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5호 신작시/임동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1,744회 작성일 06-11-08 18:58

본문

임동윤


저무는 강변


애반딧불이는 죽어라고 웃는다
꽁무니에 은은한 불빛 매달고
죽어라고 깜박인다, 그리운 짝을 부르는
저 무언의 몸부림, 유년시절
반딧불이 잡으려 쏘다녔던 강변
호박꽃에 반딧불이 넣어 등불 만들던
반짝이는 똥구멍 잘라 이마에 붙이고
밤마다 귀신놀이를 하던 그 시절도
이제는 한낱 강물처럼 흘러갈 뿐
반딧불이가 사는 강변, 바람에
물풀 하느작이고 물이끼도 축축한
아아, 힘차게 여울은 치고 있으나
온통 희뿌옇게 물밑 그늘은 흐려있다
다슬기 있던 자리 듬성듬성 비어지고
알을 낳고 반딧불이가 들어가 누울
강가의 부드러운 흙도 무너져버렸다
길 무너진 자리에 다리가 놓이면서
물살에 매캐한 시멘트가루만 밀려와
연한 땅을 콘크리트로 가득 채웠다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빈번해지고
좁은 길이 왕복 4차선으로 포장되면서
밤새도록 가로등 불빛은 강변을 밝혔다
부르릉거리는 차들의 엔진소리와
꽁무니에서 시커멓게 내뿜는 매연
그리고 대낮같이 환한 전조등 불빛에
반딧불이는 조금씩 눈이 멀어간다
밤마다 남몰래 방류하는 공장 폐수와
무분별하게 살포하는 농약과 가축 분뇨
다슬기도 떠나고 수초들은 말라버렸다
꽁무니에 켜든 불빛도 차츰 희미해지고
그래도 애반딧불이는 죽어라고 웃는다
끝내 잦아드는 숨결로 깜박거린다




공기도 썩는다


지난 주말 화원에서 사다 심은
난타나, 트리안, 임파첸스, 노보단이
시들시들 거실에서 죽어가고 있다
학교로 일터로 모두 떠나고 나면
아무도 없는 집, 도둑이 들까봐
환한 대낮인데도 블라인드를 내리고
약속처럼 문이란 문은 꽉꽉 닫아 건다
햇살은 종일 밀폐된 거실을 달구고
방을 달구고, 늦은 밤 현관을 열면
훅! 얼굴에 와 닫는 퀴퀴한 열기여
푹푹 쉰 단내가 꿈틀꿈틀 일어선다
집안 가득 찬 후덥지근한 냄새 때문에
황망히 베란다 문을 열어젖히면
배롱나무 꽃 빨간 정자공원에선
살과의 전쟁을 치루는 여자들의
달아오른 교성만 종종걸음 친다
쏴아, 쏴아 한껏 수돗물 틀어놓고
샤워하는 소리 벽을 타고 내려오지만
태양이 달군 방과 욕실 사이
주방과 거실 사이, 푹푹 썩는 냄새들
닫힌 공간에서 그 냄새에 취한
난타나, 트리안, 임파첸스, 노보단
고개 푹 숙인 채 빈사상태로 있다
밀폐된 집의 달아오르는 감옥에서
우리 삶도 시들시들 떨어져 내린다
갇혀 있던 공기도 푹푹 썩어간다




임동윤
․경북 울진 출생
․1992년 <문화일보>(시조), 1996년 <한국일보>(시)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은빛 마가렛] 등



추천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