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4호 특집/함종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71회 작성일 05-05-30 12:19

본문

생명을 부르는 힘
―영화 <301․302>와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하여―

함종호
(영화평론가)


1. 모방은 창조다
그리스 신화 한편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자.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마음에 그리는 여인의 형상을 훌륭한 솜씨로 조각한다. 그의 조각상은 실제의 어느 여인보다도 더 아름다웠으며, 그는 그러한 자신의 작품에 감탄한 나머지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다. 너무나도 자신의 조각상을 사랑한 나머지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의 조각상과 닮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해달라고 기도한다. 그의 정성에 감탄한 나머지 아프로디테는 그의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어 그들을 맺어준다. 이상과 같은 피그말리온 신화는 바로 예술에 있어서의 모방과 창조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는 실제의 여인을 본 떠 그의 조각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예술의 모방성을, 그의 여인상이 생명을 얻음으로써 다시 태어났다는 점에서 창조성을 드러낸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창조란 모방을 토대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그말리온 신화가 상징하는 예술에 있어서의 모방과 창조의 관계는 영화의 발생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영화라는 장르는 가장 최근에 생겨난 예술 장르이다. 바로 이 점으로 말미암아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의 형식을 많은 부분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가 종합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이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학과 영화의 상관관계는 어떠한가. 영화는 문학적 서술 전통의 영향을 상당 부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아힘 패히는 “문학사를 영화의 전사(前史)”________________
요아힘 패히, 『영화와 문학에 대하여』, 임정택 역, 민음사, 1997, 70쪽.
라고까지 지칭한 바 있다. 초창기 영화의 제도화에 기여한 그리피스의 몽타주 기법이 디킨스의 소설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 다시 말해 몽타주와 같은 영화의 연속적인 서술 구문 법칙이 이미 문학에서 구현되고 있었던 구문 법칙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가 ‘문학사를 영화의 전사’라고 지칭한 것에 우리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창기 영화가 서술 문제와 관련된 기법을 문학 장르에서 차용했다면, 오늘날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의 경우는 기법적 측면보다는 이야기 주제와 내용을 원작에 기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를 단순히 원작에 대한 서사적 모방으로 볼 수만은 없다. 원작이 지닌 매체적 특성과 영화가 지닌 매체적 특성의 차이만큼이나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바로 앞에서 살펴본 예술의 모방과 창조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피그말리온 신화를 이해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그 영화가 예술성과 작품성을 겸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원작에 충실한가 하는 모방성의 차원보다는 얼마나 타당하게 원작을 재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창조성의 차원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여인상이 실제의 여성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조각상으로서가 아니라 생명을 부여받음으로써 한 인간으로 거듭날 때, 즉 창조되었을 때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영화가 원작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자기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가 하는 실례를 우리는 영화 <301․302>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전자는 시를, 후자는 소설을 각각 각색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영화 <301․302>처럼 시를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이다. 이는 시가 서사 양식을 취하기보다는 서정 양식을 취하기 때문에 영화의 서사로 재구성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시가 영화화된 경우를 서사적 상상의 차원에 주목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는 달리 소설 원작을 영화화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소설의 서사 구조를 차용하는 것이 영화 서사 전개에도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원작을 영화화하는 경우, 그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혹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원작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일수록 이를 영화화한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더욱 흔하지 않다. 이는 아마도 원작이 지닌 작품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원작을 영화가 충실히 반영(혹은 모방)하려고 할 때, 그래서 영화만의 자기 세계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할 때 빈번히 빚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소설 원작을 어떻게 영화에서 창조적으로 변용하고 재해석하여 영화만의 자기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여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2. 서사적 상상력의 개입-시의 영화화
일반적으로 시와 영화의 상호 관계는 몽타주와 같은 병치를 통한 화면 구성 기법이나 이미지의 사용 등에서 찾을 수 있다.________________
로버트 리처드슨, 『영화와 문학』, 이형식 역, 동문선, 2000, 134-150쪽.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 장르는 기본적으로 서사성보다는 서정성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요구되는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적인 측면과 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요구되는 내용적 측면, 즉 서사성 때문에 시를 각색하여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를 각색하여 제작된 영화를 찾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만약 한편의 시를 각색하여 한편의 영화를 제작한다면 그 나름의 서사적 상상이 요구됨은 당연하다. 이때 반영된 서사적 상상은 물론 시가 모티프를 제공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시라는 매체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특성상 영화에서 요구되는 서사적 상상은 근본적으로 시에 대한 창조적 변용 및 재해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영화 <301․302>(박철수 감독, 1995년)와 이 영화의 원작으로 보이는 장정일의 시 「요리사와 단식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영화 <301․302>가 표면적으로 원작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________________
영화 <301․302>의 각본은 이서군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301․302>으로 이서군은 1995년 제16회 청룡영화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의 상호 관련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영화 <301․302>가 「요리사와 단식가」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들 작품의 구조가 어떤 점에서 유사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소 긴 시이지만 「요리사와 단식가」의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a)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b)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 새 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c)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d)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 준다.

2.
e)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f)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g)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 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h)외로움에 대하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 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i)어느 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 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j)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________________
장정일, 「요리사와 단식가」,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민음사, 1988, 23-24쪽. 인용된 시에 표기된 부호와 밑줄은 인용자의 것임.


위의 시가 영화 <301․302>의 서사 구조와 얼마나 유사한가를 살펴보기 위해 <301․301>의 서사 구조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영화 제목 ‘301’과 ‘302’는 각기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 호수를 가리킨다.
(2)어느 날 ‘302’호의 여자가 실종되어 형사가 ‘301’호를 찾아와 ‘302’의 여자에 관해 묻는다.
(3)‘301’호에는 온갖 요리 만들기에 집착하고 있는 이혼녀(방은진 扮)가, ‘302’호에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음식에 사랑, 섹스 등을 결부시켜 음식이 사랑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독신녀(황신혜 扮)가 살고 있다.
(4)과거 ‘301’호의 여자는 음식에 자신의 사랑을 결부시키고, 남편을 위해 새로운 재료로 만든 음식을 해 바친다. 이것은 일종의 집착이 되고, 남편은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여자는 대신 음식을 탐하는 모습을 띠고 급기야 그의 체중은 “48kg에서 70kg”으로 불어난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애완견을 죽여 “스플레” 요리를 만든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301’호로 이사 온다.
(5)‘301’호의 여자는 여성지에 성과 다이어트를 주제로 글을 기고하고 있지만, 순수 문예지에서는 개인적 체험을 나열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그의 글이 거부된다. 과거 ‘302’호의 여자는 정육점을 하는 의붓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다. 더욱이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이웃집 아이가 자신의 가게 대형냉장고에서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그 아이의 시체를 난도질해 잘라낸다(이것은 의붓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것으로 처리됨). 이러한 기억들이 그녀로 하여금 음식을 거부하게 만든 주된 요인이다.
(6)‘301’호의 여자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계속해서 ‘302’호의 여자에게 갖다 주지만 그때마다 ‘302’호의 여자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냉장고에 넣어 방치해둔다.
(7)이 사실을 알게 된 ‘301’호의 여자는 이를 계기로 ‘302’호의 여자 내면에 존재하는 외로움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301’호의 여자는 ‘302’호의 여자를 위해 새로운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302’호의 여자가 느끼는 외로움을 치유하려 하지만 ‘302’호의 여자는 어떠한 음식도 먹지 못함으로써 그녀의 외로움이 치유될 수 없음에 절망한다. ‘302’호 여자의 외로움을 치유하려고 하는 ‘301’호의 여자는 사실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8)마침내 ‘302’호의 여자는 자신의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301’호 여자의 요리 재료가 될 것을 제안하고, 새로운 재료를 갈망하던 ‘301’호의 여자는 이를 받아들여 그녀를 죽인다.

「요리사와 단식가」와 <301․302>에 등장하는 인물은 각각 a)와 e), (1)과 (3)에서처럼 ‘301호의 여자는 요리사이고 302호의 여자는 단식가’로 동일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 것도 d), f)와 (6)에서처럼 ‘301호의 여자’가 갖다 주는 음식이 계기가 되고 있는 것도 서로 같다. 특히 ‘302호의 여자’는 h)와 (5)의 밑줄 부분의 내용에서처럼 글쓰기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 또한 동일하게 그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작품의 주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원적 문제, 즉 ‘인간의 외로움이 어떻게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는 b), c), g)와 7) 등에서 반복,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i)와 (8)에서처럼, 외로움에 지친 ‘302호 여자’가 ‘301호 여자’의 새로운 요리 재료가 된다는 점도 서로 같다. 특히 j)의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라는 진술은 <301․302>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대로 자막 처리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요리사와 단식가」와 <301․302>는 서로 동일한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고 동일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요리사와 단식가」가 <301․302>의 원작임을 알 수 있다.________________
여기서 제기되는 한 가지 의문은 영화 <301․302>가 왜 원작을 표시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몇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첫째,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했을 가능성, 둘째, 사전에 원작자의 양해와 동의를 얻고 원작 표시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 셋째, 「요리사와 단식가」가 이 영화의 원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 넷째, 애초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몇 가지 가정들은 영화 <301․302>가 왜 원작을 표시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우리를 여전히 납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원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표시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예술성의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01․302>에 개입된 서사적 상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301․302>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서사적 상상이 개입되고 있는데, 이 중 하나는 추리기법의 도입에서 찾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인간의 본원적 문제, 즉 극단적 외로움에 관한 원인 제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각각 (2)와 (4), (5)에서 드러난다. <301․302>에 도입된 추리기법은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301․302>의 중심 이야기는 어느 날 형사가 ‘301호 여자’를 찾아와 ‘302호 여자’의 실종을 알리는 데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관객은 왜 ‘302호 여자’가 실종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자연 갖게 될 뿐만 아니라 형사의 시선을 따라 ‘301호 여자’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기왕에 도입된 추리기법은 이 영화의 서사 전개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인데, 이후 영화의 서사 전개는 형사의 시선이 아니라, ‘301호 여자’와 ‘302호 여자’의 시선이 중심이 되어 전개됨으로써 추리기법 도입의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 전개 방식은 서사 전개의 통일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극적 긴장감마저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관객은 잠시 이 영화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하는 의문을 순간 갖게 되고, 이 영화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에 혼란을 경험한다.
한편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인간의 본원적 문제, 즉 극단적 외로움에 대한 원인으로 이 영화는 각각 ‘성폭력’(302호 여자의 경우)과 ‘이혼 문제’(301호 여자의 경우)를 연관시키고 있다. 물론 「요리사와 단식가」에서는 이와 관련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요리사와 단식가」에서는 현실적 상황 혹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생겨난 인간의 외로움의 문제를 다루려 했다기보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차원에서 제기될 수 있는 외로움의 문제를 다루려 했다고 보여진다. 「요리사와 단식가」가 인간의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외로움의 문제를, <301․302>가 구체적인 현실적 상황(성폭력, 이혼 문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로움의 문제를 각각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들 매체가 지닌 시와 영화라는 특성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시가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를 다루고, 영화는 현실을 떠나 만들어질 수 없다고 논의되는 것은 바로 이들 매체가 지닌 특성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301․302>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성폭력과 이혼 문제는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커다란 사회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원작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외로움의 문제를 이와 같은 사회 문제와 결부시킴으로써 영화는 서사 전개의 정당성(혹은 필연성)을 획득하고 있다. ‘302호 여자’가 성폭력을 당함으로써 겪었을 고통을 감안한다면 ‘302호 여자’가 ‘301호 여자’의 요리 재료가 되어 준다는 상황 설정은 개연성을 얻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301․302>는 서사 전개 방식(추리기법과 같은)의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요리사와 단식가」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를 구체적인 현실 상황에 접목시켜 더 발전시킨 서사를 창조해냈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3. 각색은 창조다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는 경우에 있어서 문자화된 세계를 영상화된 세계로 어떻게 전환하는가 하는 문제가 흔히 관건이 된다. 이는 서사적 세계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교적 친밀한 관계에 놓여 있는 소설을 영화화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주관적 시점에 의해 관념적 세계를 그리고 있는 소설 작품일수록 이를 구체적인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박상연의 소설 ꡔDMZꡕ(민음사, 1997)를 영화화한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 2000)가 바로 이런 경우일 터이다. ꡔDMZꡕ는 주관적 시점을 위주로 지극히 관념적인 문제, 즉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갈등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개인의 불행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어서 이를 구체적인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그 나름의 수고와 노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경비구역 JSA>는 원작이 지닌 이러한 문제를 중심인물 설정과 주제를 달리하여 효과적으로 영상화한 경우이다.
먼저 ꡔDMZꡕ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지그 베르사미-중립국 감독위 소속 군인. 한국 이름 이강민. 소설 속 주인공이자 화자. 6.25 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제3국으로 망명했던 아버지와 잦은 마찰을 빚으며 성장. 남한군 병사가 북한군 병사를 사살한 사건의 조사 책임자.
2)김수혁 상병-남한군 소속 병사. 고등학교 재학 시절 서울시 사격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가 활약할 정도로 사격술이 뛰어남. 수색정찰 도중 지뢰를 밟았을 때 북한군 병사 오경필과 정우진의 도움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이들과 친분을 나눔. 이후 북한군 병사 정우진을 살해한 혐의로 중립국 감독위에서 조사받던 중 자살함.
3)남성식 일병-대학 재학 중 운동권에서 활동한 인물. 김수혁 상병과 함께 북한군 초소로 넘어가 오경필, 정우진 등과 친분을 나눔. 지그 베르사미의 취조를 받던 중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실을 자백함.
4)오경필 상등병-북한군 소속 병사. 고도로 훈련된 특수 부대원 출신. 그림을 매우 잘 그리고, 칼을 잘 다룸.
5)정우진 전사-북한군 소속 병사. 김수혁, 남성식 등과 친분을 나누다 김수혁의 총에 살해됨.

이상과 같은 ꡔDMZꡕ의 중심 인물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상당 부분 달리 묘사된다. 우선 이름 및 성별이 달라지는 경우이다. ‘지그 베르사미’(남자)가 ‘소피 장’(이영애 扮, 여자)으로, 김수혁이 이수혁(이병헌 扮)으로 설정된 경우가 그 예이다. 특히 ‘지그 베르사미’가 ‘소피 장’으로 달리 설정됨으로써 이들이 각각 맡고 있는 극중 역할 또한 달라지고 있다. 원작에서 ‘지그 베르사미’는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의 갈등, 그리고 이를 통해 나타나는 개인의 불행을 주관적인 시점으로, 때로는 제3자의 시점(객관적 시점)으로 포착하여 제시하는 주인공이자 화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6․25 전쟁에 인민군으로 참전했던 아버지와의 갈등을 묘사하는 데에는 그의 주관적 시점이, 남북한 병사 사이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 지닌 진실의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는 데에는 제3자의 시점이 각각 반영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이데올로기 갈등과 관련된 우리 민족의 불행한 과거사(불행했던 그의 아버지 묘사에서)와 현대사(남북한 병사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에서)를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지그 베르사미’가 ‘소피 장’으로 달리 설정됨으로써, 이데올로기 갈등이 빚은 우리 민족의 불행한 과거사는 축소 혹은 생략되고 있다. 이는 영화가 남북한 병사 사이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 중심이 되는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에 초점을 맞춰 서사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소피 장’은 남북한 병사 사이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 어떤 진실을 가지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서사 전개의 매개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여겨진다.________________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 남자인 ‘지그 베르사미’를 여자인 ‘소피 장’으로 달리 설정한 것은 흥행을 위해서는 예쁜 여자 배우를 등장시켜야 한다는 오랜 영화 관습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그 베르사미가 중립 감독위 소속 군인이며, 한국인과 스위스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라는 점 때문에, 영화에서는 다분히 이국적인 용모를 지닌 여배우가 필요했을 것인데, 바로 이영애는 이런 외형적 조건을 갖춘 배우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녀는 외형적 조건을 만족시키는 인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사 전개의 매개 역할을 하는 인물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물의 특성이나 성격 묘사가 달리 표현된 경우도 있다.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 남성식(김태우 扮)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이와 같은 그에 대한 성격 묘사는 그의 자살(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 그는 정우진이 살해된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추궁받자 자살한다)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원작에서는 상대적으로 오경필과 정우진에 대한 성격 묘사가 미흡하게 처리되고 있는 것에 비해 영화에서는 오경필(송강호 扮)은 강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인물로, 정우진(신하균 扮)은 그림을 잘 그리며 순진한 인물로 뚜렷이 묘사되고 있다.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 정우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인물로 묘사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정적인 인물로 생각되기 마련인데, 원작과 영화 모두에서 특수 부대원 출신 군인으로 묘사되는 오경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왠지 어색하게 비춰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를 염두에 둔 탓인지 영화에서는 오경필 대신 정우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인물로 묘사됨으로써 그가 정적인 인물임을 은연 중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후 그가 가족애를 지닌 인물로 비춰지거나 여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인물로 그려지는 것과도 자연스럽게 연관된다. 정우진의 예를 보더라도 원작보다는 영화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더욱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살펴본 바 있듯이, 영화는 이데올로기 갈등이 빚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인 이수혁, 남성식, 오경필, 정우진 등에 대한 인물 묘사가 영화 서사 전개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수혁, 남성식, 오경필, 정우진 등이 함께 친분을 나누는 행위 묘사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뚜렷한 성격 묘사는 소설이 지닌 문자적 세계보다는 영화의 영상 세계가 지닌 강점인 셈인데, 이를 <공동경비구역 JSA>가 효과적으로 잘 살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ꡔDMZꡕ의 중심인물은 지그 베르사미이다. ꡔDMZꡕ는 그의 가족사와 그가 조사를 맡게 된 북한군 살해사건을 통해 남․북한 이데올로기 갈등이 어떻게 개인을 불행하게 하는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갈등 및 이를 통해 빚어진 개인의 불행과 관련된 그의 가족사는 아버지 이연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6․25 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후 포로 수용소에서 반공 포로 습격과 살해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어느 날 반공 포로를 습격하던 도중 그는 자신의 친동생을 죽이게 된다. 동생은 그가 습격하던 반공 포로 대열에 끼어 있었는데, “미군이다.” 하는 정찰조의 외침에 그는 조건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러 동생을 죽이게 된 것이다. 그의 조건 반사적인 행위는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빚어낸 산물인 것이다. 지그 베르사미가 조사를 맡은 사건, 즉 김수혁이 정우진을 살해한 사건 또한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빚어낸 조건 반사적인 행위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것이었다. 그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김수혁, 남성식은 마지막을 다짐하며 북한군 초소로 넘어가 오경필, 정우진을 만난다. 이 때 멀리서 한 발의 총소리가 들린다. 이에 모두는 조건 반사적으로 옆구리에 착용한 총에 손이 간다. 남달리 총을 빨리 뽑는 김수혁이 다른 이보다 먼저 총을 뽑아들고 오경필, 정우진 등을 겨눈다. 김수혁을 진정시키려는 오경필은 “단순히 반사적으로 옆구리 손이 간 것뿐이라는 거 모르가서……?”________________
박상연, ꡔDMZꡕ, 민음사, 1997, 245쪽.
라고 말하며 담배를 권한다. 오경필은 김수혁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려고 지퍼 라이터를 주머니에서 꺼내려는데, 이를 칼로 오인한 김수혁은 조건 반사적으로 총을 쏘게 된 것이다. 지그 베르사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아버지와 김수혁은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갈등 상황에 길들여진 나머지 조건 반사적으로 행동하게 되어 불행을 경험하는 인물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을 불행하게 만든 이데올로기는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실험에서 보이듯 조작적 조건 형성의 인자였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영화에서 소피 장(원작에서의 지그 베르사미)의 아버지에 관한 내용은 그가 과거 인민군이었다는 단순 사실만이 제시되는 것 말고는 모두 생략되어 있다. 이는 소피 장이 영화에서는 중심인물이 아니라 서사 전개의 매개 역할을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는 상대적으로 이수혁과 오경필에게로 초점이 모아지게 하는 기능을 하며, 관객은 자연히 이들이 나누는 친분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남성식은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처리되는데, 이는 그가 정우진을 죽였다는 죄책감의 발로로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소피 장이 정우진의 생명을 앗아간 치명적인 총 한 방은 남성식의 총이 아니라 이수혁의 총에서 쏘아진 것이었다는 오경필의 말을 이수혁에게 전하자 그가 자살하는 것과 연관시켜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자살은 이데올로기 갈등이 빚어낸 개인의 비극이라는 의미보다는 한 인간(정우진)에 대한 속죄 행위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원작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상황이 개인에게 조건 반사적으로 행동하게 하여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많은 부분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화는 원작과 달리 인간애가 강조된다. 영화는 이수혁, 남성식과 오경필, 정우진이 만나서 친분을 나누는 행동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진 코믹성은 영화의 대중적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영화에 가미된 코믹성은, 여러 논자들에 의해 대중적 코드를 인위적으로 위치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원작에서 강조되고 있는 지극히 관념적인 주제 즉, 이데올로기 갈등과 이를 통해 빚어진 개인의 불행이라는 다분히 무거운 주제의식을 인간애라는 지극히 소박하고 친밀한 주제의식으로 변환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있음을 또한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코믹한 대사와 행동 묘사야말로 개인 상호 간의 친분과 그들이 나누는 인간애를 나타내는 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경필은 이수혁과 남성식을 이해한다는 뜻에서 “내가 남한 초소에서 그랬더라도 총을 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인간애를 토대로 한 남․북한의 상호 이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이를 통해 빚어진 개인의 불행이라는 지극히 무겁고 식상하기까지 한 주제를 뛰어넘어 인간애를 기초한 남․북한 화해의 차원으로 승화,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당면한 현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영화에서 비춰진 이수혁, 남성식, 오경필, 정우진을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누가 과연 꾸짖을 수 있는가. 영화에서 묘사된 그들은 적대국 군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이웃의 형과 친구의 모습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된다. 그들은 우리 옆에 마치 살아서 존재하는 인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가 거둔 인물 묘사의 성공적 사례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이 영화에 감동받았던 관객이 전국 580여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셈이다. 이는 곧 원작이 주장하고자 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빚은 개인의 불행보다는 영화에서 주장하고자 한 그들이 나눈 인간애에 대해 보낸 우리의 박수인 것이며, 원작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재구성한 영화에 보낸 박수인 것이다.
4.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는 원작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영화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301․302>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가지고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본 셈이다. 그것은 각각 서사적 상상력의 동원과 서사의 창조적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301․302>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 문제, 즉 성폭력 문제와 이혼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간의 본질적 문제인 외로움의 문제를 구체화하고 심화시켜 제시함으로써 그 나름의 영화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기본적으로 원작의 서사를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휴머니즘)에 맞게, 창조적으로 인물을 변형시킴으로써 영화가 지닌 구체적인 영상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들은 모두 원작을 반영(혹은 모방)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창조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을 끝내면서 다음과 같은 물음 하나를 던져보자. 피그말리온이 진정 사랑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의 조각상이었을까, 아니면 조각상을 닮은 살아 있은 여인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우리는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같은 영화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달라는 피그말리온의 염원은 곧 원작 있는 영화에 대한 우리의 염원과도 같다. 우리는 원작을 닮은(혹은 모방한) 영화가 아니라 원작을 변형, 발전시켜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 영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 서사의 창조성에 기인한 각색의 힘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함종호
․1970년 출생
․현 서울시립대 국문과 박사과정 중


추천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