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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특집/김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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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읽기의 비평적 성찰로서 디지털 담론
김진량
(문학평론가)
이 글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초래한 문학 영역의 변화와 새로운 가능성을 비평적으로 성찰해왔던 기존 논의를 점검하려는 의도에서 마련되었다. 무엇보다 선행 논자들의 시각이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어떤 결론을 지향하고자 했는지 살필 것이다. 미리 말하자면 우리의 출발은 지나치게 거시적이었으며 이에 따라 10년 이상 비평적 연륜을 축적했음에도 오늘까지 현장의 디지털 담론은 공허하다. 발빠르게 반응했던 사람들은 일찌감치 ‘환멸’했거나 어느새 침묵한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낸다. 이론의 성찰 없이 또는 비평의 모험 없이 제도의 현실을 누리는 것은 10년 경륜의 성과라면 성과이다. 디지털 환경과 글쓰기의 관계를 간단히 살핀 다음 관련 논의들을 검토하기로 한다.
1.
20세기 중반 이후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이루어진 급속한 발전은 쓰기와 읽기 방식에 있어 새로운 문제 설정을 가능케 했다. 이는 특히 문학과 비평 이론의 관점으로 디지털 기술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로써 정보의 디지털 처리 기술과 정보 처리 장치의 네트워크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창작-유통-수용 환경에 조응하는 비평 패러다임으로써 ‘디지털 담론’의 성립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80년대 이후 비평 이론을 도구 삼아 컴퓨터 매개 텍스트를 분석하거나 그 역방향으로 비평 이론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점차 늘어났으며, 국내에서도 90년대 이후 이론과 비평 영역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매체와 글쓰기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매체의 특성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방법이나 표현방식, 사유 형식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이다. 옹(Walter J. Ong)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와 같은 연구는 쓰기를 전혀 알지 못하던 구술문화와 쓰기에 영향을 받은 문자문화를 비교해 이들의 서로 다른 정신구조를 밝혀내려는 시도이다. 이 글의 들머리를 이처럼 매체와 쓰기의 관계에 관해 생각함으로써 시작하는 것도 같은 발상이다.
매체의 차이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문자문화 시대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문자문화 시기의 기록 방식은 크게 세 번의 변화를 겪었다. 먼저 필사 기술의 시기이다. 필사는 문자 발명과 함께 나타났으며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점토판, 석판, 짐승뼈, 양피지, 도자기 따위를 중요한 기록 매체로 사용하였다. 이 시기 쓰기 기술의 가장 중대한 문제는 기록 재료를 생산하고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어 나타난 인쇄 시기 쓰기의 초점은 쉽고 효율적인 기록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글쓰기 공정이 집필과 인쇄로 나뉜 것도 이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기술의 시기에는 컴퓨터가 글쓰기 과정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면서 인쇄(hardcopy) 단계가 생략된다. 물론 아직까지 많은 쓰기는 인쇄를 최종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인터넷과 같은 통신망에서 인쇄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필사->인쇄->디지털로 이어지는 기록 방식의 변화 추이가 기록 매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기록 매체에 따른 기록 방식의 변화는 인간의 사유를 표현하는 방편으로써 글쓰기와 어떤 연관을 가지는 것일까.
흔히 글쓰기를 통해 저자는 그들의 사고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저자는 쓰기가 이루어진 지면과 반영적이고 반성적인 관계를 이루는데, 이 관계를 통해 그의 사고는 실체를 얻게 된다. 여기서 지면은 단순히 글자가 기록된 종이라기보다 저자의 물질적 재현 또는 현존으로 비약한다. 글쓰기를 둘러싼 저자와 독자의 관계는 이 기록 공간을 매개로 결정된다. 가령 인쇄 문화 시기에 저자의 지적 생산물은 인쇄된 책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흔히 말하는 텍스트의 완결성, 내적 통일성 따위는 실로 꿰어 하나로 제본한 출판물의 물리적 속성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이와 같이 고정된 인쇄물은 문학의 정전이 될 수 있었고, 이로써 문화적 통일성도 형성될 수 있었다. 성현의 정전을 읽는 것이 곧 교육이었던 시기에 교육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똑 같이 논어나 맹자를 읽게 하는 것이었다. 정전을 공유함으로써 형성되는 이러한 문화적 통일성이 그 시기의 이상이었던 셈이다.
기록 매체의 변화가 초래한 새로운 쓰기 기술은 결국 글쓰기를 둘러싼 저자와 독자의 관계 재조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필사 시기 복제의 어려움은 기록의 희소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저자와 텍스트 사이에 다른 어떤 사람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이로부터 텍스트는 저자의 물질적 현존 또는 하나의 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인쇄가 발달하면서 이 관계는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원고는 저자의 손을 떠나 인쇄 공정을 거침으로써 ‘원본’의 아우라는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 시기에 이 관계는 다시 변하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면에서 디지털 글쓰기는 인쇄와 쓰기가 통합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문자 문화 시기의 마지막 기록 방식인 디지털 글쓰기는 쓰기와 인쇄의 통합을 일차적 특성으로 지닌다. 이는 필사 시기의 저자와 텍스트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와 달리 무수한 복제가 가능하고 누구도 네트워크 상의 기록물에서 저자의 물질적 현존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디지털 글쓰기의 매체는 비물질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새로이 나타난 글쓰기 공간은 비트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형체도 없고 크기도 없다. 만지거나 볼 수도 없다. 물리적으로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의 기록 재료들에서처럼 글이 기록된 물체의 표면을 볼 수 없다. 그 대신 몇 번의 키보드 조작으로 같은 텍스트를 무수히 생산할 수 있다. 글쓰기는 더 이상 저자의 현존이 되지 않는다. 비물질적인 비트의 세계에서 저자의 물질적 현존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저자뿐 아니라 다른 어떤 권능도 텍스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손쉽게 변형,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씌어진 글은 더 이상 기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비트는 실제를 환기하거나 사물을 명명하지 않고 체험하게 만든다.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단일한 문자 매체로 재현하기 위해 감수했던 규칙과 제약은 비트의 유연함에 힘입어 상당 부분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쓰기보다 읽기의 편의에 초점을 맞춘 글쓰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감춰지는 저자와 달리 부유하는 비트를 의미로 정박시킬 수 있는 것은 읽기이며 읽기를 수행하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2.
디지털 생산 환경에서 문학의 변화 양상을 포착하려는 노력은 90년대 들어 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런 만큼 이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나 개념의 이해, 논제를 보는 시각은 무척 다양하다.
비교적 초기의 논의라 할 김영정(1992), 장경렬(1992), 우한용(1994), 김성곤(1994), 정정호(1994), 장석주(1994)에서는 컴퓨터 또는 멀티미디어의 출현을 주로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과 연관시켜 고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논의가 되기 쉬운 글쓰기에 관한 성찰은 기존 문학 작품을 새로운 각도로 분석하거나 당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PC 통신망의 문학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문학적 논의로 구체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PC 통신망의 소설 작품을 실제로 분석하면서 논의를 전개하는 경우는 없고 컴퓨터와 글쓰기가 결합하는 하나의 포괄적 현상으로 언급할 뿐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들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국내 인문학자들과 작가들의 시의 적절한 진단과 대응(김성곤 1994: 104)”이었다는 자기 평가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미래상’을 추정하는 논의로 흐른다. 이러한 예측에는 다소간의 경계심이 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경렬(1992)에서는 특히 컴퓨터를 사용한 글쓰기가 “인문학의 원동력인 창조력과 상상력 자체의 빈곤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한용(1994)에서도 컴퓨터 시대의 소설 환경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컴퓨터는 단지 OA 기기나 매체의 성격을 벗어나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기호”가 되며 “컴퓨터를 통해 언어기호를 수수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에 조작당한다는 의미를 지닌다(239)”는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성곤(1994)에서는 멀티미디어 시대가 기성세대와 컴퓨터 세대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기성세대에게는 “적극적인 대응-곧 적절한 비판과 수용”, 컴퓨터 세대에게는 “전통과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요구한다.
우찬제(1996), 변정수(1996), 권성우(1997), 복거일(1997), 이용욱(1996a, b) 등에서도 여전히 문학의 미래 전망하기는 계속되지만 단편적 현상 비평에서 나아가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나타난다. 우찬제(1996)에서는 리얼리티, 스타일, 상상력 등 다양한 문학적 화두를 검토하지만 여전히 미시적 텍스트 분석보다 포괄적인 전망으로 흐른다. 권성우(1997)에서는 비평 영역에 한정하긴 했으나 PC 통신의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면서 “탈제도적인 상상력과 기존의 문학적 권력에 대한 거리낌 없는 비판들은 장기적으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문단의 존재와 전통적인 문학의 범주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용욱(1996a, b)는 단편적으로 진행되던 논의를 모아 새로운 문학 연구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려는 의욕을 보인다. 여기서는 특히 ‘사이버문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학의 체계를 세우고자 한다.
김재국(1998)에서는 ‘사이버소설’과 ‘매체적 상상력’이라는 틀을 빌어 매체적 상상력이 한국 현대소설에 어떻게 투영되고 어떤 문학적 효과를 드러내는지 논의한다. 특히 “하이텔”을 중심으로 PC 통신망에서 창작 유통된 소설을 많이 분석함으로써 이들 작품을 학술적 논의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논문에서는 또 사이버소설을 “판소리나 마당극과 같이 자생적으로 생산되어 대중과 공유하는 유동적 장르(9)”라 보고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사이버소설은 디지털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여 ‘소재적 상상력과 의식적 상상력’을 포괄하는 ‘매체적 상상력’을 중시한다. 먼저 창작면에서 주변/본격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 인과성과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다. 다음으로 소통면에서 통신 내부/외부를 모두 수용하는 양방향성, 실시간성, 익명성을 지향한다. 끝으로 상상력면에서 현실/의사현실을 포괄하여 물질뿐만 아니라 비물질까지도 현실로 보아 새로운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작품을 말한다[14].
또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사이버소설의 특징을 창작, 소통, 상상력 면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창작면에서 글쓰기의 비주체성을 지향하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가 정신을 중요시한다.
둘째, 소통면에서는 통신공간과 현실공간의 양방향성을 지향한다.
셋째, 상상력면에서는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탈시공간성을 지향하여 의사현실까지 현실로 보아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하고 있다[15].
이 논의는 사이버소설이라는 개념을 실제 작품 분석의 결과를 해석해 종합해내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와 통신이라는 매체 환경과 ‘사이버’라는 용어의 의미를 근거로 사전에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작품 분석은 미리 규정한 사이버소설의 개념에 맞추어 대상 작품을 분류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 분석의 결과 사이버소설의 특성으로 제시한 것이 앞에서 제시한 개념 규정을 다시 설명한 것처럼 보인다.
이용욱(2000)에서는 이전의 ‘사이버문학론’을 반성하면서 ‘사이버리즘’을 제창한다. 사이버문학이라는 개념을 철회한 이유는 “전형적인 작품이 부재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사이버문학 논의가 이론 위주의 공허한 발언으로 오해받고 있”으며 “사이버문학이라는 용어가 생래적으로 안고 있는 결과론적인 부담으로는 실천적인 성격을 명확하게 문맥화 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7). 아울러 그는 사이버리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현 단계에서 ‘사이버리즘’은 컴퓨터와 가상 공간이라는 새로운 문학 환경을 자궁으로 하여, 우리가 보여주고, 보여줄 수 있는 전위적인 문학 실천 운동이며 동시에 그것을 지지해주는 미학적인 가치 판단이라 정의되어질 수 있다[8].
이러한 사이버리즘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어가는 것이자 “문학이 정보화사회라는 변화한 사회 패러다임 안에서 보여주고 있는 실천적 양상들을 계열화하고 그 의미를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와 정보화사회 사이의 과도기적 상황을 이해하는 준거 틀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8).
이 논문에서 필자는 스스로 자신의 이전 작업을 반성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리즘’이 진행형의 운동적 속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전에 규정된 개념으로 개별적 실제를 검증하는 방식은 사이버문학론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의들은 한마디로 디지털 생산 환경과 문학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해석해줄 거시 담론의 모색 과정이라 요약할 수 있다. 해석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이론화 작업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라면 이러한 노력은 당연한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작품의 분석을 위한 방법론으로써는 미흡한 점이 있다. 특히 매체 환경 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텍스트 층위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의 분석에서 배제되어 있는 점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텍스트의 구조나 의의에 관한 논의는 외국에서 보다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의는 특히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분야에 있어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학자들이 거둔 성과는 현실의 변화를 즉각 연구에 반영하는 기민함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미국 브라운 대학의 영문학 교수 조지 P. 랜도우(George P. Landow)는 일찌감치 하이퍼텍스트를 비평이론의 관점에서 활발히 연구한 사람 중 하나이다. 1992년에 출판한 <하이퍼텍스트 Hypertext>는 문학 이론과 컴퓨터 기술을 하나로 묶은 최초의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을 개정해 1997년에 펴낸 <하이퍼텍스트 2.0 Hypertext 2.0>은 푸코, 데리다, 들뢰즈와 가타리, 그리고 바흐찐의 이론까지 동원해 하이퍼텍스트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일라나 스나이더(Ilana Snyder)도 하이퍼텍스트와 관련해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전자 미로 Hypertext: The electronic labyrinth>(1997)에서 스나이더는 하이퍼텍스트가 온라인 상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이퍼텍스트는 온라인 상태의 컴퓨터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정보 매체(ix)”라고 봄으로써 하이퍼텍스트를 상당히 제한적 범주로 파악한다. 이 책에서 그는 특히 하이퍼텍스트를 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살피고 있다.
비영어권 연구자로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의 에스펜 아제스(Aarseth 1997)는 ‘사이버텍스트’와 ‘에르고딕 문학’이라는 개념으로 디지털 환경의 문학에 관한 독특한 안목을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사이버텍스트 개념은 “매체의 복잡성을 문학적 소통에 빠져서는 안 될 요소로 가정함으로써 텍스트의 기계적 구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텍스트는 또한 “독자 반응 이론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텍스트 내적으로 통합된 특성으로써 소비자 또는 사용자에도 초점”을 맞춘다. 그의 이러한 시각과 태도는 게시판소설에서 텍스트 구조의 서사적 기능과 게시판 텍스트의 수행성을 강조하는 이 책의 논의에 영향을 미쳤다.
하이퍼텍스트를 포함해 디지털 텍스트에 관한 우리나라 문학 연구자들의 논의는 그리 체계 있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편적 논문에서 하이퍼픽션을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교적 앞선 연구로 정형철(1998)에서는 대체로 랜도우가 체계화한 틀 안에서 하이퍼픽션을 비평이론으로 검토하고 마이클 조이스(Michael Joyce)의 <오후, 이야기 Afternoon, a story>를 부분적으로 분석해 보인다. 문학 연구자는 아니지만 정지영(1998)은 하이퍼텍스트의 수사학적 패턴을 꼼꼼한 사례 검토와 통계적 방법으로 유형화하고 있다. 최혜실(1999, 2000)도 하이퍼픽션에 관심을 기울이며 랜도우 등이 제기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최혜실(2000)에서는 샐리 잭슨(Shelley Jackson)의 하이퍼픽션 <패치워크 걸 Patchwork Girl>을 분석해 하이퍼픽션 연구를 실체화했다. 이밖에 류현주(2000)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정교한 이론적 점검보다 단편적 인상과 개념 소개에 기울어진 양상이다.
장노현(2002)는 하이퍼텍스트의 문학적 의미를 서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 글은 국내 하이퍼텍스트 연구 흐름에서 보기 드물게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의 이론적 원형을 우리 고전에서부터 탐색하고 있다. 원효의 고사와 홍명희의 <임꺽정>에 관한 분석은 독창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하이퍼텍스트 이론을 텍스트 분석에 적용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이밖에 몇 편의 영화와 하이퍼텍스트 소설 <디지털 구보 2001>로 분석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디지털 텍스트 분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만 하이퍼텍스트 개념이 철저히 전통적 비평 이론의 틀 안에서 해석되고 적용된다는 점에서 디지털 담론을 구성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최유찬(2002)도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컴퓨터 게임 <삼국지>를 중심으로 텍스트와 서사의 문제를 여러 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디지털 텍스트는 데이터베이스(자료 뭉치, 작동 논리)와 사용자 실행이 결합해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관점은 구성 요소의 통합 구조를 통해 완결된 전체로써 대상을 모방하는 이전 단계의 텍스트 관습과 디지털 텍스트가 변별되는 점을 잘 지적해준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라는 비가시적(논리 형식) 층위와 시공간 좌표 안에서 구현되는 사용자 실행의 층위를 연결해주는 부분을 텍스트 구성 요소에서 배제한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만하다. 다시 말해, 디지털 텍스트의 구성 요소를 파악하는 의도가 궁극적으로 텍스트 읽기를 목표로 한다면, 자료 뭉치와 작동 논리를 가시화하고 있는 어떤 물리적 상태(양상)가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시적 상태는 자료 뭉치와 작동 논리의 결합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는 직접적으로 감촉할 수 없고 인간의 감각으로 확인해볼 수 없기 때문에 분석 대상이 되기 어렵다. 소설에서 플롯 분석이 ‘플롯’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니라 사건 배열 구조나 인물 특성을 서술하고 있는 문자 언어의 연쇄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컴퓨터 게임 분석을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라는 논리 구조를 외현하고 있는 층위를 구체화하는 게 필수적이라 하겠다. 소설이 문자 언어의 선형적 배열을 통해, 영화가 배우의 동작과 음성과 배경 영상을 통해 내적 논리를 외현한다면 디지털 텍스트에도 이런 구실을 하는 요소가 있으며, 디지털 텍스트의 읽기는 바로 이 층위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 게임을 포함해 일련의 디지털 텍스트를 분석하는 단위는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가령 컴퓨터 게임 화면에 표시된 정보는 물론 일종의 가상현실이지만 한 편의 게임 안에서 형태로나 기능으로나 연속성을 지닌 상징적 기호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문자 언어나 시각 이미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게임 화면의 그래픽, 사운드, 인터페이스, 배경 스토리, 매뉴얼, 시간성 따위가 분석 단위가 되어야 한다.
3.
이상을 요약하면 문학과 디지털 기술의 접합을 바라보는 우리 평자들의 시각은 주로 거시적인 메타 담론을 형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겠다. 또 미시적인 텍스트 구조로 눈길을 돌릴 때도 기본적인 개념 소개나 얼개의 개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형철(1998)이나 최혜실(2000)의 하이퍼픽션 연구에서 보듯 분석 대상을 국내에서 구하지 못하고 영어로 된 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앞에서 잠깐 언급한 <디지털 구보 2001>이 “국내 최초의 하이퍼픽션”을 표방하며 등장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세 명의 등장 인물을 각각 서술자로 내세워 세 개의 서로 다르면서 겹치는 줄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각각의 줄거리는 시간 단위로 분절되어 있고 그 안에 사진, 인용어구의 원전 등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연결점을 지니고 있다. 세 개의 선택 가능한 줄거리, 그 줄거리를 수십 개의 렉시아로 분절하는 텍스트 구조, 렉시아 내부의 링크와 연결점 등이 <디지털 구보 2001>을 ‘하이퍼픽션’으로 만드는 표지인 셈이다.
그러나 장노현(2002) 외에 이 단일경로형 하이퍼텍스트를 깊이 분석한 연구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디지털 구보 2001>이 분석에 값할 만한 작품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어쩌면 하이퍼텍스트든 컴퓨터 게임이든 인터넷 소설이든 이들 모두를 디지털 담론의 범주로 포괄하려는 시도가 우리 비평가나 연구자들에게 부족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우리의 디지털 담론이 여전히 공허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들인 것은 분명하다.
디지털 매체를 글쓰기 공간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깊이 연구한 볼터(Bolter 1991)에서 확인하듯이 인쇄물은 지금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매체로, 또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계속 유지될 것이다. 나는 소설의 운명 또한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본다. 소설은 지금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비싸며 전문적인 문학 양식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감각적인 쾌락이나 시간 죽이기 용의 이야기로는 비디오나 영화, 컴퓨터 게임을 따라갈 수 있는 양식이 없다. 하지만 유려한 문장이 환기하는 상상력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므로, 또한 인쇄 매체가 가진 물리적, 심미적 속성 자체에 기인해 현재와 같은 소설책은 하나의 고급 문학 양식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렇다면 문학 비평가나 연구자들이 지금 고심해야 할 문제는 분명하다. 지레 문학의 위기, 소설의 죽음 운운하는 것은 그리 생산적이지 못한 대응 담론만 양산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지금의 소설, 지금의 문학에 미적, 존재론적 우위를 부여하며 새로운 양식의 출현을 백안시할 필요도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작가들은 열심히 자신이 해왔던 일을 계속할 것이며 독자들은 또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즐기면 될 일이다. 다만 새로이 나타난 이야기 양식에 어떤 지위를 부여할 것이냐는 문제에 관해 유연한 태도로 뜻을 모으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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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량․≪문학과창작≫ 평론, <한국기독공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저서 '인터넷, 게시판 그리고 판타지소설'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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