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4호 신작시/박형준
페이지 정보

본문
박형준
꽃바구니
버스가 江岸에 멈춰 섰다
차창에 갈대밭
새들의 무게가 갈대꽃 끝에 잠시 휘청인다
강의 속눈썹
마른 갈대밭
화폭 속을 걸어
여인이 꽃바구니 들고
버스에 올라탄다
한아름 꺾은 갈대꽃에서
불탄 냄새가 난다
검게 탄 여인의 이마
황혼 속에 퍼지는 꽃살 무늬 주름
피부 속에서 날갯짓하는
새들의 몸짓
새들의 냄새
여인과 스치듯
나는 江岸에 내려
갈대밭 사이로 걸어들어간다
수면에 새들이 남긴 발자국
덧없는 여인의 꽃바구니
속이 비어야 울 수 있나
갈대들이
저마다 주름 진 피부 속에
울음이 있다는 듯 운다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江岸에 멈춰선다
창밖에 목련꽃이 흔들린다
봄밤엔 몸을 뒤척인다
문득 팔을 뻗는데
이상한 물체가 손에 닿는다
테두리에 빛이 환하다
사랑해달라는 몸짓이다
목 뒷덜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있는 힘을 다해 떼어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내팽개친다
쾅 소리가 나도록
현관문을 닫는데
문 사이에 신발이 껴 있다
순간 신발을 빼내기 위해
문 밑에 시선을 돌리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봄밤엔 몸을 뒤척인다
환한 테두리가
사랑해 달라는 몸짓을 한다
현관 밑에 낀 신발을 빼는 사이
다시 안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왔을까, 현관 밖에서
쪼그리고 울고 있을까
봄밤에 뒤척이는데
꿈속은 월식이다
사랑은 은유가 아니라고,
단지 그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았을 뿐이라고,
짐짓 잠결에 목련꽃을 본다
서늘한 목 뒷덜미를 쓰다듬어본다
박형준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ꡔ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ꡕ 등
산문집 ꡔ저녁의 무늬ꡕ
- 이전글14호 신작시/배경숙 05.05.30
- 다음글14호 신작시/맹문재 05.05.3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