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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특집/김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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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지난 세기말 한국문학의 비판적 반성․2
페미니즘의 반성적 성찰
대중문화 속의 페미니즘의 틈새 읽기
김해옥
(문학평론가)
1. 억압된 욕망의 현시와 대중성
21세기의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여성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이론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차이 짓기를 통한 진정한 여성성의 탐색은 여성과 남성이 조화를 이룬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21세기의 새로운 시도이다.
그동안 논의되었던 페미니즘 담론이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으로 편향되었다는 비판과 함께 현재는 다양한 ‘차이’에 기초한 여성의 존재론적 위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젠더, 인종, 계급 모순이 중첩된 제3세계 여성들의 위치가 부각되면서 지구화 시대의 페미니즘의 지식 담론들은 새로운 지형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은 보편적 자매애를 선험적으로 가정하기보다는 각 지역의 특수성으로부터 나온 여성들의 자생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청한다. 최근의 탈식민지 페미니즘 담론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젠더적, 인종적 ,계층적 경계들을 분명히 하고 그 경계들이 어떻게 여성을 주변화하고 억압하는지를 분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________________
허라금, 「변화하는 페미니즘」, 조선일보, 2004년 10월 14일, p.A10.
이런 관점에서 아직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동안 서구 추수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자체의 학문적 성과를 통하여 여성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일구어 내었다. 한국사회의 여성 해방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 지속되어 온 빈민 여성과 여성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운동에서 시작되어 1980년대 사회 전반의 변혁 운동 과정 속에서 여성들의 인간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본격적인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동안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에 의해 주변화되었던 여성 문제가 중심부로 복귀한 것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여성해방운동사에서 동인지 ≪또 하나의 문화≫의 창간은 근대 문학의 본격적인 개화를 알렸던 ≪창조≫에 버금갈 만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화≫의 동인들은 가부장제 문화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지배 문화인 남성 문화에 대항하는 대안 문화를 창조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어낸 경쟁과 투쟁의 남성 문화의 그림자 속에 묻혀 있었던 여성 특유의 억압받는 자로서의 불평등에 대한 민감성, 타인과의 제휴 능력 및 보살핌, 사려 깊음 등의 여성적 자질에 기초한 여성 문화를 발굴해내었다.이상경, 「여성 문학론의 현실성:여성해방 문학에의 지향」, 여성문학연구, 창간호, 한국여성문학학회, 태학사, 1999, pp.9-35.
1990년대는 페미니즘 비평 방법론이 외국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번역되고 소개되었다. 서구 이론들은 학문이라는 진열장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지만 한국 여성 문학에 서양 이론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성 해방의 방향과 이념이 퇴색되기도 하였다. 프로이드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서구 페미니즘 이론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가부장제와 개인주의에 기초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나 적용할 수 있는 이론들이다. 동양 전통의 사상과 유교적 가부장제 가족제도 속에서 살아온 한국 여성들의 고통과 한의 깊이를 측량하기에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컸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의 공산 체제가 몰락하면서 동서의 이념적 대립이 긴장감을 상실하자 해방 이후 민족과 계급 논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 문제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것은 1990년대 여성 작가들의 대거 등장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남성들의 거대 담론들에 가려져 봉인되었던 인간 내면의 억압, 일상성, 성과 사랑, 가족문제 등의 사적인 관계망들이 여성작가의 감성적인 눈을 통해 투시되었다.________________
김해옥, 『페미니즘과 한국 여성 소설』, 국학자료원, 2000, p.77.
80년대 사회 변혁의 흐름과 달리 90년대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그동안 갇혀 있었던 인간 욕망이 가시화된다. 억압된 인간 욕망의 현시는 단발마적인 쾌락을 쫒는 소비문화의 형태로 나타났다. 80년대 변혁 열망의 좌절로 방향을 잃은 욕망의 흐름들이 대중문화의 소비적 쾌락으로 재배치된 것이다. 90년대의 대중문화는 서태지의 음반 판매량과 대중적 인기몰이에서 나타난 것처럼, 본격적인 기술 복제 시대의 신호탄이면서 사회적인 욕망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이때부터 대중문화는 엄청난 잡식성과 포식력을 가지고 대중을 압박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80년대의 문화가 너무 정치화되었다면 90년대 문화는 지배 체재를 무의식적으로 생산하고 유지하는 세련된 도구로 등장한 것이다.조형준, 「멜로시대의 문화의 원형」, 세계의 문학, 1999, 여름, p.16.
이제 페미니즘도 대중문화의 상업주의적 성향과 맞물려 대중추수적인 경향을 띠기도 한다. 90년대 후반의 신보수적인 경향은 특히 페미니즘의 시대적 조류를 타고 여성 작가들의 작품 속에 특화되었다. 90년대 여성 작가들은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의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여성 비평 이론가들에 의해 그들의 도구로 재단되었기 때문이다.
남성 의존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쳤던 공지영은 이런 시대적 조류에 가장 민감했던 작가였다. 중산층 지식인 여성을 등장시켜 그들이 독립적으로 인생의 구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모색하던 작가는 『봉순이 언니』에서 도시 상류층의 어린 화자를 등장시켜 가사 노동을 담당했던 식모언니 ‘봉순이’의 고단한 삶을 연민하고 동정한다. 시간 구조의 퇴행성은 『착한 여자』에 와서 고답적인 문체를 통해 현실 저 멀리에 존재하는 감상적인 여성 인물의 인생을 조명하여 현실의 여성 문제로부터 더욱 유리된다. 이처럼 작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던졌던 여성 실존에 대한 문제의식을 봉합하지 못한 채 회고조의 감상주의로 귀환하게 된다.
1990년대 대표적인 인기작가인 신경숙은 『외딴 방』에서 아버지와 오빠로 상징되는 가부장제 가족 구조에 대한 애착과 과거의 낭만적 평화로움의 상실에 대한 슬픔, 70년대의 경제적 궁핍에 대한 고통의 기억을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투시해내고 있다.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손에서는 강퍅한 삶의 고통조차 여주인공의 착한 심성을 통해 아름답게 미화된다. 작가는 자본의 횡포조차 침투할 수 없는 원형적 공간으로서 가부장적 삶이 평화롭게 지켜지는 『외딴 방ꡕ을 그리고 있다. 신경숙에게 아버지나 큰오빠로 대표되는 남근 기표는 여성이 현실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만병통치약이 된다. 부성적 사랑으로 포장된 신경숙의 가족애 속에서 한국적 가부장제가 안고 있는 여성 문제는 숨겨질 수밖에 없다. 공지영이 아동기나 소녀기로 퇴행하고 신경숙이 ‘외딴 방’에 칩거하고자 함은 현실의 고통이 참혹하고 끔찍할수록 어린 시절이나 고향집의 원형적 공간의 평화로움을 반추하여 현실에 대한 심리적인 위안을 얻고자 함이리라.
90년대 대표작가인 은희경은 여성들의 희생, 헌신, 모성성의 낡은 관념을 해체하려 한다. 여성의 사랑은 정교하게 연출된 것이며 모성애에 대한 집착 또한 중절수술로 간단히 해결한다. 은희경은 여성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에서 욕망의 자본주의적 배치를 읽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전복적이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진희는 사랑의 낭만성, 영원성을 회의하며 진희의 삶에서 사랑은 욕망의 실현이 아니라 삶을 장식해주는 액세서리로 등장한다. 그러나 진희의 삶의 스타일이 매우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섹슈얼리티나 가족제도 등의 여성 문제에 대한 성찰은 빗겨간다.________________
고미숙, 「여성성과 멜로, 그 은밀한 접속」, 세계의 문학, 1999, 여름, p.46.
은희경의 소설에서 세상의 고통스러움을 맛본 여자 주인공들은 소녀기에서 성장이 멈춰진다. 오이디푸스적 현실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은 실재계로의 진입을 포기한 채 상징계와 실재계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새의 선물』에서 진희는 ‘12살에 이미 위악적인 세계를 다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노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새의 선물의 주인공인 진희가 대학 강사가 되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등장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12살의 시계바늘 앞에서 정지되어 있다. 『아내의 방』의 아내가 현실로부터 유폐되는 것도 실재계에 대한 공포 때문에 현실 생활로의 진입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현실과의 관계를 상실한 채 자기 방에 숨거나 남편에 의해 격리시설에 유폐된다. 은희경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현실과의 관계에 소원한 채 몸집만 자라 소녀기의 의식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여성 작가들의 연애소설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독자들의 낭만적인 환상에 대한 욕구 충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낭만적 환상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확인된 것처럼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퇴행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연애소설을 읽는 것은 주인공이나 독자가 오이디푸스 시기 이전의 어린 시절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보살핌과 관심의 원천이 되는 싶은 욕구이다. 낭만적 환상은 남성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특별한 방식으로 이를 확인받고자 하는 제의적 소망이면서, 어머니와 분리되기 이전의 공생적 사랑을 통해 자아를 확인하고자 하는 원초적 소망이기도 하다.존스토리, 번역/박모), ꡔ문화연구와 문화이론ꡕ, 현실문화연구, 1999(1994), pp.194-196.
이 부분이 당대의 한국 페미니즘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피해자 페미니즘이라 할 만큼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동안 억압받았던 여성들의 한이 즉자적으로 표출되고 평등 욕구가 폭발적으로 드러났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 시대적 코드는 연애 소설의 감상주의와 맞물려 과거의 참혹했던 현실을 회고하며 자기 연민의 나르시시즘을 추앙하는 대중추수적 경향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2. 시뮬라크르화된 여성성과 남성적 응시
대중문화는 많은 페미니즘의 분석 대상이 되었다. 로라 멀비의 에세이는 가부장제 사회의 무의식이 영화의 형식을 통해 어떻게 남성적 응시를 생산하는지를 보여준다. 케이트 밀레트가 『성정치학』에서 지적한 것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군대, 산업, 테크놀로지, 대학 등 사회내의 모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남성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테크놀로지의 종합인 영화는 남성적 권력이 여성을 응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르이다.
로레인 가먼은 여성의 응시를 새기는 투쟁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내에서 의미와의 투쟁이며 대중문화는 의미가 결정되고 논쟁되는 투쟁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대중문화에 의해 만들어져 유포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 응시의 대상이 되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대중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여성에 대한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영화나 광고는 대량의 여성 이미지를 생산해내는데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시뮬라크르는 실제 현실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특정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때 남성에 의해 대중문화의 자본과 테크놀로지가 지배된다는 점은 응시 대상인 여성 이미지의 왜곡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대중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절시증과 나르시시즘의 두 가지의 모순된 쾌락을 만들어낸다. 프로이드의 관점에 따르면 절시증적 본능은 다른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보면서 느끼는 쾌락이며, 나르시시즘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하여 ‘자아 리비도(정체성)’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남성은 성적 대상을 통해 절시적 쾌락을 경험하며, 여성들은 보이기 위한 차림을 과시하여 다른 사람의 시선(남성의 시선으로 타자화된) 속에서 자아 정체성의 기쁨을 얻게 된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의 응시적 쾌락에 필수적인 대상이 되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주는 남성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이렇게 전시된 여성은 두 가지 차원에서 기능한다. 여자 배우는 영화 줄거리 내의 남자 주인공의 성적 대상이 되고, 동시에 영화 관객을 위한 성적 대상이 되면서 화면 양쪽의 시선에 교차해서 긴장감을 주게 된다. 대중 영화는 이야기와 구경거리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전자는 능동형 남성과, 후자는 수동적 여성과 관련이 있다. 남성 관객은 자아 형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성 주인공에게 자신의 응시를 고정시키며, 성적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여주인공을 에로틱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첫째 주목은 거울 앞에서 일어나는 인식-오인의 순간을 상기시키며, 두 번째 주목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고정시킨다.
여성 스타에 대한 물신숭배는 육체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어 대상을 그 자체의 만족스러운 것으로 변하게 한다.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위해 여성의 육체를 포착하여 성적 구경거리의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멀비는 이처럼 여성을 ‘남성 응시의 수동적 소재로’ 만드는 영화의 기법을 비판한다. 특히 여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대중 영화의 쾌락은 여성 해방을 위해 파괴되어야 한다는 주장한다.________________
스튜어트홀 외저, 전효관, 김수진, 박병영 옮김, 『현대성과 현대문화ꡕ, 현실문화연구, 2001(1996), pp.188-265.
이만교의 소설을 영화화한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멀비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영화 형식을 비판한 내용을 되새기게 한다. 현대 소비 사회에서 여성은 육체의 교호나 가능성으로서 소비의 대상이 된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맞선과 결혼은 성과 자본의 결탁으로 반복해서 생산되는 소비에 불과하다. 본능적 탐욕과 감정 과잉으로 소비에 탐닉하는 연희는, 기표들의 차이로서만 존재하는 남자들을 다섯 마리의 청거북처럼, 없어지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한다. 이 영화에서 연희를 통해 소비 사회의 천박한 속물근성을 투시해내는 것은 바로 카메라가 준영의 눈을 통해 초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멀비의 지적처럼, 대중 영화가 여성을 ‘능동적 남성 응시의 수동적 소재’로 만들어서 여성을 시뮬라크르화하고 감시의 대상물로 전락시키는 경우이다.
대중문화가 하나의 제도로서 지배 도구화했다는 가설을 생각할 때 영화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여성 억압의 기제를 무의식적으로 생산하고 유지하는 가장 첨단화된 도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단순히 관객과 배우를 매개하는 기능을 넘어 적극적으로 연희라는 존재를 창출한다. 연희는, 실체는 없고 파생 실체만이 범람하는 현대 소비사회의 구성물이 된다. 여주인공은 상품을 애무하고 소비하는 사물 숭배만큼이나 섹스에도 대상을 가리지 않고 탐닉한다. 소비주의와 연물 현상은 여주인공이 인공적인 쾌락을 탐닉하고 소비하는 타락한 인간상으로 그려지는데 맞추어져 있다. 관객은 준영의 눈을 통해 연희의 소비적 행위와 육체를 감시하며 그녀의 속물근성을 조롱한다. 연희는 준영의 응시적 대상물일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절시증의 대상물이 된다.
이것은 언어를 매체로 하는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는 다르게 영화가 시뮬라크르의 효과에 의해 여성을 모더니티의 인공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초기의 남성 모더니스트들은 여성을 근대의 부정성에 물들지 않은 원형으로 신비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아방가르드와 유미주의자들은 여성성의 미학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여성적인 것을 진정성이 아닌 인공성으로, 마음의 진정한 목소리가 아닌 환상과 시뮬레이션으로 형식화하거나 새롭게 개념화한 것이다. 이러한 여성 미학의 변화는 여성성이 근대를 비판하는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현대의 타락하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읽혀지는 기호가 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도 환영으로 자기 분열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남자 주인공인 준영이 아니라 연희의 삶이다.
90년도 한국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쉬리』의 마지막 장면은 여주인공을 현대적인 악녀로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한다. 남자의 순정을 이용하는 변신녀의 마녀적 이미지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인을 권총으로 조준하는 남자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와 대비되어 클로즈업되면서 시뮬라크르의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마녀의 이미지는 남자 주인공의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이 작품이 시대착오적으로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도 이러한 기법을 통해서이다. 90년대 신보수주의적 성향을 읽어낼 수 있는 이 대목에서 대중문화가 얼마만큼 젠더의 정치적인 투쟁의 영역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흘렀음에도 사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고 남성적 승리를 구가하는 『오디세우스』 신화는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통해 젠더의 경계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대중문화의 음모와 페미니즘의 틈새 잇기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빌어서 대중문화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통합과 저항 사이의 투쟁으로 보았다. 대중문화는 여러 가지 서로 상응하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가치들이 ‘뒤섞인’ 두 문화의 타협 장소로서 둘 사이의 교환이 일어나는 영역이다. 말하자면 저항과 통합을 표현하는 대중문화의 실천 행위는 ‘타협적 평형’ 속에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21세기를 남성과 여성이 상호 조화와 타협을 이룬 인본주의로 구상하고 있다면 젠더적 경계를 해체하는 실천은 바로 대중문화의 영역을 통해서 가능하다. 실재와 이미지의 경계가 희미해진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호의 상징성과 이미지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호주제 폐지’ 움직임과 17대 국회에서 여성국회의원의 대거등장 등으로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시적 성과들을 이루어내고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만들어내는 여성상은 훨씬 더 고답적이며 진부하다. 몸짱 아줌마의 등장을 화두로 삼는 사회적 담론들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대중들의 음모처럼 보이고, 성형수술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여성 스타의 얼굴은 실체가 아닌 일회성의 상품처럼 도처에서 범람하고 있다. 여성 입법부분에서 통과된 ‘성매매금지법’은 더욱 교묘해지는 여성에 대한 자본의 통제를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다국적 자본주의는 한국 여성에게는 더욱 살벌한 생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여성들의 남근 선망 욕구는 더욱 교묘하게 위장되어 이민하는 여성들과 자녀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고학력 여성들로 현실화된다.
언어와 문화는 평등하고 중립적인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집단에 의해 제도화되고 통제된다.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권력은 언어와 문화의 상징적 기호를 통해 욕망을 분류하고 재배치한다는 측면에서 대중들의 의식에 끼치는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이 운동 방향을 선회하고자 한다면 자본과 기술이 교묘하게 결탁하는 대중문화 속에서 남성과 여성이 젠더의 평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감시의 눈을 늦추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해옥
․저서 『페미니즘과 한국여성소설』 『페미니즘과 소설비평』 등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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