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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신작시/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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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72회 작성일 08-02-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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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재미있는 놀이
―담장 밑의 아이들


골목의 제일 안쪽
적막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양지(陽地)
나란히 놓여 있다. 깨진 사이다병과
구멍 난 실내화

파란 햇살 몇 조각
병 속에서 짤랑이고
터진 구멍으로 왕개미 한 마리
실내화를 들락거리는 동안
양지는 손바닥만큼 졸아들고,
새 것처럼 환히 빛난다.
버려진 실내화 한짝.

타박타박
골목을 따라
실내화 주인은
오나 안 오나.



겨울, 만발하는


1.
그리움의 끝에는 언제나 네가 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2.
그 동그랗고 촉촉한 원형질에 뿌리를 내리고
내 방의 시계는 시간을 키운다.
자꾸만
뒷걸음질치는 시간을 키운다.

3.
낙엽에 물이 오르고 물관이 싱그럽게 차오르면 겨울이 온다는 뜻, 꽃잎이 차곡차곡 몸을 접으며 봉오리로 맺히면 더 늦기 전에 겨울 맞을 채비를 해야 할 때

겨울을 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적는다.

보일러에 기름 채우기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폴 오스터의 공중곡예사 같은 소설 몇 권
서귀포 앞바다를 닮은 밀감 한 바구니
빨간 벙어리장갑과





당분간 통화 정지
매일 밤 창 아래서 우는 새끼고양이를 위해
스텐드 켜놓기

모든 준비가 끝났으면
대문을 꽁꽁 잠그고 자전거에 바람을 가득 채울 것,
집 뒤의 좁은 산책로를 달릴 것
겨울보다 백배쯤 빠르게 폐달을 밟을 것
길고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4.
오래된 그리움에 뿌리 내린 내 방의 시계
백만분의 일초마다 시간이 자라고
벚꽃 같은, 능소화 같은, 유도화 같은 시간이 자라고
치자꽃, 라일락, 감귤꽃 순으로 자꾸 뒷걸음질치고
가늘게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만발하고
네가 돌아앉지 않아도 혼자 만발하고


윤지영․

1974년 충남 공주 출생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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