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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젊은시인조명┃황경식 작품해설/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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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젊은시인조명┃황경식 작품해설/최민성
머뭇거리는 시의 꿈, 그 아픈 자아
최민성(한양대학교 연구원)
꿈은 시를 닮아있다. 꿈은 항상 가장 내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라캉이 말했듯이, 무의식의 놀이터인 꿈은 ‘언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꿈은 욕망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검열을 피해, 혹은 언어의 억압을 넘어서려, 꿈은 낯선 은유와 환유의 방법으로 욕망을 표현한다. 그래서 그 세계는 난해하면서도 황홀한 어떤 시공간이 된다.
그러니 반대로 우리는 시가 꿈을 닮아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황경식의 시를 보면 그렇다. 그의 시는 몽환적이다. 마치 꿈속에서 보는 듯한 이미지의 충돌이 눈부시게 겹쳐 있다. 게다가 그것은 내밀하고 불온한 무의식의 욕망과 관련되어 보인다. 가령 그의 시집 실은, 누드가 된 유리컵의 한 시에서 지퍼 속의 이미지를 끌어올 때, 그 시는 쉽게 프로이드의 꿈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지퍼를 열고 안에서 손이 나왔다
그는 손을 밀어 넣고 지퍼를 닫았다
지퍼를 열고 안에서 머리가 나왔다
그는 머리를 집어넣고 지퍼를 닫았다
출렁거리는 지퍼를 열고 푸른 고래가 나왔다
그는 고래를 밀어 넣고 지퍼를 닫았다
지퍼를 열고 필름이 흘러나오고
필름의 지퍼를 열고 또 다른 필름이 흘러나오고
지퍼를 열고 그는 구멍 난 혀를 끄집어내었다
아주까리 같은 햇볕이 그의 어깨 위에
쏟아진다, 그는 돌아섰다
등뒤에서도 숨겨둔 지퍼가 열리고
―「지펴를 열고」 전문
지퍼를 열고 응당 나올 것 대신에 손, 머리, 고래, 필름, 혀 등이 튀어나온다. 그것들은 당연히 남근의 환유적이고 은유적인 변형이다. 동시에 지퍼는 남근에 대한 욕망을 가로막는 질서의 검열이자, 언어로 질서화된 세계의 강력한 차단막이다. 그의 이 시는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지퍼를 열고 싶어 하는지, 금기를 깨고 내밀한 욕망을 분출시키고 싶어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 내밀한 욕망이란 다름 아니라 시에 대한 것이다. 펜을 잡는 손, 고뇌에 찬 머리, 심연을 잠수하는 고래, 기억의 현상인 필름, 발화의 촉발지인 혀 등은 시를 발산하는 기관이며 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에게 남근이란 다름 아닌 시이다. 그는 금기를 깨고 시의 발가벗은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니 그의 시에 대한 욕망은 불온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시가 지닌 불온한 숙명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어떤 곤충류에도 속하지 못하는 낯선 벌레였다. 치명(致命)의 독을 품은 시(詩) 벌레라고 한다.
―「변신(變身) 용가리」 부분
그가 발언하는 것처럼, 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시는 분류의 체계 속에 있지 않다. 세상을 나누고 차례 있게 하는 언어의 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는 질서의 세계가 아니고, 시는 일상의 세계가 아니다. 시는 끊임없이 지금 이곳이 아닌 그 너머를 꿈꾸게 한다. 크리스케바의 말처럼 시는 혁명이다. 그래서 시를 품은 사람은 스스로 어떤 인간에게도 속하지 못하는 낯선 존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세계는 ‘치명의 독’을 품고 있다.
그러나 시는 그 치명의 독 때문에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매혹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너머를 경험한 자는 그곳이 주는 달콤함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시의 공간을 잊을 수 없고, 천형처럼 악몽의 세계 속에 있다. 악몽은 고통이되 ‘초록 황홀’이기도 하다.
초록은 조금씩 흘러내렸다
초록 황홀이 골목을 적시고
담장과 지붕을 넘어 달까지 물들인다
달빛 속으로 초록빛 등줄기를 보이며
시(詩)의 입술을 물고 사라지는
개가 있었다
―「초록 개와의 입맞춤」 중
초록은 생성의 빛깔이고 안식의 빛깔이다. 시는 새로운 창조와 그 안에서의 안식을 약속한다. 시의 창조력을 상징하는 초록이 ‘담장과 지붕을 넘어 달까지 물들’일 때, 그것은 황홀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어느덧 ‘달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그 황홀의 등급은 시인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시가 황홀이라는 사실은 그의 시집에 있는 「파를 다듬으며」라는 시에 좀더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역시서 시인은 좀더 솔직하게 마약, 그 이상이라고 고백한다.
파를 다듬듯이
시(詩)를 만지다가 잠이 들었다
흙을 털고 뿌리를 도려내고
껍질을 벗기며
희디흰 알몸이 나올 때까지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없었다
마약(痲藥)보다 매운 냄새
코를 찌르고
잠든 머리맡에 꿈결같이 놓인
시(詩) 한 단
하지만 그의 시에서 꿈꾸는 자의 아름다운 황홀만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시에 대한 그의 욕망이 완전히 초월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 같은 황홀 속에서 마냥 머무르지 못한다. 순전히 그 안에서 탐닉하지 못한다. 그는 항상 현실의 질곡에 반쯤 발을 담그고 있다. 문득문득 현실이 끼어들어, 현실에서 발끝을 차올리지 못한다.
왜 나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노래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개미일까
운명이나 사랑을 예언하거나
위대한 혼돈(混沌)을 속삭이지 않고
좀스럽게 개미 이야기나 하려할까
늙은 어미곰도 아니고 붉은 호랑이도 아니다
좁쌀보다 작은, 너무 작아 맨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개미 이야기」 부분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평가를 받는 한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었다. 그의 노래가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바람에 대한 그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흔들어놓은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황경식 시인은 바람을 노래하지 않는다. 운명이나 사랑, 위대한 혼돈도 그의 것이 아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도 그의 몫은 아니다. 그의 객관적 상관물은 개미이다. ‘운명의 외길을 피할 길 없다는 듯 묵묵히’ 가는 개미는 바로 시인의 투사물이다. 소시민성을 존재의 기반으로 하는 개미가 바로 시인 자신을 닮아 있다. 초월적이지 못하기에 ‘영원도 아니고 상징도 아닌’ 자이다.
시의 길 끝까지 자신을 밀어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낳기도 한다.
왜, 나는 살아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까
김종삼처럼
권진규처럼
혹은 이상처럼
그때, 그 사람처럼
―「이수일과 심순애」 부분
온몸으로 시의 길을 걸어간 이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위치는 그러니까 여전히 일상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일상의 사람들 속에서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지 못하는 어디쯤이다. 이런 자의식은 그가 완전히 시의 세계에서 혼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자장이 된다.
천천히 울면서 보아야 할
그의 작품을 우리는
낄낄거리며 지나갔다
혼자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고양이」 부분
‘천천히 울면서 보아야 할’ 작품을 낄낄거리면서 지나갈 때 시적 자아는 ‘우리’ 속에 있었다. 그 순간에 나는 우리로부터 결별하지 못하고 다만 지나간 후에 ‘혼자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 뿐이다. 그는 살아있는 순간에 혼자이지 못하고, 스스로 시의 혁명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완전히 날아가지 못하는, 완전히 시의 세계에서 혼자가 되지 못하는 그의 시에 대한 꿈은 그래서 안타깝고 애절하다. 그의 시가 지니는 아름다움이 깊게 배인 슬픔의 흔적을 간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옷장 밑에서 혹은 다용도실 세탁기 밑에서
유독 싱크대 근처, 각종 유리병과
화장실 변기 옆에도 몇 마리, 보이지 않는 똥을 싸며
신비로운 은유(隱喩)나 말씀의 말씀을 그리지만, 다만
어지러운 부호와 흘림체의 암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한 편의 건조한 시(詩)가 되어 남몰래 개미들은 흘러갔다
숨겨진 비밀을 전수하려는 잠들지 못한 천사들의
계시처럼 개미는 기어간다, 보다 더 거룩한 곳으로
―「개미 이야기」 부분
‘보다 더 거룩한 곳으로’ 나아가는 ‘잠들지 못한 천사들의 계시’ 같은 개미들의 행진은, 그러나 거창한 행진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행진이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고독한 걸음이다. 악몽에 시달리는 욕망의 대가치고는 너무 소박하다. 그러니 그 길은 소명을 가진 천사들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지 않은가.
결국 시인의 자아는 ‘초록 황홀’의 시적 공간과 현실 공간 사이에서 길항하고 상처받고, 그 상처를 바탕으로 다시 시를 꿈꾸고 있는 셈이다. 그가 완전히 시를 버리든지, 아니면 시 속으로 온전히 사라져버리지 않는 한, 중간계에 속한 그 자아의 슬픔은 날마다 간을 뜯기는 프로메테우스처럼 고통 속에서도 영원할 것이다. 그 고통은 이미 처연하게 노래된 바 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허리를 구부리고
그는 걸어갔다
우편배달부처럼
집집마다 문패를 읽어본다
벨을 누르기도 하고 창문을 두드리며
쉬지 않고 걸어갔다
가방에는 지친 허파와 빛 바랜 시들을 가득 담고
가리봉동, 한없이 돌아가는
골목길, 바람은 낡은 비닐 보자기처럼
낮은 지붕 위에서 펄렁거리고
멀리서 잿빛 개들이 짖고 있었다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가방에는 시(詩)를 싣고」 전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뒤돌아서지도 못한 채 그는 시를 꿈꾼다. 그는 시를 배반하지 못한다. 그의 의식은 어슬렁거린다. 그 영원은 얼마나 큰 피로를 동반하는 것일까. 다음 시에서 그 피로감은 깊은 울림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톱니바퀴[齒車]가
가득 박혀 있는 곳에서
바퀴 하나가 빠진다
아주 미련에서 벗어난 걸까
바퀴의 이빨이 서로 풀려
한 바퀴가 사라지면
그 톱니바퀴가 물고 있던
다른 바퀴가 빠져나가고
또, 다른 바퀴가 빠져나가고
너무 오래 꿈속을 헤매었다고
녹슨 쇠의 뼈들을 덜그럭거리며
톱니바퀴의 몸을 이루고 있던
모든 바퀴들이 빠져나가고,
―「톱니바퀴」 전문
서로 물려있게 마련인 바퀴 하나가 빠진다. 마치 잘 맞물린 이의 구조에서 이가 하나 빠지듯이. 몸의 일부분은 빠져나가면서 ‘미련에서 벗어난’ 사물이 된다. 시에 대한 시인의 슬픈 꿈도 바퀴가 빠지듯 몸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갈 때야, 떨어진 몸을 통해 중지될 수 있을 것이다. 또다시 몽환처럼 시인은 모든 바퀴가 빠지는 상상을 한다. ‘몸을 이루고 있던/모든 바퀴들이’ 빠져나가면서 하는 말은 ‘너무 오래 꿈속을 헤매었다’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몸이 해체되지 않고서는 꿈속에서 헤매는 일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반대로 그는 몸이 해체되는 그날까지 시를 꿈꾸다 깨고, 시의 혁명을 꿈꾸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시의 향취에 취했다 벗어나는 고통의 줄타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머뭇거리는 그 시의 소박한 꿈을, 그 아프고도 빛나는 패배를 계속 바라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최민성
․1969년 출생
․공저 문화변동과 인간 그리고 문화연구
․한양대학교 한국미래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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