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4호 신인작품상/김효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81회 작성일 05-05-30 12:21

본문

신인작품상|김효선




지다 아니, 진다



흐린 하늘 아래

벚꽃이 핀다 아니, 진다

그 아래

강아지 한 마리 누워 있다

아니, 아이가 서 있다

아니, 떨어진 코트를 입은 노인이 서 있다

얼음으로 빚은 조각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벚나무 아래

내가 마법을 걸어놓고 잠들어버린 오후,

이제 마악 흑백사진으로 인화된다.



민들레


여자가 구석에 세워두었던 시간을 깬다.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끝을 손목에 들이댄다. 구인광고와 구직광고 사이 방 있음과 방 구함 사이, 모래알맹이를 삼키던 여자 계단을 오르던 여자의 관절은 쿠르릉, 쿠르릉 밀려오는 먹구름 소리를 듣는다. 여자는 몸을 날려 못처럼 박히고 싶었다. 비가 그쳤을 때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진 여자의 푸른 레인코트를 보았다. 몽골 대륙 어디쯤에선가 흙바람이 불어왔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여자의 푸른 레인코트는 묻지 않았다. 노란 단추 몇 개가 꽃을 피우려는지 꿈틀대는 것 같았다.

여자는 대지의 후손이었을까.



우울한 실루엣


모르겠습니다 참말로 모르겠습니다 조각난 아침이 유리병 안에 갇힌 우울한 실루엣 그 빌어먹을 실루엣 때문에 칼날에 꽂힌 사과 한조각 우물거리며 칼날과 사랑은 서툴게 아찔하게 이 겨울을 넘기고 있다고 유리병 안에 갇힌 우울한 실루엣 그 빌어먹을 실루엣 때문에 돌아서 가는 길은 낯선 도시의 불빛처럼 막막하기만 하다고 내 눈앞에서 죽음은 너무 쉽다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만삭된 아내의 늪처럼 허우적대는 이 겨울 그 빌어먹을 실루엣이 자꾸만 뒤통수를 치며 달려듭니다 차갑게 달궈진 오래된 빛깔, 상처



아내의 동굴


밤마다 소화불량에 걸린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입니다. 나는 그런 아내의 꼬리를 자르며 잠이 듭니다. 아내, 안에 내 아내의 안에는 모래언덕으로 달아나는 꼬리 잘린 도마뱀이 살고 있습니다. 부서져 내리는 곳이라면 기를 쓰고 오릅니다. 참 이상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오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그런 곳을 도마뱀은 좋아합니다. 모래 안에 숨어 있는 걸 좋아합니다. 그 서늘함, 강렬한 태양도 뚫지 못하는 모래동굴 안 그 안에 아내가 삽니다. 나는 밤마다 아내의 꼬리를 자르며 잠이 듭니다



어머니의 노래


어머니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입에 달고 다녔어요. 밭고랑으로 걸어갈 때도 있어요. 가끔씩 태양이 노랗다고 나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지요. 내 아이의 집은 동그랗고 노랗게 생겼어요. 어디선가 자귀나무 냄새가 나요. 아니 자귀나무 바람이 불어요. 아버지는 보이지 않아요. 어머니는 노을이 넘어갈 때도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불러요. 귀를 막아도 어머니의 노래는 계속 되어요. 태양은 절대로 노란색이 아니라고 악을 써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가 노란 태양을 꼴깍거리며 잡아먹어요. 또 자귀나무 바람이 불어요. 동그랗고 노랗게 생긴 내 아이의 집은 자귀나무 숲에 있어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가 자귀나무 숲으로 걸어가요. 더 이상 자귀나무 바람이 불지 않아요.



사랑이 샌다


헐거운 어둠 속에서
나를 조여주던 나사가
더 이상 조여지지 않는다
흐르는, 흘러가는, 수도꼭지에서
흐느끼는, 흐느적거리는, 물이 똑똑 떨어진다
어둠 속에서 금속성 소음이 걸어나온다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물방울들에겐 그림자가 없다
나사를 다시 제 살 속으로 조여보는 어둠 속,
길게 늘어진 내 손끝에서
똑똑 물이 떨어진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흐르는, 흘러가는 수도꼭지를
잠그지 못한다 흐느끼는, 너를




|당선소감|


호우경보가 내려진 제주, 화단의 장미나무의 새순에 굵은 빗방울이 둔하게 뿌려지는 날, 빗방울처럼 많은 나날 동안 나는 왜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비 오는 날은 햇살을, 꽃이 진 뒤에는 열매를, 열매 뒤에는 새싹을, 이별 뒤에는 새로운 만남을, 절망 뒤에는 새로운 희망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기다림들을 투명한 비닐에 고이 싸서 화단 구석에 묻고 말았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비닐 속에서, 나의 기다림은 하나씩 썩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제된 언어에 대한 기다림, 이것만은 나의 내면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기다림이 썩어갈 무렵, 봄에는 보기 드문 호우경보를 뚫고 한 가닥의 메시지가 당도했다. 이제 비로소 시를 써도 좋다는 것인가. 오래된 낙엽더미가 뿌리로 스며들기 위해서 견뎌낸 시간의 저편에서 전해 온 메시지가 비로소 봄을 알렸다. 아직 내 가슴속에 단단히 얼어 있는 겨울을 밀쳐내고, 봄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사람처럼 나를 후원해 준 당신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을 쓴답시고 당신의 옆구리를 허전하게 했던 그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상해드려야 할지……. 또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인들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특히 설익은 글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굳은 알뿌리로 살아남아 튼실한 시의 열매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오늘은 호우경보가 내려진 오월이다.

김효선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꽃은 왜 지는가?
―시적 인식의 어려움

시처럼 살았다라고 하면 비유가 되어버리고, 시로써 살았다라고 말하면 시가 너무 도구화되어 버린다. 시와 더불어 살았다라고 하면 부득불 거리가 생겨나고 시를 살았다라고 말하면 지나치게 몽환적인 느낌이 강하다. 왜 이런 사족을 앞머리에 내세우는가? 습작기 혹은 시의 훈련기에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것이 이른바 ‘발상법’이다. 어떤 체험이 시가 되고, 어떤 체험은 시가 될 수 없는가? 같은 체험도 어떤 이에게는 시의 모티프가 되고, 다른 이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일상사에 머무르고 마는가? 시원스레 대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바로 시적 인식의 차이, 또는 깊이 때문에 이러한 변별성이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현재적 욕구에 대한 자각의 정도라고나 할까?
김효선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시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이때 면모란 시어와 행, 연의 배열과 같은 외적 형식과 주체와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와 태도의 선택 등을 일컫는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시답지 못한 작품은 없었다. 이것은 오랜 습작기간과 적자 않은 노력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작품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우리 시단에 팽배해 있는 ‘표현론’, 다시 말해 왜곡된 낭만주의적 시작 태도가 여실히 들어 났기 때문이다. 그 태도란 이런 것이다. 지금 나는 강렬하게 외로우므로 내가 표현하는 모든 것은 이해될 수 있으리라, 그런 믿음이다. 하지만 타자는 이해할 수 없다. 그걸 감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시인보다 더 강한 시인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외연적으로든 내포적으로든 이유 없는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식의 철저성, 또는 의외성이라 지적하고 싶다. 비유컨대 꽃은 식물의 절정이 아니라 죽음이며 혹은 새로운 삶이며 아니면 심지어 식물의 악마적 본성이라고 보는 인식적 태도의 문제다. 추천한 다섯 편의 작품이 한결같이 예상대로의 행로를 걸어 끝맺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떻게 새로운 시적 인식은 성취될 수 있는가? 진리 정합적인 답이 있었다면 이 땅의 시 쓰기(창작행위)는 예전에 끝나 버렸을 것이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고 갈 길도 길게 남아있으므로 위로와 기대를 실어 김효선의 등을 떼미는 것으로 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기로 한다. 나 역시 그 길 위에 서 있으므로…….
<편집위원 일동(글:백인덕)>

추천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