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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신작시/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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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19회 작성일 05-05-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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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아

비디오를 보는 남자




사내는 셔터를 올린 후 몸을 밀어넣는다
수거함에 들어있는 시간들이 빠르게 되감긴다
사내는 좀처럼 틀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리모컨 모서리를 만지작거리거나
화면 속에 자신을 켜두곤 한다
일생을 꼬박 채울 일과며 잔업이다

쇼윈도는 오후가 상영 중인 화면,
사내의 자전거가 쓰러져 허공에 바퀴가 들린다
바람이 배역을 맡은 모양이다
모든 테이프는 여전히 신프로를 예고하고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 예고편은
더러는 기대를 저버릴 것이다
사내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맥 풀린 동공 두 개처럼 감겨진 테이프들이
차곡차곡 책상에 쌓여간다
사람들은 재생단추 하나로 자신을
화면 속에 가둬내기 위해 잠시
이곳을 들렀다가 발길을 서두를 것이다
창밖 헛도는 자전거 바퀴가 멈추지 않는다
검은 테이프 같은 그림자를 끌고
사내가 천천히 틀 밖으로 빠져나온다



일기예보



돌아보면 두고 온 것들만 그립다
빗나간 일기예보 같은 낭패와
좀더 두툼하면 좋을 외투라든가,
적당히 가벼울 수 있는 배낭 속엔
몇 권의 시집이 나를 버티고 있다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푸념이 되풀이될 때마다
얼마나 지긋지긋했던가 매번,
변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내게 길이 되어줄 수 있나요
낯선 이가 길을 물어올 때면
불현듯 난감해지곤 하는데,
이 길을 믿지 말아요
누군가에게 길이 된다는 것은
그 길 끝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
뒤축처럼 구겨 신고 돌아오는 일이 많아졌다
걸음을 멈추자 구름이 빠르게
나를 추월하며 지나간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매거나
주머니를 더듬을 때면 등 뒤에서
바람이 낙엽을 밀어보낸다
후두둑 빗나간 오후
나무에 몸 기대어 문득,
당신의 행보를 헤아려보는 것은
여태 나를 믿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 때문이다

안시아
․1974년 서울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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