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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염소



노리고 있던 利子가 다 털어 간 빈집처럼
벚꽃이 죄다 떨어진 길을
어미 염소가 타달거리며 가고 있다
그 뒤에는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총총 따른다

우스꽝스럽게 날리는 몇 가닥의 턱수염
꺼무칙칙한 겉옷

가끔씩 내뱉는 울음소리로 인해 더욱 처량하다

어디를 보더라도 새끼를 데리고 갈 힘이 어미 염소에게는 없다
그리하여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도둑질 한 아들을 구치소에서 면회하는 아버지 같은 얼굴빛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

어미 염소는 타달거리며 다시 길을 간다
그림자가 그 어떤 길도 마다하지 않고 주인을 따르듯
바퀴가 온몸으로 주인을 따르듯
옛날의 어미가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어미 염소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새끼 두 마리가
아니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뒤따르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새끼들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이자를 위하여 일기를 쓰지 못한다



이자를 위하여 일기를 쓰자고 다짐한다
이자를 위하여 선인장 가시를 들여다본다
이자를 위하여 눈을 감지 않고 하루살이 떼를 통과한다
이자를 위하여 시외버스 구석에 처박혀 출근한다
이자를 위하여 쓰레기장에 버려진 의자에 앉아본다
이자를 위하여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픽 쓰러진다
이자를 위하여 뷔페에 가 폭식한다
이자를 위하여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안전선을 툭툭 찬다
이자를 위하여 친구의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이자를 위하여 나무들의 이자를 생각한다
이자를 위하여 자동차의 이자 속도를 계산해본다
이자를 위하여 민방위 훈련에 늦지 않는다
이자를 위하여 사이비종교를 이해한다
이자를 위하여 콧수염을 깎으며 이자 깎기를 시도해본다
이자를 위하여 총선 후보자들의 엉터리 공약에 욕한다
이자를 위하여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이자를 위하여 노래방에서 신곡을 배운다
이자를 위하여 상갓집에서 고스톱을 친다
이자를 위하여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지 않는다
이자를 위하여 일기를 쓰지 못한다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ꡔ물고기에게 배우다ꡕ 등  ․저서 ꡔ한국 민중시 문학사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