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6호 젊은시인조명/황경식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73회 작성일 08-02-23 16:02

본문

16호 젊은시인조명/황경식


개미 이야기 외 7편

황경식


왜 나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노래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개미일까
운명이나 사랑을 예언하거나
위대한 혼돈(混沌)을 속삭이지 않고
좀스럽게 개미 이야기나 하려 할까
늙은 어미곰도 아니고 붉은 호랑이도 아니다
좁쌀보다 작은, 너무 작아 맨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개미 이야기에 나는 왜 이리 집착할까
밤이면 열을 지어 어디론가 행진하고
갑자기 불을 켜면 까만 본색을 숨길 수 없어
수사(修辭)적으로 쩔쩔매며 돌아가는

조금만 약을 뿌려도 흔적 없이 사라지다가
며칠 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떼를 지어 몰려오고
구호도, 소리도 없이 집요하고 일사불란하게

꿈속에도 기어다니고 머리카락 사이에도 스멀거리며
더러운 벽을 타고 거꾸로 내려오거나
뇌피질(新皮質) 속을 헤집고 다니며, 눈알 속에서
천천히 흘러나와서, 공포 영화의 백미(白眉)를 이루며





내 삶을 멋대로 지배한 것은 바로 저 개미가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턱밑이 가려워지거나 허무한
겨드랑이 밑 혹은 어깻죽지를 피가 맺히도록 계속
긁게 만들고 눈꺼풀 위에 철 지난 희미한 반점을 모이게 하는

식어버린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을 쳐다보거나
허겁지겁 밥상 앞으로 달려가다가도 멈춰 서며
아무 생각 없이 나를 계속 긁게 만들어
마침내 발가락까지 헐게 하는 것은,

안경 없이는 채 눈에 띄지도 않는, 저 작은 개미떼
영원도 아니고 상징도 아닌, 알 수 없는 검은 기호일 뿐
달콤한 것을 탐하고 빈칸과 은밀한 구멍을 좋아하며
벼락이 쳐도 잠시 흩어지며 더러 허둥대기는 하지만

곧 다시 생각의 모든 마루를 덮어버리고
혁명도 아니고 환희도 아닌, 몇 마디 풍문과
하릴없는 노동의 결과를 곁눈질하며
간결체(簡潔體)의 알몸으로 투명한 소주 몇 잔 마실 뿐

개미를 통해서 무정한 신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흘러내린 두유(豆油)병 밑에 몰려 있던 개미들을, 투치족과
후투족의 싸움처럼 한꺼번에 손가락 끝으로 모두
눌러 죽였지만 비명도 없었고 피도 흐르지 않았다

무의미하게 끼리끼리 모여, 먹물 먹은 자의 특징처럼





감히 일탈을 꿈꾸지 못하고, 자유롭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줄에 묶여 충동적으로, 나란히
몇 줄의 행간(行間)과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남기며

앞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맹목인 툰드라의 나그네쥐**처럼
개미들은 무명의 절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치 앞의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선두의 개미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운명의 외길을 피할 없다는 듯 묵묵히

옷장 밑에서 혹은 다용도실 세탁기 밑에서
유독 싱크대 근처, 각종 유리병과
화장실 변기 옆에도 몇 마리, 보이지 않는 똥을 싸며
신비로운 은유(隱喩)나 말씀의 말씀을 그리지만, 다만
어지러운 부호와 흘림체의 암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한 편의 건조한 시(詩)가 되어 남몰래 개미들은 흘러갔다
숨겨진 비밀을 전수하려는 잠들지 못한 천사들의
계시처럼 개미는 기어간다, 보다 더 거룩한 곳으로


*신의 마음은 인간적인 기준으로선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하다. 르완다의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에서의 내전 중에 1994년 4. 6-11일 사이에 2만 명의 민간인 대학살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잔혹한 사건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신이 무자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들이 잔혹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그네쥐: 레밍(lemming)이라고 부르는 쥐목[齧齒目] 쥐과의 포유류.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는 쥐의 사촌뻘이며 우리말로는 ‘나그네쥐’라고 한다. 번식력이 강하여 기체수가 너무 불어나면 집단을 이루고 직선적으로 이동하며 무작정 바다나 호수에 빠져 집단 자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레밍의 집단 행동에는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시키려는 자연의 오묘함이 있다.



톱니바퀴


톱니바퀴[齒車]가
가득 박혀 있는 곳에서
바퀴 하나가 빠진다
아주 미련에서 벗어난 걸까
바퀴의 이빨이 서로 풀려
한 바퀴가 사라지면
그 톱니바퀴가 물고 있던

다른 바퀴가 빠져나가고
또, 다른 바퀴가 빠져나가고
너무 오래 꿈속을 헤매었다고
녹슨 쇠의 뼈들을 덜그럭거리며
톱니바퀴의 몸을 이루고 있던
모든 바퀴들이 빠져나가고,






고양이


천천히 울면서 보아야 할
그의 작품을 우리는
낄낄거리며 지나갔다
혼자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고양이도 있었는데
앙칼지고 불안한 표정에서
짓눌리며 비어져 나오는 영혼의 날선
끝자락을 보았다

온몸의 기를 모으고, 날카롭게
허공을 노리는 그의 몸에서
찬바람이 몰래 흐른다
차마, 눈을 뗄 수 없었다

칼로 마음을 도려낸 듯
고요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쇠(鐵)인형


길 건너편에서 쇠(鐵)인형들이 화염방사기를 들고 장난을 친다. 하늘로 솟구친 불꽃 속엔 파란 무지개가 걸려 있다. 불을 맞은 인형들이 햏햏햏 웃으며 부서졌다. 코가 퉁겨져 나가고 머리는 구멍이 났다. 숨 막히는 빛이 벽에 부딪쳐 사방을 덮쳤다. 부서진 인형의 지체들은 사다리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고 구멍 난 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고함을 지른다. 계단이 모두 무너져 사라진다. 혼을 빼앗긴 나무들이 말라붙은 강가로 몰려나와, 타다 남은 그림자들을 벗어놓았다. 열화폭탄*으로 뒤틀어진 얼굴들이 휘어진 하늘 속에 무더기로 떠 있었다.


*열화폭탄:열화우라늄을 사용하여 전차나 탱크 등의 두꺼운 장갑을 뚫을 수 있도록 고안된 폭탄. 걸프전쟁에서 미군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엠파스 백과사전>



이수일과 심순애


왜,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까

김종삼처럼
권진규처럼
혹은 이상처럼
그때, 그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 있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할까

마이너스 통장이 될 때까지
카드를 집어넣고
영혼(靈魂)의 가장 은밀한 부분도
남김없이 뽑아버릴
그런 사랑할 수 없을까?
텅 비어, 건드리기 전에
바스러지기까지

영화 데미지*의 저주받은 사내처럼
아니, 심순애와 이수일처럼

*데미지:아들의 애인을 사랑하게 된 아버지와의 삼각관계를 충격적이고 비극적으로 다룬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비둘기 구워먹기


비둘기를 구워먹었다
불빛에 절여진 얼굴들이 이글거렸다

가슴살과 청춘은 먹을 게 없어
뒷다리만 천천히 뜯었다
희망도 목살도 씹을 것이 없었다
꿈꾸던 하얀 평화는 골목 끝에, 조금
깃털로 남겨두었다
곧,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

질주(疾走)하는 대형 트럭 짐칸에는
무심하게 잘린 짐승의 몸통과 팔, 다리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아무런 속삭임도 없이, 다만
피와 먼지가 끈적거리고
정육점(精肉店) 아저씨는 나른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파란 하늘이 입을 벌린 붉은 언덕길에
오랜 세월을 견딘 낡은 창고가 서 있었고
벽에는 누군가가 뱉어낸 욕설처럼
비둘기들의 분비물이 얼룩지고
다 뜯어먹은 비둘기의 다리뼈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반짝거렸다





변신(變身) 용가리


변신 용가리가 한없이 커지더니 머리맡으로 날아왔다. 나는 비까번쩍 용가리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용가리는 내면의 촉수로 내 몸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색깔 고운 주스처럼 뇌 속에 들어 있던 야시시한 생각들이 새어나가고 은밀한 욕망이랑 희망도 말라붙었다. 나는 바람 빠진 비닐봉지같이 쭈그러들어 광막한 용가리의 꿈속에 팽개쳐지고

잠에서 깨어나자 용가리는 점점 크기가 줄어든다. 마침내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만 해지더니 턱 밑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담벼락을 붙들고 나는 계속 구역질을 했다. 쏟아지는 오물들이 거울처럼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살아 꿈틀거리며 변신을 시도하는 듯 예기치 못한 얼굴이 비치기도 했다. 어떤 곤충류에도 속하지 못하는 낯선 벌레였다. 치명(致命)의 독을 품은 시(詩)벌레라고 한다.




초록 개와의 입맞춤


밤마다 악몽이 덮쳤다
벽에서 내려와 입속에
혓바닥을 밀어 넣는 초록 개
떼어내도, 떨어지지 않는다
혓바닥에 불이 붙었다
투명에 가까운 초록 털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초록은 조금씩 흘러내렸다
초록 황홀이 골목을 적시고
담장과 지붕을 넘어 달까지 물들인다
달빛 속으로 초록빛 등줄기를 보이며
시(詩)의 입술을 물고 사라지는
개가 있었다




󰋮󰋮󰋮󰋮󰋮󰋮󰋮󰋮󰋮󰋮󰋮󰋮󰋮󰋮󰋮󰋮󰋮󰋮󰋮󰋮󰋮󰋮󰋮󰋮󰋮󰋮󰋮󰋮󰋮󰋮󰋮󰋮󰋮󰋮󰋮 시작노트

사로잡힌 자

왜 시를 쓰는 걸까? 아름다움 때문에? 한때는 그렇게 생각한 것도 같다. 어떤 절대적인 미를 찾기 때문이라고.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일렁거림에 일그러지지 않는 완벽한 아름다움, 기하학적이고 광물적인 아름다움. 그 같은 이미지를 꿈꾼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을 노래한다고 한 적은 없었을까? 비록 쑥스러워 공개적으로 내놓고 말하기에는 너무 얼굴 붉어지는 일이지만 나의 모든 시는 사랑 때문에 쓰였노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이밖에도 많은 언급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결론은 마찬가지. 왜 시를 쓰는지 말하기에 앞서 그냥 쓰고 있을 따름이다. 버리지 못할 따름이다. 때로는 시 자체가 시의 대상이 된다. 중독이라 할 만큼 몰두한다. 시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이데거는 시란 ‘위함 없는 위함[無爲之爲]이라고 했다 한다. 아무런 목적 없는 것이 시 쓰는 참된 목적이라면 중독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으리라. 다른 중독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목숨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시를 쓰다가 과감히 돌아설 수만 있다면 그는 실로 용기와 의지가 대단한 셈이다. 아마 산을 옮길 수도 있고 하늘을 찢을 수도 있으리라.


황경식․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실은, 누드가 된 유리컵󰡕

추천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