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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제16호를 내면서/백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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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의 계보’를 생각하며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다. 학교의 시 쓰는 제자뻘 되는 후배들과 구상중인 소논문의 텍스트를 찾으러 도서관을 뒤지고 저녁을 먹으려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쌀쌀한 저녁 기운에 갑자기 피로가 엄습했다. 무의식중에 나는 ‘꼭 내 신세가 천의무봉(天衣無縫)이구나.’ 한탄했다. 그런데 후배 두 녀석이 저희끼리 낄낄대더니 ‘천애고아(天涯孤兒) 아닙니까?’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알 수 없는 웃음이 배어나왔다. 이 두 한자성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 뜻이 다른데 어떻게 그 둘을 혼동했을까? 그 무렵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
일찍이 김수영은 ‘피로’는 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변두리에도 있고, 시골에도 있다고 했다. 말을 바꾸면 중심에도 있고 주변에도 있다는 것이고, 중앙에도 있고 지방에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피로가 흘러넘치고 있다. 문학판만을 언급하자면 세칭 일류잡지도 피로하고, 삼류잡지도 피로하다. 김수영의 당대에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분명해서 ‘피로’했겠지만, 지금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이처럼 피로한 것일까?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고 심지어 욕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단순한 머리로 이유를 찾아본다. ‘진정한 적수로부터는 무한한 용기가 네게로 온다.’고 했던 카프카가 떠오른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피로는 ‘진정한 적수’를 갖지 못한, 아니 결코 ‘진정한 적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만과 위선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각기 개성을 주장하면서도 실은 ‘동질지향적 가치관’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고 있기에 피로는 누적되고, 그 피로가 우리에게 침을 뱉기 시작한 것이리라.
침 세례를 받으며 그래도 ≪리토피아≫는 창간 4주년을 앞두고 있다. 이번 호의 특집은 「지난 세기말 한국문학의 비판적 반성․2」로 주제는 <페미니즘> 담론이다. 특집과 함께 초점의 <친일예술 담론의 현재>에 공을 들였다. 학계와 문단에서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계신 필진들을 모셨다고 자부한다. 주의 깊게 읽어주시기를 바라며, 세세한 면면은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과 인내에 떠넘긴다.
무엇보다도 이번 호는 계간지로서의 약점을 감수하고 김문숙, 김종성, 맥 리, 세 분의 소설을 싣게 되었다. 세 분께 감사드리며, 더불어 편집상의 애로 사항을 슬기롭게 극복하신 주간님과 편집장님의 노고에 편집위원들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대신 전한다.
이번에 신예시인 한 분을 추천하게 되었다. 여름호의 김효선 시인을 포함하여 두 번째인데 김지연 시인의 건필을 바라며 ≪리토피아≫는 엄중한 자세로 지켜볼 것이다. 신작시 및 집중조명 등 기타 다른 부분들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드디어 편집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리토피아≫는 호오(好惡)를 떠나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리토피아≫는 빠르고 쉬운 길로 함부로 들어설 수 없다. 엄습해 오는 피로감을 건강한 척 위장하고, 병을 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피로’를 떨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정한 적수’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문예지의 위상’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위상’을 먼저 고민하는 데서 비롯되리라 믿는다. 이제 가을인가 싶더니 벌써 날은 춥다. 내년 봄호는 더 다양하면서 강한 모습이 되리라 기대하며 두서없는 글을 맺는다.
―백인덕(시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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