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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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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59회 작성일 08-02-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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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아침연속극


어머니를 따라 보다가 그만 맛을 들였다
다 출근이 늦은 탓
오래 전에 외출을 끝낸 어머니와
아침을 먹다가
여자들은 왜 연속극에 빠지는 걸까 생각하다가
나도 그만 아침연속극에 빠져 버렸다
아침부터 불륜의 밥상에 차려진
사랑과 이별과 야망과 배신을 넣고 끓인
걸쭉한 국물에 욕망을 말아먹는다
여주인공의 눈물로 간을 한
착한 반찬도 집어먹는다 눈물을 너무 흘렸는지
어머니가 한쪽을 기울여 물을 마신다
그때 배다른 언니가 동생의 따귀를 올려붙인다
새로 부임한 총각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자매가 싸우는 중이다
지가 남자를 빼앗아놓고는 외려 동생을 못살게 구네
틀니 사이로 밥알이 튄다
동생을 좋아하는 총각선생님이 그 장면을 목격한다
살다보면 극적인 순간은 늘 누군가에게 들킨다
일방적으로 때리던 언니의
당혹스런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내일을 끌어당긴다
연속극이 끝나자마자 채널을 돌려





불륜을 이어가는 어머니 젊은 날의 외출과
자식들의 생일은 기억 못 해도 아침연속극 시간은
놓치지 않는 어머니 줄거리는 생략한 채
선과 악만 남아 있는 어머니의 아침연속극
큰며느리 아프다는 소리에 언제 서운했냐는 듯
예고편도 없이 떠난 어머니
이젠 같은 상에서 밥도 같이 먹는다며 자랑하는
아침연속극처럼 사는 어머니




마음의 자리


문은 늘
태극문양으로 닫혀 있었지만
거기,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인 길이 있었고 마음이 결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곁가지인 양 허공을 비껴가는 풍경소리만이
경계를 넘나드는 유일한 법문이었지만
속세의 언덕이 철거되면서
가장 먼저 기원정사가 이사를 갔다
미처 방면하지 못한 풍경 속으로
바람이 불고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한쪽 귀퉁이 부서진 채
함부로 몸을 열고 있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기원을 밟고 들어가
속을 다 비운 정사(精舍)를 보고서야
밖의 소리보다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았다
마음이 앉았던 자리 주변에 수북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언덕이 흔적도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김정수․

1963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서랍 속의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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