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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신작단편/백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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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집
백선경
춥다. 몹시 추워서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이 그립다. 화사한 햇살이 내리쬐어 알맞게 마루바닥이 달아 있지만, 사지가 오그라들고 삭신이 쑤시도록 한기가 서린다. 한기는 싸늘히 굳은 가슴에서 불어와 애간장을 저미며 동통을 몰고 온다. 김씨는 이를 앙다물고 고통을 참아본다. 어둠이 오기 전에는, 아니 자정이 지나 인적이 끊기는 새벽녘까지는 대문이 훤히 내다보이는 마루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아들이 안겨놓고 간 그리움을 부려놓기 전에는 앉은 자리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
희미하게 차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쯤에서 출발한 차일까. 김씨는 귀를 쫑긋 세우고 차 소리를 염탐한다. 혹 아들이거나, 아들의 소식을 전해줄 그 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쿵덕쿵덕 심장이 뛴다. 노인성 질환으로 난청에 시달린 지도 오래인데, 유독 선명하게 들려오는 차 소리는 얼어붙은 심장에 불길을 지핀다. 아아, 드디어 오려는가. 탄성까지 내 지르며 엉덩이를 무춤하게 들어올리고 대문을 바라본다.
이 외진 곳에 들어올 차는 그리 많지 않다. 김씨가 살고 있는 동네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중의 산골이다. 7년 전 아들을 먼 타국으로 떠나보내고 김씨는 이곳으로 이주했다. 연고 하나 없는 산골에 거처를 선뜻 정한 것은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이 사랑했던, 고향 마을과 흡사한 풍경 때문이었다. 이 마을에 거처를 정할 때만 해도 나이든 노인들이 지키는 가구 수는 여덟 채나 되었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한 집주인들이 세상을 달리하거나, 또는 자식을 따라 도회지로 나가거나해서, 지금은 김씨가 사는 집과 단 한사람의 주인을 남긴 두 가구만이 달랑 남았다.
길을 잘못 든 차인가. 차 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괴괴한 고요만이 짙게 깔려서 김씨가 숨을 내쉴 때마다 가랑가랑 끓는 가래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다. 오늘도 틀렸구나. 아니, 아니지. 아직 하루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걸. 김씨는 다시 기다리는 자세를 취한다.
곧 다가올 겨울을 예고하는, 붉게 물든 앞산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소리도 없이 훌쩍 가버릴 계절의 덧없음에 모골이 송연하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너무 오래 살았어……, 그래 오래. 하지만 아들아, 널 꼭 한번은 보고 가야 되지 않겠니? 너 하나 믿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햇살이 일렁거린다. 김씨는 심한 어지럼증에 울컥 설움을 토해낸다.
오랜 시간 정적에 휩싸인 고독은 김씨를 희롱한다. 해가 지려는지 천지가 붉다. 온종일 뿌려댄 빛을 한입에 거둬 삼킨 할로겐 전기히터 같은 태양의 몸뚱이가 두툼하다. 산골의 어둠은 금세 차오른다. 김씨는 끙 외마디 신음을 토해내며 옹송그린 몸을 편다. 뼈마디 구석구석 아픔을 곁들인 관절통은 가슴 밑바닥에서 서럽게 달아오르는 외로움에 앞서 내달린다. 서늘한 가슴을 훑어내리고 콩콩 무릎을 쥐어박는다. 고희를 넘기고도 6년이란 세월이 덧붙은 김씨의 몸은 빠르게 삭아가는 중이다.
차라리 이승 귀신이 되어 떠돌망정 숨 막힌 그리움을 절단 내고 싶다. 그러나 마지못해 연명하는 자신의 생명력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김씨는 아들의 부재를 볼모로 사그라지는 명줄에 불꽃을 다시 지폈고, 생명을 질긴 잡초의 그것처럼 되돌려놓곤 했다.
김씨는 저린 발을 질질 끌며 대문간의 전기 스위치를 올린다. 저녁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잠시 가 있는 사이에는 대문간의 낮은 불빛이 아들을 인도할 것이다.
작은 밥공기로 반쯤 쌀을 떠내 씻는다. 꼭 한 사람 분량의 쌀이다. 쌀눈이 으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씻는 손은 정성으로 가득하다. 쌀을 냄비에 안치고 검은콩 일곱 알을 씻어 쌀 위에 얹는다. 아들은 검은콩 물이 살짝 든 밥을 좋아했다. 콩맛이 밴 달착지근한 밥은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다고 했다.
냄비를 들고 뒤란으로 나와 화덕에 올려놓고 잔가지로 불을 피운다. 타닥타닥 불꽃이 정답다. 전기밥솥이 유행하는 시절에도 아내는 매 끼니마다 아들에게 화덕에 안친 더운밥을 지어 먹였다. 아들은 식성이 까다로웠다. 전기밥솥에 지은 밥은 설익은 맛이 난다며 화덕에서 뜸을 들인 오돌오돌한 밥맛을 그리워하곤 했다. 도회지로 이사를 나와서도 아내는 나무 대신 연탄불을 피워 화덕에 밥을 짓곤 했다. 전기밥솥의 밥은 아들의 피를 말린다던가.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알맞게 불을 지핀 모양이다. 김씨는 부엌으로 돌아온다. 뜸이 들 5분 정도의 짬을 내어 저녁 식사를 마쳐야 한다. 아들의 밥공기가 비어야 새 밥을 떠놓을 수 있으므로. 점심나절에 퍼놓은 밥은 싸늘히 식어있다. 김씨는 신김치 한 조각을 얹혀 허겁지겁 식은 밥을 입안에 끌어넣는다. 맛을 음미할 여유도 없고 씹는 시간마저도 아깝다. 제 때 알맞게 뜸이 든 밥을 퍼 담아야 하기 때문에 밥공기를 비우고 재빠르게 씻는다. 그릇과 주걱을 쟁반에 받쳐 들고 뒤란으로 나와 뜸이 알맞게 든 밥을 살살 퍼 담는다. 혹여 식을세라 뜨거운 김이 오르는 밥공기 위를 손으로 잔뜩 덮고 부엌으로 돌아온다. 가장 따뜻한 부뚜막은 어디일까. 다급한 손이 부뚜막을 어우른다.
방금 밥을 퍼 담은 밥공기와 아들이 좋아하는 오징어 젓갈 한 종지를 꺼내 나란히 부뚜막에 놓아둔다. 김씨는 다섯 해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 끼니마다 더운밥을 지어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싸늘히 굳은 밥을 먹고 있다. 먼 타국땅에 가 있는 아들이 행여 끼니를 굶을까, 정갈하게 놓인 밥을 향해 손을 모은 다음 중얼거린다. 우리 아들 끼니 제때 먹게 돌봐 주사이다. 부디 돌아오는 날까지 건강을 지켜 주사이다.
오늘 아침 단감나무에 까치가 사뿐 날아와 내려앉았다. 김씨에게 까치가 나뭇가지에 올라탄 것과 내려앉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멀리서 날아온 까치는 잎새 풍성한 가지에 사뿐 내려앉고, 올라탄 까치는 가까운 곳에서 폴짝 뛰어와 낮은 가지에 냉큼 올라탄 것을 말한다.
까치가 사뿐 내려앉으면 김씨는 외출 준비를 한다. 먼 곳에서 날아온 까치이니 분명 아들의 소식을 전해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외출이라 해봤자 대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툇마루까지이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정성껏 빗고 몇 벌 되지 않는 낡은 바지 중에서 아들이 기억할 만한 오래된 밤색 바지를 꺼내 입는다. 무릎이 닳아서 하얗게 바랜 부분이 거슬려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도 다음 순간 곧 김씨의 눈은 미소로 가득해진다. 윗도리는 어떤 것이 좋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서도 한동안 뜸을 들인다. 아들이 기억할 만한 옷들은 김씨의 몸뚱이만큼이나 너덜너덜 해져서 이미 폐기처분된 지 오래다. 아들은 밤색바지에 옅은 오렌지색 셔츠 차림을 가장 편안해 했다. 저승 문턱이 코앞인 김씨에게 오렌지색 셔츠가 가당키나 할까마는 김씨는 아들이 집을 떠난 이듬해 시장에서 사들인 오렌지색 셔츠를 꺼내 입는다. 고이 모셔두긴 했지만 잔손을 많이 탄 셔츠는 쪼글쪼글 주름이 져서 잔금이 쩍쩍 간 김씨의 몸뚱이만큼이나 어지럽다. 하나하나 단추를 채우는 손길이 즐겁다. 오늘은 꼭 아들의 소식을 듣고 말겠다는 각오가 방안을 비장감으로 가득 채운다. 아니 소식을 듣지 못한들 대수냐. 아들을 떠올리며 부산을 떠는 시간 자체가 그에겐 즐거움이다. 아들의 생각에 관한 한 그의 모든 행위는 즐거움으로 시작된다.
구색에 맞춰 밤색 양말을 양 발에 끼우고, 정성스레 닦아둔 구두를 꺼내 신는다. 허리춤에 손을 쓱 올리며 거울을 들여다보는 김씨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웃음이 배어난다.
아들 몫으로 떠놓은 식은 밥과 김치 몇 조각을 꺼내 보자기에 꼭꼭 싸맨다. 소풍이라도 가듯 보자기를 들고 일어선다. 어쩌면 오늘 점심에는 따뜻한 밥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어깨가 가볍다.
안방 문을 드르륵 열고 한발만 내디디면 툇마루다. 그러나 김씨는 툇마루로 통하는 방문에 대못을 꽝꽝 박아 출입을 못하도록 막아두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맞이하는 일에 한 치의 게으름도 용납할 수가 없어서다. 수족이 불편한 몸으로 툇마루까지 나서기에는 적잖이 고통스럽다. 부엌 문지방이 장애물이다. 삼 년 전 풍을 맞은 왼발이 문지방에 걸려 또 시간을 지체한다. 해가 뜨기 전에 툇마루에 도착하기는 무리인 듯하다. 뒤란을 거쳐 마당을 반 바퀴 빙 돌아야 마루에 다다르는데 뒤란의 화덕 앞에서 고새를 참지 못하고 발목뼈가 시큰거린다. 절름거리면서도 그는 허리를 최대한 꼿꼿이 펴며 또박또박 걸음을 옮기려고 애를 써본다. 휘어지고 뒤틀린 아비의 모습에 혹여 아들이 놀라지나 않을까, 정성이 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아들이 대문 틈으로 빠끔히 들여다봤을 때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은 어디일까, 점검에 점검을 다한다. 마루가 가까워진다. 김씨는 잔뜩 긴장해서 발걸음이 무겁다. 길게 심호흡을 하고 마루의 정중앙에 눈어림표를 꾹 찍어둔다.
오늘은 예감이 좋다. 단 한번에 앉을 자리를 찍었으니. 눈어림표를 올라타고 앉는다. 성공이다. 마루 정중앙에 성공적으로 들어앉았다. 대문이 한눈에 가득 들어온다. 아들을 맞을 준비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김씨는 흐뭇해한다.
비가 오려는가. 먹구름이 가득하다.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바람도 제법 시리다. 점퍼라도 걸치고 나올 걸 그랬나? 아니야, 가볍게 차려입어야 대문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지. 이쯤의 으스스한 한기 따위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겨뤄온 것을. 설마 이 바람에 잔금 진 몸뚱이가 부서지기야 하려고. 부서지면 또 어떠랴, 아들이 와 주기만 한다면.
감나무 이파리 우수수 떨어져 아들이 밟고 들어설 대문간을 장식한다. 저 이파리 뛰어 넘고 아버지 제가 왔어요, 불쑥 달려들 아들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추위로 줄어든 목이 쑥쑥 키를 키운다. 휘이잉. 귀곡성처럼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럽다. 셔츠 깃이 펄럭펄럭 볼을 때린다. 시커먼 먹장구름이 하늘 중심으로 몰려든다. 비를 뿌리려고 단단히 벼른 날씨다. 김씨는 새파란 입술을 파르르 떨며 군불을 때 지글지글 끓는 고향집의 아랫목을 떠올린다. 꺄르륵 꺄르륵. 겨우 옹알이를 할 적, 아들의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멀리멀리 달아난다. 허허, 허허. 김씨는 떨리는 입술을 벌름거리며 아들의 웃음을 뒤따른다. ‘내 여기서 아들이 오는 걸 보지 못한다면 이 몸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김씨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들이 특권처럼 휘두르는 불효의 근원을. 딸 넷을 낳고 불혹이 지나 겨우 얻은 아들은 김씨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젊은 날 김씨는 아들이 자신의 필요로 한다면 저승 문턱이라도 얼마든지 넘을 수 있다는 각오로 살았다. 별 탈 없이 쑥쑥 자라는 아들을 보며 이만큼이면 아비 도리는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원 없이 맛보던 시절도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으로 둘러싸인 오목한 산동네서 태어난 탓이었을까. 아들은 김씨의 손을 잡고 산에 오르길 좋아했다. 산 도라지며 잔데, 머루, 다래, 자연이 베푼 유일한 간식이었던 먹을 것을 망태기에 짊어지고 산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아들이 집 뒤에 나지막하게 솟아 오른, 계절 따라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서 꽃동산이라 부르던 작은 동산에 이르렀을 때였다. 강물에 반짝이는 햇살에 감동하여 환호성을 질렀다. 아버지 낮별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곤 이어 아버지는 내 꿈이 뭔지 아세요? 묻곤 했다. 알고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 일테면 정치인이라든가, 검사나 판사. 아뇨, 아니에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아들의 단호함에 김씨는 서늘한 불안감을 느끼며 아들의 작은 입에서 쏟아질 말들을 애써 피하려 했다. 난 이곳에서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래요. 어린 아들은 지극히 소박한 꿈으로 김씨를 실망시켰다. 아들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제가 살고 있는 고향 마을이 가장 큰 세계였으며, 고향마을의 아름다움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안 돼. 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
소박한 아들의 꿈을 알고 난 김씨는 도회지의 화려함을 누누이 강조해 주입시켰다. 그러나 아들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김씨는 봄이면 산을 오르고, 가을이면 들판을 달리고, 눈이 하얗게 내린 언덕에 올라가 눈썰매를 타는 아들의 재미를 아예 빼앗아버렸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맞자 김씨는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시골 농지를 팔아봤자 도시에서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의 단칸방 얻을 돈이 전부였다. 가진 것도 없이 직장도 마련하지 못하고 오직 아들의 교육을 위한다는 목적 하나로 수십 년 터전을 버린 터였지만, 아들을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는 자부심만은 대단했다.
그 당시 큰딸은 결혼을 해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고, 둘째딸과 셋째 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아들의 교육비는 무리 없이 갹출되리라 생각한 무작정의 이주였다. 그만큼 키워주었으니 제 동생 공부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넷째 딸이었다. 언니들은 꿈도 꾸지 못할 중학교까지 마쳤으면서도 공부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의 중학 입학을 한 달여 앞둔, 어느 눈보라치는 날, 넷째는 입학금만 보태주면 어떻게든 제 힘으로 졸업해 보겠다며 고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내밀었다. 김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아들 학비도 딸년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처지에 아들도 아닌 딸년의 학자금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김씨는 입학 통지서를 갈갈이 찢어 넷째 딸의 얼굴에다 뿌려버렸다. 꼴도 보기 싫으니 꺼져버려.
유독 넷째 누나를 잘 따르던 아들은 시퍼렇게 날선 증오의 말을 서슴없이 김씨의 가슴에 꽂았다. 아버지 독선에 신물이 나요. 누나의 찢어진 꿈처럼 아버지도 언젠가는 찢어지는 고통으로 몸부림칠 날이 있을 거예요. 찢어진 종이를 하나하나 주워드는 아들의 손길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김씨인들 왜 가슴이 미어지지 않았으랴. 아들이 튼실해야 그 집안의 명맥이 이어진다는 고리타분한 의식의 소치로 훗날 빚어질 참혹한 결과를 김씨는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넷째 딸은 제 힘으로 학비를 벌어 꼭 고등학교에 가겠다며 집을 나갔다. 김씨는 딸년의 입 하나 던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려면 단돈 십 원도 아쉬웠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소식도 끊고 지내던 넷째 딸이 집을 찾은 것도 눈보라가 몹시 불던 날이었다. 넷째 딸 손에는 대학 합격 통지서가 자랑스럽게 들려 있었다. 아버지 보세요, 제 힘으로 해냈어요. 입학금만 도와주시면 나머지는 혼자 힘으로 해 볼게요. 김씨는 얼굴을 돌리며 당장 꺼져버려, 호통을 쳤다. 딸은 김씨를 향해 싸늘한 비웃음을 남기고 다시는 집을 찾지 않겠다며 떠났다.
김씨는 오로지 아들 하나 잘 키워보겠다는 각오만을 새롭게 다지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누이의 뒷모습을 마치 죄인처럼 바라보는 아들을 향해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우리 가문의 대들보를 남의 집 식구가 될 네년들이……, 어디 감히…….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아내는 김씨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살그머니 방을 나섰다. 열린 문틈으로 깎아낸 손톱만한 하현달이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코끝이 찡해져서 숨을 딱 멈추었다. 하얀 눈빛에 서린 고쟁이 차림에 스웨터를 대충 걸친 아내의 뒷모습이 머뭇거리다 문밖으로 사라졌을 때에야 김씨는 비로소 멈췄던 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에 차 있던 서러운 열기가 흐느낌으로 새어 나왔다. 자신의 피와 살의 분신이 자식이 아니던가. 김씨인들 내친 넷째 딸년이 왜 가엾지 않겠는가. 오로지 아들 하나 잘 키워 놓으면 무능한 아비가 내친 딸년들을 아들은 거두어 줄 수 있으리라, 위안할 따름이었다.
아내의 발소리가 사그락사그락 들려왔다. 좌르르 수돗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물을 한 사발 받은 아내는 장독대로 향하는 것 같았다. 김씨는 아귀가 맞지 않은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눈이 하얗게 내린 장독대에 물사발을 올려놓고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며 딸들의 무사안일을 빌고 있었다. 이 어미 죄가 많아 내 몸으로 낳았어도 어미 노릇도 못하며, 내 품에 끌어안아도 따습게 해줄 수가 없습니다. 부디, 딸들을 보살펴 주소서. 애끓는 기도였다. 한참을 흑흑 흐느껴 울던 아내는 찬바람을 한 움큼 묻히고 들어왔다. 김씨는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골며 곤하게 자는 척을 했다. 아내는 김씨가 깰까봐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아내의 눈물바람이 이불깃을 들썩였다. 김씨는 아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나도 당신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딸들이라고 어찌 내 자식이 아니겠냐고. 그러나 김씨는 아내의 눈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통증으로 쓰라린 가슴의 열기를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로 대신했다.
넷째 딸이 떠나고 아들은 노골적으로 김씨를 증오하며 방황을 했다. 아버지 피를 이어받았으니 저도 딸들을 낳으면 버려야 하냐고. 게거품을 내어물고 소리소리 지르는 아들을 김씨는 맥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사내라면 견디기 힘든 고통의 벌판에 놓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는 자만이 만족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길 바랐다. 아들의 방황은 길었다. 입시가 눈앞인데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공부는 뒷전이었고 연극을 한다 노래를 한다, 일주일씩 연락을 끊고 집을 비우기도 했다. 김씨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결국 아들은 김씨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 문턱을 밟지 못했다. 재수 삼수가 이어졌다. 세 딸들의 짐은 더욱더 무거워졌다. 사위 몰래 부업을 하거나 아니면 생활비를 쪼개서라도 지친 한숨을 내쉬며 자투리 돈을 전해주는 딸들의 고통을 김씨는 외면했다. 아들만 잘되면 반드시 갚을 날이 있으리라, 여전히 아들에게서 희망을 놓지 못했다.
드디어 아들은 삼수를 해서 김씨가 그토록 바라던 법대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김씨는 절망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걸은 희망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게 해달라고. 건축을 공부해서 고향 마을에 번듯한 집을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그러나 김씨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들은 꼭 법을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김씨의 간곡한 바람 때문에 아들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머리통 빠개지게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을 먹으면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고, 해거름에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개나리가 만발한 이른 봄이었던가. 몇 년 동안 소식을 끊고 지내던 넷째 딸이 신수가 훤해져 돌아왔다. 양손에 바리바리 선물 꾸러미를 들고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온 넷째 딸은 반가움에 겨워 말문을 트지 못하고 울먹이는 제 동생과 어미의 손을 꼭 그러쥐고 기쁨을 나눴다. 그러나 딸년은 간간이 노골적인 적의의 눈길을 김씨에게 던지곤 했다. 김씨는 슬며시 방을 나와 문틈에 귀를 쫑긋 세웠다. 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큰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다니. 어머니, 이제야 어깨에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게 되었어요. 누이 때문에 항상 죄인 같았는데……, 기쁘죠? 어머니도 저만큼 기쁘시죠? 모진 년. 저 억센 딸년의 기에 눌려 내 아들이 기를 펴지 못했구나, 고얀 것. 딸년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김씨의 가슴에도 반가움이 들어차 앉았다. 넷째 딸이 번듯하게 취직까지 해서 나타났으니 생활고는 조금 덜할 것 같아서였다.
세 딸이 쥐어주는 푼돈을 모아 아들 학원비를 챙겨주면 빈털터리가 되었다. 아내가 얻어오는 부업거리로 근근이 입에 풀칠은 하지만 부실한 가계비는 마음의 가난까지 보태고 있었다. 김씨는 달디단 막걸리 생각이 간절해졌다. 벌써 달포나 끊고 지낸 막걸리 사발이 공중에 둥둥 떠다녔다. 입맛을 쩍쩍 다시며 다시 문틈으로 빼곡이 눈재기를 했다. 딸이 받는 월급은 얼마쯤 되는지,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마음놓고 마실 수 있는 돈을 쥐어준다면 좋으련만.
김씨는 딸이 아주 돌아온 거라고 믿었다. 월급을 받으면 제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늙은 부모를 돌봐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딸은 김씨의 무능을 질책할 뿐 아들 뒷바라지는커녕 단 한푼의 돈도 줄 수 없다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 아버지가 딸들한테 해준 것이 무어 있다고 손을 벌리세요.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아버지의 전부였던 아들놈을 아버지와 똑같이 무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버지의 도리였나요? 막내가 아직도 아버지 품안에서 놀고 싶대요? 저는 아버지 같은 아들 낳을까봐, 결혼하기도 겁나요.
김씨는 딸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딸들한테나 아들한테나. 오호 최선이라…… 그렇겠죠. 딸들한테는 피눈물을 쥐어짜게 해서 그 피눈물로 만든 돈을 착복하는 것이 아버지의 도리였을 테고, 아들한테는 딸들의 피눈물을 강제로 수혈하는 것이 아버지의 도리였을 테죠. 그래서 무엇을 이루어 내셨나요? 막내를 폐인처럼 만들어 아버지 품에 가둬두는 일을 이뤄내셨군요. 장하세요, 장하시다고요!
딸은 김씨의 가슴에 피멍울을 남겨놓고 가버렸다. 아들은 태풍의 눈 속에 갇힌 듯 잠잠하게 며칠을 지냈다. 그리곤 불쑥 김씨의 곁을 떠나간다는 것이었다. 이제 아버지에게서 놓여나야겠어요. 보내주세요. 어디로, 도대체 왜? 김씨는 목이 꽉 메었다. 세상이 온통 무너져 내렸다. 아들은 김씨에게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아들이 떠나간다니. 먼 타국에 가서 혼자 힘으로 살아보고 싶어요. 안 돼, 안 된다. 날 죽이고 가렴. 목이 터져라 설득하고 빌어도 아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전세금을 빼 아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너무 늦지는 말거라.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거라. 그렇게 떠난 아들은 7년째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다.
사방은 잔뜩 찌푸려서 어둠이 내려앉은 듯하다. 몇 시나 되었을까.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려다가, 시계 옆에 걸어둔 아들의 사진에 시선이 고정된다.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놈 인물 한번 좋다. 뉘집 자식인지 큰 인물 될 상이네그려. 오뚝한 콧날하며 긴 인중, 넓은 이마, 제 아비는 닮지 않았네그려. 허허, 허허. 김씨는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온다. 시린 바람에 벌겋게 달아오른 양 볼은 일그러지고 명치에서 시작된 동통이 온몸을 헤집어도 김씨는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참을 수 없이 마음이 아파도 온몸을 던져 웃음을 짓는다.
웃음을 그치면 거대한 고독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삭은 몸뚱이를 허우적거려 고독을 헤엄치고, 푹푹 빠지는 고독의 뻘밭을 거슬러도 고독의 늪은 쉬이 물러나지 않는다.
똑 똑 똑.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을까. 김씨는 콘크리트 댓돌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진저리를 친다. 목탁 두드리듯 선명하게 들려오는 빗소리가 마치 죽음을 준비하는 저승사자의 노크 소리 같기도 하다. 김씨는 머리를 절래 절해 흔든다. 아직은 아냐. 갈 때가 안 되었어.
감나무 이파리도 비에 젖어 푹 쳐져 있다. 내일 아침엔 비가 그쳐야 할 텐데. 푹 젖은 날개로 감나무에 날아들 멍청한 까치는 없을 터이다. 고개를 들어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낮게 깔린 두터운 먹구름이 침침하게 시야를 가로막는다.
김씨는 눈가를 훔치고 대문간으로 다가간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혹시 아들이 문을 두드리진 않았을까. 기대와는 달리 문고리는 김씨가 해둔 그대로 하늘을 향해 있다. 누군가 다녀갔다면 헐겁게 시늉으로만 걸어놓은 문고리는 분명 아래로 향했을 것이다.
대문간에 얌전히 세워놓은 우산을 어루만진다. 혹여 아들이 비 오는 날 들어서면 머리가 젖을까봐서다. 대문에서 댓돌까지 잔디도 가지런히 심어 두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을 아들이 아비를 보러 왔다가 번쩍번쩍 빛나는 구두에 흙이라도 묻히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딸년들이라도 와 주면 덜 서러울 텐데. 5년 전 제 어미가 세상을 떠나자 딸들은 일년에 서너 번 전화를 할 뿐이다. 안부 전화를 핑계로 김씨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한달에 한번 꼬박꼬박 통장으로 부쳐주는 생활비에 딸년들의 이름 석자가 찍혀지는 것이다. 딸들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통장은 김씨의 바지 주머니에 소중히 꽂혀있다. 그것은 딸들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그리움의 갈증을 해소해 준다.
김씨는 통장을 조심스럽게 꺼내들고 첫 장을 펼친다. 막내딸 이름 옆의 숫자가 가장 큰 숫자다. 한달 생활비를 하고도 남을 만한 큰돈이 숫자로 찍혀 있다. 김씨는 부드럽게 딸들의 이름을 쓰다듬는다. 딸년들은 다 소용없다고 천시당한 설움에 비한다면 생활비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효녀들이라고, 딸들의 이름 옆엔 숫자들이 시위라도 하듯 빼곡이 찍혀 있다. 고얀 것들……. 김씨는 자신의 이기심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딸들이 괘씸하다. 천리 길인들 왜 못 오랴. 내가 너희들에게 죄인이더냐. 무너져 내리는 서까래에 튼실한 대들보 하나 받치려한 것이 그렇게 큰 죄이더냐.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아비의 뜻을.
김씨는 대문간에 옹송그리고 앉는다. 빗방울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금세 후줄근 젖어든다. 오렌지색 셔츠가 주름을 펴고 몸에 쩍 달라붙는다. 눈동자 속에도 비가 내리는지 그렁그렁 맺힌 물기가 볼을 타고 뚝뚝 흐른다. 김씨는 풀어진 눈동자를 부릅떠 대문을 노려본다. 나무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양철판 두 장을 겨우 잇대어 만든 대문은 비바람에 끼익끼익 청승맞게 울어댄다.
대문이 없을 때, 김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항시 머리를 감아 곱게 빗어 넘기고 자리에 들었다. 혹여 아비가 추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을 때, 아들이 왔다가 늙고 볼품없는 아비의 모습에 실망이라도 하면 안 된다. 자다가도 문득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다. 단정한 모습으로 아들을 맞을 수는 없을까, 궁리 끝에 김씨는 대문을 만들었다. 아들이 불시에 나타나더라도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설 여유를 벌기 위해서였다. 김씨의 귀와 눈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대문은 한번도 타인의 방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외출을 할 때도 대문 밖으로 영락없이 빗장이 걸렸다. 대문은 김씨와 타인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오로지 아들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굳게 닫혀 있었다.
섬뜩한 냉기가 감도는 눈빛으로 대문을 노려본 김씨는 어설프게 걸린 고리를 벗겨버리고 대문을 활짝 연다. 길이, 어디로든 통하는 길이 훤하게 드러난다. 이웃 권 영감네 딸들도 저 길을 거쳐서 왔고, 나도 저 길을 걸어서 딸들이 부쳐준 생활비를 찾아오곤 했지. 그런데 우리 딸들은 왜 저 길을 밟지 못하는 걸까.
이얘, 선자야.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너에게 짐이 되는구나. 이얘, 선옥아. 고생 많았다. 선정아, 너 볼 낯이 없구나. 선민아, 용서해라. 아비를 이제 그만 용서해라. 딸들아 잘못했다, 잘못했어. 김씨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무너져 내린다. 무능한 아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딸들의 희생을 외면했다.
김씨는 어깨를 들썩이며 통곡한다. 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어찌 이리 더뎠는가. 돌아서서 자신이 심었으면서도 정작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잔디에 첫발을 내딛는다. 딸들에게 지은 죄를 빗물에 씻어 내리려는 듯 하염없이 비를 맞는다. 그러다가 달팽이처럼 느린 몸짓으로 누렇게 퇴색된 잔디를 밟고 마루로 돌아온다. 아들의 사진 액자를 떼어내 쌓인 먼지를 닦는다. 이놈, 고얀 놈, 이제 너를 놓아줘야 하나보다……. 그러나 이놈아, 한번만, 딱 한번만 널 보고 가야 되지 않겠니? 이대로 끝이라면 누가 아비를 용서해줄 것이냐. 너무 늦지는 말거라, 제발 너무 늦지는 마.
곽 막혔던 김씨의 가슴에 길이 열리고 있었다. 묵은 체증을 뚫고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었다.
백선경
․충북 단양 출생
․2000년 ≪세기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ꡔ동거인으로부터의 탈출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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