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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김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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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나
낙지
너의 몸에서는 파랑이 인다
물컹한 살을 감출 단단한 집 한 채 없이
파동 치는 몸에 걸칠 위장술도 없이
낙지, 너는 늘 벌거벗은 알몸이다
다윗이 옥상에서 보고 있어
갑자기 관능의 달덩이 하나 불끈
솟아올랐어. 낙지처럼 미끈거리는
저 물속의 여자
뼈는 지상 아닌 다른 별에 묻어두고 왔나
살로만 흐늘거리는, 흐늘거리는 생의 비릿한 춤을,
터져나오는, 농익은 네 흑갈색 몸에서 터져나오는
먹물, 그 검은 연막 속 비장의 요동, 어찌할까
멈출 줄 모르는 네 몸의 저 검붉은 파도를
달뜨는 몸속에서 달물 왈칵왈칵 쏟아져
진득거리는 황홀한 밤에
다윗이 목욕통에서 바쎄바를 건져 낚아채
연막으로 가린 뼈 없는 밤에
해안가 갯벌은
낙지들의 소란한 짝짓기로 들뜨고
처음부터 유골도 남길 수 없이 태어난
몸이어서 더는 죽을 수도 없다고,
여덟 개의 다리마다 줄줄이 빨판을 달고
생의 지반에 필사적으로 들러붙는 너의
무서운 접착력, 산다는 것은
진득거리는 접착 없이는 가망 없는 일이지
그러니까 집착과 접착의 겹침 안으로 파고드는
그것! 죽지 않는 살의 욕망, 살의 신화
이곳 ‘무골어족’ 횟집에서 고소한 기름장에
찍어먹는 산 낙지, 척 목구멍에 들러붙는
산 낙지, 내 좁은 식도에 벌겋게
비상등을 켜는 산 낙지
*바쎄바:우리야의 아내였으나, 목욕하는 장면을 왕궁 옥상에서 본 유다의 다윗왕이 우리야를 범해 임신하게 하고 우리야가 전사한 후 곧바로 아내로 맞아들인 여인.
통과의 비밀
동산에 해가 떠오르자 둥실
물속에서 집 한 채 떠오른다
공기로 둥글게 지붕을 짜 짓고
둥글게 벽을 구부려 지은
물거미 집에 환히 빛이 차오른다.
가볍고 둥근 것들이 저 둥근
공기방울 우주 안으로 들어와
찰랑인다 그리고 고요해진다
물거미는 밖에서 집안에 넣어둔
주검을 보고 있다 生과
死가 마주보고 있는 공기 막,
그 경계를 뚫고 물거미는
안으로 잘 들어간다
밖으로 가벼이 잘 빠져나온다
불현듯 지구의 안과 밖을 드나드는
문 여닫는 소리 쟁쟁하다
물거미 한 마리가 그 작은 몸에
숨기고 있는 통과의 비밀은 무섭다
웜홀! 또 다른 우주로 들어가는 통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문을, 한순간
몸으로 열고 몸으로 드나드는
물거미 한 마리가 거느린 두 우주라니!
별에서 온 살의 기억을 재생시키며
별 돋아나듯 내 살갗을 뚫고 솟아난
두드러기들이 석류알만하게 부풀어 오르는
오늘밤, 출구 없는 내 몸은 석류 빛으로 가렵다
김길나․
전남 순천 출생
․1995년 시집 새벽날개로 등단
․시집 빠지지 않는 반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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