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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신작시/정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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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194회 작성일 06-11-08 19:03

본문

정익진․


타인의 성향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취밉니다.
나는 까다롭고 공격적이고 장마철을 좋아하고,
오만 불손한 반면에 위생적이지만 인내력은 거의 없죠.

이번만 하더라도
총무부장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불러놓고 자기 집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는데 놈에게 주입시킨 말이 “내가 갈 동안 넌 꼭 기다리고 있어”
라고 밤마다 교육시켰지만 놈은 항상 “네가 올 동안 난 다른 놈과 도망갈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하루는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대머리처럼
화가 치밀어 놈의 목을 확 비틀어 생피를 냉면그릇에 받아 마시고,
앵무새 백숙을 해 먹었다나……

저번 직장에서는
약 한달쯤 되었을까. 비 오는 날이었어요.
자신의 남성다움을 유난히 강조하던 부사장이 부사장실 문을 잠그고
“난 비 오는 날을 좋아해, 그리고 비 오는 날엔 난 남자가 필요하지”
“저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죠, 부사장님, 그리고
누군가를 목 졸라 죽이고 싶어요. 특히 남자를요. 숨이 막혀 마지막 발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절정에 도달해 사정을 하지요.
지금 그렇게 하고 싶은데 어때요”

저 저번 직장에서의
사장님은 회사 업무와는 별 상관없는 이상한 일만 시키곤 했지요.
이를테면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는 한국이민 일 세대들 중에
네 살 때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다 한쪽 눈을 다쳐 실명한 사람들의
현황과 그 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체코의 수도가 어디인지 모르는
동성애자들의 현황을 파악해 보시오”라고…… 그 전엔 더 웃겼죠.

여사장님을 데리고 다니는 운전직이었어요. 어딜 갈 때마다 언제나 그녀는
사무실에 그녀의 한쪽 젖가슴과 한쪽 다리를 두고 와요.
나와 비슷한 족속인가 봐요…… 그렇죠 뭐…… 내일도 직장을 그만둘 것 같아요.






건축가의 비밀


1.
마침내 건물에 도착한 그는 문을 향해
약속한 대로 사과 하나를 던진 다음,
개와 함께 건물의 문 앞에서 약속한 만큼 기다려 보지만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약속한 대로 모른다.
예상한 시간만큼 기다리다 예상을 뒤엎고 지쳐버린
그가 주저앉는다. 약속한 대로
그의 주변을 개가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지칠 대로 지친
개가 혓바닥을 할딱거리며 바닥에 엎드리자
예상한 대로 벌컥 화를 내며 일어선 그가
개 주변을 돌기 시작한다. 잠시 후,
예상을 뒤엎고 건물의 문이 열리고 얼굴이 떨어진
사람들이 개들을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앞서의 그와 그의 개처럼
개가 지치면 개의 주위를, 얼굴 떨어진 이들이 지치면
얼굴 떨어진 개들이 얼굴 떨어진
이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돌아간다. 예상을 뒤엎고 건물의
표면에서 돋아난 사람들의 혓바닥과 개들의 혓바닥에서
흘러내리는 타액이 건물의 표면을 적신다.


2.
그림자 없는 건물이 서 있다. 오 분이 지나고 약속한 대로
건물의 그림자가 생긴다.
사람들은 오 분 전에 그 건물을 보았지만 예상을 뒤엎고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정익진
․1997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구멍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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