya nanini-yowataru ie-goken

겨울바람에
무엇으로 살아갈까
집 다섯 채

이 하이쿠를 말하기 전에 같은 이가 지은 다음의 여름 하이쿠를 먼저 읽어보자.

五月雨や大河を前に家二軒 (蕪村)*

さみだれや たいがをまえに いえにけん
samidareya taigawo-maeni ie-niken

장마비 내려/큰 강 앞에 서 있는/작은 집 두 채

계속 내리는 장마비 때문에, 모든 것을 휩쓸어갈 것 같은 기세로 흐르는 강물을 앞에 두고, 강둑에 집이 두 채, 안쓰럽게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이 그려진다. 요즘도 강변이나 계곡에 텐트를 치고 자다가 밤새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나 사고를 당했다는 뉴스를 종종 듣고, 강둑을 넘친 물로 강변 마을 전체가 침수되었다는 뉴스도 장마 때면 반드시 접한다. 그렇게 거의 해마다 경험하고도 비슷한 수해는 또 일어난다.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 과거 십 년, 이십 년 동안 문제없었으니 앞으로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자연의 사이클은 백 년, 천 년, 더 나아가 수십만 년 이상으로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백 년 만의 큰 비니 폭설이니 한파니 놀라워하지만, 자연에게 그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대자연 앞의 집 두 채(인간의 집단)는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불안하고 초라한가.

이제 겨울 하이쿠로 들어가면, 이 풍경 속에는 혹독한 겨울바람을 맞는 집 다섯 채가 서 있다. 여름 홍수의 위험에서 벗어난 후에도 자연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그리고 집은 다섯 채나 모여 있어 힘도 되겠지만 피해도 더 클 것이다. 아무래도 강가보다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에 사람이 더 많이 모여 있을 터라, 여름 강가의 집 두 채와도 같이 홍수에 떠내려갈 염려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젠 겨울철의 기아라는 위험에 처한 집 다섯 채가 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걱정스럽게 보인다.

여름 하이쿠의 집 두 채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자연의 힘 앞에 애처롭고 불안하지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으니 그것으로 오늘 하루 살아 있음에 만족할 수 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그러나 겨울 하이쿠의 ‘집 다섯 채’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다섯이나 모여 큰 힘이 되니 겨울바람을 견딜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할 것이나, 다섯은 나누어 하나가 남는 홀수이다. 홀수는 소외이고 ‘이지메’이고 ‘왕따’이다. 인간의 모임이란, 배가 부르다면 서로 의지가 되고 같이 놀 상대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할 가능성이 커진다. 작자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사회 속의 갈등이, 그리고 인재(人災)가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할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집 다섯 채’에 나는 고해(苦海)의 삶을 생각해 본다.

*蕪村 (与謝蕪村 Yosa Buson, 1716~1783):에도 중기의 하이진(俳人)이며 화가. 낭만적 회화적 작풍으로 유명하다.
◈◈◈



いかのぼり昨日の空のありどころ (蕪村)

いかのぼり きのうのそらの  ありどころ
ikanobori  kinouno-sorano ari-dokoro

가오리연이여
어제 하늘에 있던
바로 그 자리

어제 하늘, 나의 연……

서울에서는 한강시민공원에 가면 연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매점 옆에 연들을 연이어 길게 하늘로 띄워놓은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내 딸 지원이에게 독수리 문양이 들어간 비닐 연을 하나 사, 하늘로 띄우는 걸 도와주면서, 어릴 적에 아버지가 신문지로 만들어준 커다란 가오리연을 생각했습니다. 바람 센 겨울날, 동네의 언덕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놀고 있는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던 나를 보고, 아버지가 손수 큰 연을 만들어 주었죠. 아마 동네에서 가장 큰 연이었을 겁니다. 연을 들고 달려가던 아이의 모습이, 그리고 다음 날, 연줄이 끊어져 버린 연이 먼 하늘로 사라지는 걸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늘로 높이 뜬 지원이의 연을 바라보면서, 내 어릴 적 사라진 그 연을 생각합니다. 연을 띄우는 땅은 예전의 그 땅이 아니지만, 하늘은 내 어릴 적의 하늘 그대로 바뀐 것이 없습니다. 어제(옛날) 바라본 곳과 같은 그 하늘에 지원이의 연이 떠 있습니다.
지원이가 커서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가 하늘에 띄운 연을 보고, 나와 어린 자기가 띄운 연을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하늘에 뜬 연은,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시간 속에 떠 있고, 먼 훗날 다시 나와 내 딸을 이어주는 시간 속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 지원이의 연…….



김영식
․1962년 부산 출생
․2002년 ≪리토피아≫ 수필 등단
․‘일본문학취미’ 사이트 운영자(http://hobbian.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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