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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황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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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순
버려진 신발을 보면 뒤집어보고 싶다
긴 겨울밤, 할머니는 호롱불 아래 옹송그리고 앉아 뒤꿈치 굳은살을 일삼아 도려냈다 기척 없는 문밖을 이따금 내다보며 평생 등 돌리고 살다 간 할아버지를 도려냈다 아무리 도려내도 작은 신발에 담긴 할머니 발은 넘치고 또 넘쳤다 겨울이 가고 바닥이 다 닳은 흰 고무신 한 켤레를 남겼다 그날 담장 밑 사잣밥과 나란히 놓인 할머니의 찢어진 그릇에 얇은 내 生을 담아본 적 있다 바닥이 만져지는 삶을 신어본 적 있다
버려진 신발을 보면 뒤집어보고 싶다
그 그릇에 담겼던 발이 궁금해진다
벽에 걸린 生
계산기를 목에 건 그가 구령을 한다
열중쉬어차려열주웅쉬…………
어……………… 하다가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아
그녀를 턱, 걸어놓는다
해질 무렵, 다시 구령을 한다
열주웅-쉬어! 차려-엇!
축 늘어져 있던 낡은 그녀가 또다시
빳빳해진다
벽을 포복하는 그림자를 북북 지운다, 그가
그녀 발밑에 떨군 쉼표까지 싸악
핥아먹는다
황희순․
충북 보은 출생
․1993년 ≪오늘의문학≫,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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