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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지난 계절 작품 읽기(소설)/오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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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 들린 소설적 상상력
―구광본의 「맘모스 편의점」
(≪문학사상≫ 2004년 5월)
오양진
(문학평론가)
구광본의 「맘모스 편의점」은 CCTV 카메라를 통해서 한 편의점에 들락거리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여준다.
시간대 별로 카운터를 맡는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보여주는가 하면,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그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교대식을 진행하는 편의점 사장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CCTV 카메라는 회사의 ‘자동설비화’로 명예퇴직을 당한 사람이 취객이 되어 행패를 부리는 장면을 비추기도 하고, 또 카드빚 때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한 여직원이 금전등록기의 돈을 터는 범죄의 장면을 비추기도 한다. 여기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편의점 사장과 취객의 행패나 범죄의 장면을 비추는 CCTV 카메라는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현대 도시의 억압적인 삶의 본질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교대 40분 전 여직원이 돈을 훔쳐 달아난 이후 ‘무정부 상태’였던 편의점이 사소한 도난 사건조차 발생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장면을 보자. CCTV 카메라를 흘낏거리던 손님들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불러대다가 결국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놓고 나가버린다. 이것은 사실 현대 도시인들의 도덕성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감시와 통제가 강제한 도덕의 억압적인 성격을 가리킨다. 「맘모스 편의점」이라는 소설이 이러한 편의점의 풍경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비교적 분명하다. 이 소설은 바로 현대 사회가 감시와 통제에 따라 규율화된 억압적인 공간인데도 사람들은 기능적인 구성원들이 되어 그것에 기계적으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이 처한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명예퇴직자’, ‘신용불량자’, 그리고 ‘범죄자’와 같이 현대 사회의 기계적인 기능의 유지와 보전에 위협적이고 파괴적인 이들은 ‘현실부적격자’로 낙인 찍혀 그 사회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맘모스 편의점」에서 편의점 직원으로 나오는 ‘7급 공무원 합격자 상수’가 신용불량자의 족쇄에 묶인 또 다른 편의점 여직원 은진을 사랑하다 배신하고 차버리는 대목은 상징적이다. 신용불량자뿐만 아니라 회사로부터 명예퇴직을 당한 사람들은 특히 우리의 현대적 삶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된다.
그러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억압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너무 진부하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억압된 삶을 보여주기 위해 기억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CCTV 카메라를 등장시켜 말하게 한 것은, 그런 진부함을 약간 덜어내기는 할지 모르지만 실감을 약화시키는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보인다. 더구나 법열의 상태에 있는 ‘출가 수행자’를 상상하는 기계라니! 그런데 이 소설은 현대인들의 억압된 삶의 이야기로써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징후로 읽을 때 오히려 의미심장한 것으로 다가온다.
CCTV 카메라라는 기계와 그 기계에 비친 사람들의 대비적인 성격은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암시한다. CCTV 카메라의 성격은 우선 편의점 아르바이트 여직원인 은진을 사랑하는 존재라는 데서 잘 나타난다. 이 편의점에 장치된 기계는 깊이 기억하고 풍부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 여자에게 관능과 질투를 느끼고 그녀를 사랑할 줄 안다는 점에서 너무나 인간적이다. 게다가 그것은 ‘생각하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자각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그 카메라 기계에 비친 인간들은 기능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움직이거나 CCTV 카메라를 포함해 버스나 핸드폰 등의 문명의 이기들에 의존해서 사는 기계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런 무감동하고 무미건조한 공간에 멋모르고 들려 있는 ‘하루살이’에 비유되기도 한다. ‘인간화된 기계’와 ‘기계화된 인간’의 대비는 이처럼 기계에 몰두하고 탐닉하면서 인간을 평가절하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것은 대단히 징후적인 것이다. 구광본의 소설은 일단 편리와 효율성의 증진을 위한 자동화와 기계들에 대한 인간적 몰두가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무대 중앙으로부터 몰아내고, 인간을 단지 자신이 창조해낸 기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반성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맘모스 편의점」에서 이른바 ‘기계적 상상력’은 구광본의 소설 또한 그 사실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구광본의 소설이 한 기계에 몰두하고 나아가 그 기계를 인간화하기까지 하면서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메시지는 인간성의 격하,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기계에 의한 비인간화에 대해 그것은 실제로 확장 형태가 되지 반성 형태가 되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광본의 소설 「맘모스 편의점」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맘모스 편의점」이 가진 의도는 기계에 의한 비인간화를 인간적 관점에서 비판하고자 한 것이었겠지만, CCTV 카메라라는 기계에 들린 그 소설의 상상력은 결과로서 기계에 대한 몰두와 탐닉, 그리고 그 앞에서 폄하된 인간들이라는 우리 시대 사회문화적 상황을 추수하고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구광본의 소설에서 기계가 제아무리 인간적인 자율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 배후에는 아직 그것을 조절하고 수정하는 진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맘모스 편의점」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펜치와 드라이버를 마치 권총처럼 허리에 찬 기사’를 보라.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기계의 의식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끊어버린다. 그것은 여전히 기계를 인간의 지배 아래 두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표지가 아닐까?
오양진
․1969년 인천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등단
․현재 서울산업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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