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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문화산책/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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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398회 작성일 06-11-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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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원작이 있는 영화․3


조셉 맨키위츠의 <지난 여름 갑자기>에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이주연


1. 들어가는 말
1959년 처음 상영된 영화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는 당시 유명 극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브로드웨이 상연을 위한 희곡 작품을 그 원작으로 삼고 있다. 그의 극작품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가 영화화되어 이미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점을 고려해 볼 때, <지난 여름 갑자기>의 대중적 성공은 제작자에게 어느 정도의 상업적 성공을 보장해 주고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의 브로드웨이에서의 상업적 성공은 영화 제작자인 샘 스피겔(Sam Spiegel)의 제작 조건에도 적합하게 작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여름 갑자기>는 원작자인 윌리엄스의 삶 중에서 매우 안타깝고 애처로워했던 그의 누이 로즈(Rose)와 관련된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영화화하는데 크나큰 매력으로 작용하였다.________________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들은 그의 생애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관련된 글은 Donald Spoto의 The Kindness of Strangers: The Life of Tennessee Williams. Boston: Little Brown, and Company,1985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영화화를 위한 이러한 매력과 더불어 제작자의 부담으로 작용한 요소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작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성애(homosexuality)와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할리우드 시스템내에서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PCA(Production Code Administration)의 규정에 따라 동성애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 윤리에 어긋나는 점은 전적으로 영화에 표현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이에 관한 적절한 예는 엘리아 카잔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관한 필자의 분석(리토피아 2003 겨울 12호)을 참고하기 바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원작의 매력과 부담들이 할리우드로 이동하면서 어떠한 방식으로 영화 속에서 드러내기 작업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테네시 윌리엄스, 고어 비달 그리고 맨키위츠를 만나다.
영화 <지난 여름 갑자기>는 원작에서 다루고 있는 커다란 골격은 훼손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졌다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심이 되는 사건인 캐더린(Catherine)에게 뇌엽 절제수술(lobotomy)을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닥터 커크로위츠(Dr. Cukrowicz)의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수술을 원하는 것은 이미 죽은 세바스찬의 어머니인 바이올렛 베너블이지 캐더린 본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가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바이올렛 베너블만 캐더린이 뇌엽 절제 수술을 받길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난 여름 세바스찬과 함께 동행했던 사촌 캐더린이 당시 목격했던 사건들을 되풀이하며 세바스찬의 고결한 이미지와는 다른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올렛 베너블은 캐더린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여기고 정신분열증 환자 취급을 하게 되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난 여름 세바스찬의 행적들을 캐더린이 발설하자 바이올렛 베너블이 이를 영원히 하지 못하도록 하는 마지막 방법으로 뇌엽 절제 수술을 실행하려고 하는 점이 영화와 극 모두의 중심 사건으로 다루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윌리엄스는 원작인 ꡔ지난 여름 갑자기ꡕ가 연극으로 상연되었을 당시인 1957년경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 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을 때부터 겪었던 작품의 성공 여부에 관한 압박감과 그의 누이 로즈에 관한 자책감에서 비롯된 증상 때문이었다. 특히, 누이 로즈________________
윌리엄스의 작품세계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누이 로즈의 예민하고 사회에 적응하기 못하는 모습은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ꡔ유리동물원ꡕ의 로라라는 인물에 그대로 투사되고 있다. 이 작품도 역시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에 관한 사건은 윌리엄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아이오와 대학 4학년에 재학하던 시절, 윌리엄스의 부모는, 사회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심약하고 예민한 로즈가 앓고 있었던 정신분열증 치료를 위해 뇌엽 절제 수술을 받도록 했다. 그 결과 로즈는 표면적인 평화를 찾은 듯이 보였지만 수술 이후부터의 시간은 완전히 정지된 상태가 되었고 사회와 격리된 인간이 되었다. 이와 같은 상태가 된 누이를 본 윌리엄스는 죄책감에 휩싸이게 되고 그 때문에 평생 괴로워하며 로즈를 위해서 성심을 다해 돌보게 된다.
이와 같은 자전적인 소재를 다룬 ꡔ지난 여름 갑자기ꡕ는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뇌엽 절제 수술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윌리엄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 원인으로 크게 작용하였다. 또한 특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인 샘 스피겔에게도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매력적인 장점으로 작용한다. 스피겔은 키 웨스트(Key West)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윌리엄스에게 직접 장거리 전화를 걸어 저작권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는데, 저작권료 1,000달러에 이익의 20퍼센트를 추가로 지급하는 것에 대한 윌리엄스의 제안에 적극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영화로 제작하기 위한 일에 착수하게 되는데, 영화의 각본을 위해 윌리엄스의 동료 작가이자 절친한 친구인 고어 비달(Gore Vidal)을 각본가로 고용한다. 언어의 묘미를 존중할 줄 아는 비달의 고용은 윌리엄스의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기본적인 구조와 인물들의 중요 대사를 해치지 않고 조심성 있게 전달해 주는데 있어서 많은 부분 기여하고 있다.________________
허버트 마키즈(Herbert Msachiz)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화란 보통 표면적인 수위를 나타내는데, 종종 윌리엄스의 작품 중 세심한 부분이 삭제되고 있다. 특히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스의 작품은 언어와 대사의 의미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영화화 될 경우 구성상 중요하지 않으면 대사를 삭제하는 것에 대해서 신중해야 하지만, 스토리 전개상 매우 중요한 내면의 이야기를 삭제할 경우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

원작인 ꡔ지난 여름 갑자기ꡕ는 단막극이다. 따라서 비달은 대략 70분 정도의 다소 짧은 분량의 원작을 바탕으로 120분 가량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장편 영화 각본으로 늘여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원작은 무대 세트의 전환 없이 단일 무대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 모든 사건의 전말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단조로움을 어떻게 영화화해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비록 윌리엄스의 이름이 오프닝 크레딧에 비달과 공동 각본가로 올라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박스 오피스에 도움을 줄 뿐 각본을 위한 도움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비달은 원작을 영화적인 언어로 옮기기 위해 원작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은 인물과 장소를 창조해내게 된다.
원작과 다르게 영화에 새롭게 설정되어 있는 대표적인 장소와 인물은 라이언스 뷰(Lion's View)라는 곳과 병원 원장으로 등장하는 호크스테더(Dr. Hockstader)라는 인물의 등장이다.________________
Phillips, Gene D. The Films of Tennessee Williams. N.J.:Associated University Press, Inc. 1980.
원작에서는 바이올렛 베너블(Violet Venable)의 집과 세바스찬(Sebastian)의 정원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 특히, 뇌엽 절제 수술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닥터 커크로위츠와 캐더린의 첫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바이올렛 베너블의 집이다. 비달은 이 부분을 극 중에서 캐더린이 베너블의 집보다는 병원에서 좀더 자연스럽고 강제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있다. 비달의 의도로 인해 장소의 설정은 원작과 다르게 바뀌었지만 캐더린의 대사는 그대로 살려두고 있다. 카베자 드 로보(Cabeza de Lobo)에서 세바스찬이 캐더린에게 보여 주었던 특이한 성향에 관한 그녀의 언급이 그러하다. “세바스찬의 금발에 대한 선호는 점점 더 심해졌으며,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조차도 음식 메뉴에 올라 있는 품목들처럼 대했으며, 한번은 검은 것을 먹어 치웠고, 한번은 밝은 것을 먹어 치웠다.”라고 캐더린이 말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먹어치우다’라는 표현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쟁점사항인 카니발리즘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사실상 원작에서는 이 대사를 세바스찬의 성적 성향을 보호해 주는 베너블의 거실에서 정신이 멍해 있는 상태로 캐더린이 읊조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비달은 이 대사를 병원에서 말하도록 설정하고 있으며, 마치 세바스찬의 기호를 충족해 주려는 듯한 금발의 남성 간호사가 주는 진정제를 맞은 뒤 이야기를 하도록 전환하고 있다.
비달은 원작의 밋밋하고 지루한 대사 위주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등장인물을 창조해냈다. 바로 라이언스 뷰 병원장인 닥터 로렌스 J. 호크스테더(앨버트 데터 역)로 그의 역할은 닥터 커크로위츠(몽고메리 클리프트 역)를 좀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foil)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더린의 뇌엽 절제 수술을 라이언스 뷰에서 실행해 주기만 한다면 세바스찬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써 병원에 새로운 병동을 지어주겠다는 바이올렛 베너블의 제안에 대해 병원장인 호크스테더는 주저함 없이 기꺼이 수술을 실행하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닥터 커크로위츠는 새로운 병동이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진단한 후에 수술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태도를 취한다. 이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은 영화의 진행상 매우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시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캐더린이 수술을 하게 될지의 여부에 대하여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병원장뿐만 아니라 바이올렛 베너블까지 캐더린의 수술을 닥터 커크로위츠에게 종용하는 장면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캐더린의 정신시계를 온전하게 분석해내기 위해 성실하고 진실되며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와 캐더린 사이에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싹트지 않을까라는 가능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 점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가 남녀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어떠한 장르를 막론하고 다루고 있음에 비추어볼 때 의심할 여지없이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병원장 호크스테더를 등장시킴으로 인해 닥터 커크로위츠를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전개상 긴박한 갈등 구조를 이루도록 설정함으로 인해 연극적인 작품이 영화적으로 변모하게 됨을 살펴볼 수 있다.
비달의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감독인 맨키위츠는 구체적인 이미지화 작업을 시도한다. 원작과 두드러지게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화의 오프닝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의 도입부에서 원작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예민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블랜치를 보여줌으로 인해 영화의 전반적인 사건과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적인 인물과 장소의 배경이 되는 곳을 관객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영화의 오프닝을 구성하는 방법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의 도입부를 구성하는 문법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법은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좀더 효과적이고 긴장감 있게 도입부를 구성하기 위해 감독인 맨키위츠는 각본가 비달이 의도적으로 설정해 놓은 라이언스 뷰 병원의 안과 밖을 보여주는 것으로 도입부를 표현하고 있다. 병원의 겉모습은 바이올렛 베너블의 저택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딕풍의 건물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병원을 고딕적인 분위기의 건물로 설정한 것은 맨키위츠의 뛰어난 선택이라 여겨지는데, 원작에는 없는 설정이지만, 병원 내부의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뇌엽 절제 수술을 시행하는 장면은 마치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키기 위한 박사의 실험실처럼 으스스하고 음산한 고딕적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장면을 설정함으로 인해 관객에게 뇌엽 절제 수술을 받아야 할 위험에 놓인 캐더린의 긴박한 상황을 좀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로써 잘 설정되어 있다.
영화는 원작에서와 같이 윌리엄스의 누이 로즈가 뇌엽 절제 수술을 받았을 당시인 1930년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수술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예견할 수 없는 것임을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맨키위츠는 로즈의 증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캐더린의 정신분열증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난 여름 사촌 세바스찬과 겪었던 일을 말하는 장면을 구사하기 위해서 플래시백의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캐더린이 병실에서 닥터 커크로위츠에게 지난 여름의 일을 진술하는 장면에서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화면 아래쪽 전경에 캐더린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화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그녀가 서술하는 장면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현대와 과거가 동시에 공존하도록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캐더린에게 괴로움으로 재생산되는 고통스런 경험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캐더린이 세바스찬에 의해 미끼로 사용되었던 그 당시의 상황을 관객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맨키위츠의 계산에서 비롯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맨키위츠의 이러한 플래시백의 사용 절제는 자칫하면 할리우드의 구태의연한 스타일을 지닌 그렇고 그런 영화로 전락할 수 있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가 사랑한, 그리고 선뜻 버리지 못하는 리얼리즘의 특징을 맨키위츠도 거부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바로 세바스찬의 최후의 심판의 날이라 할 수 있는 카베자 드 로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원작자인 윌리엄스도 역시 이 장면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풍부한 상징과 주제적인 의미가 모두 담겨있는 캐더린의 과거에 대한 서술을 그대로 재현하여 관객들에게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유감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시적인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는 맨키위츠의 단막 도덕극은 대중들이 카니발리즘, 광기, 성적 일탈과 같은 것을 글자 그대로 생각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는 원작에서 자신이 표현하고 있는 카니발리즘에 대해 한마디 더 덧붙인다.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좀더 상징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의 진정한 의미를 느낀다.” 이와 같은 윌리엄스의 언급은 좀더 상징적으로 표현된 시각화된 이미지를 보고 그가 말하고자 했던 점을 관객들이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맨키위츠는 윌리엄스의 기대를 저버리고 너무나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는 듯한 장면 재현으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야기의 주된 사건을 제공해 주는 인물인 세바스찬의 부재의 원칙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베자 드 로보에서의 일을 할리우드의 고전적 기법인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세바스찬의 등장은 불가피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맨키위츠는 세바스찬을 등장시키기는 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모습을 프레임에 담는 것이 아닌, 얼굴을 제외한 몸의 일부분만을 등장시키는 재치를 발휘하여 결코 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방법을 구사함과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세바스찬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부재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________________
이미 언급하였듯이 영화의 장면에서는 세바스찬의 얼굴을 좀처럼 볼 수 없었지만, 영화 홍보용 포스터에는 세바스찬의 역할을 담당했던 배우의 얼굴을 공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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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카베자 드 로보에서 캐더린과 세바스찬에게 생긴 일은 엄청난 사건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가치관을 고려해 볼 때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겉으로는 점잖고 귀족적이며 섬세하게 보이는 세바스찬이 사실은, 자신의 성적 욕망의 굶주림을 채우고자 메뉴의 음식 고르듯이 사람들을 고르는 모습을 캐더린이 회상하는 장면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를 바이올렛 베너블의 입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장면, 즉 엔칸타다 섬에서 거북이들이 알에서 깨어나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게걸스러운 육식조류들에 의해 새끼들이 절반 정도밖에 살아남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육체를 탐닉하는 육식조류는 곧 세바스찬을 의미하며, 갓 태어난 새끼들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육식조류의 모습은 세바스찬의 성적 경향인 어린 사내아이를 선호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카니발리즘을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다. 카니발리즘을 의미하고 있는 또 다른 것으로 바이올렛 베너블의 저택에 가꿔져 있는 세바스찬의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파리 지옥풀(Venus flytrap)을 또 다른 예로 생각 할 수 있다. 특히 식물이 생명체를 삼켜버린다는 점에서 나약하고 섬세하며 점잖아 보이는 세바스찬의 성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카니발리즘의 표현에 대해 윌리엄스는 인간이 살고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인간 개개인은 그러한 세계 속에서 최악의 방법으로 카니발을 일삼고 있다고 의견을 표명하였다.
윌리엄스는 이 같은 카니발리즘의 표현을 위해 또 다른 금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성애를 직접적인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세바스찬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른 전통적 가치관으로써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소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도 이미 다루고 있었는데, 그 표현의 수위는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선택하여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 이유는 PCA를 비롯한 여러 검열기관의 규정에 적합하도록 제작을 시도하다보니 직접적이고 논쟁적인 표현은 자제하고 간접적이며,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1959년 소개된 <지난 여름 갑자기>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소개되었을 당시인 1951년보다 검열의 잣대나 관객의 보수성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원작자인 윌리엄스 본인이 동성애자였다는 점과 이미 먼저 연극과 영화로 발표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의 동성애의 표현은, 자신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음이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윌리엄스의 작품인 <지난 여름 갑자기>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동성애에 관한 부분을 더욱 관심 있게 집중한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윌리엄스가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바스찬의 동성애에 대한 성적 탐욕, 즉 사내아이들의 집단 카니발로 인해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모습의 이중의 금기를 감독인 맨키위츠는 제한된 표현 수위를 조심스레 넘나들고 있다. 이는 맨키위츠가 윌리엄스의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간과하지 않으려 했던 그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맨키위츠의 영화적 표현의 방법이 할리우드가 고수하는 사실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주제의 파악과 언급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3. 샘 스피겔, 조셉 맨키위츠, 몽고메리 클리프트 그리고 캐더린 헵번
<지난 여름 갑자기>를 제작하는 동안 제작자인 스피겔과 감독인 맨키위츠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스케줄에 맞춰 엄격하게 진행하는데 익숙한 스피겔의 성향과,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그룹에 속하는 맨키위츠의 자유로운 성향의 대립이다. 이 대립의 양상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닥터 커크로위츠 역을 맡은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 때문이었다. <지난 여름 갑자기>를 촬영하기 전 당한 자동차 사고로 인해 항상 멋지고 로맨틱한 주인공을 맡아왔던 그의 얼굴에 심한 손상을 가져왔다. 턱 부위가 많이 부서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핸섬한 얼굴로의 완전한 복귀가 어려웠고, 뿐만 아니라 다시는 주인공을 맡을 수 없을 정도로 보였다. 그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불면증, 두통, 그리고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이런 상태로 영화 촬영에 임하다 보니 진행에 많은 불편을 초래하였다. 연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멍한 상태로 앉아 있는다거나 대사를 해야 할 상황에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거나 항상 늦는다거나 하여 맨키위츠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을 일삼는 바람에 촬영을 하는 동안 불협화음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맨키위츠의 클리프트에 대한 불만은 제작자인 스피겔에게도 역시 작용하였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바이올렛 베너블 역의 캐더린 헵번은 촬영 마지막 날 맨키위츠에게 클리프트를 옹호하면서, 그동안 감독의 행동에 대해 올바르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나는 당신과 영화작업을 한 적이 없다.”고 역설하면서 그의 얼굴에 침까지 뱉으며 화를 냈다고, 그녀와 함께 연기를 했던 배우 게리 레이몬드(캐더린의 오빠 조지 역)와 그녀의 자서전 작가인 찰스 하이엄이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샘 스피겔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클리프트에 대해 당신이 보여주었던 태도도 나은 것이 없다.” 그리고 역시 맨키위츠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페겔에게도 침을 뱉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친 뒤에도 많은 뒷이야기가 나돌았다. 특히,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리고 클리프트에 관한 연기와 적절한 캐스팅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주를 이루었다. 고어 비달은 클리프트와 테일러는 정말 끔찍했다고 평가를 했고, 헵번의 경우 잘못된 캐스팅이긴 했지만 흥미로웠다고 회고하고 있다. 반면에 윌리엄스의 경우 헵번과 클리프트의 연기는 눈부실 정도로 좋았다고 평가를 한 반면, 테일러의 경우 잘못된 캐스팅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이처럼 <지난 여름 갑자기>는 수많은 관심과 사건을 일으키며 1959년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되었다.
4. 나오며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은 언제나 연극 혹은 영화로 대중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인해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의 자전적인 삶의 경험들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들은 일반 대중들의 관심 끌기뿐만 아니라, 전통적 가치관에 도전하는 금기의 것들까지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도록 다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 그 이유 때문에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영화화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닉한 점은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할리우드에서 테네시 윌리엄스의 다소 전복적인 성향을 지닌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많은 평론가들은 원작을 어느 정도 훼손했는지에 대한 관심과, 금기의 정도가 어느 수위에서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한궁금증들이 증폭되고 많은 연구들을 행하였다. 물론 필자도 그런 문제에 대한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번 분석은 원작의 훼손이 어느 정도인가 혹은 완전한 재현이냐를 탐구하기보다는, 윌리엄스의 의도와 주제가 영화적으로 표현되기 위해 감독이 어떠한 스타일을 선택하여 재현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이 점에 초점을 둔 근거는 윌리엄스가 본인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데 대한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을 영화화할 경우 최대한의 자유로운 각색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의 전달에는 충실함을 기해야 한다.”________________
Yacowar, Maurice. Tennessee Williams and Film. New York: Frederick Ungar, 1977.
이와 같은 윌리엄스의 주장에 근거하여 살펴볼 때, <지난 여름 갑자기>는 각본가이자 각색자 고어 비달의 윌리엄스만의 언어적 묘미 살리기의 충실함과 더불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원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이해하고 파악하여 어느 정도 본인 스타일로 잘 수렴하여 표현해 내고 있는 맨키위츠의 능력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영화화되기 위해 많은 부분 확장과 원작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의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작의 훼손에 대해서는 인정하니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 윌리엄스의 주제와 원작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비달과 맨키위츠에 의해 잘 드러나고 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참고 자료

Phillips, Gene D. The Films of Tennessee Williams. N.J.:Associated University Press  Inc.,1980.
Yacowar, Maurice. Tennessee Williams and Film. New York:Frederick Ungar, 1977.


조셉 맨키위츠(1909-1993) : 영화 감독, 제작자, 각본가. 베를린 해외 통신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1936년 MGM에서 프리츠 랑(Fritz Lang)의 <분노Fury>(1936)와 조지 쿠커(George Cukor)의 <필라델피아 스토리Philadelphia Story>(1940) 등의 작품을 프로듀서로서 제작하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1950), <아가씨와 건달들 Guys and Dolls> <지난 여름 갑자기>(1959), <클레오파트라 Cleopatra>(1963) 등이 있다.

<지난 여름 갑자기>(1959) : 감독=조셉 맨키위츠/원작=테네시 윌리엄스/각색=고어 비달/출연=캐더린 헵번(바이올렛 베너블 역), 엘리자베스 테일러(캐더린 역), 몽고메리 클리프트(닥터 커크로위츠 역)/제작=샘 스피겔.



이주연
․영문학자/영화학자
․현 건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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