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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지난계절작품읽기/임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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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인플레이션과 문학의 운명
―김옥채의 「매매몽(賣買夢)」
(≪문예중앙≫ 2004년 봄)
임준서
(문학평론가)
1.
요즘 문예지를 뒤적이다 보면 서글픈 느낌이 앞선다. 잡지들마다 중견작가에서 신인작가의 작품 순으로 구색 맞추기에 급급하다. 꼭 대로변에 늘어놓은 좌판들 같다. 다양한 물건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보시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듯하다. 물론,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대중소비시대에 어찌 문학이라고 상품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랴. 정작 문제는, 그 많은 상품들 중에 쓸 만한 물건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중견작가이건 신인작가의 것이건 사정은 마찬가지다. 저마다 개인적인 욕구불만의 문제, 관념의 문제에 매달려 끙끙 앓는 시늉을 하며 엄살을 떤다.
이런 류의 작품은, 냉정히 말해, 작가가 싸질러놓은 욕망의 배설물에 불과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의 보편적 현실, 절박한 삶의 문제에 대한 성찰은 눈 씻고 찾아도 없다. 세상일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오불관언(吾不關焉), 그냥 제가 쓰고 싶은 것만 내갈길 뿐이다. 소비자가 무얼 원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그런 배설물들을 제아무리 많이 모아놓은들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이렇게 우리 문학판의 상품 전략은 길거리의 좌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소비자의 요구보다는 생산자의 권위만 맹목적으로 앞세우는 ‘묻지마 문학’,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헝그리 문학’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서글프다. 문학이 상품화되어서가 아니라, 상품다운 상품이 보이지 않아서 서글프다.
2.
그런 중에 유독 시선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김옥채의 「매매몽(賣買夢)」(≪문예중앙≫ 2004년 봄호)이 그것이다. 젊은 신인작가의 중편소설인데, 발상이 기상천외하면서도 피부에 와 닿는다. 한 퇴직 은행원을 등장시켜 꿈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대리 진급 기회를 다 놓친 끈 떨어진 만년 행원’ 신세인 존려는 어느 날 직장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는 밤마다 꾼 꿈을 밑천 삼아 장사를 시작한다. 인터넷에 ‘sell dream’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다양한 메뉴의 꿈 텍스트를 제시한 다음 경매에 붙이는 것이다. 말 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꿈의 IT사업’인 셈이다.
봉이 김선달 식의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엔 뼈가 있다. 주인공이 꿈 장수로 나서게 된 이유는 돈벌이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돈벌이에 대한 깊은 환멸로 인한 것이다. 주인공의 전직이 은행원으로 설정된 것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때 묻은 지폐를 만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은행원의 모습은 곧 물질적 욕망에 삶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동시대인의 초상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문득 그는 자신의 갑갑한 현실에 사르트르의 주인공처럼 구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꿈은 타락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된다. 그에게 꿈은 ‘때묻지 않은 가치’를 표상한다.
꿈의 유통은 때묻지 않은 가치의 교환이다. 불평등을 조장하는 잉여가치 한 점 남기지 않는 이상사회를 그린다. 그건 아예 가치의 몸뚱어리조차도 갖추기 싫어하는 소박함이 있어서 복잡한 세상사를 낳을 수 없는 불임의 정자여행처럼 자유롭기까지 하다. 다산(多産)은 더 이상 풍요의 상징이 되지 못한다. 악취가 풍긴다. 꿈은 판 사람과 산 사람 모두에게 향기를 남긴다. 부패한 세속가치의 허우적거리는 피곤한 유영도 없으며 탈선한 욕망의 뒤틀린 곡예운전도 사뿐히 물리칠 수 있다.
꿈은 순수하면서 평등하다. 꿈은 생산의 원칙이 지배하지 않는 해방구이다. 그래서 현실의 빈부 격차는 꿈속에서 쉽게 전복된다. ‘가진 자가 더 풍요로운 꿈을 꾸지는 않’으며, ‘가난한 자가 꿈부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꿈은, 교환가치를 뛰어넘는, 교환가치이다. 현실적 쓰임새를 갖지 않는 교환가치라는 말이다. ‘엽전 한 닢과 절편 한쪽이면 과거급제도 하고 옥동자도 낳았던’ 우리 선조들의 풍속이 말해주듯이. 그리하여 존려의 꿈사업은 타락한 현실에 응전하는 하나의 전략이 된다. 무균질의 꿈을 현실에 주사함으로써 그는 사람들의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자 한다.
그러나 존려의 전략은 출발부터 심각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꿈이 ‘교환가치를 뛰어넘는 교환가치’라고 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상품의 논리에 포섭될 운명에 처해 있다. 꿈이 아무리 시장의 논리를 부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교환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시장의 유통 구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존려의 꿈사업은 애초의 순수한 목적을 잃고 변질된다. 유사 사이트가 난립하여 저마다 ‘원조’를 외치는가 하면, 해몽을 일삼는 점쟁이 집으로 전락한다. 급기야 꿈 사이트는 사회문제로 비화된다. 존려는 해킹기술을 동원해 인터넷상의 모든 꿈 사이트를 폭파시키기에 이른다.
결국 존려의 꿈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된다. 꿈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아니라 또 다른 교환가치를 낳는 숙주가 될 뿐이다. 작가는 이렇게 꿈 장사 이야기를 통해 정신마저 상품화되는 오늘의 세태를 패러디한다. ‘드림 테크놀로지’, ‘드림 시티’ 등등 우리 시대는 ‘꿈’이라는 단어로 넘쳐난다. 말 그대로 꿈의 인플레이션 시대이다. 하지만 꿈이라는 낱말이 빈번하게 사용될수록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빈약해진다. 꿈이 규격화되어 대량 유통될 때 꿈은 고유한 의미와 기능을 상실한다. 문학의 운명 또한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3.
이 작품에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시대 문학의 운명이다. 자본의 블랙홀에 빠진 문학의 운명. 그것을 작가는 꿈사업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존려의 독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가장 웃기는 인간들은 소설가와 시인이다. (중략) 제 몸뚱이로 벌어 쓸 재주가 없어서 망상을 팔아먹는 인간들…….’ 그러나 작가의 이 자학적인 어투는 귀에 익은 것이다. 사실 문학의 상품화는 새삼스러운 화두가 아니다. 이제는 자본의 논리를 문제삼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그러한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방향을 탐색해야 한다. 하지만 김옥채의 작가의식은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요컨대 소재나 화법은 신선하지만, 그 속에 담긴 현실인식은 식상하다. 어쩌면 이 타성화된 자학적 포즈가 오늘날의 현실도피적인 ‘묻지마 문학’이나 ‘헝그리 문학’을 양산한 것이지 모른다.
그러니 작가들이여, 이제는 엄살을 그만 떨기로 하자. 덮어놓고 세상만 탓하는 무책임한 태도도 집어치우자. 언제는 문학이 상품이 아닌 적이 있었던가. 어차피 그 누구도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럴수록 더 과감하게 시장의 현실 속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실의 피안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정작 문제는 꿈의 상품화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치열한 탐색 없이 이루어지는 꿈으로의 손쉬운 망명이다. 문학이여, 이제는 꿈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 말할 차례이다.
임준서
․1969년생 ․200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현재 고려대, 숭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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