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5호 문화산책/김주석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418회 작성일 06-11-20 16:38

본문


막은 내려도 인생은 커튼콜을 받는다
―<송환>에 대한 감상 4막(幕, Act)―


김주석


Act. 1. 똘이 장군과 소년기
극작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자서전도 픽션의 가장 큰 형태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기억하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은 ‘창작을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초월하라.’는 맥락에서 자주 사용되는 격언이다. 예술가의 내면을 잘 반영한 작품이 완성도가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삶과 연관을 강하게 맺을 때에 예술작품도 빛을 발한다.’는 것이 창작과 비평의 과정에서 드러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격언을 예술과 관련 있는 모든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송환>에 대한 정리를 하려고 한다.
우선 궁정동에서 총성이 울리고 장군 대통령이 쓰러졌던 1979년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나는 그해 봄까지 아버지 직장 문제로 부모님과 떨어져 강원도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남파간첩들이 산을 넘어오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던 마을이다. 마을이 휴전선과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무장공비나 간첩신고가 있으면 마을의 논과 밭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간첩 혹은 빨갱이로 불리던 사람들을 좋아할 리 없었다. 특히 전쟁을 치른 할아버지 세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일어났던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은 동네에서 한동안 회자되었다. 왜냐하면 9살 소년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는 신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마을은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반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근방에 유명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동네 어른들은 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신화는 우상화 혹은 미화라고 부르는 고약한 치장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던 정부가 세운 반공 기념관을 문화유적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사람들은 많은 토목사업과 개선으로 분주한 시절이었고 번듯한 다리가 들어선 개천에는 새마을 운동을 찬양하는 현수막이 걸리곤 했다. 고모를 따라 두어 번 반공 기념관에 갔었다. 미국 군대의 것을 그대로 따라한 문양을 동체에 붙인 낡은 전투기와 짙은 녹색 페인트를 칠한 탱크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몇 년 후 총칼을 휘두르며 권력을 잡은 두 번째 장군 대통령이 소년이 다녔던 학교를 손질하고 공원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하는 일도 참 비슷한 장군 대통령들이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 소년의 이야기는 막연한 모험을 동경하는 아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자 아이들이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소년의 용기를 부러워하고 공산당을 무찔러야 하는 집단으로만 생각했다. 만약 소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상상하기도 했고 소년을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공비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 혹은 공산당은 무찔러야 할 적이었고, 순진한 시골아이들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는 괴뢰집단이었다.
여름이 되자 아버지는 서울로 직장을 옮겼고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했다. 낯설고 신기한 도시는 나를 무척 흥분시켰는데 당시 서울은 무더위와 함께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가 보기에도 세상은 소란스럽고 어수선했다. 텔레비전 뉴스에는 대통령의 시국연설이 자주 나왔다. 불온한 세력들이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는 이야기나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지 말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곤 했는데, 이때 ‘불온’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 같다. ‘불온’은 언제나 평화를 방해하는 폭도들의 이미지와 함께 등장하는 말이었다.
처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대통령은 키도 작고 마른 체구였지만 건장한 사내들을 끌고 다니는, 멋있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다부진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일순 긴장한 것 같아 우습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은 장래의 희망을 대통령이나 장군으로 꼽았던 시절이다. 나도 장래 희망에 대해 큰 소리로 대통령이나 군인이 될 거라 대답하곤 했다.
아이들이 모여 전쟁놀이를 할 때 등장하는 단골메뉴는 <똘이 장군> 노래였다. 이 노래는 정말 인기가 좋아서 자주 불렀다. “똘이 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똘이 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덤벼라, 붉은 무리 악한 자들아…….” 오락실도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 대부분 아이들이 유희였다. 가장 가지고 싶은 장난감 총이나 마징가 제트 완구였던 시절이었다. 화약 연발총을 처음 사용했을 때의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재미있는 것은 전쟁놀이를 할 때마다 힘센 아이들은 미군이나 국군 역할을 하고 힘이 약한 아이들은 늘 인민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기준으로 볼 때 미국과 남한은 좋은 편이자 강자였고 북한은 악의 무리며 약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전쟁놀이를 하면 언제나 미국과 남한 패거리가 승리를 했던 것 같다. 이때 가졌던 좋은 편과 나쁜 편에 대한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노동에 지친 아버지를 귀찮게 했다. 동네 아이들이 무지개 극장이나 아세아 극장에서 <똘이 장군>을 보고 자랑하는 것에 샘이 났기 때문이다. 아직 극장에 가본 적이 없어 동네 아이들의 유행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분했던 모양이다. 일주일을 조른 끝에 아버지와 함께 <간첩 잡는 똘이 장군>을 보았다.
만화의 시작을 기다리던 순간은 기대와 설렘으로 황홀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과 스크린을 향해 탄성과 야유를 보내며 즐거워했다. 영화의 절정에서 여자간첩이 구미호로 변할 때는 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리고 늠름하게 간첩을 때려잡는-반드시 때려잡았던- 똘이 장군의 모습을 보며 환호했다. 똘이가 발차기로 늑대의 가면을 벗기던 장면이나 석양을 바라보며 “자유 대한 만세”를 외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간첩이 늑대나 구미호 같은 거라 생각했다. 얼굴이 날카로운 여자를 보고 무서워 도망갔던 일도 있었다.
<똘이 장군>은 인기기 많아 여러 편 제작되었는데, 붉은 돼지가면을 쓴 독재자가 늑대로 된 군대를 이끌고 북녘 사람들을 억압해 땅굴을 파던 1편의 성공은 간첩에 관한 속편 제작으로 이어졌다. 내가 본 것은 속편이었는데 <똘이 장군>연작은 텔레비전에서 여러 번 재방영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 아이들이 한두 번 이상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 똘이 장군이 되어 전쟁놀이를 하고 있을 때, 장군 출신의 키 작은 대통령은 총을 맞았고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붉은 군대가 내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군인들이 서울에 들어오고 계엄이 선포되자 비로소 안도했었다. 군인들은 우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아저씨였으니까. 철부지에게 늠름한 군인들의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머리에 숱이 별로 없었던 장군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장군은 얼마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였던 다른 장군도 대통령이 되었다. 군국주의나 파시즘이 얼마나 고약한 것인지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만 해도 장군과 대통령을 좋은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 그 장군들이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부패와 폭력에 관련된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았다. 간첩 사건이 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되었거나 조작 의혹이 많다고 의심하게 되어버린 지금이지만, 어린 소년의 눈에 장군이 얼마나 좋아 보였는지 모른다.
나에게 멋있게 느껴지던 장군들이 있었던 것처럼 북녘 사람들에게도 위대한 장군이 있었다. 물론 그의 아들도 장군이라는 칭호 비슷한 걸로 불려진다. 북에서는 그를 무척 존경해서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인다. 북녘 사람들의 인식도 나랑 비슷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소년 시기에서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여튼 장군이 필요하다는 것은 전쟁 중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계속 전쟁터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송환>을 보면서 학교에서 받았던 반공 교육이 생각났다. 삐라 줍기 산행, 금강산댐 반대 궐기대회, 반공 글짓기, 웅변, 표어, 포스터 등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반공의 흔적을 지우고 영화를 보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예의 그 장군들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북한은 매일매일 부딪히는 현실의 문제였던 것 같다. 냉전시대에 분단이 만든 웃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열거할 수도 없다. 북한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승냥이’ 표현이나 <똘이 장군>에서 나오는 ‘돼지’와 ‘늑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아이들에게마저 기형적 사고를 강요하는 시대였으니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가해졌을 폭력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다. 간첩은 언제나 때려잡아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송환>과 <똘이 장군>연작이 겹쳐 보이는 것이 남과 북이 조장한 부조리한 현실과 연관이 있는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영화지만 분단이 초래한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남과 북은 힘 있는 장군들이 있어야 했나보다. 북도 장군의 정권이었고 남한도 장군들이 세 번이나 대통령을 했으니.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장군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총을 맞았던 장군 출신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북에서도 그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장군에 대한 향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도 하고 남북을 잇는 철도 공사를 하고 있지만 전쟁을 나지 않은 ‘진행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Act.2. 현기증과 참기 힘든 연민
다큐멘터리 편집을 한다며 컴퓨터와 씨름하던 때를 생각해 본다. 편집을 하면서 심한 구토 증세에 시달렸다. 5개월 정도의 촬영 분량을 편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극영화와 달리 완벽하게 준비된 촬영 대본이 없는 다큐멘터리 편집은 상상 이상으로 고된 작업이다. 게다가 더 힘들었던 것은 나의 입장이나 편집 방향이 어정쩡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작업의 고단함이 되어 창작의 즐거움을 압박했다. 엄청난 허탈감과 함께 작업을 끝냈고 두고두고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송환>을 촬영하는데 10년, 편집에 1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테이프에 담긴 분량이 800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속이 울렁거린다. 이 정도면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내가 작업했던 분량의 수십 배가 넘는다. 숫자로 표기하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10년이 넘는 촬영 작업과 800시간을 2시간으로 줄이는 편집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촬영과 편집을 마친 감독과 제작진의 괴력에 감탄과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감독은 오히려 즐겁게 작업했다고 한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고 몸무게도 줄었다던데 그를 즐겁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몇 해 전 전주영화제에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오가와 신스케의 <산리주카 7부작>과 <마기노 마을이야기>를 보던 때가 생각난다. 나리타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10년이 넘는 투쟁을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 연작은 강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압도했었다. 그때도 현기증을 느꼈는데 작품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리주카> 작업을 하고 있던 오가와 신스케와 동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촬영 대상인 농민들에 대한 애정과 노동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이것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담겨 있었다.
김동원 감독과 그의 동료들도 엄청난 고생 끝에 <송환>을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는 고된 노동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이런 과정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의 끝에 탄생한 아름답고 솔직한 기록을 보는 것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송환>은 씨줄과 날줄이 잘 짜인 천으로 만든 풍성한 식탁보 같은 작품이다.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들리는 작은 울음소리와 감탄에 서로 호응하고 연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과 삶에 대한 감독의 사색을 발견하는 데 만족하며, 장기수들과 감독의 삶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관계 맺기’란 사활이 걸린 문제다. 내(감독)가 저 사람(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어떤 질로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은 나(감독)를 어떻게 위치시키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내(감독)가 어떻게 구현되는가에 따라 관계의 구현도 달라진다.
<송환>을 만든 사람들과 장기수 선생들의 ‘관계 맺기’는 시간과 현실을 공유하며 아주 밀착된 것으로 보인다. 장기수 선생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늙은 알몸과 솟구치는 눈물을 스스럼없이 보이곤 하는데, 고독한 늙은 전사들이 카메라를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에 ‘만드는 사람’은 힘을 얻었고 이 관계 맺음을 인정하면서 ‘보는 사람’이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송환>은 나를 고민과 회의에 빠지게 했다. 영화를 보며 반공 교육의 우산 아래에 있던 소년기를 생각했고 참기 힘든 연민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자서전에서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삶을 택하고 싶다”________________
야만과 폭력의 지난 세기를 생각하며 러셀과 장기수 선생들을 중첩해본다. 결국 인간을 고통으로 이끄는 것은 의지할 수 있는 확실성에 대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는 말을 했지만 나는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에 가깝다.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의 삶을 살았던 늙은 선생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일 자신은 없다. 인생에서 늘 존재하는 고통과 갈등, 그것을 넘은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고통 받는 인간들을 돌아보고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을 가졌던 러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에게 친절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송환>은 김동원(감독)과 장기수 선생들이(대상) 울고 웃으며 살아온 생활과 한국 현대사에 관한 기록이다.
감독과 장기수 선생들은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지만 넘지 못할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다. 부자지간에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데 하물며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른 감독과 장기수 선생들의 관점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같음’과 ‘다름’이 공존하는 관계라는 말이다.
<송환>은 장기수 선생들의 생활이나 인터뷰에 감독의 독백이 걸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영상도 많이 들어가 있다. 질문을 하는 장면은 빼고 대답을 피하는 장기수 선생의 모습을 담은 경우가 그렇다. 또한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장면도 있다. 이것은 장기수 선생들과 제작진에 ‘같음’과 ‘다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구성이다. 그래서 <송환>은 감정의 동화도 다루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거리감도 교차하는 작품이다.
감독은 아버지처럼 여기던 조창손 선생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처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조 선생이 있는 곳 주변에 감독이 함께 하고 아이들과 찍은 사진과 내레이션을 통해 그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 아버지처럼 ‘같음’과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화와 토론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편지 형식을 통해 마음을 조금 드러낸다.
북으로 돌아간 조 선생과 장기수 선생들을 촬영해 작품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감독은 사정으로 인해 촬영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북에 갈 기회가 생긴 후배에게 안부를 묻는 영상편지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안부를 부탁했던 후배가 촬영한 영상에서 “말을 안 했지만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조 선생의 말이 마무리를 주저하던 그에게 용기를 준다. 10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말과 감정을 이제야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독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수사적이지 않은 솔직함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던 두 사람이 ‘같음’과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송환>은 장기수들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아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사부곡(思父曲)이 된다. 북에서 선전용으로 제작한 영상을 보며 씁쓸함을 내비치는 내레이션에서 관객들도 감독의 감정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에게 시간은 간단히 자취 없이 사라질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시간이란 인간에게 전혀 주관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살아 온 시간은 우리의 영혼 속에, 바로 그 시간에 겪은 경험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송환>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________________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김창우 역, ꡔ봉인된 시간ꡕ, 분도 출판사, 1991. p.73.
<송환>은 감독이 살아온 시간이 그의 영혼 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혼에 자리 잡고 있는 시간을 꺼내어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삶의 경험을 얻으려고 영화관에 간다고 한다. 잃어버린 시간, 농쳐버린 시간, 또는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간다는 말이다. 영화는 실제적인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고 경험을 통해 인간을 노련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 제공을 넘어 현저하게 연장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의 힘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김창우 역, ꡔ봉인된 시간ꡕ, 분도 출판사, 1991. p.80.
<송환>은 실제적인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연장해 주는 성찬으로 ‘영화의 힘’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김동원 감독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고민할 것을 제안하는 태도로 자신의 막을 끝냈다. 그래서 장기수들 이야기는 막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송환>이 비전향 장기수들과 감독이 중심인 2막의 이야기라면 전향 장기수들과 현재의 이야기 3막과 통일 이후 이야기 4막은 미래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Act. 3. ‘관찰’과 ‘성찰’
예술이란, 의식적인 존재가 작업에 의하여 아름다움을 산출하는 것이라는 일반적 정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술은 의미화 과정을 통해 자의식을 실현하거나 혹은 반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송환>에 드러나 있다. 긴 작업 끝에 완성한 <송환>은 장기수에 대한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감독이 자신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단순히 내레이션을 감독이 직접 하기 때문이 아니라 감독의 시선과 생각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부에 반공주의자인 아버지나 장기수 선생들이 만족할 수 없는 작품이 나왔다는 고백을 한 것이다.
좋은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가의 성찰과 자기 반영이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이 없는 것은 진정성이 없어 속 빈 강정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경험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삶의 경험을 다룬 <송환>은 필연적으로 작가의 성찰과 반영의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사실의 기록이란 강력한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그리고 예술가는 당연히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 <송환>은 다큐멘터리의 힘과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작품이다. 감독은 장기수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내레이션을 통해 자기 고백을 한다. 처음 간첩을 만났을 때의 낯설음과 두려움, 그들과 친해지면서 겪는 갈등, 그리고 이별의 안타까움 등은 영상으로 기록되고 감독의 목소리로 감정이 드러난다.
<송환>에는 실제 남파 공작원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반공 교육을 통해 무시무시하게 그려졌던 간첩들. 하지만 그들 역시 남북 분단의 희생양이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귀소 본능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다. 신념에 찬 날카로운 안광의 소유자, 여행에서 순진한 장난을 하는 늙은 아이, 어머니 앞에서는 용서를 구하는 불효자인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박혀 있던 고정관념이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극복되는 것, 그것이 바로 <송환>에 담긴 진정성의 힘일 것이다.
나는 <송환>을 통해 우리의 장군들이 무찔러야 할 대상으로 삼았던 북한 간첩들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비전향 장기수는 가면을 벗기면 늑대나 구미호로 변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보는 선생들은 수십 년 동안 자유 대한(?)의 품을 거부하고 맞선 악명 높은 간첩들인데 영화에 보이는 것은 왜소한 몸에 카랑카랑 고집 센 할아버지들일 뿐이다. 물론 확고한 신념은 변하지 않았고 비타협적인 고집도 가지고 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에게 그것이 없으면 무엇에 삶을 의지하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한 것을 갈망한다. 꽃동네 신부나 장기수 선생이나 이형동종(異形同種)으로써 인간인 것이다.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을 다루기 때문에 정치적인 작품일 것이라는 예상은 깨지고 말았다. 이 작품은 인간과 시간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그린 오테르 다큐멘터리 (Auteur Documentary)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감독의 시선이나 주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오테르 다큐멘터리는 사적 다큐멘터리의 열풍과 함께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다큐멘터리의 선전, 교육이라는 액티비즘 기능보다 감독과 대상이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벌어지는 감독의 심리나 가치관의 변화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적인 사적 다큐멘터리의 열풍과 함께 부각되기 시작한 오테르 다큐는 auteur가 ‘작가’를 의미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감독의 시선이나 주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의 선전, 교육적 기능보다는 감독과 대상이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거기서 빚어지는 감독의 심리나 가치관의 변화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했고 보는 이들에게 보다 직접적인 감동을 느끼게 해 준다.
지금까지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액티비즘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국 독립영화의 출발이라고 평가받는 <상계동 올림픽>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분명히 밝혔다. 사회적 문제가 많았던 우리의 현대사를 감안한다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상계동 올림픽>으로 독립영화진영에 뛰어든 김동원 감독도 철거 지역 빈민 생활을 테마로 하는 액티비즘 지향의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다.
<송환>은 김동원 감독의 이전 작품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현대사회의 중요한 담론인 앙가주망(engagement)과 데가주망(dégagement)을 모두 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선전 교육의 액티비즘 고집은 ‘정치나 사회문제에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앙가주망이고 자유주의적 기질은 ‘자기 구속에서 자기를 해방시키려는’ 데가주망이다.
<송환>이 앙가주망과 데가주망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던 배경에 시간을 사실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관찰’과 ‘성찰’의 과정이 있다. 이 영화는 장기수들의 삶의 시간, 감독이 제작에 쏟은 시간, 앞으로 전개될 시간이 모두 드러나 있다.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관찰과 성찰의 끝에 지금의 <송환>이 만들어졌다면, 아직 송환되지 않는 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앞으로의 시간과 삶이 남아 있다. 종이 한 장으로 가늠할 수 없는 현대사의 아픔으로 표현되었던 장기수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전개될 시간에서 ‘관찰’과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송환된 장기수들이 북에서 보내는 앞으로의 시간도 있다. <송환>은 아직도 진행형인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Act. 4. 막은 내려도 커튼콜을 받는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중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은 연간 70편 정도다. 한국 영화가 고작 이 정도의 제작 편수로 세계를 뒤덮고 있는 미국 영화에 맞서는 것은 대단해 보인다. 관객의 호응도 있어야 가능한 것이겠지만, 한국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담당하는 회사들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최근 1,000만이라는 블록을 넘은 두 편의 영화가 존재하는 것에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상황에서 인디스토리 같은 아주 영세한 회사가 배급하는 <송환>이 한국 다큐멘터리 흥행의 기록을 새롭게 썼다는 기사가 있었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매>가 2만이 되지 않는 관객으로 세웠던 기록이니 깬다고 해봐야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같은 영화와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대중과 평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증명한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의 성공 같은 드문 예도 있기는 하다.
감독이 한 작품을 탄생시키면서 그 작품의 가능한 성공을 가늠해 보고 산술적으로, 숫자적으로 미래의 관객 수를 계산해 보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것이다. <송환>은 영화 성적표 같은 관객 수의 가늠과 무관하게 중요한 작품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작품을 “항상 인간이 그들의 이웃인 다른 인간들에 얽매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내적’ 자유를 지킬 줄 알았던 인간들에 관한 것을 작품 속에 그려내려 했다.”고 고백했다. 여기에 연약한 사람처럼 보이는 인간들을 다루면서 도덕적 확신과 도덕적 입장으로부터 성장하는 연약함의 힘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________________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p.231.
<송환>은 장기수들이 질곡의 세월 속에서 도덕적 확신과 입장에서 성장한 연약함의 힘을 다루는 작품이다.
인간이 주인공인 삶은 막이 내리고 열리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극과 같다. 막이 내리면 관객들은 커튼콜을 한다. 그러면서 끝이 났던 연극도 다시 보게 되고 새로운 막이 열리면서 다른 연극도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송환>의 자리매김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배우는 시간(역사) 위를 달리며 속도와 방향의 다양함을 만끽한다. 세상 속에서 무거운 고통을 짊어지고 세계를 끌어안음으로써 삶은 가벼워진다. 인간은 사회에서 ‘관계의 끈’을 확인하며 ‘같음’을 의식하고, 다양한 지형을 넘나들면서 ‘다름’을 배운다. 그리고 변화와 불변 사이에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며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이란 배우가 주연인 연극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막을 열고 막을 내린다. 그래서 인간의 이야기는 커튼콜을 받는다. 닫힌 막은 다시 열리기 위해 있기 때문이다.



김주석
․성균관대학교 강사

추천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