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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신작시/차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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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243회 작성일 06-11-2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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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완보(改正完補)


어머니는 두 눈을 무채색으로 주셨다.
나는 밤마다 거대한 운하를 바라보았다.
항성과 행성들이 동공으로 끌려왔고
소멸과 탄생으로 풀어놓는 절대빛에도
나의 자아는 무채로 완전했다.
내 거웃이 검은자위처럼 짙어지던 날, 어머니는
백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여백이 가슴에서 생겨나 눈동자에서 넓어졌고
먼지 같은 미립자들이 밀려 들어왔다.
모두 저만의 유채로 무겁게 빛나고 있었다.
단 한 방울의 눈물로 나는 충분히 전율했다.
그 즈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改正完補 : 부족한 것이나 틀린 것을 바르게 고쳐 완전하게 보충함.




초서(草書)


누군가 퍼내는 듯 줄고 있다. 해앓이 씻고 간 산의 수고가 드러나고, 호수는 균열을 꿰매고 있는 묵지(墨池) 하나 품고 있다. 먹물 찍으러 갔던 그림자가 헛놀다 돌아오면, 고목은 핏기 짙은 자획을 허공에 그어 댔다. 한평생 먹탕만 삼켜다 조혈한 것으로, 해마다 오랏줄 친친 동여가며 몇백 년 동안 가둬둔 것을 풀어쓰고 있다. 끝내 제 핏물로 찍어 써 내야 하는 것이어서, 세필로 더 가는 세필로 바꿔 잡았다. 그렇게 제 가지 분질러가며 여윌 때마다, 그림자도 묵념에 들다 정토(淨土)로 돌아갔다. 내가 파리한 그림자를 끌고 다시 찾았을 때, 호수는 새살 차오르는 소리를 얼음판에 꿰매고 있었다. 고목은 문진(文鎭)처럼 엎어진 채 온 산에 화선지 한 장을 펼쳐놓고 묵상 중이었다. 사뭇 허공에 그어 댔던 자획들만 배어나 여백을 채워나갔다.




차주일․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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