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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윤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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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22회 작성일 08-02-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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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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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자리와 마른 자리를
제 속에 두는 게 봄이다.
비닐하우스, 그 문턱이 봄의 중심이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보온 덮개가 있다.
이제 막 상토를 밀며 나오는 고추 모종들
들락날락하는 내 걸음에
시루떡 같은 흙이 들러붙는다.
이 불화의 걸음걸이,
장화 코를 차대며 해찰하다가
돌팍에 진흙을 떼어낼 땐
주걱에 묻은 밥풀을 앞니로 긁는 것 같았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또 비닐하우스
그 안에 노란 백열등을 밝히는 마음
일 마치고 장화를 벗어 털었다.
바닥에 부딪는 장화의 타격음
꽃샘바람에 올라탄다.
떡잎처럼 떨어져 내린,
내 발바닥의 비밀한 상형문자
그제서야 보았다.

나는 지구의 봄소식을 장화로 타전하고는,
문짝 비닐의 떨림 같은 코를 골았지 싶다.



육체의 기억․2


겨울비 오는 저녁 무렵
당구장 하는 친구에게 들렀다.
들고 뜯거나 싸 먹기 귀찮아 시킨,
부대찌개를, 데우면서
소주를 마셨다.
이 년 넘게 당구장을 해도
구력 50이 늘지 않는, 이미 잡스러워진 두 몸은
그 시절,
연습구만 쳐도 늘던 한때를 추억했다.
그때 150 치던 다마는 지금도 150인 육체를 고집하고 있으니
그러니, 육체의 기억은 자동화된 습관
기억이 전무하던 그때, 친구를 따라와
당구장 한켠에 큐대처럼 서있던 여학생
친구만 보면 웃던 쓰리쿠션 같은 웃음 떠오른다.
붉은 당구알만했을 아이는 어쨌던가.
창밖엔 진눈개비 내리고
다 실패하고 장가들만 잘 갔다는 그 큐질 너머
씹지 않아도 넘어가는 햄처럼
짜질 일만 남은 육체는 퉁퉁 불어 올랐다.
차마 묻지 못할 육체의 기억이 기어나와
연방 소주를 마셨다.






인제 추억을 만들 수 없는 잡스러워진 몸들이
기억만 점점 분명해지는 몸들이, 이 당구장으로
셋째 주 토요일, 는적는적 기어든다.
모여들고 있다.



윤관영
․1994년 윤상원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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