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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신작단편/윤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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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11회 작성일 05-05-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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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여자들의 신랑


윤동수





신부로 나설 고객이 있어야 결혼식이든 이혼식이든 할 터였다. 영업장소인 잉꼬예식장에 발걸음을 못한 지 벌써 13일째였다. 1급 신랑임을 자부하는 최가배로서는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수진은 막무가내로 결혼식을 계속하라고 수다를 떨어댔다. 예식장의 중매쟁이로 나선 그의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결혼식을 못하고 있으니 중매쟁이 노릇으로 챙기는 수입이 줄었을 터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자를 제때에 공급해주지도 못하면서 결혼식을 올리라고 뻗대는 건 중매쟁이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여자가 있어야 신랑 노릇을 할 거 아냐!”
최가배는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유수진을 탓할 것만도 아니었다. 그라고 해서 왜 여자들을 데려오고 싶지 않겠는가. 애초에 복사꽃시의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장인 강태봉의 엄포를 우습게 여긴 게 잘못이었다.
밤늦게 찾아온 강태봉은 밑도 끝도 없이 잉꼬예식장에서의 신랑 노릇을 당장 때려치우기를 바랐다. 거듭되는 강태봉의 요구를 최가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신랑 노릇을 해먹든, 국회의원 배지를 달든 그건 자신의 맘이지 누가 하라 마라 할 게 아니었다. 상대가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장이라지만 최가배는 직업을 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만은 용서가 안 되었다.
모든 국민의 억눌린 욕망을 해결함으로써, 삶의 질을 드높이고, 나아가 인간성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한다는 협의회가 결혼식 사업에 시비를 걸고 나왔다는 게 이상했다. 여러 도시에서 직업신랑 노릇을 하면서 최가배는 협의회의 활약상을 오래 전부터 경험했던 터였다. 직업신랑으로 입문했던 도시에서는 포도주 축제가 유명했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천막을 순례하면서 최가배는 닷새 동안 포도주잔에 빠져 살았다. 날마다 부어라 마셔라 노래를 부르며 신부들과 춤을 추었다. 포도주 축제가 열리는 동안 하루에도 서너 번 신부를 갈아 치웠지만 피곤한 줄을 몰랐다. 밤낮을 안 가리고 뛰었던 포도주 축제는 직업신랑에게는 그야말로 대목이었다. 닷새 동안 평소의 5배가 넘는 영업 실적을 거두었다. 일상을 팽개친 시민들은 으깬 포도송이를 몸에 바르며 남녀 모두 흠뻑 취했다. 술통에 빠졌으면서도 시민들은 한결같이 행복해했다. 포도주만으로 시민들을 낙원으로 이끈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의 능력에 최가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시를 넘나드는 협의회의 명성은 시민들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도시마다 빠르게 조직을 넓혀나가더니 두 해 만에 전국의 축제운영권을 틀어쥐었다. 협의회의 간판이 시와 군에 빠짐없이 걸리자마자 전국은 축제로 날이 새고 저물었다. 정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탄성이 시민들의 입에서 끊이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의 공임을 누구나 인정했다. 그것은 최가배도 마찬가지였다. 직업신랑으로서 어느 도시를 가든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와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협의회에서 요청이 오면 직업신랑으로서 최가배는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여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복사꽃시로 옮겨오기까지, 숱한 시민들의 메마른 인간성에 기적을 불러일으킨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와 마찰을 일으킨 적은 한번도 없었다.
불룩한 배를 쓰다듬던 강태봉은 끙 하고 신음을 토하더니 점잖게 나왔다. 복사꽃시의 유흥업소가 여름철로 접어들었는데도 장사가 안 된다는 거였다. 그게 잉꼬예식장의 신랑 노릇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최가배는 몹시 헷갈렸다. 한심하다고 끌탕을 친 강태봉은 여자들이 신부놀이에 빠지는 바람에 룸살롱이고 단란주점이고 할 것 없이 장사가 엉망이라고 앓는 소리를 해댔다.
신성한 결혼식을 놀이라구!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함부로 주절대는 강태봉을 붙들고 씨름해봤자 입만 더러워질 뿐임을 최가배는 잘 알았다. 도대체 그가 무슨 수로 협의회 회장자리를 꿰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복사꽃 축제가 닥쳤는데도 복숭아술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술독을 청미천과 시내에 풀어놓는다면 한나절 만에 시민들은 기분 좋게 취할 터였다. 달착지근한 복숭아술 향기가 시내에 퍼진다면 복사꽃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시민들의 뺨은 발그레하게 물들 거였다. 그리 되면 시민들이 지갑을 여는 건 시간 문제였다. 코가 비뚤어진 사내들은 유흥업소에 파묻힐 거고, 직업신랑을 찾는 여자들로 예식장은 미어터질 터였다. 흥청망청하는 다른 도시를 구경도 못했는지 복사꽃시의 축제는 10년 전에 써먹었던, 하품만 나오는 구닥다리놀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복숭아를 먹어대다가 설사를 하거나, 사흘 밤을 잠을 안 자고 5천 개의 복숭아를 깎다가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살맛이 난다고 짜릿해하기는커녕 짜증만 쌓이는 바람에 우울증 환자만 늘어났다. 그러니 복숭아술을 빚지 않은 복사꽃시의 돈줄이 막히는 건 당연했다. 시민들을 멋대로 먹고 마시게 하지는 못할망정 강태봉은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를 앞세워 여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눈 감고 귀 막고 살면서 어째서 돈이 안 돌면 인간성이 거칠어지냐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직업신랑의 가치를 모르는, 여태껏 본 최악의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장이 바로 강태봉이었다.
그저 좋게 말할 때 조용히 예식장에서 나가라고, 최가배는 강태봉의 등을 떠밀었다. 그것으로 일이 마무리된 줄 알았다. 감히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장을 무시했다고 강태봉이 화를 벌컥 냈지만 모르쇠 해버렸다. 잉꼬예식장에 여자들을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의 결혼식 금지령을 통고할 때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약 고객을 넉넉히 확보했던 최가배로서는 협의회나 강태봉이 허풍을 떠는 줄로만 알았다.
잉꼬예식장에서 영업을 시작한 지 5개월로 접어들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아니, 세상 모든 여자들의 신랑 노릇을 직업으로 삼은 지 7년째지만 고객이 끊긴 적은 일찍이 한번도 없었다. 강태봉이 협박을 하고 돌아간 그 이튿날부터 놀랍게도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최가배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름철뿐만 아니라 9월, 10월 최대 성수기인 가을까지 예약했던 고객들마저 줄줄이 결혼식을 취소했다. ‘잉꼬예식장’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무려 37명의 예비신부가 신랑 최가배를 저버린 셈이었다.
협의회 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한, 강태봉이 어디에 내놔도 빛을 발하는 1급 신랑을 하루아침에 헌신짝 취급해서는 안 되었다. 누구보다도 인간성회복운동에 앞장섰다고 공치사를 한 게 강태봉이 아니었던가. 최가배는 강태봉이 갑자기 자신을 못살게 구는 까닭이 몹시 궁금했다. 인간성을 타락시키자는 단체도 아닌,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장인 강태봉이 그래서는 안 되었다. 여자들을 기쁘게 해줌으로써 복사꽃 시민들의 인간성을 향상시켰다고 감사패를 준 게 지난봄이었다. 복사꽃이 흐드러진 4월말, 시 경계인 청미천 국도변에 세운 복숭아 조형물 제막식을 하는 날, 최가배는 시민들의 환호 속에 강태봉에게서 행운의 열쇠를 받았다. 잉꼬예식장에 전속된 신랑으로서 뭇 여성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자신의 직업이 최가배는 자랑스러웠다. 사나이로서 최고로 명예로운 직업이라고 추켜세운 지 고작 3개월 만에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강태봉은 행운의 열쇠가 녹슬기도 전에 스스로 감사패를 토막내버린 꼴이었다.
강태봉에게 맛본 배신감은 곧장 복사꽃시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 지난 2년 반 동안 일했던 불꽃시에서는 여자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는 1급 신랑은 영화배우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다,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하는 식으로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결혼식을 취미로 삼는 여자들이 늘어나자 ‘결혼식사업’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예식장을 짓는데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모두 나서서 멋진 신랑을 뽑는 축제를 즐겼다. 결혼식사업에 일찌감치 눈을 뜬 불꽃시에 비하면 복사꽃시는 확실히 유행에 뒤쳐져도 한참 뒤쳐졌다.
돈이 안 돈단 말이야! 복사꽃시의 경제가 얼어붙은 원인을 강태봉은 결혼식사업 탓으로 돌렸다. 여자들을 위로하는 데 헌신해 온 신랑 노릇이 경제를 좀 먹다니, 최가배는 이해가 안 갔다. 복숭아 조형물 제막식 날, 달콤한 꿀물이 복사꽃시에 넘쳐흐르기를 바라던 입으로 잉꼬예식장에서의 결혼식사업이 번창하길 기원했던 강태봉이었다.
“여자들이 얼마나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유수진은 따지듯 물었다. 왜 그걸 모르겠는가. 최가배는 결혼식이 중단된 뒤, 복사꽃시의 여자들이 어떤 상태에 빠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근에 가장 많은 고객으로 떠오른 여대생과 간호사, 이혼녀와 노처녀들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다른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떨어져나가는 단골 고객을 두 눈 뜨고 보기란 직업신랑으로서 몹시 고통스러웠다. 은행원과 공무원 출신 여자들을 상대로 1급 신랑의 체면과 품위를 되살리자면, 유흥업소 여자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쩍 늘어난 일반 여자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좋을지 애를 먹던 참이었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유흥업소 여자들한테 익숙해진 말솜씨와 손놀림을 바꿔야 옳았다. 바야흐로 여러 계층의 여자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직업신랑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닥친 셈이었다.
반면에 유흥업소 여자들은 직장 때문에라도 복사꽃시를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결혼식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마냥 손놓고 기다리지 않았다. ‘노세노세’ 단란주점, 에로스 룸살롱의 여자들, 그리고 나이 많은 마담들은 발작을 일으켜 구급차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한데도 유흥업소업주들이 회원인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는 결혼식을 올리지 말라는 영업방침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유흥업소 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여자들에게도 널리 퍼진 결혼식을 가로막은 강태봉의 처사는, 살아나려는 복사꽃시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었다.
강태봉은 최가배와 할 바에야 차라리 기둥서방하고 식을 올리면 자신이 무료로 주례를 서주겠다고 나섰다. 협의회와 강태봉은 결혼식 금지령을 취소하기는커녕 인간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여자들의 헛된 꿈을 짓밟아버리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들은 결혼식을 못하게 된 여자들의 절망은 안중에도 없었다. 결혼식을 예약했던 여자들이 시름시름 앓아도 본때를 보이고 말겠다고 약도 못 먹게 했다.
강태봉의 행태가 괘씸한 거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최가배는 여자들의 안위가 더욱 걱정스러웠다. 7월 첫 주, 첫 번째 고객으로 예약한 룸살롱 에로스의 오 아무개 양의 소식은 몹시 안타까웠다. 오랜 꿈이었던 결혼식이 물거품이 되자 오 양은 화장을 거부했다. 눈곱이 끼고 입에서 구린내가 풀풀 나는데도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다행히 술은 입에 대지 않았지만 닷새가 지나면서 음식을 못 먹었다. 오 양이 자신을 100번째 남자로 점찍었음을 최가배는 잘 알고 있었다. 룸살롱에 진출한 지 8개월 보름 만에 그는 99명의 남자를 해치운 셈이었다. 그리고 100번째 남자를 기념해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게 바로 7월 첫 주였다.
최가배는 룸살롱 출입을 하지 않았다. 1급 신랑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7년간의 경험을 통해 최가배는 고객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꿰뚫고 있었다. 오 양은 최가배가 룸살롱에 드나들지 않는다는 점을 높이 샀다. 자신이 꿈꾸었던 신랑이라면서 그는 가장 비싼 상품인 신혼여행을 고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 양의 선택은 직업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최가배에게 새삼 일깨워주었다. 고객에게 충실하기 위해서 최가배는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룸살롱에서 여자들과 술에 취해 흐느적댄다면 고객들에게 소홀해지기 십상이었다. 풋내기 신랑시절에는 술과 여자의 늪에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체력이 바닥난 어느 날, 3류 취급을 당하고 나서 술을 끊었다. 그리고 여자는 오직 고객만 받아들였다. 고객들의 취향은 입술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했다. 그 많은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수입이 늘어날수록 1급 신랑을 유지하려면 갈고 닦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혼식 사진만 7번을 찍은 단란주점의 이혼녀는 얼굴에 반했다지만 오 양처럼 첫날밤의 남자로 삼으려는 고객들도 수두룩했다.
1급 신랑이 되기 위해서 최가배는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신랑을 직업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중매쟁이들의 권유로 뭉툭했던 코를 세우고, 눈에 쌍꺼풀을 달았다. 광대뼈와 턱을 깎아내고 살이 붙자 듬직한 어깨와 어울린 얼굴은 남성미가 물씬 풍겼다. 얼굴은 맘대로 뜯어고쳤을망정 짤막한 다리를 부풀리지 못해 안달하던 동료들에 비하면, 185센티나 되는 키는 고객인 여자들하고 나란히 선 예식장에서 한층 더 빛났다. 1등품 몸만으로 여자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자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말솜씨와 옷차림, 머리모양, 걸음걸이를 두루두루 갖춰야 했다. 불꽃시에서는 물감들인 장발이 유행하는 바람에 철 따라 가발을 바꿔 썼다. 그곳에서 영업을 하는 동안, 최고 인기배우인 박 아무개를 따라 하느라고 억센 남도 사투리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 당구, 스킨스쿠버, 인라인 스케이트, 프로축구……, 여자들이 원하는 놀이와 경기를 즐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는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영화잡지를 사 보고 시간을 쪼개 이 극장 저 극장을 돌면서 눈여겨보지만 막상 여자가 영화 얘기를 꺼내면 긴장하기 일쑤였다. 1급 신랑이라면 오만 가지 유행을 타는 고객들을 탓해서는 안 되었다. 여대생을 비롯한 젊은 고객들을 맞이하면서 교양 있는 여자들이 말하는 문화의 알맹이라는 게 영화임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고객들 중에서는 결혼식을 영화 촬영으로 착각하는 여자들도 더러 있었다. 인상 깊었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신부를 만나면 꼼짝없이 배우처럼 굴어야 했다. 고객들이 원하는 별의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1급 신랑은 옛날 영화부터 개봉작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챙겨야했다.  
“밥 굶는 애들은 그래도 양반이야. 밤마다 잠 못 이루고 거리를 헤매지 않나 술에 찌들어 싸움질이 그칠 새가 없어.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낯짝을 할퀴지 않나. 머리끄덩이를 붙들고 나뒹굴다가 펑펑 울어쌓는데 불쌍해서 못 보겠다니까. 감기약을 한 주먹씩 털어 넣었다가 죽었다 살아난 애들이 집집마다 널렸어.”
유수진은 눈물을 질금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일반직장에 다니는 고객들보다는 유흥업소 여자들의 상처가 심각했다. 면도칼로 팔목을 그었다거나 굶주린 끝에 실신한 여자들을 실어 나르는 긴급구호차량의 비명이 하루에 서너 번씩 복사꽃시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입술이 바싹 탄 건 최가배였다. 저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유수진의 염려대로 복사꽃시 유흥업소 여자들에게 어떤 불상사가 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불면증에 걸린 여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데도 강태봉을 비롯한 협의회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복사꽃시와 시민들도 시큰둥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참에 유흥업소를 시 외곽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사설을 실은 복사꽃 신문은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의 항의를 받고 사과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유흥업소 여자들은 동료를 헐뜯다 못해 강태봉에게 팔아넘기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최가배가 가장 우려한 일이 마침내 터진 셈이었다. 여자들이 협의회와 강태봉의 손아귀에 놀아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터였다. 불꽃시에서라면 모르지만 복사꽃시에서는 아직도 결혼식을 취미로 삼는 여자들이 소수였다. 그 실정을 반영하듯 주로 당하는 쪽은 결혼식 예약자들이었다. 복사꽃시에서는 가장 많은 결혼식을 올린 밀실주점 빨간장미의 김 아무개 양은 협의회 사무실에 구금되었다. 김 양은 일찌감치 단골이 된 신부답게 잉꼬예식장에서 최가배와 9번이나 결혼식을 올렸다. 최가배로서는 두말할 필요 없는 으뜸 고객이었다. 김 양이 표적이 된 건 아가씨들에게 결혼식을 전염시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협의회는 김 양을 동료들의 돈을 떼어먹은 도둑년으로 몰아갔다. 밀실주점 김 양이 결혼식 계를 꾸린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가 곗돈을 가지고 도망가려고 했다는 건 모함이었다. 협의회와 강태봉에게 눈엣가시였던 김 양은 동료들의 손에 붙잡혀 밀실주점보다 더 좁은 1평짜리 공간에 갇혀버렸다. 협의회 사무실 지하실에 있다는, 그 감옥 아닌 감옥 얘기를 최가배는 유수진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인간성 회복은커녕 성질만 더러워졌어!”
찬물을 들이킨 유수진은 머리를 질끈 묶었다. 폐인이 되가는 여자들을 두고 볼 거냐고 그가 닦달하지 않더라도 최가배는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었다. 젖가슴에 부채질을 해가며 협의회와 강태봉을 싸잡아 욕하는 유수진보다 정작 사태해결에 발벗고 나서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유수진은 아니할 말로 아가씨들이 길바닥에 나앉는다 해도 손해랄 게 없었다. 그리고 중매쟁이 노릇을 관두더라도 요리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으니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터였다. 복사꽃시의 유흥업소 왕언니 유수진이 흥분한 까닭이 아가씨들하고 얽힌 정 때문만은 아니지 싶었다. 강태봉의 횡포에 맞서기로 한다면야 중매쟁이 유수진보다는 모든 여자들의 신랑인 최가배가 나서야 마땅했다. 중매쟁이에게는 건당 몇 푼 받는 물건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로서는 여자들은 언제나 모셔야 할 고객이었다.
“인생은 즐겨야 해!”
부채질을 잠시 접은 유수진이 빙그레 웃었다. 즐기다니? 그것하고 이번 사태와 무슨 상관이 있다구. 최가배가 묻기도 전에 유수진은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야 한다고, 결혼도 그 중에 하나라고 잘라 말했다.
“결혼은 우리들에게 기쁨이요 축복이라니까. 이 계약서를 보라구. 간호사, 여대생, 공무원, 판매원, 여자들의 직업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어. 결혼식을 취미로 여기는 여자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어. 사람이란, 가난뱅이나 부자나 잘 생겼거나 호박덩어리나 누구나 결혼할 자유가 있단 말씀이야. 이혼을 밥먹듯이 해치우고 결혼 안 하는 게 유행인 세상이라지만 우리는 결혼하고 또 결혼할 거야! 결혼식은 우리가 주도할 거라구!”
결혼을 뜨겁게 받들어주는 거야 최가배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숱한 남자들과 살림을 차려봤고 결혼도 여러 번 해봤을 유수진이 아직도 결혼에 목을 매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여태껏 한낱 중매쟁이로만 알았던 그가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서 안달하는 여자들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나섰다는 것도 뜻밖이었다.

두툼한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강태봉은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의 결정을 취소할 권한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세숫대야처럼 큼지막한 그의 손바닥이 끈적끈적한 이마와 목덜미에 미끄러지면 최가배는 숨이 턱 막혔다. 땀을 닦는 게 아니라 턱살을 뜯어내기라도 하듯이 그는 허덕거렸다. 결혼식 금지령을 철회하라고 유수진이 거듭 따져도 강태봉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고 선뜻 물러설 유수진이 아니었다.
“결혼식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야. 잉꼬예식장에서 최가배와 식을 올린다고 해서 정식으로 살림 차리는 것도 아니잖아? 기념사진이나 찍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자는 것뿐이라구. 도대체 왜 그걸 막는 거야?”
“복사꽃시 경기가 말이 아니라구!”
“옳거니, 말 잘했어. 결혼식을 못하게 하니까 그렇잖아!”
유수진이 경쾌하게 맞받았다. 그쯤에서 최가배는 손바닥으로 절로 이마를 치고 말았다. 답답했다. 경기가 바닥이라니, 유흥업소 업주들을 대표한다는 작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강태봉은 입만 열면 불황타령을 일삼았다. 유흥업소 여자들의 결혼식을 금지시켜 놓고 돈이 안 돈다고 투덜대는 위인이 사업체를 몇 개나 가진 사장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강태봉은 복사꽃시에서 가장 큰 한식집과 나이트클럽, 룸살롱, 다방, 단란주점 따위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사장으로 있는 업체에서 일하는 여자들만 따져도 몇백 명은 될 터였다. 그 많은 여자들을 거느리고 사업을 하는 위인이 결혼식을 하찮게 여기다니 최가배는 나오느니 한숨이었다.
“참 답답하네. 결혼식은 여자들의 취미생활이야.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걸 정말 몰라? 전국을 휩쓸고 있어, 그야말로 유행이라구! 유행! 예쁜 엽서를 모으듯이 두세 번씩 결혼사진을 찍는 거야. 남자를 바꿔가며 찍은 사진으로 앨범도 만들고 수집도 하는 거지. 결혼식 우습게 볼 거 아냐, 복사꽃시 경제에 이바지하면 이바지했지 해가 되지 않는다니까!”
유수진은 내친김에 최가배의 상품성을 들고 나왔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낯간지러웠지만 최가배는 모른 척했다. 유수진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아볼 좋은 기회였다.
“잉꼬예식장 신랑 최가배, 함부로 대접하면 안 돼. 몸매 좋지, 인물 반듯하지, 복사꽃시에서 이만한 신랑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여자들 녹이는 서비스가 그만이야. 1급 신랑이라고 전국적으로 소문이 뜨르르하다니까.”
“빨리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
최가배는 이때다 싶어 두 사람을 압박했다. 결혼식 금지령을 풀 건지, 말 건지 하루빨리 결판이 나야 했다. 복사꽃시의 문제로 떠오른 이상, 토박이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쏙 빠지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러니까 터줏대감인 강태봉과 유수진이 담판을 짓는 게 순리였다. 날이 갈수록 영업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혼식만 올린다든지, 사진만 찍는다든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2박 3일 신혼여행을 세 건이나 날려버린 건 치명적이었다. 결혼식이라는 게 신랑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사업이 아니었다. 예식장이다 사진관이다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해를 입는 바람에 1급 신랑의 신용이 말이 아니었다.
“나,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최가배는 여차하면 복사꽃시를 떠날 수 있음을 슬쩍 내비쳤다. 어차피 결혼식 신랑이란 직업은 떠돌이 신세였다. 복사꽃시의 여자들이 언제까지나 발목을 붙잡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인기가 떨어지는 낌새가 보이면 재빨리 다른 예식장으로 옮겨야 했다. 신랑 노릇을 천년 만년 해먹을 수 없을 바에야 싱싱할 때 몸뚱이를 부지런히 놀려야 했다.
“다른 데서 스카우트 제의라도 받았다는 거야?”
유수진이 놀라서 물었다. 최가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식을 못 올린 지 일주일 만에 이곳저곳 옮겨갈 곳을 알아봤고, 두어 군데서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복사꽃시의 단골 고객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되었다.
“잘한다, 1급 신랑 내쫓고 돈줄 막히면 책임질 거야!”
유수진은 단박에 화살을 강태봉에게 돌렸다.
“결혼식만 하고 깨끗하게 끝내야 하잖아. 근데, 그렇게 됐냐구? 이년이나 저년이나 지저분하게 질질 끄니까 말썽이 생기잖아.”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우냐고, 강태봉은 여자들에게 잘못을 떠넘기며 발뺌하기에 바빴다.
“왜 목욕을 안 하는 거야? 입에서 악취를 풍기는데 사내들이 뽀뽀할 맛이 나냐구? 그리고 사랑은 뭔 얼어죽을 사랑이야. 언제부터 지들이 사랑에 목숨 걸었다고 손목을 긋고 약을 처먹나 말이야!”
“애들이 서넛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뭐라구! 누구 장사 망하는 꼴 보고 싶어! 안 그래도 가게마다 죽을 쑤고 있다구!”
“그게 몰라서 그렇지 심각한 거라구. 작년에 불꽃시에서도 짝사랑에 목숨 바친 여자가 둘이나 있었지 뭐야. 결혼식, 그거 중독이거든. 한겨울에 약 먹고 셋이나 죽어나가는데, 그때만큼 직업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니까.”
최가배는 차분하게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애들이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전적으로 당신이 책임져야 돼!”
유수진이 드세게 나가자, 강태봉은 뒷골이 땅긴다며 헐떡거렸다. 부풀어 오른 뱃살을 움켜쥔 그는 결혼식을 증오한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강태봉이 유흥업소업주들에게 시달리고 있음을 털어놓은 건 얼음찜질을 하고 나서였다. 얼굴을 덮었던 얼음주머니를 떼어낸 다음 그는 혀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민들의 인간성이 엉망으로 바뀌는 걸 나더러 책임지라는 거야. 장사가 안 되는 게 어째서 내 책임이야!”
강태봉은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원들을 싸잡아 욕했다.
복숭아 조형물을 시 입구에 세우고, 축제를 성대하게 열었건만 복사꽃시의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복숭아를 한창 수확하는 여름철로 접어들었는데도 이상하게 돈이 안 돌았다. 복숭아를 판매한 돈이 은행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복사꽃 시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한데도 돈은 시장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결혼식 금지령이 떨어졌으니 돈줄이 막힐 건 뻔했다. 최가배는 협의회 회원들이 강태봉을 들들 볶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대책을 수립한다고 허구한 날 회의를 거듭한다는 소식은 복사꽃 신문에서 날마다 봐왔다. 불황이 극심해질수록 강태봉을 추궁하는 소식이 신문에 자주 실렸다.
“시장하고 시의원들도 우리 협의회가 앞장을 서라구 성화야.”
강태봉은 여자들의 태업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폐업시킬 거라는 경고장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협의회 회원들에게 보여주었다가는 그날로 자신은 생매장을 당할 거라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니까, 결혼식 금지령을 풀어버리란 말이야.”
유수진은 의기양양했다.
“누구 좋으라구! 복사꽃시가 폭삭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만은 못해!”
강태봉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입맛대로 강태봉을 요리할 테니 두고 보라던 유수진이 깜짝 놀랄 정도로 그는 완강했다. 어째서 강태봉은 결혼식 금지령만은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까. 더위에 지쳐서 혀를 빼물 때와 달리 그는 눈까지 부릅뜨고 결혼식을 막을 거라고 다짐했다.
“경기를 살릴 뜻이 전혀 없구만.”
최가배는 말했다. 강태봉이 명목상 사장일 뿐 실제로 업체를 꾸려가는 건 그의 마누라라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런 주제에 복사꽃시의 경제를 혼자 짊어진 듯 인상을 쓰다니, 복사꽃시는 유흥업소 업주들의 대표를 잘못 뽑은 게 분명했다.

조기구이가 일품이라고 건네주며 유수진은 많이 먹고 기운차리라고 생글거렸다. 신랑 노릇 제대로 하려면 몸보신이 최고라고 눈을 찡긋 하는데야 최가배는 두손들고 말았다. 그가 이끄는 대로 수저를 놀리다보니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음식점 용궁에서 주방장으로 있다가 해고된 유수진을 위로한답시고 마련한 자리였다. 유수진은 다른 데도 아닌, 자신이 일하던 용궁에서 만나기를 바랐다. 최가배로서는 뜻밖이었다. 자신을 자른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면 소화가 제대로 안 될 터였다. 헌데도 유수진은 복사꽃시에서는 음식맛이 최고라며 서슴없이 한식집 용궁을 추켜세웠다.
“나라고 왜 괘씸하지 않겠어?”
회접시를 밀어주며 유수진이 용궁 사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내 그를 용서한다며 사태만 진정되면 복직하기로 약속했음을 밝혔다. 그러니까 유수진이 정작 몹쓸 작자로 손가락질한 건 용궁 사장이 아니라 강태봉이었다.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용궁 사장은 유수진을 할 수 없이 해고한 거였다. 최가배로서도 강태봉이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야!”
유수진은 강태봉을 용서할 수 없다고 별렀다. 너 같은 년들은 인간성이 안 어울려! 노리개 출신이 누구 앞에서 인간성을 입에 담는 거야!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도 결혼식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유수진에게 강태봉은 그렇게 지껄였다. 마시던 잔을 떨어뜨리고 넋이 나간 채 강태봉을 바라보던 유수진의 눈동자를 최가배는 잊을 수가 없었다.
천지다방의 오마담이 강태봉의 애인일 줄이야! 유수진이, 짐승보다 못한 놈, 오마담도 그런 식으로 대하냐고 한마디 툭 던지자, 강태봉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람한 강태봉이 버들가지 같은 오마담을 마음에 두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오마담이라면 유수진하고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다. 오마담을 고객으로 소개한 것도 유수진이었다. 오마담은 7월 중순에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가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유수진이 두 달에 걸쳐 공을 들인 특별한 고객이었다. 그래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리라 다짐했던 터였다.
“지금쯤 그 자식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거야. 둘 사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그런 식으로 짓뭉개?”
유수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유수진의 입에서 오마담이 나오기가 무섭게 강태봉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윽고 그는 언제 그랬냐싶게 함부로 지껄인 주둥이를 찧어달라고 용서를 빌었다. 순식간에 달라진 상황에 최가배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잉꼬예식장하고 작당을 해서 당신을 모셔온 건 돈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유수진이 굴접시를 옮겨주며 말했다. 그 점은 최가배도 인정했다. 잉꼬야 사업이니 돈 벌려는 건 마땅했다. 그러나 고객인 여자들하고 어울리는 유수진은 여느 중매쟁이들하고 달랐다. 돈만 밝혔다면 여자들에게 왕언니 노릇을 못할 터였다.
사업주인 잉꼬와 중매쟁이인 유수진의 관계를 최가배는 모른 척했다. 여자를 한 명씩 신부로 데려올 때마다 유수진은 잉꼬에게서 사례비를 챙기는 모양이었다. 굳이 얼마나 받는지 캐묻지도 않았다. 다만 불꽃시에 비해서 사업 방식이 주먹구구식이라는 건 분명했다. 불꽃시에서는 중매쟁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결혼식 등급에 따라 상품권을 팔았다. 협정 가격이 있는 만큼 고객들은 중매쟁이와 쑥덕이지 않아도 좋았다. 영업 방식만 봐도 복사꽃시는 촌스럽고 후진적이었다. 그래도 신랑 몫은 불꽃시보다 한결 더 높게 쳐주니 최가배로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 다른 도시로 내빼지 않겠다고.”
문득, 유수진이 낯을 바꿔 차분히 말했다. 그가 권한 호박전을 집었던 최가배는 느릿느릿 맛을 음미했다. 짜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게 혀끝에서 스르르 녹았다.
예식장 사장 잉꼬는 이참에 1회용 신랑 노릇을 집어치우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물론, 그가 농담을 하는 줄은 알았다. 1회용이라는 말이 거슬렸기에, 그럴까? 하고 능글맞게 나가자마자 잉꼬는, 이 사람 누구 굶겨 죽일 작정이냐고, 농담도 못하냐고 펄쩍 뛰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실언을 덮으려는 듯 협의회와 강태봉이 무리수를 두었음을 낱낱이 밝혔다. 그건 한식집 용궁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까짓 결혼식 멋대로 하라지, 매상이 절반으로 줄었잖아! 그 바람에 그는 음식 나르는 여자 둘을 내보냈다. 결혼식 사업과 맞물린 건 용궁이라고 해서 잉꼬에 뒤지지 않았다. 결혼식 피로연 손님을 못 받게 된 그는 장사를 계속해야 좋을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였다. 그들의 처지를 곱씹을수록 최가배는 밥맛이 좋았다. 강태봉과 달리 그들에게 결혼식 신랑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내 덕분에 주방장 노릇도 못해먹게 생겼잖아?”
최가배는 손가락을 거는 대신 유수진이 해고자 신분임을 일깨워주었다. 신랑은 신부하고의 계약만 지킬 뿐 다른 사람하고의 약속은 무의미했다. 더구나 예식장 전속 문제는 계약서에 따르면 그만이었다. 그것보다 자신이 사라진다면 유수진이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수진을 감싸고돌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랑은 어떤 여자에게도 정을 붙여서는 안 되었다. 그랬다가는 그날로 신랑 노릇은 끝장이었다.
“술은 못 따라도 이게 있잖아?”
유수진이 팔랑개비처럼 손을 흔들어보였다. 맛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손이 있는 한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한다는 거였다. 유수진이라는 여자, 보면 볼수록 밉지 않은 중매쟁이였다.
잉꼬예식장으로 옮기면서 최가배는 신랑상품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불꽃시에서는 12종류나 되던 상품을 유수진의 의견을 받아들여 4가지로 줄였다. 전속 예식장이 바뀌면 가장 신경을 쏟는 게 상품의 종류였다. 여자들의 생활 수준과 취향에 따라 복사꽃시에 걸맞은 상품을 유수진은 일찌감치 짜놓고 있었다. 한데 계약을 마치고 영업을 시작하자 예상 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최가배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한동안 적응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이를테면, 밀실주점 꺽다리 최 아무개 양은 한사코 식구들과 사진을 찍기를 바랐다. 최가배는 단호하게 최 양의 요구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결혼식 사진은 신랑과 신부, 단둘만 찍을 수 있었다. 동료들이라든지, 친구들이 그 자리에 끼어든다면, 사진이 사람 숫자만큼 나돌 터이고, 그렇게 되면 최가배의 상품성은 떨어질 게 뻔했다. 결혼식 사진만 찍는 것은 가장 값싼 상품이었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은 신부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서 결혼식하기, 거기다 식을 마치고 피로연을 즐기고, 하루든 이틀이든 신혼여행을 가는 게 가장 비싼 상품이었다. 그 대신 최가배는 4가지 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상품부터 동료들이 참석하는 것만은 양보했다. 그것도 사전에 하객의 수를 정한다는 조건을 달고서였다. 그러나 신부의 식구들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만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신부의 식구들을 속이고 싶지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은 잉꼬예식장의 말마따나 1회용이지 한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가 아니었다. 그건 신랑 노릇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직업 윤리였다. 그 규칙을 깨뜨린 게 유수진이었다. 그는 꺽다리 최 양의 신랑이 되어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집 떠난 지 15년 만에 연락이 닿은 최 양의 부모는 무작정 결혼을 서둘렀다. 신랑과 함께 있는 결혼식 사진만이라도 찍기를 그들은 바랐다. 유수진은 늙은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자고 호소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가배는 3시간 동안 사위 노릇을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 뒤, 두 노인은 세상을 떴다. 하지만 최가배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일을 겪고 나서 그는 신랑은 사위가 아님을 가슴 깊이 새겼다.
풋내기 시절 중매쟁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여자를 공급한다는 구실을 앞세워 가격을 멋대로 정한다든지 해서 신랑을 가지고 놀기 일쑤였다. 심지어 여러 신랑을 고용한 중매쟁이들이 설치기도 했다. 불꽃시에서처럼 상품권이 널리 퍼지면서 중매쟁이들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만큼 복사꽃시의 중매쟁이 유수진은 독특한 존재였다. 사위 노릇으로 애를 먹였으면서도 그는 여자들이 원하는 바를 끊임없이 물어왔다. 신혼여행을 택한 룸살롱 불여우의 여자에게는 첫날밤에 함께 목욕을 해주라는 둥, 신혼여행에서 신부의 고향을 멀리서라도 봤으면 한다, 하여간 계약서에 없는 시시콜콜한 것들을 신부들을 대신해서 일러주었다. 처음 몇 번은 익숙하지 않아 귀찮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품권만 툭 내미는 것보다 잔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복사꽃시의 왕언니 유수진을 지켜보는 맛도 쏠쏠했다. 그래서일까, 최가배는 언제부터인지 여자들이 신혼여행 상품을 고르면 까닭 모르게 유수진에게 신경이 쓰였다.
“목욕탕에서 단합대회를 가질 거야. 그러니 당신도 힘내. 싱싱한 애를 뽑아서 반드시 신부로 세우고 말겠어. 멋진 결혼식을 올려야 해. 결혼식은 계속해야 돼!”
유수진은 신랑 노릇을 세상에서 가장 떳떳한 직업으로 떠받들었다. 여자들에게 삶의 활력소로 자리 잡았어. 신랑보다 더 여자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직업이 있으면 누구든지 나와 보라구 해. 그녀는 결혼식 신랑 노릇을 훼방 놓는 사내들은 여자들과 가정을 꾸리지 못하게 법을 뜯어고치기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잉꼬예식장 3번, 제로마트 4번, 강태봉 2번, 한식집 용궁 5번……. 유수진의 입에 오르내린 협의회 회원들의 결혼한 횟수를 합치면 최가배 못지않았다.
“그네들만큼은 못해도 결혼할 자유는 누려야 돼. 세상은 계속 굴러가야 해. 우리 같은 여자들만 자꾸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어? 그리고 여자들이 애를 안 낳으면 어떡하지? 세상은 끝장나는 거라구. 사내놈들이 술 처먹고 전쟁을 해서 끝장내는 게 아니란 말씀이야.”
“듣고 보니 나도 결혼하고 싶은걸.”
말을 해 놓고 나서 최가배는 피식 웃었다. 결혼식 신랑을 직업으로 삼았으면서 결혼하고 싶다니! 그리고 유수진의 말대로라면 세상이 끝장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결혼식은 해야 옳았다. 그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혼식이 여자들의 탈출구로 자리 잡았어! 유수진은 하객들을 제한하지 말고 자꾸 퍼져나가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인류를 위해서라도 당신하고 애를 낳아야겠군.”
최가배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거꾸로 내가 돈을 받아야 될걸?”
유수진은 계산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긋 웃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인간이 그렇게 되는 것일까. 강태봉이 목욕탕을 습격한 사건은 복사꽃시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건 강태봉과 유수진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강이 가로놓였음을 뜻했다. 자연스레 최가배로서도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협의회와 강태봉의 횡포를 더 이상 모른 척한다면 신부들의 영원한 신랑 노릇을 스스로 저버리는 셈이었다. 그건 고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강태봉이 복사꽃 온천탕에 쳐들어간 건 유흥업소 여자들이 목욕하는 날로 정해놓은 금요일 오후였다. 종업원들을 뿌리치고 그는 곧장 여탕 문을 열어젖혔고, 여자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던 유수진을 잡아먹을 듯이 몰아붙였다.
“멀쩡한 여자들을 들쑤셔서 복사꽃시를 난장판으로 만들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냐. 사기결혼식에 팔아넘기고 얼마나 챙겼어? 오만 가지 성병을 달고 산 년이 그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애를 밥먹듯이 지운 년이 새끼를 낳는다구? 오냐, 잘해봐라! 이놈의 세상이 지저분한 인간들로 차고 넘칠 거다!”
강태봉은 유수진을 더러운 뚜쟁이로 낙인찍었다. 사랑에 눈이 뒤집힌 그에게 발가벗은 채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은 살덩이에 불과했다. 몸뚱이가 재산이라구? 놀구자빠졌네. 썩은 몸뚱이로 백번 천번 결혼해 봐라, 애가 나오나. 유수진이 강태봉의 악다구니를 참은 건 거기까지였다. 백번 천번을 떠들어도 소용없어. 제 발로 신부가 되겠다는 년은 안 나올 테니까. 왠지 알아? 신부 자격이 없다는 걸 너희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테니까!라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지자 유수진은 목이 메었다. 왜냐하면 강태봉이 나타나기 전까지, 신부로 나설 사람을 뽑으려고 2시간이나 입씨름을 벌였건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유수진은 대화로 문제를 풀려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깨달았다. 겉으로는 강태봉에게 앙갚음을 하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바지런을 떤 그였다. 강태봉보다는 왕언니로서 유흥업소 여자들의 고통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그는 오마담을 설득하는데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오마담은 최가배와의 결혼식을 해약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나왔다. 그뿐 아니라, 강태봉하고의 결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밝혔다.
강태봉이 목욕탕에서 소란을 피운 건 유수진하고의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수진을 복사꽃시의 경제를 말아먹은 주범으로 몰아갔다. 일 잘하는 유흥업소 여자들을 선동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식으로 강태봉은 유수진을 위협했다. 그리고 사랑에 눈먼 사내답게 사탕발림을 잊지 않았다. 최가배의 정체를 결혼식 사기꾼이라고 밝힌다면 복사꽃시를 혼란에 빠뜨린 반사회적 범죄를 눈감아 주겠다는 타협안을 내놨다.
“당신의 정체를 폭로하라지 뭐야. 안 그러면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나?”
유수진의 말을 들으며 비로소 최가배는 강태봉이 미친 듯이 날뛴 건 자신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느닷없이 만나자는 약속을 한 그는 애인인 오마담이 헤어지자고 해서 미치겠다는 고백을 했다. 아예 오마담을 애인이라고 만천하에 까발리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오마담에게 인간취급도 못 받는다고 자책했다. 오마담이 노리개 따위하고 어울리느라 속이 뒤틀렸겠다고, 절교를 선언했을 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노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술 냄새가 풍기기는 했지만 강태봉이 취한 건 아니었다. 혀가 꼬이지도 않았고 속내를 또박또박 털어놓았다. 유수진에게 퍼부은 건 진심이 아니었노라고 사죄했다지만 오마담의 귀에 들어간 이상,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으려고 발버둥치던 강태봉이 갑자기 오마담하고의 결혼식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잉꼬예식장에게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며 오마담이 자신을 버리고 직업신랑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했다. 최가배는 난감했다. 결혼식을 하다가 진짜 신랑이라는 사내가 나타나서 예식장을 뒤엎는 사태가 한해에 한번쯤 벌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계약서를 작성할 때 혼인관계를 샅샅이 조사하는 터라, 법이 인정한 남편 때문에 사업에 지장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법적인 남편도 아닌 강태봉은 오마담의 계약 해지를 요구할 자격이 없었다. 말로는 부탁을 한다지만 그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죽자살자 결혼해 달라고 매달렸는데, 자네는 돈을 받고 신랑이 되다니, 이게 말이나 되냐구.”
최가배는 결혼식사업을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강태봉을 설득했다. 연애감정은 끼어들 건더기가 없다, 그리고 법적인 부부하고는 거리가 멀고 여자들의 취미생활일 뿐임을 일러주었다. 그렇지만 강태봉은 막무가내로 오마담하고의 결혼식을 취소하기를 바랐다. 고객하고의 계약을 목숨처럼 여기는 최가배로서는 강태봉의 요구를 듣는 둥 마는 둥했다.
“나는 겨우 두 번밖에 결혼 안 했어. 세 번째로 오마담을 찍었다는 걸 분명히 알아둬!”
강태봉은 오마담하고 결혼식을 했다가는 잉꼬예식장을 불 싸질러버리겠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좋은 말할 때 물러나라구! 그쯤에서 최가배는 강태봉이 자신을 오마담을 빼앗으려는 경쟁자로 여기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당신 연적이 아냐. 신랑은 직업일 뿐이야.”
그 자리에서 잠시나마 강태봉의 사랑에 주눅이 든 건 사실이었다. 오마담을 목숨처럼 사랑한다고 몸부림치는 사내의 절규는 멋져 보였다. 곰 같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강태봉은 오마담 없이는 못 살겠다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일 세상이 끝나더라도 오마담을 안 놓치겠다는, 사랑에 목숨을 건 사내의 열정을 직업신랑은 품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가배가 강태봉의 과장된 사랑타령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업신랑 최가배는 남창이다!”
강태봉은 이튿날부터 복사꽃 시민들에게 나발을 불어댔다. 목욕탕 사건으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참에 그는 본격적으로 최가배를 옥죄기 시작했다.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장임을 앞세운 강태봉은 지역 유지들, 공무원과 시의원들, 교육청, 각종 체육단체들, 금융기관, 교회에 이르기까지 결혼식 신랑이라는 직업이 남창임을 밝히는 안내문을 보냈다. 강태봉의 사람 사냥에 놀아난 건 잉꼬예식장이었다. 그는 강태봉이 주최한 공식석상에서 시민들에게 직업신랑 최가배가 남창임을 증언했다.
복사꽃시를 어지럽힌 주범으로 몰리게 되면서 최가배는 강태봉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굳혔다. 사랑의 고백을 듣고 나서 한때나마 복사꽃시를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유수진에게도 못할 짓이었지만 강태봉의 사랑놀음에 구질구질하게 엮이는 게 내키지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고객들의 믿음에 금이 가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남창 소리를 듣던 날, 최가배는 잉꼬예식장과 계약을 연장했다. 나아가 강태봉의 앞잡이 노릇을 한, 자신을 천벌받을 놈이라고 죽는시늉을 한 잉꼬를 용서했다. 복사꽃시를 주름잡는 인간들 앞에서 잉꼬는 한낱 어릿광대에 불과했다. 동업자나 마찬가지인 잉꼬의 코를 꿰어 부려먹은 강태봉에게 직업신랑의 이름을 더럽힌 죄를 물어야 옳았다.

누구나 결혼할 자유가 있다!
청미천 다리와 시민게시판에 여봐란듯이 플래카드를 내다 걸었다. 복숭아 조형물을 비롯한 시내 한복판에도 만국기가 휘날리듯, 우리는 결혼하고 싶다! 플래카드가 펄럭거렸다. 유수진과 유흥업소 여자들은 결혼할 자유를 달라는 홍보지를 시내에 뿌렸다. 시장에서나 유흥업소 지역에서도 결혼은 계속해야 한다! 플래카드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최가배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하루 만에 결혼식을 마음대로 하자는 플래카드로 복사꽃시를 뒤바르다시피 했다. 유흥업소에 홍보전단을 돌리던 풋내기시절하고는 달랐다. 신랑 노릇이 하나의 번듯한 직업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식 신랑은 여자들에게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직업이었다. 그 사실은 신랑이라는 직업에 무한한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강태봉의 협박에 잠시 눈이 멀었노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참회하던 잉꼬만 하더라도 직업신랑이 없었다면 진작에 예식장 문을 닫았을 터였다. 플래카드를 달면서 맞닥뜨렸던 시민들의 격려는 복사꽃시에 새로운 직업을 소개한다는 사명감을 샘솟게 했다.
플래카드로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자고 마음먹었던 데에는 강태봉을 압도할 수 있는 직업신랑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1회용 도시락을 까먹듯이 장난삼아 결혼하고, 날마다 여자를 갈아 치우는 건 짐승들이나 할 짓이야! 담판을 짓는 자리에서도 강태봉은 여전히 성스러운 결혼을 모독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직업신랑의 결혼식이 여자를 돈 주고 사는 사내들하고는 차원이 다름을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도 오마담하고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잖아.”
최가배가 정곡을 찌르자, 강태봉은 어디에다 남창짓을 갖다 붙이냐고 금세 울그락불그락했다. 이상했다. 강태봉이 직업신랑을 깔볼수록 주눅 들기는커녕 느긋해졌다. 그것은 고객인 여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거쳐 간 숱한 신부들을 봐서라도 결혼식을 독식하려는 강태봉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었다.
“오마담을 돈 주고 사려는 게 아니야. 진심으로 그 여자를 사랑해.”
방금 전까지 몹시 화를 냈던 강태봉이 갑자기 눈물을 떨구었다. 게다가 협의회 사무실에 갇혔던 밀실주점 빨간장미 김 양을 자신이 구출해서 오마담에게 데려다주었다고 묻지도 않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김 양을 빼돌리고 가둔 건 자신이 아니라 협의회 회원들이 한 짓임을 밝혔다. 죄 없음을 주장한 강태봉은 회원들이 시키는 대로 도장만 찍는 허울뿐인 회장이라고 탄식을 쏟아냈다.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은 다들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이지.”
최가배는 진지하게 답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강태봉의 고백은 전적으로 옳았다. 왜냐하면 최가배 또한 결혼식을 할 때마다 마음을 다 바쳐 고객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신랑 노릇에서 떨려나갔을 터였다.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을 장식하기가 무섭게 몰려든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원들은 하나같이 업소 문을 닫게 할 참이냐고 거세게 따졌다. 그도 그럴 것이 청미천 다리에는 결혼할 자유를 외치는 플래카드가 유흥업소의 플래카드를 에워싸 버렸기 때문이었다. 절세미인 12명 항상 대기, 룸살롱 에로스 아가씨 20명 완전 물갈이, 불꽃시에서 온 아가씨 15명 복사꽃시를 점령하다! 질탕하게 마시고 놀면서 구질구질한 인생을 떨쳐버리자! 양어장의 물고기를 바꾸듯이 유흥업소의 플래카드는 아가씨들을 갈아 치웠다고 한결같이 자랑하고 있었다. 협의회 회원들의 항의는 최가배로서는 기다리던 바였다. 그러나 강태봉이 말을 바꿀 줄은 몰랐다. 오마담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와의 계약을 없던 일로 해달라고 애걸복걸했던 강태봉이었다. 나아가 오마담하고의 결혼을 주선해주면 다른 여자들의 결혼식도 허용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 강태봉이 막상 협의회 회원들 앞에 서자 돌변했다.
“최가배를 복사꽃시에서 추방하자!”
남창으로 짓밟은 것도 모자라 강태봉은 복사꽃시의 경기를 결딴낸 원흉으로 낙인찍었다. 최가배는 신랑 노릇에 최대의 위기가 닥쳤음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다. 강태봉의 꿍꿍이속만 제대로 밝힌다면 이참에 복사꽃시에 직업신랑을 뿌리내릴 수 있을 터였다. 강태봉이 지적한 대로 최가배는 협의회 회원들이 가장 몸달아하는 경기 문제를 미끼로 삼았다.
“시민들의 인간성이 왜들 갑자기 나빠졌는지 알기나 하냐구?”
과연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원들답게 유흥업소 업주들은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거덜나게 생겼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들의 관심이 경기 활성화에 있음을 직감한 최가배는 파산 직전인 복사꽃시의 상황을 낱낱이 밝혔다. 먼저, 멀쩡한 신랑을 남창으로 매도하는 바람에 사내들이 마음놓고 유흥업소에 들락거리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남창하고 결혼하는 것을 취미로 삼은 여자들이 득실대는 유흥업소에 사내들이 발걸음을 끊은 건 당연했다. 왜냐하면 마누라와 처녀들은 자신들의 남편과 애인이 남창 꼴이 날까봐 지레 겁을 먹고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여자와 술에 굶주린 사내들의 불만이 터지면서 흉흉한 소문이 잇따랐다. 여자들이 어떤 사내와 잠을 자고, 누구 애를 가졌으며, 그 사실을 밝히는 플래카드가 나돌 거라는 소문이 복사꽃 시내를 덮어버렸다.
“이래 가지고서야 인간성회복운동이 제대로 될 리가 있냐구?”
남창이라는 헛소문이 얼마나 끔찍한 현실을 빚어냈는지 최가배는 생생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밀실주점 빨간장미 김 양을 감금한 게 협의회 회원들의 소행이었다는 강태봉의 증언을 들추어냈다. 강태봉이 자신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챈 유흥업소 업주들은 이내 강태봉에게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뜨내기 주제에 우리를 이간질시키려는 거야!”
강태봉은 즉각 반발했다. 그리고 협의회 회장으로서 회원들을 욕되게 하는 짓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하늘에 맹세했다. 남창 말을 믿을 건지, 인간성회복을 위해 헌신해 온 회장을 믿을 건지 선택하라고, 오히려 기세를 드높였다.
도대체 누구 말이 옳으냐고 웅성거리던 유흥업소 업주들은 마침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복사꽃시의 경기를 살리는 문제였다. 최가배의 짐작대로 인간성회복운동과 불경기를 푸는 문제가 맞물려 돌아갔다. 유흥업소 여자들은 결혼식을 맘대로 하면 쉽게 풀릴 거라고 플래카드를 흔들어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에, 유흥업소 업주들은 복숭아 판매 대금이 은행에서 잠자고 있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바로 그거야! 그걸 풀어야 복사꽃시가 잘 돌아갈 수 있단 말씀이야. 꿀이 흐르던 복사꽃시가 왜 이리 삭막해졌냐구!”
최가배는 여자들의 결혼식을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라고 유흥업소 업주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것만이 인간성 회복의 지름길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건 강태봉이었다. 경기 문제를 푸는 해법이 나온 이상 남창 따위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결혼식을 계속해야 한다구!”
강태봉을 무시한 잉꼬와 상인들이 여자들과 합세했다. 사진관, 양복점, 구두판매점, 미장원, 여행사, 결혼예복전문점, 한복가게, 떡집, 피로연식당……, 하나같이 결혼식 때문에 먹고사는 이들이었다. 강태봉에게 비난을 퍼부은 그들은 최가배의 이름을 연호하며 결혼식만이 살길임을 부르짖었다.
“복사꽃시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우리의 회장님에게도 기회를 주자구!”
최가배는 강태봉을 용서해 주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라며, 그가 누구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지를 스스로 밝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마침 유수진이 결혼식 신부로 나서겠다는 선언을 했던 터라, 유흥업소 업주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강태봉의 결혼을 여자들이 인정하고 유수진의 결혼식을 업주들이 받아들인다면 복사꽃시의 인간성회복운동, 즉 경기 문제는 저절로 풀리는 셈이었다. 그리고 결혼식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강태봉이 결혼하고 싶어서 환장을 했음이 밝혀지자, 유흥업소 업주들과 여자들은 다들 놀라워했다.
“저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강태봉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오마담이었다. 유수진이 거듭 물었어도 그는 오마담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강태봉이 사랑한다고, 결혼해 달라고 애원하는 순간, 오마담은 못해, 그렇게는 못해!라고 차갑게 내뱉었다.
강태봉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마담에게 보기 좋게 퇴짜 맞은 그를 협의회 회원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먼저 이혼을 못할 거라고 장담한 그들은 재산 때문에라도 강태봉은 새로운 사랑을 택하지 못할 거라고 비웃었다. 그리고 시의원 출마도 어려울 테고, 무엇보다도 마누라의 품에서 놓여나기가 불가능할 뿐더러, 인간성회복운동협의회 회장으로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환호했다.
유수진이 첫 번째 신부로 나선 결혼식은 잉꼬가 곧장 예약을 받음으로써 다시 불붙었다. 밀실주점 빨간장미 김 양과 에로스의 오 양은 서둘러 신혼여행을 다시 신청했다. 뒤를 이어 사진만 찍을 건지, 식만 올릴 건지, 행복한 고민에 쌓인 여자들이 상품권을 고르기 위해 줄을 섰다. 마침내 복사꽃시의 절세미인 오마담의 차례가 되자, 최가배는 슬픔에 젖은 강태봉에게,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이참에 신랑 노릇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권해 보았다.


윤동수
․1960년 출생
․1990년 계간 ≪사상문예운동≫에 중편 「새벽길」 발표
․2003년 ≪실천문학≫에 「개밥」 「최달식」 발표
․2003년 윤상원 평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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