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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특집 디지털 담론의 문학적 수용의 성과와 문제점/백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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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212회 작성일 05-10-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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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담론의 문학적 수용의 성과와 문제점

백인덕(시인)


우리들의 미래는 낙원이자 지옥이다. 미래는 욕망의 땅이기 때문에 낙원이고 불만의 가정이기 때문에 지옥이다.
―O. 빠스

1. 우로보로스의 뱀-‘디지털 담론’의 난점

디지털, 혹은 사이버라는 용어는 이미 광범위하게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학술서적에서 싸구려 전단지까지, 전쟁에서 점치는 일까지 디지털이라는 용어는 우리 문화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현대의 대기는 산소와 질소, 그리고 광고로 이루어졌다고 어느 광고학자는 무차별적인 광고의 폭력을 표현했지만, 거기에 ‘디지털, 혹은 사이버’를 덧붙이고 싶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문학이라는 자장 위에서 분석하고자 할 때, 문제 설정 자체에서 매우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한 잡지의 기획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한 평론가(강경희, 「‘나’를 찾아가는 존재의 함성」, ≪시와반시≫, 2004년 봄호, pp. 146-147.)는 매우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디지털 상상력에 의해 쓰여진 문학의 내용과 형식, 그 분명한 실체는 아직 불투명하다. 디지털 상상력이 과연 무엇인지 말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시에 나타난 디지털 상상력’의 문제를 점검하는데 있어 그것이 디지털 매체의 적극적 활용에 의해 산출된 모든 문학 작품이라는 단서는 피해 가야 할 것이다. 가령 통신이나 인터넷, 컴퓨터에 의해 쓰여진 문학작품 전반을 모두 디지털 상상력에 기인한 창작행위라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상력의 문제란 도구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체험과 그 체험이 야기한 다양한 형태의 사유 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상상력’이란 명제 속에는 디지털 환경이 파생시킨 변화된 인간의 인식과 관념, 그 속에서 도출된 자아와 세계의 문제가 반영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나와 세계, 이성과 감성,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처럼 대립되고 충돌하는 것들을 포괄하고 융합하려는 종합적 능력의 구현 방식을 의미한다. 또한 디지털화된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의 시인들이 어떠한 자기 동일성의 원리와 가치를 찾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인용이 좀 길었지만, 그 글은 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디지털 상상력’이라는 주제에 집중됨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담론’이 현재진행형이고 그 결과가 종국에는 인간, 또는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인간성’의 변화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또한 이 글의 문제의식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 기왕에 생산되어진 ‘디지털 담론’은 제 입으로 제 꼬리를 억세게 물고 있는 뱀과 닮았다. 사회, 문화적 변화에 직면해 그 변화를 통해 문학적 활력을 제고하려던 시도가 종국에는 새로운 피로감으로 남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간다면,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했지만 종국에는 더 큰 위기 앞에 놓인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필자의 판단을 논증하기 위해서 이 글은 실제 작품 분석은 생략할 것이다.(작품 분석은 각 장르를 맡으신 필자들께서 그 몫을 다하시리라 믿는다.) 그 대신에 ‘디지털 담론’의 발생 원인과 전개 방향, 그리고 목표 내지는 지향점, 남은 문제들의 순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2. 위기와 기회의 파동-‘디지털 담론’의 전개양상

문학이란 근본적으로 당대의 모순에 대한 개인적, 동시대적 기록의 결과물이므로 문학의 시대란 언제나 위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시기마다 닥쳐왔던 위기의 원인과 영향은 달랐고, 응전 방식도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이 가장 위협을 느꼈던 것은 무엇일까? 최소한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디지털’은 아니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디지털이란 정보의 전송 방식을 일컫는다. ‘아톰’을 기반으로 한 아날로그 방식에서 ‘문자’가 상대해야 했던 대상은 ‘비트’에 기반한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바로 ‘영상’이었다. 따라서 우리 문학의 위기의식은 최초에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던 ‘영상이미지’에 의한 위협을 인식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평자들에 의해 확인되는데, 박혜경(박혜경, 「문학, 유령의 삶」, ≪문학과 사회≫, 2000년 가을호, p. 176.)의 경우는 “영화나 텔레비전, 디지털 동영상 등의 출현과 더불어, 시각적 매체의 영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문자는 폭발적으로 증대되는 이미지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각종 전자 매체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영상이미지들은, 특히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거의 자연과 다름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삶의 양상을 폭넓게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문자문화의 위기를 불러오는 이미지들의 위력은 아마도 그것이 문자와는 다른 코드로 우리의 삶 속에 수용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영상 매체가 화면을 통해 제공하는 이미지들은 기본적으로 인식의 차원보다는 감각의 차원에 더 깊숙이 관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위기의식을 드러낸다. 이처럼 박혜경은 문자 매체와 영상 매체의 대립이라는 구도를 통해서 문학의 위기를 읽고 있으며, 디지털이나 뉴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문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상대적으로 변화된 환경 속에서 문학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허혜정(허혜정, 「현대시와 뉴미디어」, ≪문예중앙≫, 1999 겨울호, pp. 135.)의 경우는 “다채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문화의 생산은, 이제 활자문명을 과거로 패주시키며, ‘비트’라는 새로운 전자언어에의 관심을 증대시켰다. 문학의 일차적 매체였던 책은 인쇄문화의 종언을 고하는 은유임과 동시에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은유가 되었으며, 언제든지 정보를 예치하고 인출할 수 있는 ‘데이터 뱅크’의 관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관심을 책이라는 것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다양한 매체들로 돌아가게 한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종국에는 미디어의 형태-이 문학의 생산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 아래 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글들은 우리 문학이 본격적인 ‘디지털 담론’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뒤이어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우리 문학은 두 개의 커다란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그 하나는 문학적 담론이 본격적으로 디지털 매체와 관련되면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사이버 공간’상에서의 문학적 행위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봉관(전봉관, 「디지털 시대의 문학과 그 정체성 문제」, ꡔ사이버문학론ꡕ, 2001년 월인, p. 282.)은, “디지털 매체와 문학을 관련시킬 때, 문학의 디지털화와 소위 ‘사이버문학’의 구분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분을 위해서는 문학의 개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문학과 디지털 매체를 연결시키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고, 그 가능성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걸거나, 맹목적인 거부감을 표시하는 문학인들의 논쟁이 이어졌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배제된 것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예컨대, 우리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기술적․상업적 가능성을 묻기 이전에 고정되지 않은 휘발성 텍스트가 문학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물었어야 했다.”고 밝히면서 ‘사이버 문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저자의 죽음’ 또는 작가의 왜소화 현상이 급속하게 심화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김병익(김병익, ꡔ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ꡕ, 1997 문학과지성, pp, 113-114.)에 따르면, “작가의 이름이 작아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뉴미디어로 일구어지는 새로운 문화산업의 발흥이다. 문화산업이란 출판이나 그림 복제, 레코드의 산업주의 시대적 단계로부터 오디오와 비디오, 또는 컴퓨터와 통신 혹은 그것들이 결합된 멀티미디어 등 전자 문화적 산업들로 옮겨가고 있고, 그래서 이미, 활자 미디어보다는 영상 미디어, 문자 문학보다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상 문화, 컴퓨터에 의한 각종 메커니즘으로 급진하고 있다. 이때 문학은 이중의 힘에 몰린다. 하나는 텔레비전과 비디오, 컴퓨터 등 전파 매체들의 거센 힘이 문학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문학 독자들의 시선을 앗아가며 그 관심과 화제를 자기 쪽으로 바꾸게 할 것이고, 그래서 문자 문학은 점점 밀려나 소외되어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른 하나는, 그 새로운 전자․전파 문화가 문학을 끌어들여 그 것의 한 부분으로 종속시킨다는 점이다. 이때 작가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스토리 구성자’로 축소되며 많은 스탭들 사이에 끼여든 하나의 제작 참여자로 예속되어 버린다. 작가는 ‘창조자’로부터 드디어 ‘창의자’로 내려앉고 독립적인 지위로부터 감독의 지휘를 받는 전문 동료의 하나로 탈바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디지털 담론’의 출현은 단순하게 말한다면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정보화 사회로 이행하면서 그 환경적 변화에 대한 문학인들의 대응 속에서 출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영상 문화의 범람, 저자의 왜소화와 같은 문학의 내재적 위기감이 덧붙여져 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층위로 분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자살인가, 변신인가-‘디지털 담론’의 심화

휴대폰, PDA의 일반적 사용의 정착, 인터넷 사용 인구의 급증(최근의 뉴스는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용 인구가 3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등등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정보화되었다. 산업 논리에 의해 추진된 결과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문학 담론의 전개 과정과 방향을 바꾸는 데도 충분했다. ‘디지털 담론’은 그러한 현상이 문학의 위기 내지는 부담이라는 혐의를 가볍게 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정교화될 수 있었다. 거칠게 범주화하면 두 개의 갈래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당면한 현실, 또는 ‘현상’으로써 그 자체를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맥루한이 전기 테크놀로지의 출현과 구술적 인간으로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전기 미디어들이 가진 순간적인 내파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이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는 그보다 더욱 진전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마치 구어에서 화자와 청자가 상호 관련성과 의존성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완성해 가듯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는 그러한 구어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인쇄매체시대의 경우 작가의 절대적 권위와 주체성이 인정될 수 있었지만 결국 인터넷의 쌍방향성, 실시간성이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고 작가의 주체성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박상천, 「매체의 변화와 문학의 변화」, ꡔ문화변동과 인간 그리고 문화연구ꡕ, 2001, 깊은샘, p. 66.)고 한 논자는 이 새로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간에 이제 인터넷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재조정하고 그로 인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또한 글쓰기의 방식까지 바꾸어놓음으로써 문학의 변화로 이어지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학인들은 이 매체의 변화를 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창작 방법의 변화로 내면화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이 시점에서 ‘디지털 담론’은 핵심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전망이나 그 파급 효과에 대한 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담론’들이 함의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다시 두 종류로 갈래지을 수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맞이하게 될 사회가 장밋빛 미래인가 아니면 정보디스토피아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춘 논의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대개 문․사․철의 전통이 유효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생성된 것들로, 문학이나 예술보다는 미학적 관점에서 그 논의를 시작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현대를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고 이해한다는 것은 사회적 삶의 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이다. 지난 시대를 소비의 사회라고 말할 때 그 사회가 자신에 대해 스스로 갖는 이념, 즉 이데올로기가 상품 소비에 근거한 사회적 관계로 이해되는 것처럼, 이 시대를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정보의 전달과 유통을 통해 성립되는 사회적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비 이데올로기로부터 커뮤니케이션 이데올로기로의 이행을 겪으면서 정보 전달의 상이한 기술 체계들이나 사회 조직상의 변화 등은 분석의 대상이 되었지만, 예술 영역의 경우 전망 변화에 따른 진지한 분석과는 무관한 듯 다루어져 왔다. 실제로 예술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 예를 들면 교육 체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 변형의 강도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박동천, 「미적 경험 조건의 변화」, ≪사회비평≫, 1998 18호, pp. 66-67.)는 어느 논자의 지적은 '디지털 담론‘이 문학이라는 한 분야에서 단독으로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을 개연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고, 이러한 시각은 이후 재현의 문제, 주체의 문제 등과 맞물려 문학 내부의 ’디지털 담론‘의 다양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는 문학을 독자적인 세계로 보기보다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걸맞게 하나의 문화적 내용물, 다시 말해 ‘문화 컨텐츠화’하자는 논의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의 다른 점은 분명하면서도 극명한데, 이를테면 이청준의 ‘서편제’는 소설이라는 근대적 양식에서 출발해서 영화라는 현대적 양식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이제는 다른 미디어로의 모든 문을 열어둔 채 하나의 ‘소스’로 문학을 생산해보자는 발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작품’도 아니고 ‘텍스트’도 아니며, 하나의 ‘소스’라는 것이다. 이때 ‘원천’이란 기존의 문학제도가 정교화했던 기법, 수법, 어떤 특징들의 무화를 함의한다. 더 거칠게 말하면 가공은 불필하니 날고기만 제공하라는 식의 사유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들에 대한 반론은 최근에 출판된 이남호의 ꡔ문자제국쇠망약사ꡕ(생각의 나무, 2004)를 읽어보는 것으로 논거를 확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4. 생명수의 비밀-‘디지털 담론’의 미래

참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 산 PDA의 네비게이션 기능을 통해 자기가 걸어가고 있는 거리와 거리를 확인하면서 끝없이 웃고 즐거워하는 한 제자를 보면서, 삶이, 인생이, 그렇게 방향 지시등처럼 제 때에 깜박여줄 것인지에 대해 우울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지금부터 우리가 경험하게 될 변화는 더욱 격렬하고 맹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존재의 탈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사라지고 우리가 남았던 흔적마저도 지워지고 말 것이다. 한 철학자는 우리 시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정보화 시대는 시뮬레이션의 시대이다. 이 시뮬레이션은 어떤 대상에 대한 모방이 스스로 모델을 합성해내는 자기 창조적 과정이다. 이 시뮬레이션에 의해서 산출되는 시뮬라크르는 날이 갈수록 전통적 언어관의 중심에 있던 의미, 지시 대상, 지시 관계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일어나는 언어학적 전회는 이런 이중적 분리의 사건 속에서, 즉 기호가 음성과 의미 모두로부터 자율화되는 사건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김상환, 「디지털 혁명은 존재론적 혁명이다」, ꡔ철학과 현실ꡕ, 1999 40호, p. 190.)는 것이다.
논의를 정리하기로 하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이른바 ‘커뮤니케이션 사회’라는 것이다. 예술이나 문학은 그 한 축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쨌든 현대사회는 활발하고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전제로 규정될 수 있고, 나날의 우리의 행위는 외적으로 규정되는 것 이상으로 그러한 방향성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에 있어서 ‘디지털 담론’이 갖게 되는 중요성은 오히려 쉽게 규정될 수 있다.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매체가 중요하다’는 논리와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내용이 우선한다’는 두 논리 사이에서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경도된 디지털로의 길을 되돌릴 수 없다. 당장은 아니라도 현재의 모든 문학인은 새로운 방식으로 무장된 순도 높은 감수성의 인류와 만나야 한다. 그것은 내일이거나 내년, 아니 이 밤에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문학인들이 전문인의 자세, 태도에서 스스로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 발걸음이 영광이 될지 오욕이 될지 모름으로 신중하면서도 경쾌한 행보를 보여주는 것이다. ‘디지털 담론’은 현재의 담론이기보다는 미래의 담론이다. 생산되는 작품과 유통의 경로, 나아가 우리의 문학적 고민의 깊이를 반성할 때 더더욱 그렇다. 늘 목청만 앞세우는 내 글쓰기의 자세에 다시 한 번 절망하지만, ‘잊혀지는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며, 미래는 위험이며 동시에 구원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말로 이 글을 맺고 싶다.

백인덕․
1964년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ꡔ한밤의 못질ꡕ ꡔ오래된 藥ꡕ
․한양대, 한양여대 강사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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