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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2004년 봄호) 대학생의 독서일기/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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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연인 서태후'(역자 이종길, 길산, 2003)
꽃과 칼날의 여인 서태후
강성은
(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
‘중국’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은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문화 수준이 조금 뒤떨어지는 나라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러한 생각도 변하고 있다. 무섭게 성장하는 저력을 가진 나라, 마침내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것 같은, 마치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사자와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 때 읽었던 펄벅의 ꡔ대지ꡕ라는 작품으로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그린 문학을 처음 접했었다. ꡔ대지ꡕ를 통해 가까우면서도 신비스런 중국에 큰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후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ꡔ연인 서태후ꡕ를 읽게 되었다.
‘서태후’ 그녀는 만주족이 청왕조를 건국한 지 2백여 년이 지난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서, 그간 중국 역사에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악의 형상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녀를 황제의 아내로, 태자의 어머니로, 사랑하는 한 남자의 여인으로, 그리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단지 야심으로 가득 찬 나머지 나라를 쥐고 흔들어버린 악녀의 모습으로가 아닌 인간적이고 여성다운 모습으로 그녀의 존재를 다시금 부활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어린시절의 이름인 난아, 3급 후궁인 귀빈으로 궁에 들어갈 때 받은 이름인 예흐나라, 그리고 그녀가 황제의 아들을 낳으므로 부여받은 이름인 자희 황후, 아들이 황제에 오르자 황제의 어머니로서 일컬음 받게 된 이름 서태후, 그리고 백성들이 그녀를 늙은 부처로 여김으로 붙여진 노불야(老佛也) 이렇게 다양한 이름을 불려진다. 그리고 많은 이름만큼이나 그녀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의 이야기는 국사책에서 만나봤던 딱딱한 중국의 역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영록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연약한 여인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충실하지 못한 연인이었다. 그녀가 온 천하를 갖고 모든 이들이 그녀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에도 그녀에게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서글픔이 있었다. 그녀는 뛰어난 통찰력과 총명함 그리고 어느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위엄을 가지고 있는 통치자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는 잔인하리만큼 칼날 같은 여인이었다. 그녀가 악녀로 불린 것도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후궁의 몸으로 궁에 들어와 태후자리에까지 앉게 되었고, 그녀의 사촌동생이자 공동 섭정을 하는 동태후를 살해했으며, 며느리인 황후를 자신의 뜻과 맞지 않다 하여 자결을 요구했고, 조카가 황제에 올라 맞이한 후궁 또한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다 하여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그녀의 사악함에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감히 한 인간의 삶의 무게를 단정할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삶을 쉽게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녀를 그렇게까지 몰아넣은 상황을 무시한 채 그녀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가 함께할 친구가 없었고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통해 더 나은 삶의 질을 기대하려는 욕망을 표출함으로써 그녀에게 커다란 짐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고통스런 상실감과 견딜 수 없이 불행한 상황들의 연속을 혼자 견뎌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와 최고의 권세를 누리는 태후의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그녀의 공허함을 채워줄 그 무언가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태후의 자리에 앉아 청왕조를 오랜 기간 동안 다스렸다. 그녀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근대적 개혁이 절실하던 역사적 전환점에 살았던 인물이다. 서태후는 외세에 대해서는 독립적이었고 또한 보수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받고 있는 평가 중 하나는 그녀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중국의 근대화 발전이 늦어졌다는 비난이다. 그녀는 서양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문물들을 강하게 배척했고, 중국땅에 감히 외국사람들이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녀는 밀려들어 오는 외세에 전쟁으로 강력하게 대처하는 칼날 같은 면을 보여준다. 그녀는 만주족이 새운 청왕조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고 모든 세계의 중심을 중국으로 보았다. 그녀의 고집스러움을 보면서 많은 나라에서 조선의 개항을 요구했던 시기에 흥선 대원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흥선 대원군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드러내며 개항하는 것은 곧 굴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신앙처럼 고수했었다. 그리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진정 조선의 역사를 지키는 길이라 크게 믿었었다. 지금 역사 속에 이 두 인물이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무모해 보일 정도로 강하게 드러냈던 ‘청왕조’에 대한 자부심과 서양문물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는 서태후의 모습을 볼 때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조국에 대한 강한 사랑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한편 어쩌면 그녀는 자기 삶의 부족한 부분을 청왕조에 대한 강한 통치력을 행사함으로써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랑을 잃은 비극의 여인. 권력에 희생된, 그리고 권력을 휘둘러 정적(政敵)들을 다스려 가는 비정한 여인. 이 책의 역자는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상실감, 견딜 수 없이 불행한 상황들은 서태후의 영록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서 시작된다.”
아직은 내가 사랑의 깊이와 인생에 대해 논할 만한 나이에 이르지 못했지만 여자로서 평범한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없었던 서태후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바라보며 서태후를 표현한 서문의 한 글귀가 마음 깊이 와 닿는다.
‘꽃과 칼날의 여인 서태후.’
그녀는 진정 아름다운 연인이고 싶었던 꽃의 여인이었고, 과감함과 잔혹함을 보여주는 통치력을 가진 칼날의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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