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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지난 계절 작품 읽기(시)/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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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158회 작성일 06-11-2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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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에서 꿈, 꿈속에서의 현실

―배용재의 「꿈의 형태」
(≪현대시≫ 8월)


우대식
(시인)


얼어죽을 만한 날씨가 아니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구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지만
한 방울의 눈물도 얼어붙지 않았다

검은 소독약처럼 번진 밤이 지나자
몇 식은 불빛들이 창밖에 매달려 있었고
금간 아스파트 위에 한 사내가 암각화처럼 새겨졌다
반쯤은 웅크린 듯
반쯤은 벌어진 아스팔트 틈으로 몸을 밀어넣는 듯
그의 마지막 눈빛을 반짝였을 뿔테안경만 먼지의 가면을 쓴 채
뿌연 새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을 확실하게
고정시킨 꿈은 도대체 어떤 형태의 고체인가
몸 밖까지 퍼렇게 새어나온 냉각의 불빛을 들고
그는 어떤 어둠을 밝히고 싶었을까

딱딱한 껍질을 가르고
어두운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숨결을 흡수한 지상은
다시 제 몸을 데우려
붉은 아침을 향해 몸을 뒤척이고
차디찬 바람이 호각을 불며 달려온다.
―「꿈의 형태」

배용제의 시를 읽으며 떠오른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세계지도는 꿈속에서밖에는 그릴 수 없다’는 바슐라르의 말이다. 바슐라르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현실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 이 아니고, 현실을 넘어서 현실을 노래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다. 즉 그것은 초인간성의 능력이다. 이 역설적 진술은 지당하고도 지당하다. 배용제의 시들은 바로 현실을 넘어서 현실을 노래하려는 욕망들로 득실거린다. 꿈속에서의 삶이라고 지칭할 만한 몽상적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잠깐씩 반짝이며 흩어지는 저 입자들’(「먼지의 이력서」 부분)처럼 이 세계는 낱낱이 흩어져버릴 것이다. 아득하다. 황홀하다.
시적 화자는 지금 한 사내의 자살을 목격하고 있다. 주관적 감정은 모두 거세된 채 객관적인 냉철한 시각을 보여준다. 시인의 시선은 사건에 대한 연민이나 인과(因果)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의 관심은 그 사내가 꾸었을 꿈은 도대체 어떠한 형태였을까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꿈을 사물화 시키려는 욕망 속에 유폐된 이 세계의 희망에 대한 서늘한 냉소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고체’의 이미지는 배용제 시의 한 원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딱딱하다’는 형용사는 생의 무미건조함을 드러내는 의미망을 지닌다. 꿈을 고체화시키는 감각의 은유 또한 그러하다. 죽은 자의 몸을 비집고 나온 ‘냉각의 불빛’은 죽은 자의 꿈일 터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그 꿈을 흡수하고 제 몸을 데울 뿐이라는 점에서 비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한 세계 속에서 꿈이란 이 세계를 벗어나는 길이며 동시에 이 세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유일한 거울을 제공해 주는 셈이다. 이 꿈은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우주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기도 하며 끊임없는 자기 환각과 의식의 집중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가 지향하는 세계의 방향은 어디인가?  ‘살아있음도 죽음도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지나가는 길’(「갈증」 부분)이 바로 그 답이 될 터이다. 삶과 죽음의 이원론적 세계는 그에게 아무런 분별의 요소가 되지 못한다. 꿈과 현실이라는 구조도 이 틀 안에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단언하건대, 나는 부패한 집이고 몽상이고 노래다. 나는 동요하지 않는다’(「꿈의 잠언」 부분). 이 꿈의 노래는 학습되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초의 노래이며 최후의 노래인 것이다.




우대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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