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5호 신작시/박해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058회 작성일 06-11-08 19:04

본문

박해람


그도 가고 나도 가고


파란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본다. 그이의 걸음걸이가 삐걱인다는 사실을 본다. 삐걱삐걱 온몸으로 걸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짧은 한쪽 다리에 온 체중을 실어 가면서, 그 성하지 못한 쪽에 자신의 모든 것을 기대며 걸어오는 것을 본다. 그 사이 신호등은 바뀌고. 다급함이 더 무겁게 성하지 못한 다리 쪽으로 콕콕 쑤셔 내리는 것을 본다. 늘 빨리 시작해서 늘 늦게 끝나는 보폭을 본다. 이쪽으로 다 건넌 그 사내가 주위의 시선을 거두어 저만치 가는 것을 본다.

그도 가고 나도 가는 것을 본다
점점 가속도가 붙고
결국, 온힘을 다해 딛고 온 것이
박차라는 것을 보게 된다
몸을 싣고 가는 것이 몸인 것을 본다
마음을 싣고 가는 것이 마음인 것을 본다
잠시 되돌아가는 일 따윈 절대 없고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가다
나도 영영 잊어버리는 것을 본다
그저 가고 또 가고
그러는 사이 파란 불이 꺼지는 것을 본다
허겁지겁 한 생애를 건너가고 있는 것을
그냥 볼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모른다.





현기증이 만드는 길


창문, 그 작은 틈에서 나팔꽃
계속 줄기를 밀어 올린다
어쩌면 저쪽 유리에 비친 제 모습에
이파리를 세며 다급했을지도
그 다급함에 발을 디뎠을지도 모른다
창 밖을 바라보다 나는
현기증이 길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현기증이 저처럼 고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팔꽃 줄기가 허공을 향해 내뱉는 현기증
작은 쉼터라도 만나면
그동안 끌고 온몸을 감아놓고 더 오를 곳 없는 허공에
다시 현기증을 토해 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모든 열매는 현기증의 자식이다

길을 걷다가 잠시 현기증으로 허공의 바람에 손을 얹은 적이 있다
그 잠깐의 휘청거림이
길의 험함을 일깨웠던 기억이 있다
현기증은 길의 끝에서 보내오는 이정표나 혹은
길 끝 세상의 마중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땅에 몸 붙이고 있는 것들
모두 저 나팔꽃처럼 위로 오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쯤 지나치는 길,
저 무성한 잎으로 모두 덮으며 가듯
걸음이 한 세상을 지나가는 것뿐이다

제 몸에서 떨어진 씨앗의 싹을 보는 것과
窓에 비쳐져 다급해 하는 것이 같다는 것을 생각할 차례다.




박해람
․1968년 강릉 출생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추천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