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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신작시/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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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50회 작성일 05-05-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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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지 살자고 하는 짓



밭고랑에서 삐끗해 금간 다리뼈 겨우 붙으니
늙은 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마당가로 가
참나무 아래서 도토리 주워 껍질 까다가
막내아들이 쉬라고 하면 내뱉었다
놔둬라이, 뼈에 숭숭 드나드는 바람 달래는 거여
장가 못 든 쉰줄 막내아들이
홀로 된 여든줄 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막내아들이 검정콩 베어다 마당 한복판에 쌓아놓으면
늙은 어머니는 참나무 가지로 타닥타닥 두드려 털고
막내아들이 멀리 튄 콩 주워오면 소리 질렀다
놔둬라이, 한구석에 묻혀서 명년까지 있고 싶은 거여
막내아들이 갈아입힌 속옷에 새물내 나서
늙은 어머니는 코 킁킁거리며 새물새물 웃다가
막내아들이 겉옷에 붙은 풀씨 뜯어내면 중얼거렸다
놔둬라이, 혼자 못 가는 곳에 같이 가자는 거 아니겠냐
늙은 어머니가 해거름에 집안으로 들 적에
이웃집 수캐가 어슬렁어슬렁 대문 먼저 넘어서
암캐에게 올라타려고 낑낑거리는 꼴이 민망해서
막내아들이 콩 줄기 거머쥐고 후려치면 말렸다
놔둬라이, 지들 딴엔 찬 밤 길어지니 옆구리 시린 게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아스팔트 천국



그리워하는 마음만으로는 당신이 나를 만나러 올 수 없다
산을 넘어서 올 수 있었던 때는 산이 당신을 넘겨주었고
들을 건너서 올 수 있었던 때는 들이 당신을 건네주었지만
이제 산그늘 내리고 벌레소리 잦아드는 곳에 나는 없다
당신을 기다리면서 눈 감고 귀 열고 있지도 않다

아무리 그리워하며 당신이 발을 동동 구른다고 해도
나도 안타까운 마음만으로는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없다
흙길을 걸어서 갈 수 있었던 때는 흙길이 나를 실어주었고
물길을 타고 갈 수 있었던 때는 물길이 나를 태워주었지만
이제 흙먼지 일고 물소리 거세어지는 곳에 당신은 없다
나를 기다리면서 발바닥 털고 손바닥 씻고 있지도 않다

당신과 나는 무수한 신호등에 길들여져
서라고 하면 서고 가라고 하면 가면서
의식주 편한 한곳으로 이끌려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 우리가 없다
당신은 그쪽 건너편에 서 있고 나는 이쪽 건너편에 서 있다

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ꡔ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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