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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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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
오래된 미래․6
―지워지는 책
나는 오늘 책을 읽었다
나는 오늘 책이란 것을 읽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잡풀처럼 잘 견디는 책을 읽었다
잘 견디는 책들 사이에서 나를 잘 견디게 하는 책을 읽었다
딱딱한 베개처럼
책이 머리를 받쳐주는 저녁까지
오랫동안 잘 견디도록 나는 책을 읽었다
책이 한 권 있었던 자리
그 자리가 있었던 시간
막 또 한 개의 시간을 덮어버린
푸르른 이끼가 나 대신 지워진 책을 읽는다
오래된 미래․7
―또 가을
그대 오래된 바퀴 굴리며
구청 골목 지나
우체국 지나 재래시장 가네
노랗게 마음을 바꾼 은행잎도
설핏 지나치는 희미한 나날들도
평생 말 못하는 말들도
바퀴에 감기어 함께 가네
가을 나무처럼 그대도 힘껏 뒤척이지만
그대를 따라온 삐뚤삐뚤한 길들과 사람들
얼마나 참았던지
그 사이 어떤 시간 흘렀던지
그대의 바퀴
서점 앞 지나는데 ‘오래된 미래’가
진열대에 꽂혀 있네
참 많은 생각에다 파 한 단 싣고
마음 길 돌릴 수 없는 시간 속을
묵묵히 순례자 하나 가네
늦은 저녁
오래된 목욕탕 뒤로 사라지는 그림자
낙엽 뒤집어쓴 여자가
다시 한 번 힘껏 바퀴를 감는
또 가을
이사라․
서울 출생
․198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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