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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지난계절작품읽기/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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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현실의 치욕적 글쓰기
―안현미의 「거짓말을 제조하다」
(≪현대시학≫ 2004년 4월)
강경희
(문학평론가)
우우,우,우 그녀의 더듬이가 쥐오줌 번진 책장을 더듬고 있다 불 꺼진 방 전기장판은 얼음장 위에 신문지 같다 그녀의 더듬이는 義手를 닮았다 우우,우,우 비키니 옷장 속에는 아귀 같은 짐승이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잠을 아귀처럼 먹어 치우고 있다 우우,우,우 그녀의 더듬이가 의수 같은 그녀의 더듬이를 부빈다 쥐오줌 번진 책장 속에선 벌레가 된 사내가 바이올린을 연주를 듣고 있다 그녀의 의수 같은 더듬이가 제조하는 현은 세상의 슬픔 따위에는 울지 않는다 우우,우,우 산동네의 겨울은 길다 차라리 神은 봄 같은 건 제조하지 말았어야 한다! 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우,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 네 울음은 불온하다,고 누군가 그녀의 불면 속으로 걸어 들어와 딸깍, 그녀의 더듬이를 자른다 우우,우, 우 봄을 제조한 神은 위대하다, 위대하다! 불 꺼진 방에서 벌레처럼 납작 엎드린 그녀가 거짓말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더듬더듬, 시 같은 거짓말을!
―안현미 「거짓말을 제조하다」
시는 체험의 산물이다. 외계(外界)를 인식한다는 것은 내적 자아의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체험은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체험이 시적으로 발화될 수 있을까? 시가 될 수 있는 특수한 체험이 따로 존재하는가? 물론 이러한 물음은 그 자체로 우문(愚問)이다. 문제는 특수한 체험이 시가 될 수 있다기보다는 그러한 체험을 시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의 인식 태도가 문학작품을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한국시사에 있어 체험의 형상화 작업이 가장 많이 또 구체적으로 실현된 소재를 찾는다면 ‘가난’과 결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 현실의 척박하고 빈곤한 삶을 다루었던 20~30년대의 시작품들, 잇따른 광복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행되었던 전쟁과 기아의 체험은 ‘가난’한 현실이 인간을 얼마나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가난’을 둘러싼 작가들의 문제의식은 70~80년대에도 여전히 지속되었던 주요한 화두였다. 민중시, 노동시라 불리는 일군의 시들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이라는 특정한 계층의 ‘가난’을 조명함으로써 ‘가난’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르러 ‘가난’의 문제는 급속도로 우리 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사회의 제반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가난’을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낡고 진부한 시대착오적 징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가난의 문제가 일정정도 치유되고 해소되었다는 측면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활발하게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박영근, 박철, 박형준, 최종천, 박성우, 이기인 등 일부 시인들에게 있어 가난은 여전히 중요한 시적 모티브로 자리 잡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는 문제, 비루한 삶의 흔적들을 다시금 반추하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편은 여전히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은 과거의 지난했던 삶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기보다는,‘지금-여기’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가난’이 여전히 삶의 진실한 국면을 드러내는 매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가 80년대의 작품들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난의 문제를 보다 내밀하고 특수한 주관적 체험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당면 현실을 거론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요구로부터 그들이 일정정도 미학적 거리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기인된다. 역사와 시대에 압도된 자아에서 개인 스스로의 삶의 내력과 사회적 관계를 내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가난’이란 자칫 진부해 보이는 주제를 새로운 미학의 차원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지난 계절 발표된 안현미의 「거짓말을 제조하다」는 ‘가난’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동일한 잡지에 함께 발표된 「거짓말을 타전하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시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지금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골방의 체험’을 상기시킨다. ‘쥐오줌 번진 책장’, ‘불 꺼진 전기장판’, ‘비키니 옷장’, ‘산동네의 겨울’ 등과 같은 시어들은 가난과 씨름해야 했던 어둡고 우울한 지난날들을 연상시킨다. 홀로 외롭게 골방에 틀어 박혀 타자기를 앞에 두고 시를 쓰고 있는, 아니 시를 두드리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첨단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현미의 시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시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어떠한 인간적 고통을 수반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 있어서 한없이 자아를 위축시키는 원인은 무엇보다 ‘가난’이다. 추운 겨울 ‘불 꺼진 방의 전기장판’에 웅크리고 있는 화자의 모습은 참담하고 절망적이다. 절망을 넘어 공포스럽다. “비키니 옷장 속에는 아귀 같은 짐승이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잠을 아귀처럼 먹어 치우고 있다”라고 표현하듯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의해 그는 고통 받는다. 이렇듯 끔찍하고 저주스러운 현실 속에서 화자는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쓰기’이다.
그는 시를 쓴다고 하지 않고 시를 ‘제조’한다고 말한다.‘제조’란 용어가 함축하듯이 그에게 있어 시란 마치 공장에서 상품을 만드는 것과 동일한 행위로 묘사된다. 기계화된 작동법에 맞춰 기계를 움직이듯 한 편의 시를 제조한다는 것은 비인간화된 자본주의의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벌레로 비유된 몸’, ‘더듬이로 형상화된 손’, ‘사물화된 義手’ 등은 모두 병들고 왜소화된 일그러진 한 인간의 내면을 상징한다. 때문에 시인은 이처럼 병들고 인공적인 것들이 만들어내는 시란 인간의 진실을 담은 언어가 아니라 위선을 담은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단절된 자신만의 폐쇄된 공간에서의 시쓰기란 어쩌면 소통 자체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고통과 자신만의 망상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기 기만이라는 점에서‘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말은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시를 ‘거짓말’이라 야유하고 조롱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화자인 ‘그녀’는 “의수 같은 더듬이가 제조하는 현은 세상의 슬픔 따위에는 울지 않는다”고 말한다. 냉혹한 현실은 슬픔이란 감정조차 사치일 뿐이며, 그것은 어떠한 꿈도 꿈꿀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일관 “우우,우,우” 하며 온몸으로 울고 있다. 울지 않는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 반복된 비명은 가난이란 끔찍한 현실을 견디는 치욕적 시쓰기로서의 울음이다. 때문에 그 울음은 한 편의 ‘시’이자 한 곡의 ‘음악’이 된다. 물론 그러한 연주조차도 끝내는 누군가에 의해 ‘불온’한 것으로 인식되어 거세된다. 하지만 불온한 것에 대한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녀의 울음은 ‘거짓말 같은 시’를 진실한 것으로 바꾸어놓는 데 충분할 것이다.
안현미의 「거짓말을 제조하다」는 가난이라는 현실적 고통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그러한 현실을 예술적 고뇌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을 준다. 현실에 대한 시인의 냉소적 시선은 실은 현실에 대한 지독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아름다운 시의 선율을 창조해내려는 숭고한 인간 정신의 일면을 보여준다.
강경희
․1963년 전남 광주 출생
․200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현재 숭실대, 호서대 강사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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