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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지난계절작품읽기/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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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84회 작성일 05-05-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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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적 상상력을 넘어 동시(童詩)의 상상력으로
―강은교의 「샘물 이야기」
(≪현대시≫ 2004년 3월)


우대식
(시인)





무척 추운 날 새벽
작은 그 샘물은 얼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팔다리가 저려오네……

자기가 딱딱하게 얼어버리면
아침마다 자기에게로 물 마시러 오는 작은 새는
아마도 목이 말라 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은교 「샘물 이야기」


동시란 무엇인가 하는 규정이야 조금씩 다르게 개진될 터이다. 어쨌든 문학 갈래의 특성상 동시가 어린아이의 상상력과 관련된다는 것은 불문의 전제이다. 브레히트의 독설과 투철한 현실 인식 속에서 우연히 동시적 상상력을 만나게 되었을 때, 한국시의 최첨단을 달려가는 오규원의 동시를 보게 되었을 때 신선한 충격에 몸을 떨 때가 있다. 윤동주와 정지용 그리고 백석과 박목월의 동시 또한 그러하다.
‘호수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이 연기가 없다면/집과 나무들과 호수가/얼마나 적막할 것인가’(브레히트, 「연기」) 칠장이 히틀러에 대한 독설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비장하게 썼던 브레히트의 이 시를 보면 따뜻한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 이름 없는 사물들에 대한 관심과 집중 그리고 그것들을 따뜻하게 연대시키려는 의지야말로 동심의 근원이다. 집과 나무와 호수 그리고 연기는 하나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개별자들의 연합이고 결핍의 보완이다.
강은교의 「샘물 이야기」를 읽으며 어렵지 않게 동시의 발상과 동심의 정서를 느꼈다. 동시의 또 다른 특징이 의인화의 수법이라는 것을 잘 알려져 있다. 추운 겨울의 새벽 샘물이 얼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팔다리가 저려오네……’와 같은 구절은 압권이다. 동심이 아니라면 얻기 어려운 구절이다. 꽁꽁 얼지 않으려고 팔과 몸을 쭉 편 채 견디는 샘물은 팔과 다리가 저려온다. 문제는 그 견딤의 이유다.

자기가 딱딱하게 얼어버리면
아침마다 자기에게로 물 마시러 오는 그 작은 새는
아마도 목이 말라 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서 동시 특유의 상상력을 느끼게 된다. 시적 정서와 교훈성은 늘 다른 일직선상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국 동시의 경우 지나치게 어린이를 의식하지 않으며,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난해한 동시 작품들도 많다. 이 시는 이러한 점에서 철학성과 서정을 함께 보여준다. 샘물이 그토록 얼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이유는 작은 새가 겨울에도 물을 마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자기에게로 물을 마시러 오는 새의 죽음은 샘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실케 한다는 점에서 소위 상생(相生)의 윤리학을 내포하고 있다. 팔다리가 저려오도록 얼지 않으려는 샘물의 마음에서 동심의 순수성을 읽게 된다. 나와 타자의 관계성은 오늘날 시에서 좀더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다. 그러나 분열된 자아 속에서 또 다른 타자를 발견하게 되는 현실은 실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이 현실과 더 밀접한 연관성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란 현실 넘어 피안(彼岸)의 세계에 대해 꿈꾼다. 이러한 점에서 동시적 발상은 우리 시에 하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와 너, 나와 세계에 대한 관계의 순수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준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도 이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허무와의 대결을 통하여 순도 높은 언어의 사원을 구축해 온 강은교의 주술적 상상력이 도달한 어느 샘물가에서 샘물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고 싶다. 새의 깃털을 띄워 물을 마시고 싶다. 신비의 사원에서 나와 샘물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시인을 떠올린다. 시인의 머리 위에 한 마리 새가 울고 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죽어갈 것이다.

우대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ꡔ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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