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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신작시/장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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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에는 밤마다 붉은 가로등이 켜진다
손바닥만한 하늘을 쳐다본다
오이지를 눌러 두었던 돌멩이 하나
빈 항아리 속에 드러누워
대낮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잔소리처럼 내려앉는 먼지를 먹고
차곡차곡 차오른 슬픔만 불룩하다
재개발 아파트 솟아오르는 산동네
외진 골목 좁은 마당에는 종일
진한 소금물 같은 그늘이 부어진다
오래전 갈라진 시멘트 바닥에
비명처럼 가느다란 풀이 솟는다
피지도 않고 시들어버린 하루를 싣고
마른 풀잎 같은 여자가 노점에서 돌아온다
초저녁부터 절여지듯 잠이 든 후
돌멩이 붉은 야행성의 눈을 뜬다
곧 부서질 그 집 앞에 무너져 내리는
어둠 한 귀퉁이 떠받치려고
밤새도록 품고 있는 불빛이 묵직하다
물구나무서 있는 두 개의 풍경
화장실 거울 앞에
밀크로션 병이 거꾸로 서 있다
훤히 바닥이 보이는데도
아직은 끝내고 싶지 않다며
짧은 목으로 버티고 있다
거울에 거꾸로 비쳐지는
낯익은 싸구려 상표가
문신처럼 깊고 징그럽다
머리 희끗희끗한 남자가
세수하는 동안
한 번만 더 써달라고
머리를 처박고 전신으로
진한 눈물 짜내고 있다
막막한 입을 열고
손바닥에 내리치면
목구멍까지 올라와 고여 있던
외마디 희망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한 방울이 남기 전
저 위태로운 병은
바닥에 눕지 않을 것이다
거울을 보며
목이 덜렁덜렁한 남자가
넥타이를 매고 있다
발이 허공을 향하고 있다
장성혜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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