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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신작시/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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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168회 작성일 06-11-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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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숙





저 여자, 몸속에는 시간이 정지했다.

우이동 6번 버스 종점 앞
산사람들 사이로 홀로 떠다니는 섬.
누구의 발길도 닿은 적 없는 산비알의 비밀처럼
사시사철 솜옷으로 앞섶을 여미고
머리에는 꽃무늬 보자기까지 뒤집어쓴 저 여자,

고집스럽게 산 사내들의 길을 막아선다.
한때는 결 고운 시선 하나만으로도
뭇 사내들 쥐었다 놓기도 했을라나.
지극한 고민인 듯 등짝에 매달아둔 괴나리봇짐
어디서 먹고 입고 잠을 자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먼 바다 소식처럼 소문은 포말로 흩어지고
갑자기 누군가의 부표라도 되는 듯
살 냄새 비릿한 하초 파랑을 일으킨다.
오롯이 허공을 짚어가는 눈길 은밀하다.
오직 그녀 마음속에 살아서 와글거리는
땅이 되고 싶은 저 지독한 고집.
해거름 속에서도 저물 줄 모른다.

저 여자,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


버스 안 차창에 벌 한 마리 차창 밖을 향해 곤두박질한다. 틈새를 노리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건너지 못한 세상에 대한 끈질긴 갈망. 호기심은 무모함의 용기를 가져다주나 보다. 삶도 죽음도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안으로 들어서면 밖의 세상은 다시 도전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고비. 빤빤한 유리창을 뚫고 나갈 듯 벌은 안간힘으로 유리창을 밀어붙인다. 미끄러지는 몸통을 지탱하기 위한 슬픈 날갯짓. 보기에도 어지럽다. 감각을 믿기에는 이미 다 닳은 촉수. 더 이상 잃어버릴 그 무엇도 없는 차창에서 전 생애가 ‘툭’ 하고 미끄러진다. 떠올랐다 가라앉고 부풀었다 꺼져 버린다. 만신창이의 몸은 오직 날개 하나로 생을 저울질한다. 이미 정류장을 놓쳐버린 내 가슴이 팽팽하다. 나는 손바닥을 넓게 펼쳐 창가로 생명을 몰아붙인다. 밀면 밀리는 대로 오체투지하는 저항. 포기와 단념의 순간! 차창의 틈새로 바람이 분다. 바람의 결을 따라 눈 깜짝 사이 세상은 안에서 밖으로 몸을 뒤집는다. 나는 끝에서 시작해서 끝으로 와버렸다. 그 사이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손현숙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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