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4호 신작시/전기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79회 작성일 05-05-30 11:59

본문

전기철

선이의 교과서



중학교 일학년 선이의 국어 교과서에는
표지가 없다.
속표지도 없고
<효율적인 사용 방법>이 붙어 있는 안내 쪽도 없고
목차 한 쪽만이 겨우 반쯤 남아
또 다른 목차와 함께 있다.
외상값 오만오천 원, 고향 차표 둘 삼만 원, 수정이 학원비 오만 원, 신당동 보건소에서 <아이나> 한 병, 수정이 엄마 제삿날 구월 이십오일
연필로 쭉 그은 합계를 보니
얼룩진 라면국물 속에서 겨우
춤추듯 그려지는 그림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선이의 국어 교과서에는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과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사이에서
목차로 위태롭게 남아 있다.




다큐멘터리․2
―123번 버스기사 종수의 행로



광화문에서 체크무늬 짐 보따리가 탄다, 서울역에서 쌀가마니가 타고, 용산에서 중고 컴퓨터가 탄다, 영등포에서는 노파의 사투리만 태우고 지나친다, 갈보의 눈빛도 탔던가, 문래동에서 고물 쇳덩이가 타더니 무거운 모퉁이를 함께 실었다, 구로에서 다리를 건너며 안양천 철새들이 급정거를 외치지만 매연만 부린 채 아파트 사이로 달아난다, 버스는 번쩍거리는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기다려 보지만 아무도 타지 않는다, 칼산에서 오갈 데 없는 바람을 태운다, 그리고 고척동 깊은 우울 속으로 잠입한다.
버스에서 내릴 줄 모르는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버스기사 종수는 핸들을 꺾기만 할 뿐이다, 버스는 못처럼 한없이 박힌다, 인천 바다로 빠질 듯이


전기철
․1988년≪심상≫으로 등단
․시집 ꡔ나비의 침묵ꡕ 등


추천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